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마시고 싶은데 밖에 나가기 춥다면, 지하철역 내부 카페 4
닌텐도 스위치 미개봉 사러 오신 분 맞죠?
카페로 출근하는 남자, 지하철역 카페 투어를 시작한다
카페 탐사를 간다고 말했는데. 이대로 사무실로 출근할 수 없다. 찬바람이 휘센인 지상을 피해 지하철역 안으로 후퇴를 했다. 다행히 편의점에는 우산을 팔았다. 감사한 마음에 들어갔다가 0 하나가 더 붙은 가격에 놀랐다. 이걸 샀다간 오늘 아무 음료도 마실 수 없잖아. 수요와 공급의 법칙! 애덤 스미스! 나쁜 손!
결국 비가 그치거나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며 지하철 안에 숨기로 했다. 졸지에 겨울잠 자는 개구리 신세가 되다니. 그때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지하철역 안에도 카페들이 많았지. 음료계의 두더지 마시즘. 오늘은 서울의 지하세계에 포진한 카페들을 찾아간다.
청담역의 크렘 드 마롱: 프랑스 국민 밤 라테는 말이야
무엇보다 이런 하얀 공간에서 마롱 라테를 마시면 파리지앵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것이 바로 청담의 멋. 아니 아니 프랑스의 멋일까? 때마침 옆에 계시던 어머님께서 주섬주섬 가방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주셨다. “젊은 친구 고생 많이 하는데 이거나 먹어.” 사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감사합니다 어머님.
선릉역의 40240 독도커피: BTS가 독도수비대가 된다면
나도 모르는 애국심으로 독도 커피를 시켰다. 그것도 대왕 사이즈로. 얼마나 크겠냐 싶었는데 1리터짜리 독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타났다. 이리도 후한 독도 인심에 놀라고, 원액을 진하게 탄 강함에 놀랐다. 하지만 정작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카페에 메뉴판만큼 크게 달린 BTS, 방탄소년단의 사진 때문이다. 고르고 고른 사진을 큼지막하게 달아놓은, 생일 이벤트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국위선양의 현주소는 BTS다. 독도와 BTS라니. 예전에 한 선인이 한 말씀이 떠오른다. BTS 멤버를 독도 수호대로 보낸다면 세계가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고 인정할 것이라고. 전 세계의 아미들이 힘을 쓸 테니까.
잠실역의 떡가게 종춘 1975: 이곳이 미래형 방앗간일까
이곳의 이름은 ‘떡카페 종춘’이다. 1975란 숫자는 이곳이 태어난 연도가 분명하다. 나는 장유유서 법칙에 따라 겸손하게 이곳에 들어가서 떡을 쓸었다. 마카롱도 마들렌도 아닌 떡과 함께 커피를 마시다니. 심지어 떡을 만드는 모습도 오픈되어 있는데, 가게에서 당일 만든 떡을 당일 판매한다고 한다.
떡 이야기는 그만하고 마실 것을 논하자. 마시즘이 고른 것은 시즌 음료인 ‘단호박 라테’다. 떡과 먹기에 뭔가 어울릴 것 같잖아. 절편과 함께 단호박 라테를 마시니 익숙한 향기가 난다. 이것은 추석에 고향에서 먹었던 엄마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건강차와 큰집에서 얻어온 떡이잖아.
강남역의 차얌: 가성비 밀크티의 종점
카드 결제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밀크티가 나온다. 고급 밀크티의 맛과 양을 기대했다면 조금 아쉬울지는 모르지만 적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나름 모양새를 살렸다. 심지어 밀크티 종류도 많아서 이것저것 부담 없이 시식해볼 수도 있다. 나는 밀크티를 받고 만족하며 카페 골목 사이에 있는 광장 벤치에 앉았다. 좌석 공간마저도 아껴버리는 갓성비의 강남역. 오늘 하루는 카페인으로 불태워 버렸고만.
하늘이 무너져도 음료 마실 카페는 있다
뜻밖의 겨울비 덕분에 재미있는 추억을 남겼다. 종일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역 안의 카페 투어라니. 바쁘게 지나쳤을 때는 보지 못했던 지하상가 카페들의 매력을 볼 수 있었다. 뭐랄까 땅 위의 날씨가 아무리 춥고, 비가 와도 이곳만은 따뜻하게 나를 맞아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쉼터가, 누군가에게는 자신만의 비밀 아지트가 될 수 있는 지하철역 안의 카페를 찾아두는 것은 어떨까? 언제 겨울비가 내릴지 모르니까.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