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책을 잘못 읽어왔다

조회수 2019. 10. 14. 15: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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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읽기에 중독되어 제대로 읽는 방법을 잊는다면

얼마 전 한국어 자격증 취득을 위해 오랜만에 문제집을 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이 자격증을 아주 과소평가했다. 5년 전쯤 같은 시험을 치렀을 때 기출 몇 번 풀고 고득점한 경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펼친 문제집은 왜 이리 어렵던지. 어휘와 어법이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 읽기 영역을 주의 있게 한 번에 풀어나갈 집중력마저 사라졌음에 위기감을 느꼈다. 며칠간 공부와 기출을 풀어낸 결과 조금씩 기대 점수가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모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하게 떨어진 순간이었다.


내가 시험을 낙관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책을 꾸준히 많이 읽는 것에 약간의 자부심이 있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나의 읽기는 어떠한가. 100분 집중하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람이요, 상식에서 벗어난 접근으로 기본적인 문맥을 빗겨나가는 경우도 있다. 자격증 시험이 내 읽기 습관을 판단하는 전부가 될 순 없지만, 현재의 나를 보여주는 진단지의 역할은 충분히 했다. 5년 사이 나에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나는 내가 책을 잘못 읽어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속독과 다독이 능사가 아니다

퇴사 후 시간이 많아진 만큼 많은 책을 읽었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방대한 정보를 얻고 나에게 맞게 소화하는 과정이 좋았다. 특히 글쓰기를 위한 독서를 하다 보니 빠른 시간 안에 책을 읽고 요약해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는 것이 중요했다. 글을 쓰기 위해 시작한 독서는 시간이 흐르며 내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문장을 수집하는 작업이 되었다. 권 수를 세 가며 읽는 타입은 아니고, 많이 읽는 것보단 좋은 책 한 권을 제대로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속독과 다독이 내 독서 습관이 되어갔다.


어느새 나는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책들만 읽었다. 물론 기사나 논문 등 주장과 근거가 확실한 논픽션 글쓰기를 하는 경우에는 주장이 명확하고 신뢰할만한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의 의견이 분명해지고, 뚜렷해진 취향만큼 독서의 취향도 좁혀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양한 주장이 담긴 책을 읽을 때도 내가 동의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넘기며 읽었다는 점이다. 편견을 강화하는 읽기, 효용만을 따지는 독서를 했다. (한동안 문학을 거의 읽지 않기도 했다.)

출처: SBS ‘난독시대’
Z자형, F자형 읽기는 띄엄띄엄 읽는 디지털 시대의 독서법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의 저서 『책을 읽는 방법』에서 속독의 문제를 지적한다. 속독술은 눈으로 문장을 좇아가며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나열된 단어를 스치듯 눈이 새기는 것에 불과하다. 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읽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훑는 방식으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그의 책에 따르면 그런 읽기는 “그저 자기 자신의 마음속을 비추어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독서법이 지속된다면,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닫힌 사고만 반복되어, 시야가 넓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편협해질 것이다.

- 히라노 게이치로, 『책을 읽는 방법』
하나의 책을 읽어도 독자마다 발견하는 주제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어떤 독자가 무슨 책을 읽든 같은 주제로 귀결한다면 그는 시야가 좁은 독서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정보를 얻기 위한 효용적 독서만 반복하다 보면 읽기 자체의 즐거움을 잊고 ‘서울대 권장 100권’을 꾸역꾸역 읽는 고등학생처럼 되기 쉽다. 주말까지 읽어야 하는 책을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까지 읽지 못하고 연장하며 부담을 느끼는 것. 그것이 최근 나의 독서법이었다.


노이즈를 생략하는 읽기

스마트폰이 독해력 하락의 주범이라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며 텍스트 유형 역시 스마트폰, pc,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다변화되었고, 그 탓에 긴 글에 익숙한 아날로그 세대보다 요즘 세대가 글을 잘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140자 트위터와 유튜브로 검색이 익숙한 세대는 긴 글을 읽는 게 곤욕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폰으로도 긴 글을 곧잘 읽는다. 인터넷 뉴스와 칼럼도 스마트폰과 데스크톱으로 매일 보고, 구입한 전자책도 한 가득이다. 그러니까 나는 점점 하락하는 나의 독해력의 원인이 단순히 스마트폰 기기라는 이유를 대고 싶은 게 아니다. 내 읽기의 가장 큰 문제는 노이즈(noise)를 생략하고 읽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에 따르면 소설을 소설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노이즈다. 노이즈란 플롯 아래에 숨겨진 섬세한 상황 묘사와 풍부한 감정 표현, 잘 살펴봐야 찾을 수 있는 미세한 디테일이다. 플롯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노이즈를 생략하고 단숨에 속독한 뒤,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뿌듯해한다. 과연 이는 책을 잘 읽는 방법일까?


스크롤을 내리기 쉬운 스마트폰에서는 노이즈를 생략하기가 더 쉽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영화, 드라마 캡처도 노이즈를 생략하는 읽기의 대표적인 예다. 영화에 숨겨진 장치, 배우의 표정의 변화, 대사의 떨림, 카메라의 이동 등 영화를 영화답게 만들어주는 노이즈를 모두 삭제한 채 빠른 시간 내에 스크롤을 내려 대사와 플롯만 확인하는 방식. 이는 영화 감상이 아니라 이미지로 줄거리를 훑는 것에 가깝다. 텍스트→동영상의 시대, 이제 우리는 동영상의 배속을 높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캡처된 영상이라는 새로운 텍스트에 익숙해져 버렸다.


