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건물주에게 형사 소송한 썰

조회수 2020. 3. 12. 17: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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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고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건물 운영을 하면서 산전수전 겪었지만, 이 일만큼 마음이 힘들었던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닙니다. 2017년 여름부터 올해 초까지의 일입니다.


전쟁의 서막

2017년 8월 4일. 저희집 세입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옆 건물에 사는 여자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문 열라고 해서 열어줬더니 삿대질을 하면서 심한 욕을 하더라고 합니다. 문을 닫아 버렸는데도 한참을 집 앞에서 욕하다 갔다고 하더라고요. 이유는 에어컨 실외기가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고. 제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옆 건물의 그 여자는 1년 전부터 시비를 걸어왔다고 합니다. 좀 짜증이 났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며칠 후에 구청에서 실외기에 언제까지 조치를 하라는 공문이 날아왔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시정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라 했던 것 같습니다. 회사 다니느라 바빠 죽겠는데 스트레스를 확 받습니다. 시끄럽다는 실외기에서 가장 가까운 옆 건물의 한 집에 벨 누르고 찾아가서 인사드렸습니다.


실외기가 시끄러워서 죄송하다 말씀드렸더니 무슨 소리냐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 겁니다. 분명 그 건물 주인의 여동생이 그랬을 거라는 귀띔도 해주면서. 그 여동생(한 50살 정도 됩니다) 때문에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다 힘들어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여동생이 자기 건물 쓰레기를 우리 집 쪽에 가져다 버리는 것도 종종 봤는데 아마 우리 집이랑 뭔가 얘기가 되어 있나 생각했답니다.


머릿속이 좀 정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부터 옆집 건물의 쓰레기가 저희 집 쪽에 놓이는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아예 택배 박스에 주소와 전화번호가 붙은 채로 있는 경우도 있어서, 제가 그러지 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적도 두어 번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냐 미안하다는 답장을 받고는 했는데, 당사자들(옆집의 세입자들)은 본인들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모르던 것입니다. 구청에는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참 열 받는 일입니다. 이쯤 되면 싸우자는 거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옆집의 여자는 우리 집에 나쁜 감정을 가진 것은 분명했습니다. 저는 그 건물에 살지 않고 좀 떨어진 곳에 살았기에 그간의 상황을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네트워크 카메라를 사서 설치했습니다. 고작 2만 원 정도밖에 안 했지만 움직임이 있으면 제 핸드폰으로 알림도 주고, 클라우드에 저장도 해주는 딱 원하던 제품이었습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니 뭔가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제가 그 건물에 살지도 않고 회사 생활이 바쁘다 보니 모르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세입자들이 밤낮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구나. 무슨 새벽 3시에도 배달을 시켜 먹냐.’ ‘낮에 주차장이 비어있을 때는 외부 차량이 불법 주차를 하는군. 망할 놈들.’ 뭐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니 좋았습니다. 카메라 설치를 진작 할걸!


앗, 드디어 그분이 나타났습니다. 뭐가 생겼네? 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이리저리 봅니다. ‘후후… 이제 카메라가 있다는 걸 인지했군. 나도 당신이 인지했다는 것을 인지했지. 계획대로 되고 있어.’ 계획대로 되기는 개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

그는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 쓰레기를 던져 놓는 등 전혀 위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런 것을 실제 제 눈으로 보니 울화통이 치밉니다. 내 어떻게 해서든 그를 처벌하겠다. 저는 곧 카메라를 하나 더 사서 시야를 더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좋을 뻔했나 싶습니다. 매일 새벽 시간에 잠도 안 자고 우리 주차장 곳곳을 둘러보고 갑니다.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는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게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지 공감이 될지 모르겠습니다(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필터 처리를 했습니다). 간혹 있는 쓰레기 투척과 매일 우리 집 주차장 드나드는 일은 카메라 설치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분노의 감정, 두려운 감정이 교차하며 피폐해져 갑니다.


당시에 저는 회사 일에 많은 신경을 쏟았고, 첫아기까지 태어났습니다. 신경 쓸 것이 많은데, 이 옆집 사람이 자꾸 괴롭히니 죽을 맛입니다. 화가 나고 분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10km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회사일과 갓난아기를 챙겨야 하는데, 저 인간은 백수인 데다가 밤에 잠도 안 잡니다.


