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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다

조회수 2019. 10. 24. 17: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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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 자신에게도 그것이 나의 본질로 여겨질 것인가.

배우, 평생 배우는 직업

나이가 들면 전성기보다 기량이 떨어진다. 대다수 운동선수는 20–30대에 은퇴한다. 신체활동은 물론이고 순전히 머리로만 하는 바둑조차도 30대에 꺾인다. 떨어지는 능력을 경험과 능숙함으로 메꾸는 분야도 있다.


나이 듦이 기대되는 직업들이 몇 있다고 한다. 배우와 한의사다. 나이가 들면 맡는 배역이 바뀌면서 이번엔 어떤 모습들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거다. 결혼하면 소용이 없어진단 잘생긴 얼굴은 막상 부부싸움과 이혼을 줄이듯, 연기에서도 역시 나이 든 대로 또 잘생겨서 보는 맛이 있다고들 한다.

역시 잘생긴 게 최고야
돈을 떠나서 가장 재미있는 직업은 (주연) 배우라고 생각한다. 거기엔 지겨운 반복이 없고, 수십 종류의 삶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만 골라 체험할 수 있다. 물론 연기는 어렵지만, 다음 줄거리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을까 봐 걱정되는 스토리 작가보다는 낫지 않을까. 노래는 우려먹을 수 있지만, 다음 주 소재가 생각나지 않는 개그맨은 지난 방송분을 재탕할 수도 없다…


셀프 메소드 연기

영화 〈해리 포터〉에서는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로 변신해 그린고트로 잠입하는 장면이 있다. 시청자들은 벨라트릭스를 보면서도 헤르미온느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벨라트릭스 배우가 헤르미온느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극 중의 헤르미온느가 벨라트릭스 연기를 아주 잘하는 것처럼 느낀다. 사실 벨라트릭스 연기를 하는 헤르미온느를 벨라트릭스 벨라트릭스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니, 결국 벨라트릭스 배우가 벨라트릭스 연기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실제로 벨라트릭스 배우는 헤르미온느 배우가 벨라트릭스 연기를 하는 것을 먼저 보고 그것을 최대한 따라했기에 이런 명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벨라셉션(…) 벨라트릭스를 연기하는 헤르미온느를 연기하는 벨라트릭스 배우. 결국 벨라트릭스 배우가 벨라트릭스를 연기하는 셈인데도 관객들은 헤르미온느를 기억하게 된다.

현실의 자아도 비슷하다. 나는 내 모습대로 살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바라는 자아상대로 자아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착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은 착하게 행동하기에 착한 사람이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겁쟁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될까 봐 겁을 낸다. 또 다른 이는 쿨한 사람이 되기 위해 쿨하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쿨하지 않게 신경을 쓴다.


달 착륙은 조작된 연출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영상 제작을 맡았는데, 그의 극사실주의 성향 때문에 결국 달 현지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모든 회의주의자를 속여넘기고 음모론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최민식은 〈악마를 보았다〉를 촬영하면서 사이코패스 살인마 연기에 한창 심취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반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마치 영화 속 살인마처럼 욱해서 나쁜 짓을 할 충동을 느꼈다. 그 후로 과도한 몰입 연기는 경계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편 우울한 배역을 주로 맡은 뮤지컬 배우는 자기의 진짜 일상도 우울해지는 경향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악역을 너무 실감 나게 연기해서, 어떻게 저렇게 악역 연기를 잘하냐며 칭송을 듣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악역 그 자체에 녹아든 나머지, 사람들이 그 배우 자체를 안 좋은 인상으로 받아들이고 아주 싫어하게 된다. 어쩜 저렇게 잘생겼으면서도 인상이 안 좋고 표독스럽냐며. 연기자는 어느 수준까지 이르러야 할까.


우리는 평생 자신을 연기하는 배우다.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자아가 실제 자아와 다르다면, 되고 싶어 하는 자아를 연기하면서 실제 자아를 그 방향으로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다. 평생을 들키지 않고 공연을 끝마쳤다면 남들에게는 그것이 내 본질 자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도 그것이 나의 본질로 여겨질 것인가.


달에 가지 않고도 영상을 아주 완벽하게 조작해서 모두가 믿는 상황과, 달에 실제로 가긴 갔는데 모두의 상상과 너무 달라 그럴싸하지 않은 상황과, 기어코 달까지 가서 조작 영상을 만들어낸 상황을 생각해 본다. 나는 ‘나’ 배역을 아주 잘 소화하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일까,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을 연기하지 못하는 귀속 배우일까, 아니면 그냥 ‘나’일까. 나 자신에 메소드 연기로 몰입하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 혹은 최악의 악수인 것인지 궁금해진다.



저해상도의 꿈, 고해상도의 생활

게임 ‘배틀그라운드’에서는 100명의 플레이어가 넓은 섬을 전장으로 활동한다. 컴퓨터 성능에 한계가 있기에 제작사는 멀리 있는 건물을 눈속임으로 대충 표현해 놓고, 거리가 가까워지면 추가 연산을 통해 세부적인 부분을 불러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문제는 그 가까워지는 속도가 연산 시간을 뛰어넘을 때다.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들은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지상의 건물에 가까워지는데, 추락은 달리기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로딩할 시간이 부족하다. 느린 컴퓨터에선 지상에 내렸을 때 보이는 건물들이 떡처럼 뭉개져서 안으로 들어가 아이템을 얻을 수 없다. 순진한 꿈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현실과 너무 다르다.

  그래픽 옵션이 너무 낮으면 최상위 옵션에서 점으로라도 보일 적이 아예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리한 반면, 하옵에서는 생략될 풀숲 그래픽이 최상위 옵션에서 지나치게 세세하게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나는 풀숲에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맨바닥에 엎드린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정도의 차이는 게임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곧 수정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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