86세대와 미완의 민주화, 다음 단계의 민주화를 위한 과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저자 김누리 인터뷰 2

조회수 2020. 9. 16. 12: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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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약탈적 성향을 띨수록 반지성주의가 팽배하죠."
※ 「 모든 것은 68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저자 김누리 인터뷰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86세대와 한국의 정치

김민섭: 많은 청년이 86세대를 거대한 악처럼 여겨요. 꼰대나 아재 같은 말들이 파생되기도 했고요. 선생님은 책에서 86세대가 정치의 민주화를 잘 이루어낸 편이기는 하나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 문화민주화는 이뤄내지 못한 것으로 진단하셨어요. 86세대의 공과 과를 함께 말씀해 주신 거잖아요.


김누리: 저도 86세대와 경계선을 맞댄 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공유하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저와 다르다는 느낌 역시 있어요. 역사라는 게 그 점에서 힘들죠. 우선 현재 젊은 세대는 그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점이 먼저 있어요. 사실 그때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세대였어요. 저도 대학 시절에 친구들과 모이면 ‘우리가 죽기 전까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볼 날이 올까?’ 같은 말을 하곤 했으니까요.


제가 태어난 1960년의 이듬해인 1961년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을 시작했고 197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어요. 평생 독재정권 아래에 살았기에 민주적 선거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뒤이어 그와 비슷한 부류의 독재자인 전두환이 집권해 8년간 군사 독재를 겪었고요. 한 번도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아본 적이 없던 그 시절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암담했죠.

86세대가 겪은 독재.

김민섭: 지금은 고등학생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논의도 오가는데, 그 당시엔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겠어요.


김누리: 아무도 대통령 직접선거에 대한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생각지 않았던 시대니까요. 그 당시에 권력과 싸운다는 것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독재정권은 악이 분명했기에, 이성적 판단의 문제가 아닌 도덕적 결단의 문제였던 거예요.


김민섭: 돌려 말하면 지금은 악이 분명하지 않은 시대라 볼 수 있겠어요.


김누리: 그렇죠. 그래도 1980년대 독재정권에 항거한 세대의 역사적 역할을 높이 평가해 마땅해요. 민주주의 체제를 얻어낸 것은 86세대의 업적이고 그에 대한 이견은 없어요. 허나 다른 측면에서 볼 수도 있긴 한데,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이다.”예요.


저는 이 말이 너무나 와닿았어요. 파시즘과 싸우던 86세대의 내면에 파시즘이 남은 거예요. 저도 그 말을 기회로 저의 내면에 남은 파시즘을 찾아볼 수 있었고요. 아까 말했던 대로 정치 민주화는 이루었으나 그 세대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문화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거예요.


다른 한편으로 보면 86세대가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에 항거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이후의 계획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것까지 요구하는 것이 옳은지는 생각을 해 볼 여지가 있죠. 과연 그것이 부족했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악한 권력을 뿌리치기도 버거운데 미래를 계획할 능력과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을 비판하긴 어렵죠.

당신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당신을 애옹

김민섭: 네, 그건 개인에게 너무 가혹하죠.


김누리: 그러나 완전히 용서할 수는 없어요. 독일의 68운동 세대가 완전히 새로운 독일을 만들어낸 것을 봐요. 68운동을 기점으로 독일은 나치의 잔재가 남은 독일에서 나치즘을 청산했고, 반공전선이었던 독일을 화해와 통일의 장으로 변혁했으며,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을 복지국가 독일로 바꾸는 질적인 변화를 이루어냈어요.


이걸 한국의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한국은 독재정치 아래의 비정상적인 사회가 386세대에 의해 민주 정부 아래의 비정상적인 사회로 변한 거예요. 권력 구조는 변했지만 사회구조는 변하지 않았어요. 재벌의 장악력을 위시한 자본독재는 더욱 심해졌고 소득 불평등, 교육 불평등은 더 커지는 등 비정상성은 더욱 심화됐어요. 386세대가 정치적 기득권을 가지면서 비정상성은 오히려 강화된 면이 있죠. 이전의 군사 독재자들은 비정상성을 포퓰리즘적인 방식으로 개선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요.


김민섭: 군사 독재 정권을 옹호하는 목소리에는 “그래도 이건 잘했어.” 하는 게 꼭 나오죠.


김누리: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의 경제 건설, 전두환 정권의 과외 척결 등이 있겠죠. 그들은 이를 통해 결여된 정치적 정당성을 메워보려 했어요. 허나 386세대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인해 그런 포퓰리즘적 정책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죠.