매일 새벽 3시에 나와서 저희 집 주차장을 들락날락거립니다. 함부로 뭐라 했다간 무슨 해코지를 당할까 싶어 무섭습니다. 이전에도 법을 좀 알아두면 세상 살아가는 데 좋겠다 싶어서 상식 수준의 민법 책 몇 권은 읽어 둔 적이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하겠다 싶었는데, 젠장할. 이제는 형법도 알아둬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형법과 형사소송법 책 3–4권 정도를 읽어봅니다. 그러는 동시에 쓰레기 던지고 주차장을 어슬렁거리는 장면들을 증거로 수집해서 정리해둡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잡아넣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흐르면서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떤 날들은 조용히 넘어가고 어떤 날은 또 해코지하고, 저는 늘 있는 일에 조금씩 무뎌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기록을 보니 2018년 4월 21일이네요. 그날이 아마 첫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굴은 몇 번 본 적 있었으니 첫 대화가 맞겠네요. 원룸 방 안을 청소하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내려다보니 그분이 쓰레기 더미를 발로 차서 우리 집 쪽으로 보냅니다. 승부를 내러 내려갔습니다.


그분은 자기 집 앞에 서서 곁눈질로 저를 바라보고, 저는 우리 집 앞에서 그분에게 발로 차여서 날아온 쓰레기 더미를 내려 보았습니다. 이 쓰레기를 어떻게 할까. 한 번 저쪽 집 쓰레기장으로 놔보자. 분명히 어떻게든 반응하겠지. 쓰레기를 옮겨 두는 순간! 그분이 미친 듯이 달려와서 쌍욕을 내뱉습니다. 너무 빨리 쌍욕들을 내뱉었는데, 제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가장 많은 욕을 순식간에 먹은 날이었습니다. 기억나는 욕 중에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어휴 이걸 확!

아주 X을 잘라서 삶아 먹어버릴까 보다 이 xxxxxxx새끼!

아니, 세상에 욕을 해도 이런 욕을 하는 사람이 다 있나?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이거. 대한항공의 조현아나 그 어머니가 욕하는 걸 유튜브에서 들어본 적 있나요? 딱 그런 목소리와 톤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굉장히 비슷했습니다.


잠시 놀라긴 했지만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았고 제 뒤에 카메라가 돌아간다는 것도 인지했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조곤조곤 약을 올리면서 대응했습니다. 그분이 쌍욕을 내뱉으면서 저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기 때문에 이걸 한 대 맞으면 잘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 바람과는 다르게 때리지는 않더군요.


돌아보면 그날 그렇게 대응한 건 실수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그분은 미친개와 같았습니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다고 할까요? 일상이 너무 지루해서 그런지 오히려 이런 싸움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열 받은 그는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쓰레기 투척은 여전하고, 라면 국물을 주차장 벽에 뿌리기도 하고 벽을 뭐로 쳤는지 콘크리트가 깨지도록 파손시켜 놓기도 했습니다. 또 이런 일들은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 했기 때문에 저는 의심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대응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매일 심하게 고통받았습니다. 그는 점점 더했습니다. 이제 우리 세입자 한 명의 차를 긁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미치고 팔짝 뜁니다.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오물 투척하고 가기.
차 긁어 놓고 가기.



결국에는 고소하고 말았다

이제는 선을 완전히 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세입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또 일이 터졌구나 직감했습니다. 지금 그분이 1시간째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르며 나오라고 소리친답니다. 받은 문자도 보내줍니다.
그가 세입자에게 보낸 문자.
왜 그러는지 이유도 이제야 정확히 알았습니다. 이제 좀 명확해집니다. 낙엽. 바로 저 낙엽 때문입니다. 겨울 동안 좀 잠잠했다 싶었는데 그건 겨울에는 낙엽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희 어머니가 비가 오면 더 심하게 그런다고 했던 말도 팍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 비가 오면 낙엽이 떨어지니까! 그걸 우리 세입자가 한다고 오해했군.

바로 경찰을 부르라고 했고 경찰이 왔습니다. 그간 있었던 자초지종을 다 말했습니다. 경찰은 사정을 잘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다투지 말고 잘 지내시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협박을 받고 차량 손괴까지 하는데, 좋은 게 좋은 거랍니다.


