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 더 시티'가 퍼뜨린 완경 혐오

조회수 2019. 10. 31. 17: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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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블링'은 완경 전까지만 유지된다?
※ 이 글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 몸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강조하고자 폐경 대신 완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완경과 관련된 정보는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책 『 호르몬의 거짓말』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는 단연 많은 여성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TV 시리즈다. 보는 눈이 즐거워지는 화려한 패션, 뉴욕에서 주도적으로 일과 사랑을 쟁취하는 네 명의 뉴요커들. 사랑과 섹스를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고, 화려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 커리어 우먼들의 우정을 우리는 참 사랑했다. 그래서 우린 TV 시리즈보다 못하더라도 의리로 영화도 본다.


〈섹스 앤 더 시티 2〉는 2010년 개봉한 〈섹스 앤 더 시티〉의 두 번째 영화다. 이미 할 수 있는 얘기는 6개의 시즌과 영화 1편에서 거진 털었기에, 두 번째 영화에서는 아부다비 로케이션으로 대자본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물론 두 번째 극장판에도 캐리, 사만다, 샬롯, 미란다는 각자의 서사를 풀어나간다.


캐리는 결혼과 연애 사이에서 갈등하고, 샬롯은 육아 때문에 미쳐간다. 미란다는 변호사로서의 커리어를 쌓는 데 위기를 맞이한다. 대망의 사만다가 시즌 2에서 전달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하나다.

여성들이여, 폐경(완경)을 극복해라.
영화에서 완경은 극복의 대상으로 계속해서 그려진다.
영화 초반 〈섹스 앤 더 시티〉의 시그니처인 네 여성의 ‘브런치 장면’에서 사만다는 44개의 호르몬 알약을 먹으며 등장한다. 극 전반에 걸쳐 사만다는 갱년기를 맞이한 여성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며, 이를 호르몬 치료와 약물이 극복해줄 것이라 주저없이 말한다.
완경은 여자로서 매력이 끝나는 날이고, 갱년기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이미 주변 여성들과 대중문화로부터 자주 접한 주장이다. 그런데 정말 완경은 건강과 매력을 우리에게서 가져가는 걸까. 우리는 완경을 극복하기 위해 사만다처럼 44개의 호르몬 약을 먹어야 할까. 영화가 사만다를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 완경은 신체적 변화를 동반한다.
  2. 완경은 여성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준다.
  3. 호르몬 치료는 갱년기 문제를 해결한다.


로빈 스카인 델루카는 그녀의 책 『호르몬의 거짓말』에서 모성 신화와 가부장제의 버팀먹으로 끈질기게 악용되는 ‘호르몬 신화’를 과학 지식으로 조목조목 해부했다. 여기에는 완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포함된다. 그럼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도움을 받아, 사만다의 주장을 하나씩 파헤쳐보자.



1. 완경은 신체적 변화를 동반한다?

사만다가 말하는 갱년기 증상. 극 중 사만다의 나이는 52세다.

여성의 생체주기를 생식(生殖)의 관점으로 나누면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 완경 전기: 지난 석 달 생리가 규칙적이었고 주기에 변화가 없던 여성이다.
  • 완경 전후기: 이 시기를 보통 갱년기로 보며, 완경으로까지 이행하는 시기다. 5–10년이 걸릴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되며, 이 기간에는 생리가 불규칙해진다.
  • 완경 후기: 이전 12개월 동안 생리가 없었던 여성이며 완경(폐경)했다고 한다. 난소가 생산하는 에스트로겐은 감소하지만 근육과 지방 조직에서는 아직 생산된다.


갱년기란 생식을 담당하는 난소의 기능이 소실하는 징후가 나타나는 시기를 의미하며,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를 동반한다. 갱년기 여성이 겪는다는 갱년기 열감, 질 건조증, 수면장애, 두통 등은 완경으로 이행하는 완경 전후기에 겪는 신체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경험은 여성으로서 겪을 수도 있고, 안 겪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문화적, 인종적, 세대적 차이같이 비생물적인 요인의 영향도 받는다. 예컨대 서구화가 더 많이 이루어진 도시에서 갱년기 열감이나 홍조 증상을 갖는 여성이 더 많았다.