군사정권 아래에선 과외가 불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김민섭: 책에서 이러한 대목이 있어요. “2019년 선거법 개정 협상은 한국 정치를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러나 사실 결정권을 쥐고 있던 민주당이 보인 당리당략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행태로 인해 의미 있는 개정을 이루지 못했다.” 선생님은 “이로 인해 수구와 보수의 과두지배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독일의 비례연동형 대표제를 채택해야 했다고 쓰셨어요.


김누리: 길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한국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선거법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한국 사회는 보수-진보의 경쟁 질서가 아니라 수구-보수의 과두정치 질서예요. 한국 정치 70년은 대체로 수구와 보수가 지역을 거점으로 지배하면서 권력을 6:4 혹은 4:6으로 분점해왔어요. 지금은 보수가 6, 수구가 4이고 지난 정권 때는 수구가 6, 보수가 4였던 거죠. 이것을 단순한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정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해요.


수구-보수의 과두 정치를 가능케 한 게 바로 선거법이에요. 한국은 국회의원 선거는 투표율이 60%가 안 되고, 그중 40%가 넘으면 사실상 당선이잖아요. 이는 전체 유권자 수의 24%가 안 되는데, 사실상 1/4 대의제인 거예요. 결국 3/4은 대의되지 않아요. 대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죠.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복잡한 것이 아니에요. 민의가 그대로 반영되는 제도라고 보면 됩니다. 2015년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이미 그와 유사한 제안을 했고, 그것만 따라도 괜찮다고 봐요. 혹시 한국의 국회의원이 많다고 생각하나요, 적다고 생각하나요?

출처: 연합뉴스
정작 그렇게 만들어진 준연동형 비례제도 위성정당 꼼수로 파.괘.되었다.

김민섭: 글쎄요…


김누리: OECD 평균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가 많은 것을 잘못 알고 있어요. 여의도에는 국회의원이 300명 있고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에는 640명이 앉아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많다고 생각해요. 안철수가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일종의 포퓰리즘인데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한국은 500명 정도가 적절해요. OECD 평균이 국민 10만 명 당 의원 1명임을 감안하면요. 현재는 15만 명당 1명인데, 스웨덴은 3만 명당 1명으로 우리보다 5배 많아요. 영국은 5만 명당 1명으로 우리보다 3배 많고요. 한국은 지금 지역구에서 약 250명을 뽑는데 이제 나머지 250명을 비례대표로 뽑으면 되는 거예요. 독일이 이와 같이 지역구 약 300명, 비례대표 약 300명으로 절반씩 뽑아요. 이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복잡한 것이 아니라 내가 던진 표만큼 여의도로 가는 거예요.

출처: doona90님의 서재

김민섭: 그러면 소수정당도 그 표에 따라 국회에 입성할 수 있겠군요.


김누리: 그렇죠. 독일의 예를 들면 해당 권역의 정당투표에서 기독민주당이 50%, 사회민주당이 40%, 자유민주당이 10%씩을 얻으면 그에 비례해서 각각 50석, 40석, 10석씩 연방의회에 들어가게 돼요.


독일에서는 지역구에 출마한 개인에 대한 투표는 ‘재미투표(Spaßwahl)’라 부르는데 실제로 중요한 것은 정당투표이기 때문이에요. 재미투표에서 기독민주당이 30석, 사회민주당은 20석을 얻었다면, 지역구 당선자를 뺀 기독민주당 20석, 사회민주당 20석을 비례대표 명부에서 채우면 되는 것이다. 이러면 사표가 되는 표가 없어지죠.

출처: 한겨레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해왔지만… 어쨌든 위성정당으로 파.괘…
김민섭: 뭔가 어렵지만 우리는 국회의원을 좀 더 뽑아야 하고 좀 더 많은 국민의 대의가 반영되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겠네요.


지식인의 자리

김민섭: 저는 어린 시절에 행사 때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항상 불렀던 기억이 있어요. 6.25 전쟁을 겪은 교사들은 북진통일과 흡수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책에서 남북한의 통일을 가장 약탈적인 자본주의 국가와 가장 권위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통일이라고 규정하셨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손잡고 예식장에 가는 게 아닌 병원으로 가는 것이 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김누리: 우리가 통일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통일 국가의 사회적 실체에 대한 상상력은 결여돼 있어요. 통일 관련 학술대회를 찾아가도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요. 그런 통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가 확장된다면 그 첫 희생양은 남한 주민들이에요. 역사의 승자라는 우월감에 젖어 약탈적 자본주의는 더 강화될 것이고 한 세대 내내 고통받게 될 거예요.


북한과 같은 봉건적 세습사회주의를 어떻게 민주화하느냐도 중요한 문제이고, 두 번째로 남한의 이러한 약탈적인 자본주의를 어떻게 인간화(humanize)할 것인지가 문제예요.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주장은 하지 않겠어요. 자본주의를 넘어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안은 나도 모르겠으니까요. 허나 지금처럼 비인간적인 자본주의는 안 돼요. 자본주의라도 최소한 인간이 살 수 있는 자본주의여야 하고,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는 끝나야 해요. 최소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여야 남북한 통일이 가시권에는 들어올 거예요.


