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ㅍㅍㅅㅅ

나에게 필요한 ○세권

좋은 집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줄 누가 알겠어?

1,436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디렉토리 매거진》은 주거 관점으로 1-2인 가구,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기록하는 잡지다. 창간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내용이 알차 구입해서 읽는다. 창간호의 주제는 ‘보증금’, 두 번째 호의 주제는 ‘함께 사는 존재’, 그리고 가장 최근호의 화두는 ‘Within 500M’, 즉 ○세권이다. 이전 호가 주거 구입 형태나 동료 등 집의 내부 환경을 다뤘다면, 집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다룬 것이다.

직방과 볼드저널이 함께 만든 밀레니얼 주거 중심 매거진 《디렉토리 매거진》.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몰세권이나 편세권, 벅세권, 숲세권에서부터 도대체 이건 뭐지 고민하게 만드는 서세권(서브웨이+세권), 엽세권(엽기떡볶이+세권) 등 세상엔 다양한 ○세권이 존재하고, 사람마다 ○세권의 우선순위란 다 다르다. 매거진에 실린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며 나도 내게 중요한 집 주변 환경을 생각해보게 됐다. 나에게 중요한 ○세권은 무엇인가.


나의 간단한 거주 이력


  1. 학교 기숙사 (반기 60만 원대)
  2. 관악구 원룸 하숙집 (보증금 200, 월세 30만 원대)
  3. 은평구 오피스텔 (보증금 3500, 월세 37만 원)
  4. (장기여행. 대부분 에어비앤비. 당시 한국 주소지는 ‘○○동 주민센터’였음)
  5. 경기도 부모님 집 거주 3개월 차


나의 ○세권을 말하기 전에, 20세 이후의 거주 이력을 간단히 정리했다. 엄밀히 말해 내가 집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집을 고른 적은 없다. 학교 때문에, 회사 때문에, 여행 때문에, 돈이 없어서… 그래도 다시 독립하게 되면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정리해본다. 현재는 10년 만에 부모님 집에 다시 얹혀사는 중. 힝구…



커세권 ✭✭✭✭✭

카페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지금, 작업을 위해 더 필수적인 공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카페가 필요한가? 먼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그리고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고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 적당히 큰 매장의 프랜차이즈여야 한다. 나는 내 존재가 백색 소음이 되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종일 1잔만 시키는 그런 사람은 아니고요… 배고파서 어차피 빵이랑 커피 또 사 먹어야 함…ㅜ)


주 6회, 하루에도 2번 이상씩 가기 때문에 가격도 중요하다. 요즘 내가 다니는 카페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투썸 플레이스다. 가깝고 넓은 데다, 무엇보다 현대카드 포인트 차감이 20%나 된다. 만약 투썸이 없다면 버스 한번 타고 가야 하는 스타벅스에 갈 것인가, 집 앞에 있는 작은 개인 카페를 갈 것인가? 차라리 버스 타기를 선택하겠다.

지금도 투썸.



책세권 ✭✭✭✭

책세권은 세부적으로 서(점)세권과 도(서관)세권으로 나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서점이 더 내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을 사서 읽는 편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면 2분 만에 갈 수 있는 도서관 주변에 사는 요즘 책의 90%는 빌려 읽는다. 그건 내가 책값에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없는 금전적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도서관은 없거나 대출 중이라 비치되지 않은 책이 많아 읽고 싶은 책을 바로 못 읽는 게 아쉬웠는데 상호대차 서비스가 있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독서의 폭이 더 넓어졌다. 관내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서비스인 상호대차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책이 없으면 다른 구/동의 도서관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달해준다. 우리 시의 14개 도서관이 참여하니, 내게는 14개의 도서관이 있는 셈이다.


책과 가까이 사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넓힌다. 언제든지 도서관에 가서 어떤 책이든 빌릴 수 있다는 게, 서점에서 신간을 훑어보며 요즘의 트렌드를 확인하고 우연한 명작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근데 이런 게 없어도 어떻게 살아지긴 했다. 여행할 때는 대부분 전자책으로 읽었다. 입력의 방법은 다양하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읽을 수 있다. (눈으로 읽는 거니까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 속담을 꼭 쓰고 싶었다.)



산(山)세권·천(川)세권 ✭✭✭

이것들은 나이가 먹으면서 중요성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5년간 관악구에 살았을 때, 하숙집 옆에 관악산도 있고 도림천도 있고 운동하기 좋은 최적의 환경적 조건은 다 갖추었지만 돗자리 깔고 막걸리 먹을 때 빼고는 한 번도 안 갔다. 은평구에 살았던 3년은 어떠한가? 구파발역에서 등산복을 입고 나와 북악산을 오르는 수많은 등산객을 봤지만 나는 흙이라도 밝아본 적이 있던가? 나는 아스팔트 위만 걷는 아스팔트 인간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집 주변에 있는 야트막한 동네 산을 등산하는 습관이 생겼다. 안 좋은 체력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뒤늦은 결심 때문이기도 하고, 맘먹으면 언제든 완등할 수 있는 만만한 산이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적당히 완만한 산의 존재가 있을 때야 운동을 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산이 아니라 언덕일 수도…

마침 걷기 좋은 계절이다. 산세권·천세권이라면 걸어 보자.



