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의원의 경선 탈락을 보며: 김대중 대통령과 호남 유권자 이야기

조회수 2020. 3. 16.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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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성숙한 정치 리더와 더 성숙한 지지자를 만날 때, 더 크게 승리할 것이다.

1.


호남 사람들에게는 공포, 한(恨), 자부심이 동시에 있다. 호남은 1980년 광주학살을 거치며 ‘전라도이기 때문에’ 학살당했다는 공포를 갖게 됐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한이었고, 한편으로는 자부심이었다. 군부독재에 맞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한편, 호남 사람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1971년 화려하게 한국 정치의 리더로 등장한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호남이 배출한’ 정치가였다. 김대중은 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을 겪으며 죽음의 위기를 맞았다. 미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았다. 1980년에는 광주학살을 했던 전두환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해서 사형을 선고했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호남의 단단한 지지를 근거로 '4자 필승론'을 주장했다. 호남에서 김대중의 득표율은 90%를 넘었다. 그러나 3위를 했다.

1987년 유세 중인 김대중. 영남은 노태우와 김영삼, 충청은 김종필이므로 호남과 수도권의 지지를 받는 김대중이 이긴다는 게 4자 필승론의 골자였다.

김대중은 1992년 대선에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전국연합'이라는 재야 조직과 정책연합을 했다. 호남은 역시 90%가 넘는 몰표를 줬다. 


그러나, 역시 떨어졌다. 그냥 떨어진게 아니라 200만표 차이로 ‘대패’를 했다. 김대중은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실제로는 김영삼 이후 후계자가 보복할 것에 대비해서 역량을 보존하고자 기만작전을 편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은 영국으로 날아갔다.


김대중은 1971년 대선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정치인이다. 이후 그는 1980년의 신군부 등장과 광주학살과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사형선고를 겪고, 1987년 대선과 1992년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했다. 그는 그간의 패배를 복기했다. 왜 패배했을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2.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이 찾은 해법은 5.16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충청도의 맹주였던 김종필과 '정치연합'을 하는 것이었다. 김대중-김종필의 정치연합(DJP 연합)은 정치전략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1. '반 신한국당 정치연합'이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신한국당(※ 미래통합당 전신) 반대 세력의 결집을 의미한다.
  2. '빨갱이-좌파 이미지'의 탈색을 의미한다. 그래야 중도 확장력을 높이고 보수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3. '유권자 다수파 연합'이다. 이는 호남-충청-수도권 개혁세력의 정치 연합을 의미하게 된다.

이 때 놀라운 사람들은 호남 유권자들이다. 이들에게서는 표의 이탈이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환영하는 기색도 표출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1997년 대선 투표 당일 일부러 ‘오전’에는 투표장에 가지도 않은 것이다. 왜? 오전에 혹시라도 호남 투표율이 높아지면 영남을 자극할까 봐 그랬던 것이다.


투표 마감시간이 오후 6시였는데, 호남 사람들은 오후 5시 즈음부터 ‘대거’ 투표장에 몰렸다. 1997년 대선에서 호남의 김대중 지지율은 역시 90%를 상회했다. 약 300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철저하게 전략적 행보를 한 것이다. 김대중은 왜 김종필과 손 잡았을까? 호남 유권자는 왜 그렇게도 전략적으로 움직였을까?


그래야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개혁-중도 다수파 연합'에 의한 승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호남 유권자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경이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단단함과 유연함이 함께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정치학 교과서 같은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3.


금태섭 의원이 경선에서 패배했다. 그럴 수 있다. 다만 4.15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득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극성스런 민주당 지지자들이 경선 패배 이후 그에게 하는 험한 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강화시킬 것이다. 험한 말의 강도만큼 중도층 유권자를 ‘더 떨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출처: KBS1

플레이어인 정치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밭을 탓해선 안된다. 다만, ‘그냥 유권자인 사람들’은 정치인과 그들의 지지자를 함께 보게 된다. 2002년 대선에서 노사모에 대한 감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일베와 태극기 시위대에 대한 반감이 박근혜에 대한 반감을 더 키운 것처럼.


더 성숙한 정치 리더와 더 성숙된 지지자를 가질 때, 그 정치세력이 더 많이, 더 크게 승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여전히 그 반대의 경우도 작동하게 될 것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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