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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코로나19가 차별의 온상이 되지 않게

더 예민하게 의식하고 늘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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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디서나 그랬다. 감염병이 혐오나 차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새삼 그 병 이름들을 들먹이면 오히려 되살아날까 일부러 적지 않는다. 누구도 예외가 아닐 것 같으니, 잠깐 같이 생각해보자.


감염병의 이런 특성은 이번 코로나19 유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에서만 있었던 일도 아니다.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여러 곳에서 차별과 혐오, 그리고 혹시 그것이 감염병처럼 ‘유행’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번졌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생각의 자료로 삼으려 이미 지나간 언론 보도 몇 가지를 인용한다. 종류가 많고 좀 길지만, 이런 시각으로 꼼꼼하게 읽어보면 좋겠다. 다음 몇 가지 보도에는 한국인 모두가 분노했을 것이다.
한 네티즌(닉네임: Lu****)은 “속보. 코로나바이러스가 토트넘에 도착했다”라고 이야기했고, 또 다른 네티즌(닉네임: Ch****)은 “손흥민이 코로나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라고 추정했다. 이 밖에도 “런던 북쪽에서 첫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했다”, “손흥민은 이미 코로나바이러스 징후를 보이고 있다” 등 근거 없는 추측성 농담들이 주를 이뤘다.
토론토 북부 요크 학군의 학부모들은 중국을 여행했던 학생은 17일간 등교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인터넷 청원을 시작해 9,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한 청원 서명자는 “야생동물을 먹고 주변을 감염시키는 일을 중단하라”며 “너 자신을 스스로 검역하든지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댓글을 달았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카슨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판다 익스프레스와 같은 아시아계 업체를 이용하지 말라고 안내하는 전단지가 돌아 논란이 됐다. […]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 중학생은 다른 학생들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있다’는 말과 함께 얻어맞는 봉변을 당했다.

오늘의 본격적 주제는 아니지만, 마지막 기사의 단어 사용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외신을 번역해서 실은 이 신문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꿋꿋하게 ‘우한 폐렴’을 고집하나, 이 기사에만은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내친김에 덧붙이자면, 언론의 질병 이름짓기는 감염병이 얼마나 정치적·정파적인지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기사에 분노가 인다면 그건 아마도 ‘우리’가 ‘피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우리의 정체성은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는다. 다음 기사의 시점과 우리의 모습은 이른바 ‘미국’ ‘유럽’ ‘서구’ ‘선진국’에서 일어난 일과 얼마나 다를까?

역 주변 차이나타운으로 들어서자 비위생적인 행태가 즐비했다. 노상에는 고기, 순대, 탕후루, 도넛 등 음식 대부분이 바깥에 진열돼 있었다.
깔끔하게 포장된 육류·생선을 파는 서구식 대형 마트가 중국에선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없다. 오래된 걸 눈속임한 건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아이가 입원한 병실이 있는 병동에서 퇴원하겠다는 환아가 갑자기 늘었다. 그 아이의 엄마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게 이유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일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보호자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면 우리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가해자’다. 물론 이 기사를 쓰거나 이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은 펄쩍 뛸 것이다. “이게 왜 차별이고 혐오인가”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실제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럼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가만히 있어야 하나” 등등. 그럼 앞서 등장한 저 ‘서구’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차별과 혐오는 오랜 기간 여러 계기를 통해 갖가지 이유가 뒤섞여 축적된 것이라 한두 가지 요인만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예를 들어 서구의 반유대주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차별과 혐오가 ‘구조’가 되고 ‘제도’가 되면 더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주의를 보라.

출처연합뉴스

코로나19 유행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과제를 다루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른 척하기도 어렵다. 정치사회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방역 실무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차별과 혐오의 동력을 인식하고, 성찰하며, ‘저항’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한다.


첫째, 과학·근거·합리성에 토대를 둔 이성적 판단과 행동.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전부 가설일 뿐이며, 앞으로도 “이론의 여지 없이” 규명하기는 어려울 공산이 크다. 더구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음식이 어떠하니 위생이 엉망이니 하는 말은 지금 할 말이 아니다.


비합리와 비과학이 기존 질서 또는 권력과 만날 때 혐오와 차별은 구조화된다. 인종주의는 이런 구조화된 차별을 대표하며 또한 상징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지능을 둘러싼 인종주의적 과학(사실은 비과학이다)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유행도, 그리고 한국도 충분히 위험하다. 이미 서구(그리고 한국)에서 탓할 만한 딱지가 붙어 특정 지역의 식습관이나 상업행위로 연결했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떤 사회(‘후진국’, ‘아시아’, ‘동양’)를 싸잡아 규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과학과 이성을 무기로 혐오와 차별에 대항해야 한다.


둘째, 차별과 혐오의 질서에 저항하기. 지금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뜨는 ‘우간다보다 못한’이라는 표현이 차별과 혐오, 나아가 인종주의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국제 기준으로는 전형적 인종주의다)? 금융이나 성차별 순위는 ‘사실’이라 강변할지 모르지만, 그 사실은 한 문장 안에서만 성립할 뿐이다. 이런 말들이 함축하는 더 중요한 메시지는 그 나라와 그들이 ‘후진적’이라는 인식, 평가, 또는 이데올로기다.


언뜻 실용적, 기술적, 과학적으로 보이는 감염병조차 온갖 차별과 혐오의 권력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를 들어 캐나다 사람들이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와 북미에서 발생한 인플루엔자(H1N1)를 다르게 해석한다. 이는 국제 수준에서(그리고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축적된) 정치, 경제, 문화, 지식의 불평등 구조가 작동한 결과다.


개인의 내면까지 들어와 그런 줄도 모르는 것이 더 두렵고 어렵다. 혹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세계보건기구(WHO)보다 더 미덥지는 않은가? 어떤 국가의 조치는 ‘선제적’으로 해석하고 어떤 나라는 ‘강압적’인가? 한국보다 훨씬 소득이 낮은 어떤 나라에서 나온 연구 결과와 더 잘 사는 어떤 ‘선진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 중 어느 쪽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는가?

어떤 차별과 혐오도 더 심층의 권력 구조나 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를 둘러싼 차별과 혐오도 서구중심주의, (신)식민주의, 경제 불평등(국가 간, 국가 내), 지식 권력의 국제적 불평등, 문화 제국주의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이다. 우선은 더 예민하게 의식하고 늘 가다듬는 수밖에.


현재 유행의 소강을 조심스레 전망하던 상황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다시금 지역사회 유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방역 당국과 개인 모두 차분하게 그러나 기본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국면에서도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지 않으면서.


원문: 시민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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