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넥슨을 제주도로 옮긴 남자, 사회적 기업으로 3개의 로컬 푸드를 성공하기까지: 김종현 제주더큰내일센터 센터장 인터뷰

조회수 2020. 9. 16.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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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사회적 기업, 성이시돌목장을 되살리다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다음의 검색 비즈니스 담당으로 계셨는데, 어쩌다 제주도로 돌아가게 된 거죠?


김종현: 2003년 다음의 이재웅 대표님께서 회사 게시판에다가 농담처럼 “회사를 전주나 경주 쪽으로 옮겨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글을 올리셨어요. 제가 “이왕이면 제주로~”라는 댓글을 남겼죠. 그런데 이재웅 대표님이 바로 같이 밥 먹자고 하더니 “제주도가 괜찮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꺼내시더라고요.

구라인 줄 알았으나 캡처 샷이 등장했다…

리: 이재웅 대표님은 대체 왜 서울을 뜰 생각을 한 거죠……


김종현: 당시 다음이 테헤란로에 있었는데, 대표님께서 팀별로 돌아다니면서 조찬 모임을 가졌어요. 그런데 신입사원이 아침 8시 조찬 모임에 지각한 거예요. 아무리 벤처라지만 신입사원이 CEO와의 조찬모임에 늦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근데 알고 보니 집이 인천 끝이라 평소보다 일찍 나와도 시간을 맞출 수 없었던 거였어요.


그러면서 2시간 넘게 출퇴근하는 직원들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셨어요. 하루 왕복에 4시간 쓰는 삶이 좋은 삶일까, 또 직원이 늘어나며 직장 내 어린이집 고민도 하는데, 2시간 출근하며 아이를 데려오는 게 맞는가?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또 인터넷 기업이면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리모트워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진적인 생각도 있었고요.

30대의 이재웅 대표, 나이를 거꾸로 먹나;;;

리: 그렇게 해서 다음의 제주 진출의 선봉장이 된 겁니까?


김종현: 검색비즈니스 팀장 일을 하는데, 제주 TF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주도 공무원들이 회의 때는 서울말을 쓰는데,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방언이 너무 심해서 못 알아듣겠다는 거예요. 원래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에 중요한 내용이 많잖아요.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통역관으로 와 달란 거였죠.

제주 사투리는 현지인 아니면 못 알아듣는다.

리: ;;;


김종현: 저도 처음에는 제주도 이전에 부정적이었어요. 그때 이재웅 대표님께서 이렇게 이야길 했어요. “문제가 있다고 해서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혁신이 이뤄지겠냐,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야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며, 제게 검색 팀장을 그만두고 제주 TF팀을 리드하라는 거예요. “제가 왜 그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하니, “니가 제주도 가자고 해서 시작된 거니까”라고…


리: ……


김종현: 반쯤은 농담이고, 대표님께서는 ‘모든 일은 애정을 가져야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몰아붙인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어요. 저도 제주 출신이니 열정적으로 일을 진행했죠. 그렇게 순차적으로 다음의 제주 이전을 기획, 실행했습니다. 단계적으로 이전하며 반발을 덜었습니다. 희망자와 희망팀 중심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부담을 덜 수 있었죠.

출처: 월간 디자인
개쩌는 제주 다음 사옥.

리: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김종현: 다음의 제주 이전 기획은 사실 2007년 마무리됐어요. 그때 이재웅 대표님께서 자기 친구랑 밥 한번 먹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같더니 김정주 회장님(?!)이 나오시더라고요. 회장님께서도 제주 이전에 의지가 있으니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2009년에 넥슨으로 가게 됐어요.

젊은 시절의 김정주 회장, 이분은 세월 제대로 맞았다.



넥슨에서 제주 로컬 푸드 사회적 기업까지

리: 이재웅 대표님께서 친구 소개해줬더니 어딜 이직이냐고 노발대발 안 했습니까?