저는 그를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해다. 우리 세입자가 새벽 4시에 뭐하러 잠도 안 자고 담을 넘어가서 낙엽을 버리겠냐. 그는 확고했습니다. 아마 정신이 이상해서 환상을 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 제 말을 믿지 않고 저도 똑같은 놈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확고해서 저 또한 그 얘기를 믿을 뻔하고 세입자에게 진짜 네가 그런 것 아니냐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이날 이후로도 그는 환상을 계속 보는지 계속 차를 긁었고 두어 번 경찰을 더 불렀었는데, 경찰들은 매번 똑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옆집 사람보다 경찰한테 더 화가 납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았지만, 경찰들은 이미 그 사람의 집 번지를 외웠습니다. 저희 집 말고도, 하도 말썽을 부려서 출동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하고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납니다. 내가 어디 높은 사람의 자식이었더라면 이놈들이 이렇게는 못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우병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레이저 눈빛 한 방 빡 쏘면서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하라고 지휘하고, 그 얼빠진 경찰들에게도 죄를 물을 수 있을 텐데.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우병우가 아니니까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얼빠진 경찰들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카메라를 한 대 더 샀습니다. 그가 몰래 해코지하는 것을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설치했습니다. 전기가 없어서 보조배터리로 연결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충전해두고 밤에 다시 설치하는 걸 한 삼일 정도 하니, 옳거니! 걸려들었습니다.

저는 세입자와 함께 고소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점에는 차가 한 100군데 긁혀 있었습니다. 세입자의 차량 손괴가 가장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세입자가 그를 고소하는 형식으로 했습니다. 그동안 모아놓은 증거까지 차근차근 적어서 경찰서로 가지고 갔습니다.


이전에 보았던 경찰들과의 경험으로 인해 걱정은 했지만, 역시 경찰들은 또 저를 그냥 집에 보내려고 했습니다. 형사과였으니 형사라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고소장을 제출하러 왔다 하니, 몇 가지를 물어보시고서는 이전에 이미 신고를 한 적이 있으면 그걸로 됐다. 그걸로 고소가 끝난 거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아니 그런 게 어디 있냐, 내가 이렇게 고소장에 증거들까지 다 가지고 왔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고소가 다 된 건데 뭘 또 고소하냐는 말만 반복됩니다. 나중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말하며, 한번 고소한 내용은 다시 고소할 수 없다는 개소리까지 합니다. 목구멍까지 욕이 올라옵니다. 제가 우병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그렇다면 내 이 얼빠진 새끼를 당장 무릎 꿇리고……,

하지만 저는 우병우가 아니죠. 그냥 동네 쩌리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 형사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뭣도 모르는 어린노무시키. 바빠 죽겠는데 괜히 사소한 일로 일거리나 만들려는 귀찮은 녀석. 그렇다고 포기할 수가 있나. 저는 전략을 바꿔 동네 쩌리의 우는 표정으로 이야기합니다.
아니 일사부재리를 이런 데 적용하는 게 맞냐. 나는 소송을 할 권리도 없고 소장에 내 의견 하나 쓸 권리가 없다는 것이냐. 이렇게 고생해서 적어왔는데 읽어보지도 않고 돌려보내려 하니 이게 제대로 된 행정이냐.
얼간이 형사는 맘이 동했는지 찔렸는지, 드디어 가져온 고소장을 받아 읽어봅니다. 이때까지 30분도 넘게 말씨름하며 보냈습니다. 형사의 표정이 조금씩 진지하게 바뀌는 게 보입니다. ‘어? 이 새끼 이거 장난으로 써온 게 아니네?’ 하는 표정입니다. 한참을 읽어보더니 저쪽 형사에게 가보라고 합니다.

한 시간 정도를 진술하고 드디어 접수가 됩니다. 뭐 접수가 된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만. 그나마 돈이 어느 정도 있고 공부해간 저도 이 꼴인데, 돈 없고 지식도 없는 사람들은 법의 보호를 받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고소 후에도 그의 공격은 계속됩니다. 형사들은 뭐 일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전화를 안 받아서 아직 진행이 안 된다고 합니다. 뭐 대충대충 일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얼른 검찰에 넘기기나 해라. 시간이 흐르고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나중에 그를 집 앞에서 만났는데,
네가 나 고소했냐?

라고 물어봐서, 동네 쩌리의 표정으로 “예? 고소요? 무슨 고소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도망쳐옵니다. 그는 절대 고소 따위에 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 분노해서 공격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걱정하며 눈을 뜹니다.


검찰로 넘어가자마자 결과가 나왔습니다. 약식 기소되어 벌금형 100만 원이 나왔다고 합니다. 허탈합니다. 차 수리비만 100만 원이 넘어갈 텐데. 정식 재판을 요청할 수도 있고, 이 결과로 민사 소송을 해서 수리비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보복이 있을 테니까요.