목세권 ✭✭✭

사우나의 존재도 중요하다. 옛날부터 할머니들은 왜 달 목욕을 그렇게 끊을까?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이해가 간다. 작년까지 살았던 오피스텔은 주상 복합형 건물이었는데, 가장 좋아했던 점은 지하 1층에 사우나가 있는 점이었다. 1인 가구가 시원하게 세신을 하고 탕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것은…


집에 욕조가 있는 집이 얼마나 되며, 집에서 편하게 세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며 오피스텔에 살던 시기에는 밤마다 사우나에 가는 게 습관이 됐다. 정말이지 가까운 곳에 사우나가 있으면 삶의 질이 상승한다. 나의 모든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눈물의 대서사시는 38도 열탕에 앉아있을 때 이루어졌다.


지금 집 주변에 사우나가 있지만 가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아마 직장생활을 안 해서인 것 같다. 나에게 사우나에 가는 빈도는 스트레스 지수와 맞먹었다. 요즘에 스트레스받을 게 없다. 사람도 안 만나고 회사도 안 나가는걸…^^ 사우나가 있는 집에 살 때만 해도 삶의 질을 높여주는 1순위가 목욕탕이었는데, 우선순위라는 건 이렇게 자주 바뀐다.



코세권✭✭
코인노래방.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000원에 2곡이면… 4곡 부르는 곳에 살 때 인생 참 좋았다.



좋은 집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줄 누가 알겠어

위의 나열한 우선순위는 살아보고 나서야 내게 좋은 것을 뒤늦게 체득한 것에 가깝다. 지금 나의 상황, 나이, 거주환경, 직장의 유무 등 특정 조건에 따라 결정된 우선순위이고, 언제든 바뀔 가능성이 있다. 경험해보고 난 이후에야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교훈은 어쩌면 아직 나는 내가 모르는 우선순위가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한편으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하는 정신승리의 능력이 뛰어난, 바퀴벌레적 면모를 가진 것은 아닌가 싶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의 정신을 의식주에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세는 더 나은 집을 찾아가는 과정의 지지대인가, 현실에 안주하고 끝내 좋은 취향을 향유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인가? 경험해봐야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고오급을 경험하지 않으면 뭐가 평생 좋은지 모르고 죽게 되는 걸까.


어쨌든 이렇게 나고 자란 것을 바꿀 수 없는 지금, 주거 계급의 억울함을 내려놓고 지금이라도 하나씩 거주 가치관을 알아간다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비록 눈뜨자마자 한남더힐에 살지 못하는 신세는 아쉽지만, 더딘 속도로 내게 맞는 게 뭔지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


장기여행 중 수십 개의 에어비앤비에 묵으면서 알게 된 것도 거창한 평수나 방 개수를 향한 욕망이라기보단 더 나은 삶을 향한 자잘한 취향에 가까웠다. 작업하기 위한 최적의 동선, 커피머신, 집에 두면 좋을 식물의 종류, 소파의 위치, 적절한 거리의 공원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등… 이런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니까.


집에 관해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포르투를 여행하며 만난 민 선생님이다. 어쩌다 그 집에 초대되었을 때, 포르투 명물인 도오루 강과 동 루이스 강이 보이는 명당에 어떻게 방 세 개짜리 집을 구하셨는지 세속적인 궁금함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어떻게 도오루강이 보이는 이런 좋은 집에 사실 수가 있어요… (부자신가 보다… 돈 많으신가 보다…)

이런… 뷰였다니까욤…

스페인에 몇 년을 거주하고 포르투갈로 넘어와 새로운 여행 사업을 꾸리는 민 선생님 말씀이, 본인도 월세 몇백을 내지만 마음에 들어서 그냥 이곳을 산 것이라 했다. 우선 사고 나서 돈을 벌면 된다는 그 대담한 사고. 사업가적인 쾌녀의 면모가 나와는 전혀 다른 DNA를 가진 인물이라는 걸 보여줬지만 사실 그때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해진 상황에서만 최적의 집을 구할 수 있다는 좁은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달까.


사업하는 재능은 차지하고, “더 큰 집이 좋다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주거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내게 던지게 됐다. 좋은 집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줄 누가 알겠어? 고정관념을 걷고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다 보면 꿈에 그리는 집이 영영 먼일만은 아닐 것이다.



나만의 ○세권, 나만의 주거
이번 《디렉토리 매거진》에선 서촌에 산다는 예지 씨의 인터뷰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이 나이쯤 되면 모은 돈이 얼마에, 은행에서 대출 가능한 신용도라거나, 독립할 거면 적어도 전셋집이라는… 그런 종류의 강박은 지금 나도 있다. 하지만 예지 씨의 말처럼, 직업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우선순위에 맞는 집을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분수에 맞는 삶이라는 건 세속에 기준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나의 기준에 맞는 것이어야겠지. 그러니 중요한 것은, 양보할 수 없는 나만의 조건, 주거에 관한 개인의 가치관을 먼저 확고하게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학교도 안 다니고 직장도 없고 부모님 집에서 사는 지금에야말로 언젠가의 독립을 꿈꾸며 나만의 주거 가치관을 세우기 좋은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나 왜 울어?…). 현재로서는 바퀴벌레 모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세권 고민이 진짜 쓸모 있을 때가 올 거라 꿈꾸며.


원문: 사과집의 브런치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