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트 펑크의 노래에 숨은, 거장도 놀란 '디테일'

조회수 2019. 10. 17. 15:5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당신의 인생을 이야기해주세요."

평소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몰랐던 이야기를 발견하고 감동을 받아 애정이 더 깊어지고, 팬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질 때가 있다. 다프트 펑크 다큐멘터리 ‘다프트 펑크 언체인드(Daft Punk Unchained)’를 보고도 그랬다. “미쳤다ㅠㅠ”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큐에 기억해 두고 싶은 좋은 내용이 많아서 메모해가면서 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전설적인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의 인터뷰였다. 2014년 그래미를 휩쓸었던 다프트 펑크의 앨범 〈랜덤 액세스 메모리(Random Access Memories)〉에는 ‘조르조 바이 모로더(Giorgio by Moroder)’란 곡이 있다. 이 노래를 몇 번을 들었는데… 몰랐던 내용이 나왔다.


이 노래에는 팬들조차 잘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당신이 다프트 펑크의 팬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로봇들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모로더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는데, 이 비밀을 알고 노래를 들으니 더 전율하게 된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 조르조 모로더

조르조 모로더는 신디사이저로 1970–1980년대 디스코를 이끌었던 인물이자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로 불린다. 도나 썸머를 ‘디스코의 여왕’으로 만든 장본인이고, 1988년 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작곡한 사람이기도 하다.


노래는 조르조 모로더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웅성이는 듯한 사람들 사이에서 거장이 과거를 회상한다. 15–16살 때 기타를 치기 시작하고 음악가를 꿈꾸던 때로 시작해, 1970년에 들어서 과거와 미래를 담은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와 그가 애용하는 신디사이저 ‘무그 모듈러’ 이야기를 한다. 노래 중간에는 내레이션이 한 번 더 나온다. 모로더가 앞단에서 얘기하는 무그 모듈러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내용이다.

화음의 개념과 올바른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요.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조르조 모로더는 미래의 사운드를 내기 위해 ‘클릭’을 자신의 무그 모듈러에 싱크 시켰다고 말한다. ‘클릭’은 메트로놈의 반복되는 소리다. ‘조르조 바이 모로더’를 잘 들어보면, 모로더가 클릭 이야기를 할 때 실제로 배경에 메트로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노래의 마지막 몇 초간은 클릭 소리만이 남는다(정말 미친 노래다ㅠㅠ).
모로더는 특정 템포(클릭)에 맞춰 신디 사이저로 연주한 라인을 반복했고, 이는 음악이 인간의 손을 떠나 기계적(일렉트로닉)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래서 선입견 없이 자기만의 방식을 찾았다.
이게 미래의 사운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을지는 몰랐어요.

모로더가 무그 모듈러를 연주한 방식은 일렉트로닉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전설의 시작이었다. 그는 하우스, 테크노 음악에 빼놓을 수 없는 영향을 줬다.


‘조르조 바이 모로더’는 장장 9분이 넘는다. 모로더의 인생과 생각을 담은 다큐멘터리 같은 노래다. 실제로 나는 이 곡으로 인해 조르조 모로더를 더 깊이 있게 알게 됐다. ‘이래서 다프트 펑크가 그렇게 좋아하는구나’란 생각도 했고.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서로 영감을 주고받고 좋은 영향을 끼치며 예술이 예술을 낳는구나.

제 이름은 지오반니 조르조지만 모두가 저를 조르조라고 불러요(My name is Giovanni Giorgio, but everybody calls me Giorgio).
이 문장과 함께 앞부분의 내레이션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다프트 펑크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부분이 진짜 전율이 인다.


거장도 놀란 다프트 펑크의 디테일

다프트 펑크와 조르조 모로더.
음악을 만들 때 다프트 펑크는 조르조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인생을 이야기해주세요.
그의 이야기를 녹음하기 위해 다프트 펑크는 무려 3대의 마이크를 준비했다. 조르조는 인터뷰를 하는데 왜 마이크가 3대나 있냐고 물었고, 다프트 펑크는 그의 인생을 담기 위해 각자 다른 시대에 출시된 마이크를 준비했다고 설명한다.
   
  • 그의 어렸을 적을 녹음하기 위한 오래된 빈티지 마이크,
  • 1970년대 이야기를 녹음하기 위한 1970년대 마이크,
  •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녹음하기 위한 가장 최신 마이크까지.

누가 차이를 알겠냐는 조르조의 질문에 테크니션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다프트 펑크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 차이는 우리 둘이 알아요.

조르조의 인터뷰는 1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인터뷰가 내게 준 임팩트는 강렬했다. 다프트 펑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쓰는 장인정신으로 음악을 만든다. 아무도 모를 작은 차이를 위해 각기 다른 마이크 3대를 구하는 수고를 한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알리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해 그렇게 한다. 팬으로서 아무리 조심스럽게 들어도 마이크의 차이는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다프트 펑크가 더 좋고, 그들의 작업을 더 응원하게 된다.

다프트 펑크 하면 딱 떠오르는 헬멧!

중요한 건 남이 아는 게 아니라 내가 안다는 것이다.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디테일.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챙기게 되는 디테일은 꼭 일이나 작업에 있어서뿐 아니라 개인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디테일이 느껴질 때 작품의 진가를 실감한다. 작업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상상해보면 나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그들이 좋아서 그렇게 했을지언정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얼마나 큰 애정이 있으면 이렇게까지 할까.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못 할 일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 덕분에 나는 그들의 음악과 이야기를 즐기고, 또 작은 감동과 영감을 받는다. 그 작은 감동과 영감은 내 생각이 곁들여진, 당신이 읽는 이 ‘글’로 또다시 만들어진다. 이 순환이야말로 좋아하는 마음들의 연쇄작용이 아닐까.


‘스타벅스’ 하면 초록색과 인어 사이렌이 떠오르고, ‘코카콜라’ 하면 빨간색과 콜라병이 떠오른다. 마찬가지로 ‘다프트 펑크’ 하면 그들의 로고와 헬멧이 떠오른다. 다프트 펑크는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브랜드만큼 강력한 브랜드 자산을 가졌다. ‘브랜딩’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20년 넘게 그들이 쌓아온 행보는 브랜딩 관점으로 봐도 배울 점이 가득하다. 그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


원문: 정혜윤의 브런치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