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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가 그럴 줄 몰랐지

조회수 2019. 8. 8. 17: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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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불리 선택할 여행지가 아님을 꼭 기억해야 한다.
장마와 무더위가 뒤섞인 딱 이맘때쯤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몇 해 전 아프리카에서 열흘간의 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 층 문을 나섰을 때, 내 얼굴을 강타한 그 뜨겁고 습한 공기. 콧속으로는 스팀다리미의 스팀을 넣는 거 같은 그 기분. 감당할 수 없는 끈적한 기운이 나를 덮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말이 터져 나왔다.
와 이게 말이 돼? 아프리카보다 한국이 더 덥네.

불과 24시간 전까지 내가 머문 아프리카는 기온이 40도가 넘어가도 습기가 없기 때문에 그늘에 들어가면 꽤 시원했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에어컨이 없는 곳이라면 몸이 파리 잡는 끈끈이 상태가 되고 불쾌지수도 급상승했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까지는 몰랐다. 지구상에서 아프리카가 제일 더운 줄 알았는데, 진정한 더위는 한국 땅에 있었다.



지금까지 네 번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처음이 어려웠지, 다음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왔다. ‘1’의 경험치를 중시 여기는 업계의 특성상 어느새 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1번의 경험만으로 “아프리카 전문”이라는 타이틀이 붙었기 때문이다. 1번이 2번이 되고, 2번이 4번의 기회를 불러왔다. 그렇게 내 의지라면 절대 가지 못했을 곳들을 ‘출장’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 덕분에 오가게 되었다.


그 땅을 밟기 전까지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프리카에 대한 극과 극의 환상을 품었다. 세렝게티 초원을 뛰어다니는 야생동물들의 천국 또는 파리를 쫓을 기운도 없는 아이들이 눈만 껌뻑이며 죽음을 기다리는 살아 있는 지옥.


직접 가서 경험한 아프리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지구 반대편의 우리에게 전해지는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는 한정적이다. 대부분이 내전이나 전염병 등의 불안한 정세에 관한 뉴스, 혹은 야생 동물 다큐멘터리나 기부 방송이 전부였다. 하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발로 뛰어다니다 보니 미디어가 만든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 혹은 편견이 하나둘 깨져갔다.



야생동물이 뭐죠?

물론 아프리카 땅에 사는 아이들에게 전부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곳의 아이 중에도 대도시에서 부자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는 사파리건 동물원이건 다 다닌다. 하지만 이런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아이는 자신이 살던 마을이 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알며 평생을 살아간다.


언젠가 아프리카 동쪽 작은 마을에 며칠 머무른 적이 있다. 수도에서 꼬박 하루를 넘게 달려 다시 배를 타고 두 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내륙의 섬,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 지역을 살피고 아이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생겼다.


야생 동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이들이 사자가 뭔지 코끼리가 먼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익히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뛰어논다고 알아 온 야생 동물에 대해 이 친구들은 이미지조차 상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의아했다. 현지 담당자분께 여쭤보니 이곳의 아이들은 책이 아니면 세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당시 내가 서 있던 곳은 책은커녕 겨우 비바람만 막을 수 있는 허름한 건물에 칠판과 책걸상만 겨우 있는 학교였다.


별도의 교재도 없이 선생님이 다 낡은 칠판에 써주는 글씨가 다였다. 책이 쥐어져 있어야 할 아이들의 손에는 알록달록한 양동이가 쥐어져 있었다. 집에 갈 때 NGO 단체에서 만들어 주고 갔다는 학교 근처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동물을 보며 신기해할 어린아이들이, 가족들이 먹을 물을 길어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같은 아프리카 땅에 살더라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물 한 양동이가 더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파리의 여유나, 세렝게티의 낭만은 멀고 먼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정오가 되면 태양이 정수리를 뚫을 것 같은 무더위가 계속되던 날이었다. 당시 나는 사하라 사막 근처의 한 마을에 공공건물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출국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공정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됐다.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애가 닳았고, 어떻게 해서든 예정된 날짜에 완공을 해야 했다. 밤낮없이 공사가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하나둘 지쳐 갔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공사장까지 가야 하는데 ‘그 사람‘이 안 보인다. 차로 왕복 40분 정도 소요되는 숙소와 공사장 사이를 오가며 한국인 작업자들의 수송을 담당했던 현지인 트럭 기사!


