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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친구가 한국에서 강제 채식주의자가 된 사연

조회수 2019. 11. 15. 1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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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가 아닌데 채식을 한다고?
“비숑이야?”

“오, 어떻게 알아? 응 비숑이야.”

“나도 비숑을 키워.”

“아, 정말? 몇 살인데? 우리 강아지는 1살이야, 이름은 봉구야.”

“우리 강아지는 3살, 이름은 차이야.”

“어느 나라에서 왔어?”

“이스라엘에서 왔어. 한국에 12일 동안 출장 왔어.”
그와 나의 대화는 우리 강아지 봉구 덕분에 시작되었다. 화창한 일요일 강아지 봉구를 데리고, 엄마와 함께 경복궁으로 산책을 갔고,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가깝게 접했다. 비숑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우리는 나의 오지랖 덕분에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지난 1주일 나는 내 생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이스라엘을 느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스라엘로 어릴 때 이주한 그는 난생처음으로 한국으로 출장을 왔다고 했다. 서울에 갈 곳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기에 그의 휴대폰에 북촌 한옥마을, 동대문, 명동 등 서울의 전형적인 관광명소들을 알려주었다. 여행을 하면서 나 역시 지역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연락하라는 제안에 우리는 자연스레 연락처를 교환했고, 몇 번의 식사로 이어졌다.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가깝게 이스라엘을 느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라를, 1주일 동안은 가장 가깝게 마음을 두고 본 것이다. 그와 함께한 식사 자리는 나와 그를 이어준 것뿐 아니라 나와 이스라엘을, 그와 한국을 그리고 한국과 이스라엘을 이어줬다. 오늘은 그중, 음식 소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채식주의자가 아닌데 채식을 한다고?

“한국 음식 먹어봤어?”라는 질문에 그는 이스라엘에서도 아시아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그가 말한 아시아 음식은 사실 중국 음식이나 일본 음식이었지만, 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에 오히려 내가 들떠서 외국인들이 가장 맛있게 먹는 한국음식을 추천해줬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바비큐랑 치킨은 꼭 먹어봐야 해!

도움을 줬다는 뿌듯함에 잠시 젖어있던 찰나 그는 “아 그런데, 나는 채식 음식만 먹을 수 있어”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채식주의자가 아닌데 채식을 한다고?


유대인인 그는 고기를 먹긴 하지만 코셔(Kosher) 인증이 된 음식만 먹을 수 있다. 할랄 음식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허용되는 음식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음식에는 해물도 포함되며, 고기 중에는 돼지를 제외하고 유대교 율법에 따라 도축된 고기만 먹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코셔 인증을 받은 맥도날드.
이스라엘에서는 대부분 판매되는 음식 재료가 코셔 인증을 받은 것들이야. 그래서 외식하든 집에서 요리하든 큰 제약 없이 먹을 수 있어. 하지만 한국에 유대인 커뮤니티가 작아서 코셔 푸드를 찾기가 어려워.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엔 채식만 해.
무슬림 친구들 덕분에 할랄 푸드는 대략적으로 알았지만, 유대교를 잘 모르던 내게 코셔 음식은 너무나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특히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낯설기도 했다. 덕분에 유대교에 관심이 생겨 검색을 해보니 우리나라에서 코셔 음식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 한 군데는 식당이 아니기에 식사하기가 어려웠다. 수요가 없으면 당연히 공급이 없는 법이니까.
코셔 인증 마크.

“여행은 사실 먹는 게 대부분인데 힘들지 않아?”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사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코셔 음식을 찾는 게 한국만큼 어렵지는 않아. 한국은 처음인데, 대부분의 음식에 해물이나 고기가 들어가서 메뉴를 고르기가 까다롭긴 해. 그래도 밥이나 야채 위주로 먹으려고 노력해.”라고 답했다.


실제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한국에 왔을 때, 정부 차원에서 코셔 음식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었다고 한다. 남편을 따라 그녀가 유대교로 개종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미국에서는 코셔 음식을 찾기가 쉬울까? 흥미롭게도 미국 전체 인구 중 유대인의 비율은 2%도 되지 않는데, 코셔 음식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진다.


2015년 수행된 한 조사에 따르면 유통되는 포장된 음식 중 41%가 코셔 인증을 받은 음식이었다. 2%도 되지 않는 인구가 41%의 음식을 소비하지는 않을 텐데…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셔 인증을 받은 음식의 수요가 꾸준히 는다고 한다. 현재 $25,000Mn 정도인 수익이 2025년에는$60,000Mn에 이를 거라고 하니, 상상을 넘는 엄청난 시장이다. 나는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코셔 음식, 누가 소비하는 걸까?

출처: Lubicom Marketing

코셔 음식을 소비하는 주 소비자는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과 크리스천이라고 한다. 최근 채식주의자나 내가 먹는 음식의 윤리적·환경적 요인을 까다롭게 따지는 소비자, 락토아제를 분해하지 못하는 소비자, 소화 장애를 가진 환자들도 코셔 음식 소비를 이끄는 주축이다. 종교적인 신념과 개인의 식습관 문제뿐 아니라 동물과 환경의 윤리적 책임 의식이 코셔 음식 소비를 이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스웨덴에 살 때도, 코셔 음식은 아니지만 많은 소비자가 음식을 소비할 때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오는지를 꼼꼼히 따지며 쇼핑을 했다. 스웨덴 사람들도 스웨덴산 제품을 선호하며, 유기농 제품이 좀 더 비싸더라도 기꺼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한다.


또한 스웨덴의 1,000만 인구 중 10%에 이르는 100만의 인구가 채식주의자로,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채식주의자가 있다. 일반 슈퍼마켓에도 채식 음식이 다양하며, 채식 제품에는 이 제품을 소비하면 탄소 소비 절감에 기여한다고도 표시되어 있다.


종교의 유무에 상관없이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길러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되고 소비되는지 관심을 갖고, 실제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윤리적인 소비를 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뿐 아니라 윤리적인 소비를 위해서, 소비를 통해 자기 신념을 표출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대표 채식 제품 브랜드, Anamma의 냉동 콩고기.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소비한다. 무분별한 소비의 결과 우리는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기도 하고, 항생제 가득한 고기를 돈을 주고 소비하며, 우리 몸을 해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소비가 지금 우리에게 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목격한다.


소비를 끊을 수 없다면, 나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당위성을 묻기 전, 과연 내 소비에 책임질 수 있는 소비를 얼마나 했는지 되돌아 본 시간이었다. 책임 있는 소비를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에도 식재료나 외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는 말처럼 음식은 나의 신념, 가치관, 철학, 식습관을 반영한다. 그리고 먹는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인 동시에, 매일 삼시 세끼 일어나는 다른 사람과 이어지는 사회적 활동이다. 이 매순간 우리는 어떤 소비를 할까?


원문: 도크라테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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