김종현: 아… 이재웅 대표님께서는 그때부터 소셜 벤처에 꽂혀서 계속 창업하라고 했습니다. 대표님이 sopoong이라는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션 사업을 시작했는데, 소셜 벤처 개념이 생소할 때라 막상 투자할 곳이 없었어요. 투자금 줄 테니 제주에서 소셜 벤처 만들라는 거죠. 제가 학생운동도 했고 기업도 경험했으니,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기업이 로망이긴 했는데… 당장 맨땅에 헤딩하면서 창업하기는 좀 어렵겠더라고요.


리: 넥슨의 제주 이주 프로젝트도 잘 진행됐나요?


김종현: 네. 차이가 있다면 넥슨의 제주 이전 작업은 법인 단위로 모두 이주했다는 거예요. 네오플은 500명이 한꺼번에 제주로 이주했어요. 대신 주거 무상 지원 등을 통해 반발을 줄였죠. 서울 집값이 워낙 비쌌으니 직원들도 만족했어요. 그때 저는 지역공헌사업에도 힘을 쏟기 시작했어요. 다음 때도 기부금을 지역에 나눠주는 것들을 해 봤는데, 별로 효과가 좋지 않아요. 기부금을 받을 때야 좋겠지만, 소수에게 줄 수밖에 없잖아요. 또한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살릴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제주 넥슨 센터도 맵시 뿜뿜.

리: 그래서 어떤 일을 추진했습니까?


김종현: 이재웅 대표님께서 이야기한 소셜 벤처를 떠올렸어요. 제주도가 일차 산업을 제외하면 관광업만 남는데, 관광객이 돈 써도 다시 서울로 뽑아가는 구조예요. 호텔 같은 건 다 자본 있는 사람들 거니까요. 그래서 넥슨이 가진 문화적 역량과 제주가 가진 가치를 연결해서 비즈니스로 보여주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수익금을 다시 지역에 나눠주는 로컬 푸드 레스토랑을 만들었어요. 그냥 음식 파는 레스토랑이 아닌, 제주의 매력을 만들자는 비전으로요.


리: 로컬 푸드 레스토랑은 기존의 식당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김종현: 로컬이 가지는 고유한 문화와 차별화된 로컬 푸드에 현대화를 얹었죠. 레스토랑 이름도 제주 방언 ‘닐모리동동’ 이었습니다. ‘닐모리’는 ‘내일모레’, ‘동동’은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기다림이란 뜻을 담았죠. 공간도 제주도의 초가와 오름을 모티브로 했고요. 또 제주의 식자재를 쓰면서도, 피자, 파스타 같은 퓨전 음식을 제공했어요. 제주도의 모양을 닮은 눈 덮인 한라산 모양의 빙수 같은 비주얼을 담았습니다.

아예 컬처 카페를 내건 닐모리동동의 모습.

리: 장사는 잘됐나요?


김종현: 빠르게 입소문이 나며 이익도 꽤 많이 났어요. 그래서 저희가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지역에 다시 기부하게 됐죠. 하지만 2호점, 3호점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넥슨에서는 제주만의 가치와 비즈니스를 비즈니스를 결합할 때 제주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다는 모델 케이스를 제시한 것 뿐이니까요. 실제로 그 이후에 제주도의 음식 산업이 많이 바뀌었어요. 로컬 푸드에 기반한 퓨전 음식과 디저트 시장이 생긴 거예요. 오름빙수, 한라산볶음밥 같은 게 많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대형 프랜차이즈들도 제주에서는 로컬 푸드 메뉴들을 만들죠.

한라산빙수의 위용.

리: 그 이후 어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은 했나요?


김종현: 김정주 회장님께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IT 콘텐츠를 넣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전국 각지에서 이 박물관을 보러 와요. 근데 거대한 박물관이 들어오니 조그만 레스토랑의 사회공헌 입지가 애매해졌어요. 그래서 넥슨에서 닐모리동동을 계속 운영해야 하나 고민할 때, 제가 그냥 사회적 기업을 하나 만들고 그곳을 인수하기로 했어요. 하필 인수하자마자 메르스가 터져서 고생했지만, 지금까지 잘 이끕니다.



원조 사회적 기업, 성이시돌목장을 우유부단으로 되살리다

리: 왜 사회적 기업을 하셨어요? 사실 로컬 푸드 개념을 충분히 이해를 하셨으니까, 다양한 식당 늘려나가면 수익성이 굉장히 높아질 수 있잖아요.