일정에 쫓겨 한창 예민했던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랐다. 숙소 안팎을 샅샅이 뒤져 그를 찾아냈다. 그는 자신의 트럭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냐고, 지금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쏘아붙였다. 그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나에게 느릿느릿 말을 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야. 너 지금 여기서 그렇게 일하면 죽어. 그렇게 일하면 넌 지금 행복하니?

분명 악의 없는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트럭 기사의 그 말에 어퍼컷을 맞은 듯 머리가 아찔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 더위에 그렇게 전력을 다해 일하면 분명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 나라, 그리고 이 환경과 여기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에 무지한 결과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에서처럼 일했다. 그리고 그걸 현지인들에게까지 강요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들이 게으른 게 아니라 지극히 이 땅의 환경에 살아남도록 몸이 적응한 것을 무시한 처사였다.


트럭 기사의 “Are you happy?”라는 마지막 그 말은 그 이후 나의 삶에 깊게 박혔다. 내 그릇에 넘치는 버거운 일을 할 때면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너 지금 행복하냐고. 세상이 강요하는 속도가 아닌, 내가 행복하고 또 버틸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때 그 트럭 기사의 말을 곱씹는다.



아프리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모든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날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다.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 식사는 한국 대사관에서 고생했다며 만찬을 마련해주셨다. 사실 초대고 만찬이고 몸의 에너지가 바닥나 도저히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준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만 했다.


약을 입에 털어 넣고 겨우 몸을 일으켜 호텔을 막 나서려는 찰나! 날카로운 총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영화처럼 로비에 있던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들이 머리를 감싸고 재빨리 엎드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가까이서 총성을 들어 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화롭다고만 생각했던 이 나라에서 총성을 들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당시 우리가 묵던 곳은 수도 중심의 신축 대형 호텔이었다. 근처에 각국의 대사관, 관공서들이 많은 지구에 위치한 곳이다. 그 덕분에 이 구역은 그나마 안전한 곳이라고 해서 선택한 호텔이었다. 아프리카의 치안이 불안하다고는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지난 20여 일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포를 마지막 날 올인해서 경험하게 된 거다.


한 20여 분이 지나고 총소리가 잠잠해지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정부에 반하는 민간 시위대가 쏜 총이라고 했다. 며칠째 시내 곳곳에서 경찰과 민간 시위대가 대치한다고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수도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오지 마을에서 거의 보름 넘게 노숙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대도시가 불안정한 상황인 줄 몰랐다.


몇 번 아프리카를 오갔으니 아프리카를 ‘쫌’ 안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다. 다음에는 출장이 아닌 자유 여행을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그 총소리 하나로 그 계획은 곱게 접었다. 총성에 놀란 나를 향해 한국인 직원분은 현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현지인들에게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계 사람들은 돈이 많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쉽게 범죄의 타깃이 된다고 했다. 퍽치기, 무장강도 등등 해가 지면 무법천지가 되기 십상이라 일몰 후에 집 밖에 나가는 일은 “나 잡아 잡수쇼” 하는 행위라고 했다. 답사 때 만났던 직원 한 분도 해 질 무렵 퍽치기+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려주었다.

평소 여행 스타일대로 현지인의 삶에 가까이 들어가 보는 여행을 하다간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이 아프리카다. 세상에 완벽히 안전한 곳은 없다. 하지만 좀 더 위험한 곳은 분명 존재한다. 아프리카를 낭만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운 좋은 몇몇 여행자들이 쓴 위험과 안전 부분은 교묘히 편집된 여행기만으로 섣불리 선택할 여행지가 아님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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