영화는 갱년기 증상을 겪는 사만다를 지속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여준다.

사만다가 알려준 것처럼 완경은 신체적 변화를 동반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대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장애를 최소한만 겪으며 이 과도기를 넘어간다. 의사들도 이 시기를 생식의 종료라는 측면에서는 중대한 시기일 수 있지만,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동반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한다. 사만다처럼 ‘약물을 먹지 않아서 갱년기의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완경에 대한 공포심을 갖게 된 걸까?



2. 완경은 여성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준다?

사만다가 완경을 계속해서 미루는 이유는 하나다. 완경은 ‘여성성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폐경에 대해 떠올리는 온갖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쭈글쭈글하게 늙고, 성격이 괴팍해지고, 외모와 성적매력은 사라지고 무성의 ‘아줌마’를 떠올린다. 우리는 완경의 신체적 변화보다, 완경이 주는 이미지를 더 무서워한다.
완경을 최대한 늦춰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이다. 1950년대 이후, 의사들은 완경기 여성이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완경이 가정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여생 동안 합성 호르몬을 투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주장한 산부인과 의사는 호르몬 제약회사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중산층 백인 베이비부머들과 1920–30년대에 태어난 그들의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발견한 바에 따르면 완경기에 이들 모녀는 매우 비슷한 신체 증상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대한 사고방식과 경험 방식에는 대단히 흥미로운 차이가 존재했다. 엄마들은 완경이나 성생활 같은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시대에 태어났다. 그래서 완경을 그저 하나의 인생 단계로 받아들였고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엄마들 대부분은 완경기 때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생식 단계가 끝나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엄마들의 베이비부머 딸들은 완경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들은 완경을 두려워했다. 완경이 노화와 매력의 종말로 이어진다고 여겼고, 건강에 문제가 생겼으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호르몬의 거짓말』

현대에 완경 혐오가 심해진 요인으로는 의료적 가부장제를 고수하는 의료 기관, 호르몬 약을 파는 제약회사, 여성의 사회적 진출, 가부장제를 수호하며 완경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생산하는 미디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완경은 여성으로서 매력이 끝나는 날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르몬 요법을 시행하라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완경이란 여성에게 부정적이고 치료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안도했던 부분은, 완경이란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이며 이 시기를 긍정적으로 보내는 여성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에 따르면 완경도 긍정적인 면이 있고, 심지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로빈 스타인 델루카가 완경기 여성과 인터뷰를 하며 조사한 완경의 긍정적인 면을 조사했고, 아래는 그 중 공통된 내용이다.


  •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는다: 설명할 필요 없이 확실히 장점이다.
  • 임신 걱정, 안녕!: 여성이 피임하지 않고 섹스할 수 있는 인생 유일한 시기가 도래했다.
  • 자신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시기: 50대 전후반에 이르러 이 시기 여성들은 상실을 경험하지만, 한편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시간을 보냈다.
  • 자신에게만 집중할 자유: 이 시기는 자녀들이 독립하는 시기와 맞물리기도 한다. 여성들은 완경기를 아이들과 남편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새로운 커리어나 사회진출을 할 기회로 여기기도 했다.
  • 현명하고 적극적이게 되는 시기: 연구에 참여한 여성 다수는 인생 경험이 가져다준 능숙함과 더욱 깊어진 연륜을 마음껏 누린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늙고 죽는다.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늙지 않으려는 애쓰는 사람보다, 어떻게 잘 늙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완경도 마찬가지다. 여성에게 완경은 무조건 오는 인생의 당연한 노화고, 안 오기를 바라는 것보다 어떻게 잘 보낼지를 고민하는 것이 성숙한 자세다. 어쩌면 우리는 제2의 전성기를 보낼 수도 있다.



3. 호르몬 치료는 갱년기 문제를 해결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갱년기와 완경은 해결해야 할 ‘문제’나 ‘질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완경을 ‘치료’하고 싶은 사람들은 사만다와 같이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행한다. 에스트로겐 감소를 줄이기 위해 약물이나 시술을 하는 것이다. 과연 호르몬 치료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까?