마지막 이야기

처참한 날들이었습니다. 건물주를 하면서 기존에도 힘든 일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만 정리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아내가 만류하곤 했습니다. 저 또한 아내와 마찬가지로 월 500만 원이라는 고정 수입이 아까운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는 진짜 안 되겠습니다. 언젠가 건물에 불을 지르거나 누군가를 칼로 찌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건 사는 게 아닙니다. 아내도 바로 동의합니다. 결국 건물을 부동산에 내놨습니다. 하지만 건물 매매가 쉽게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공격은 계속됩니다. 어느 날은 창고 문 도어록을 본드로 잔뜩 붙여서 열고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열은 열대로 받지만 어찌해볼 방도가 없습니다. 회사에 가서도 한숨을 푹푹 쉽니다. 주위에 앉은 동료들도 다 저의 이런 사정을 압니다. 하루는 옆자리에 앉은 동생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뭐라도 사 들고 찾아가서 인사를 해보면 어때요? 저 같으면 엄청나게 잘해줄 것 같아요. 그냥 조금 잘해주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요. 옆집 쓰레기도 다 제가 치워주고요. 매달 뭔가 사서 선물해드리는 거예요. 만약 그렇게 매달 돈 몇십만 원에 해결된다면 엄청 싼 거잖아요.
얘도 얼빠진 소리 하고 앉아있네. 나는 이 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볼 정도로 미운데, 그런 사람 쓰레기를 치워주고 헤헤 웃으면서 선물을 가져다주라고? 순간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이 친구는 그런 얼간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옆자리에 앉아서 오랜 기간 많은 대화들을 나누었고, 저는 이 친구가 얼마나 똑똑하고 현명한지 잘 압니다. 가만히 생각하다 보니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

계속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지 말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고 더 해볼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잘해주는 정도야 시도해봤지만, 엄청나게 잘해주는 건 시도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조금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 좋다 이거야. 하지만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인생 최대의 적에게 선물을 사다 바치고 굽신거리며 쓰레기장도 청소해주는 제 모습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집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걸 해낸다면? 의외로 작전이 통해서 그분과 잘 지내게 되고(혹은 더 이상의 공격은 안 받게 되고) 제 근심이 사라질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이게 통하든 안 통하든 저 자신도 큰 성장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침 구정이 다가옵니다. 동네 마트에 가서 뭘 살까 골라봅니다. 과일 세트가 좋겠다 생각하다가 아직 미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몸에 안 좋은 스팸 세트를 고릅니다. 집 앞에 가서 문을 노크하니 문 구멍으로 저를 보고는 왜 왔냐고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설이라 선물을 사 왔다고 하니 의심스러운 눈으로 문을 열고 나오십니다.


그동안 마인드 컨트롤을 많이 했습니다. 제 보통의 모습보다 훨씬 친절하게, 훨씬 정중하게 대화를 합니다. 설 잘 보내시고 오해가 있으면 잘 풀어보자 이야기를 합니다. 선물도 건넵니다. 그분도 마음이 살짝 동했는지, 너랑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면서 언제 시간 좀 내줄 수 있냐 합니다. 당연히 내줄 수 있지! 지금 내 인생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데.


아무 때나 좋다 하니 내일모레 버거킹에서 만나잡니다. 버거킹에서 보잔 말이 좀 우습긴 했는데 웃지 않고 잘 참아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서 카메라를 하나 더 삽니다. 그래 봐야 2만 원 밖에 안 합니다. 쓰레기 청소하시는 분들에게도 돈을 좀 더 주고 옆집 청소까지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드디어 버거킹 회담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카메라를 선물로 드리면서 집 앞에 제가 설치해드리겠다고 합니다. 저랑 같이 영상을 공유해서 볼 수 있으니 누가 낙엽이나 쓰레기 가져다 버리는지 한번 보자 합니다. 쓰레기 때문에도 스트레스가 많으신 것 같은데 쓰레기 청소도 제가 해드리겠다 말씀드립니다.


사람의 감정은 매우 쉽게 변합니다. 그분은 이제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습니다(어머니에게 들으니 이제 저희 앞집 쓰레기통을 발로 다닌다고 합니다). 저 또한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분에 대한 미움이 사그라듭니다. 가끔 카메라가 잘 안 된다 전화가 오면 심지어 반갑기까지 합니다.


지난 추석에는 스팸 세트가 아닌 과일 세트를 선물해드리고 왔습니다. 나는 준비한 게 없는데 뭐 이런 걸 자꾸 가져오냐 하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시더라고요.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라고 했습니다.


예, 저는 이 일을 겪고 나서 많이 성장했습니다. 누군가 싸움을 걸어왔을 때 이를 온몸으로 받아낼지 옆으로 흘려버릴지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런 일을 계속 겪으면서 성장하는 건 어떠냐고요? 으, 싫습니다. 앞으로 제가 죽을 때까지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삼십대후반건물주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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