일명 ‘스크롤 훑기’의 읽기가 잘 드러나는 문화가 또 있다. 팬들의 드라마나 영화를 기반으로 한 2차 창작이나 아이돌 등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한 RPF(Real Person Fiction)은 팬 픽션의 한 장르다. 팬들의 후원과 지지로 웹 소설, 웹툰 등의 창작 활동이 이뤄지는 플랫폼인 ‘포스타입’에서는 다양한 2차 창작물을 접할 수 있다.

웹소설, 라이트노벨, 웹툰, 팬픽 등 다양한 창작물이 올라오는 플랫폼 ‘포스타입’.

이러한 2차 창작물을 읽을 때는 애초에 노이즈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첫 페이지부터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 어떤 성격인지, 하나하나 내용을 수집해가며 읽는다. 그런데 2차 창작물은 이미 어떤 캐릭터인지, 원작에서 캐해(캐릭터 해석)가 끝났다. ‘어벤져스’를 기반으로 한 2차 팬픽에서 우리는 아이언맨의 성격을 알기 위해 소설을 묵독하듯 읽을 필요가 없다. 아이언맨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아니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 캡처와 서브 컬처의 유해함이 절대 아니다. 이는 변화한 매체에 맞게 진화한 다양한 텍스트 유형 중 하나일 뿐이다(내가 포스타입에 쓴 돈이 얼만데…). 지적하고 싶은 것은 독자가 스크롤을 빠르게 내릴 수 있는 종류의 글, 즉 노이즈를 생략하는 읽기에만 익숙해지다 보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깊은 글은 읽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배경지식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기꺼이 들이고, 다 똑같은 이름의 외국 이름들을 노트에 적어가며 읽고, 이해가 되지 않는 대사는 다시 돌아가 읽고, 작가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 이유를 고민하는 것. 광범위한 텍스트 속 노이즈를 항해하는 것, 읽기의 묘미는 이런 노이즈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스크롤 훑기’의 방식에서 노이즈는 모두 증발해버리고 만다.


읽는 뇌도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나처럼 읽는 사람도 언제든지 퇴화할 수 있다. 편한 읽기에 중독되어 제대로 읽는 방법을 잊게 된다면.



슬로 리딩이 중요한 이유

그래서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이 뭐냐고? (당연한 소리지만) 슬로리딩이다. 저자는 독서의 양이나 속도에 집중하지 않고 질에 집중한 착실한 독서를 하라고 조언한다. 속독(速讀)이 아닌 묵독(默讀, silent reading)을 하라는 것. 히라노 게이치로는 재즈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와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를 통해 과거에는 적은 정보 속에서도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음을 지적한다.


재즈 거장인 마일스 데이비스는 어릴 때 레코드가 세 장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뮤지션을 꿈꾸는 사람이 음반 세 장 있다고 한다면 그의 취향과 진정성을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 음반이나 도서가 활발하게 유통되기 이전 사회의 사람들은 적은 정보만으로도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다. 삼권 분립을 주장한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그의 저서 『법의 정신』을 20년에 걸쳐 완성했다. 이를 두고 스위스의 유명한 비평가인 장 스타로뱅스키는 그와 『법의 정신』을 붉은 보르도 와인에 비유했다. 누구도 최상의 보르도를 단숨에 마셔버리지 않을 것이다.


몽테스키외와 마일스 데이비스는 각각 슬로 라이터와 슬로 리더를 대표한다. 모든 사람이 몽테스키외처럼 20년에 걸쳐 책을 쓸 필요도 (능력도) 없고, 20년에 걸쳐 썼다고 해서 20년 동안 읽을 필요는 없으며,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음반 세 장만 죽어라 들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법의 정신』 같은 좋은 책을 단숨에 들이켜지 않는 자세다. 


좋은 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천천히 문장 하나하나를 탐색하며 읽는 사람에게 완독한 책의 권 수는 큰 의미가 없다. 슬로 리딩의 습관이 축적된 자는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니, 많은 책을 읽을 필요도 줄어든다.

요즘 시대에 슬로리딩만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변화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식 책 읽기만 강조하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 독서에 대한 반발심만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닐까. 요즘 초등학생들은 인쇄 매체 읽기와 쓰기의 필요성 자체를 낮게 본다고 한다. 전자매체로 텍스트를 접하는 것이 일상인 시대에 종이책을 통한 독해력만을 측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지만 먼저 유념할 사항은 아날로그 매체의 읽기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디지털 매체의 읽기 능력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텍스트 시대에 맞는 읽기/쓰기 방식을 배양하고 측정하는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슬로 리딩의 기술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사색하기 위해 문명인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오독에도 종류가 있다고 강조한다. 말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빈곤한 오독이지만, 슬로 리딩을 통해 심사숙고한 끝에 작가 의도 이상으로 깊은 내용을 찾아내는 것은 풍요로운 오독이다. 우리는 풍요로운 오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간 나는 빈곤한 오독을 해오지 않았나 돌이켜 본다. 잘 읽는다는 것은 다독(多讀)이 아니라 다상량(多商量), 많이 생각하는 것이라는 걸 되새긴다.



사족

  1.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을 읽고 쓴 글인데 글을 쓰고 보니 당연한 소리를 길게 했네… 저자가 알려주는 슬로 리딩의 디테일한 방법과 연습은 책의 후반부에 담겨 있다. 문학이야말로 노이즈의 결합체요 속독할 수 없는 분야다. 요즘에는 소설을 자주 읽으려고 노력 중.
  2. 이 글에서 난독, 난독증이란 말은 쓰지 않았다. 난독증은 지능이나 환경과는 거리가 먼 학습장애이자 질병의 일환이다. 그러나 난독증은 조롱과 비하의 대상으로 오용되어 쓰인다. 이에 읽어볼 만한 기사를 첨부한다.
  3. 이 글은 분량과 나의 한계로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을 쓰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문해력에 대한 기사를 첨부한다.


원문: 사과집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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