1990년대, 여성 건강에 관한 주도적 연구 결과가 시작되었다. 연구는 50–79세 사이 완경 여성의 호르몬 복용을 통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하지만 연구는 조기 중단되었다. 에스트로겐을 높이는 호르몬 약인 프렘프로와 프레마린은 여성에게 극약처방과 다름없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없게된 것이다. 이들 호르몬 약은 유방암 발병률을 26%, 뇌졸증 발병률 41%, 치매 발병률을 100% 높였다.

영화 속에서 수전 소머즈는 여성들을 완경에서 구원해 영원한 아름다움을 알려줄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런 연구 결과가 세상에 알려진 후 여성들은 호르몬제 복용을 중단했지만, 완경기 여성은 계속 증상 완화 방법을 찾아 헤맸고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생동일성호르몬 요법’이다. 사만다 역시 이 치료를 따르며 수잔 소머즈의 책을 맹신한다. 수전 소머즈와 그의 책은 영화 전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마치 여성들을 완경에서 구하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사람으로.


수전 소머즈는 과거 헐리우드의 섹시 스타로, 2000년대 들어 완경 치료법으로 생동일성호르몬을 광고하며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그녀의 2004년 저서 『섹시한 삶』에서 소머즈는 일곱 완경 난쟁이(근질이, 고약이, 땀쟁이, 잠쟁이, 부종이, 건망이, 쭈글쭈글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생동일성호르몬을 홍보한다.

수전 소머즈의 저서들.

생동일성호르몬은 호르몬 약물의 위험성을 대체한다고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식물에서 추출한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화학적/구조적으로 여성이 생산하는 호르몬과 동일하다는 제조업체의 주장 때문에 생동일성으로 표시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고 미국식품의약국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수전 소머즈는 생동일성 호르몬이 완경기 여성의 체중 감량과 노화 퇴치에 도움이 될 거로 장담하지만 그녀가 근거로 삼은 것은 본인과 인터뷰한 여성의 경험일 뿐,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무엇보다 장기간에 걸쳐 조사한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없기 때문에, 이 약들이 종래의 호르몬처럼 부작용을 지니는지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증명되지 않은 ‘노화/완경퇴치법’은 〈섹스 앤 더 시티〉에서는 놀랍게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수호할 바이블처럼 묘사된다. 〈섹스 앤 더 시티 2〉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완경을 노화와 여성성의 하락, 질병으로 생각하는 것을 넘어 증명되지 않은 치료법을 미화해서 알려주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이렇다

완경은 신체적 변화를 동반한다. 하지만 이는 여성의 생애 주기에 있어 자연스러운 변화이며, 긍정적으로 보내는 사람은 완경에서 삶의 행복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호르몬을 통한 조절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으며 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영화 소개문처럼 캐리와 친구들의 연애, 사랑, 우정의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블링블링’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이 ‘블링블링’은 완경 전까지만 유지된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다양한 연령대 여성의 서사를 모두 담길 바라는 건 너무 많이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섹스 앤 더 시티〉는 그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성 서사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여성의 전성기를 갱년기 이전으로, 완경을 늙고 매력이 떨어지는 계기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갱년기 여성과 곧 갱년기에 접어들 ‘잠재적 완경 후보군’, 즉 모든 여성을 좌절하게 만들 뿐이다.


대중문화에서 여성의 전성기를 성적 외모 매력이 최고치인 갱년기 전으로 설정해버린다면, 여성들의 서사는 그렇게 더 줄어들 것이다. 기억하자. 사만다는 물론 외모와 성적 매력의 화신이었지만, 우리가 사만다를 사랑한 이유는 외모보다는 “너를 사랑해, 하지만 나를 더 사랑해(I love you, but love me more)”를 외치던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었다.



PS.

이미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는 끝났다. 하지만 나는 완경 이후, 임신 걱정 없이 섹스 라이프를 즐기는 사만다가 뉴욕 어디에 살리라 믿는다.


원문: 사과집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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