김민섭: ‘햇볕정책’이라는 말도 옳지 않다고 하셨어요. 햇볕을 쬐는 쪽이 모멸감을 가질 수 있다고요.


김누리: 저도 처음에는 이전 정권에서 반공통일, 멸공통일만 부르짖다가 문민정부는 뭔가 다르다, 참 말도 예쁘게 지었다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항상 북한에 대한 타자화 및 대상화에 젖어 있어서 백안시했던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그 입장에서는 당연히 기분 나쁜 말이죠.

출처: SBS
그래서 대신 달빛정책으로 바꾸어보았습니다 (아님)

김민섭: 결국 통일에서도 그 어느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의 타자화가 필요하겠어요. 거기에는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겠고요. 책을 읽으면서 귄터 그라스라는 작가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었던 건 큰 기쁨이었어요. 서독에서 통일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즈음에 귄터 그라스가 “서독인은 예전에 동독인에게 진 빚을 지금 갚고 있는 것뿐이며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짐을 동독인들이 모두 짊어졌을 뿐”이라고 말한 후 갈등이 많이 봉합되었다고 쓰셨잖아요. 이건 정말 용기 있는 말 같아요. 한국의 지식인들이라면 이런 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김누리: 저는 독일에는 ‘지식인의 자리가 있다’는 표현을 썼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그 자리가 없는 것 같아요. 한때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거나 아주 좁아졌죠. 지식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반지성주의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데, 이건 약탈적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자본주의가 약탈적 성향을 띨수록 반지성주의가 팽배하죠.


귄터 그라스는 그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해도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건 놀라운 용기예요. 거기에는 “아우슈비츠의 장본인인 우리는 독일 통일을 요구할 윤리적 권리가 없다”는 말도 있었고 그때 많은 독일의 지식인들도 놀랐어요. 귄터 그라스뿐 아니라 위르겐 하버마스 등 훌륭한 지식인들이 있어요. 이들의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거대한 보편인류적 관점으로 인해 독일은 주변 국가들에게 건강한 국가라는 인상을 주게 됐죠. 독일의 통일이 내키지 않아도 용인은 해 주었던 배경에는 지식인들의 역할도 컸어요.

귄터 그라스 (1927–2015)

김민섭: 일본에는 독일과 달리 지식인의 자리가 별로 없었나 봐요. 같은 과거를 겪었으면서도 그걸 성찰하고 극복하는 방식은 아주 다르네요.


김누리: 그러한 반성이 별로 없죠. 그러나 그러한 지식인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에요. 오에 겐자부로가 대표적이죠. 일본이 평화헌법 제9조를 준수하여 전쟁할 수 없는 국가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9조회’의 회원이었던 오에 겐자부로는 귄터 그라스와도 가까운 사이였고, 1997년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천황을 알현하지 않겠다’면서 천황의 초청을 거부했죠. ‘천황제는 일본 현대사의 가장 큰 오점’이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 우익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으면서도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발언을 많이 했어요.


김민섭: 선생님도 오늘 용기 있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어요. 인터뷰에 얼마나 담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후의 저작은 무엇이 될까요?


김누리: 한국에서 불평등과 계급이론의 최고 권위자인 신광영 교수님이 바로 옆 연구실에 있어요. 같이 한국판 『호모 아카데미쿠스』(homo academicus)를 쓰자고 약속을 했어요. 교수라는 대상을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 분석해보자는 기획이지요. “교수는 누구이고, 누가 교수가 되는가?” 하는 건 매우 중요한 질문이에요.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도 『호모 아카데미쿠스』를 저술한 바가 있어요. “프랑스의 학문을 생산하는 자들의 계급적 토대는 무엇인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에요. 우리는 학문이 생산한 담론을 소비하는데, 그게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야지 않겠어요? 아무튼 계획은 했는데 실행이 될지 모르겠네요.

한국에선 누가 교수가 되는가?

김민섭: 고백과 진단을 함께 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 될 텐데요. 선생님의 다음 책을 지방시라는 책의 저자로서도 기다릴게요. 오늘 긴 시간 함께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누리: 네, 고맙습니다.


김누리 교수는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으며 당사자로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 그는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라도 어떻게든 해 보고 싶어서 움직인다고 했다. 자신의 책에서 말한 ‘일상의 민주화’를 이루려는 노력이겠다. 그러한 개인의 선한 의지가 모여 결국 68운동이 없었던 한국에도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간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한국 사회의 교육, 정치, 문화 등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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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기사는 해냄출판사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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