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큰 언어'의 문법이 덜 복잡할까?

조회수 2019. 9. 11. 14: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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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이 크기만 해도 언어는 단순해집니다.

※ The Economist의 「Why widely spoken languages have simpler grammar」를 번역한 글입니다.


스탈린에게 러시아어는 제2의 언어였습니다. 조지아 출신 독재자의 러시아어에는 숨길 수 없는 악센트가 있었고 어미를 흐리는 버릇이 있었죠.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줍니다.


먼저 아무리 노출이 많아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몹시 어렵다는 것입니다. 스탈린은 10세 전후에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해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내내 러시아어를 썼거든요. 다른 하나는 언어들이 쓸데없이 복잡하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음에도 철권으로 소련을 지배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러시아어는 실제로 배우기 힘든 언어로 꼽힙니다. 크고 강한 집단의 언어가 복잡하다는 통념과 일치합니다. 어휘가 풍부하고 어려우며, 복잡한 산업사회를 뒷받침하는 언어니까요.

하지만 수많은 언어를 체계적으로 비교한 언어학자들은 이 통념과 반대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큰 언어”, 그러니까 넓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소수의 고립된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단순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결론이 나온 것은 언어학자들이 어휘보다는 문법에 집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섬 동부의 몇몇 마을에서만 사용되는 베릭어(Berik)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 언어에는 “초신성(supernova)” 같은 어휘가 없지만, 문법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동사의 어미로 해당 행동이 하루 중 어떤 시간에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고, 직접 목적어가 지칭하는 대상의 크기에 따라 동사의 어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물론 영어로도 이런 것들을 표현할 방법은 있지만, 베릭어에서 이런 어미 변화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칙이죠. 외딴 마을이 물질적으로는 단출할지 모르지만, 언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2010년 수천 개의 언어를 대상으로 한 한 연구는 “작은 언어”의 단어에 이처럼 다양한 변화형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반대로 영어나 표준 중국어와 같은 “큰 언어”는 단어의 변화형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언어가 넓은 지역에 걸쳐 널리 쓰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어떤 언어가 널리 퍼지게 되면, 무역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성인이 되어 새로이 해당 언어를 습득하는 외부인도 늘어납니다. 모든 언어는 어느 정도 “쓸데없이” 복잡하므로, 어른이 되어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복잡한 규칙들을 어느 정도는 무시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는 자연스레 약간 단순해진 언어를 부모로부터 습득하게 되죠.



집단이 크기만 해도 언어는 단순해진다

하지만 네덜란드 막스플랑크 심리언어학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언어가 단순해지는 것이 비단 외국인들의 서툰 언어 사용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저 언어를 구사하는 집단이 크기만 해도 언어는 단순해진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4명으로 이루어진 집단과 8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각각 12개씩 구성해 이들에게 화면 위로 지나가는 모양들을 묘사할 수 있는 언어를 발명하도록 했습니다. 구성원들은 키보드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누었고,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규칙을 따라야 했습니다. 서로 간에 성공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점수를 따는 방식이었습니다.


두 집단 모두 시간이 갈수록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되었지만 그 양상은 조금 달랐습니다. 큰 집단의 구성원들은 대화에 필요한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를 만들어나갔죠. 집단이 커질수록 다른 구성원과 교류할 기회가 적어지므로, 제한된 횟수 안에서 의사를 전달하려면 명확한 패턴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압박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추측입니다. 반면 작은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더 독특한 의사소통 체계를 만들어나갔죠.


둘 중 어떤 언어가 더 낫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큰 집단과 작은 집단 모두 같은 의사소통 능력을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독특한 언어는 더 많은 역사를 공유한 작은 집단에 더 잘 맞고, 언어가 널리 퍼져서 더 많은 사람이 쓰게 될수록 더 쉽고 예측 가능해질 필요성이 생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모두 종합해보면, 문법이 생기고 또 사라지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집단이 커질수록 체계적인 규칙의 필요성도 커집니다. 불규칙적 변화가 많아 배우기 어려운 소규모 집단의 언어로는 확산에 한계가 생기죠. 언어에는 필요한 것 이상의 규칙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외부인들이 언어를 배우면서 규칙 중 일부가 사라지기도 하죠.


타지크어와 이란어, 아이슬란드어와 스웨덴어, 프리지아어와 영어처럼 긴밀히 연관된 언어들이 문법적인 복잡성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언급한 짝꿍 언어 가운데 앞에 나온 언어가 더 작고 고립된 언어죠. 복잡한 문법의 상실은 외부인에게 언어를 전파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성공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요.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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