김종현: 제가 만든 사회적 기업 이름이 ‘섬이다’에요. 제주가 섬이라는 뜻도 있지만, ‘빛날 섬(閃), 다를 이(異), 많을 다(多)’거든요. 빛나는 다름이 많다, 제주도를 기반으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리: 그러면 독립 이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김종현: 제주도에 성이시돌목장이란 곳이 있어요. 한국에서도 해외 선교 활동할 때 학교도 세우고 일자리도 만들고 하잖아요. 여기도 아일랜드의 신부님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목장이에요. 아일랜드에서 돼지를 수입해서 양돈산업을 키웠고 양을 들여와서 방직사업도 했어요. 어린이집, 병원 등을 지으며 비영리재단으로 운영됐죠.

출처: 제주신보
만화 같은 절경의 성이시돌목장.

리: 정말 엄청난 신부님이시군요;;;


김종현: 네. 저는 이재웅 대표님으로부터 소셜 벤처 이야기를 들을 때 전혀 생소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제주도의 천주교 청년들은 모두 성이시돌목장 이야기를 듣고, 체험하고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훌륭한 곳이 심한 적자에 시달렸어요. 그곳 신부님들로부터 요청이 들어와 경영 자문을 맡게 됐습니다.

신부님들과 김종현 센터장의 모습.

리: 음… 목장이면 당장 골프장이나 리조트 지으면 떼돈 벌 텐데;;;


김종현: 돈 벌 생각이었으면 진작에 그랬겠죠. 저는 작지만 임팩트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당시 목장이 사진찍기 좋은 명소로 사람들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렇다면 이 목장에 사람들을 더 많이 오게 해서 인지도를 올리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뭔가 ‘여기서만’ 소비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아이스크림 카페를 제안 드렸어요.


리: 오… 목장에서 바로 뽑아낼 수 있으면 신선하긴 하겠네요.


김종현: 그렇죠, 목장, 소, 신선한 우유를 모두 연결할 수 있는 아이템이니까요. 아이스크림도 정말 맛있었고, 또 커피보다 회전율도 훨씬 더 좋아요. 원래는 아이디어만 드리고 빠지려고 했는데, 신부님께서 할 사람이 없다고 하셔서 그냥 직접 운영까지 하게 됐어요. 그런데 순식간에 인스타그램 명소가 돼서 1년이면 2만 건 정도 사진이 올라올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어요.

각종 해시태그를 합치면 10만을 찍는다.

리: 어쩌다 그렇게 장사가 잘된 거죠…


김종현: 명확한 콘셉트인 신선한 우유와 풍경에 집중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카페 이름부터 우유가 너무 부드러워서 끊을 수 없다(不斷)는 뜻의 ‘우유부단’으로 지었어요. 또 우유팩 모양의 의자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앉아서 사진 찍는 게 인스타 트렌드가 됐어요. 우유팩 모양의 의자 뒤로 거대한 목초지가 정말 절경이거든요. 이 초지를 살리기 위해 카페도 일부러 미니멀하게 지었어요.


리: 개쩌시는군요… 돈 많이 버셨겠네요.


김종현: 우유부단의 수익금의 절반 이상은 성이시돌목장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다양한 복지사업에 사용됩니다. 그리고 어차피 사회적기업은 대주주가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을 제한하고, 수익의 일정 금액을 지역에 계속 공헌해야 해요. 그 이후에 아예 우유부단을 제과점으로도 확장했는데 이건 망했어요. 목장에서의 경험에 충실한 제품이었으니 밖에 나와서 잘 팔리진 않았던 거죠. 이후 관덕정분식이란 곳도 열고 소소하게 로컬 푸드 사업을 확장했어요. 그러다 제주더큰내일센터 센터장으로 가게 된 거죠.

관덕정 분식까지 3개의 로컬 푸드 사회적 기업을 성공시키고 새 도전에 나섰다.

※ 「 성공한 사회적 기업가, 제주 청년에게 2년간 월 150만 원 지원금 정책을 기획하기까지」로 이어집니다.

※ 해당 기사는 제주더큰내일센터에서 후원하여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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