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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의 이미지에 관한 잡설

조회수 2019. 8. 2. 12: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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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절 대 로 호의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는 요즘은 커뮤니티 중심으로 많이 오해가 풀린 점도 있지만, 정보가 확산되면서 오해가 더 많이 생기기도 하는 오타쿠라는 존재에 대해서.

오타쿠라는 용어 자체는 저널리스트인 나카모리 아키오가 만들어냈다. 당시부터 일본의 성적 개방 붐(난파 붐)이나 고도성장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미소녀나 만화나 애니 같은 특정 코드들로 세계관을 구축, 대화의 주된 재료로 삼는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부터 절 대 로 호의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었다. 물론 『다중인격탐정 사이코』의 스토리 작가이자 만화 비평가, 이론가인 오오쓰카 에이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이런 태도에 격분하거나 논쟁을 벌인다.


오타쿠 커뮤니티에 참가하던 당시의 오타쿠에는 이런 설명도 가능하다.

주류 사회에서는 이런 미인이 인기라거나, 이런 자동차를 다들 탄다. 이런 집에 살고 이런 명문대 나와서 커리어 쌓고 여름에는 이런 데 휴가를 간다.
이렇게 표준적인 라이프 사이클 모델이 제시된다. 커뮤니케이션도 이런 라이프 사이클을 둘러싼 것으로 진행된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 이에 뒤처지거나 이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거나 하는 식으로 삶을 유지한다. 하지만 이런 주류 커뮤니케이션에 끼기 싫거나 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찾아낸 커뮤니케이션 재료 거리가 바로 애니메이션, 만화였다.
옷 뭐 입고 어디 가서 데이트하고 여자 꼬셔서 호텔로 가지 못하는 나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을 논할 수 있고 심도 있는 대화도 가능해. 게다가 그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이 안에서만큼은 나도 인정받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거야.
이런 심리였다. 학자 중에는 교회 커뮤니케이션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도 이런 부분은 있다고 지적한다. 세속에서 통용되는 부의 서열이나 혈연에 의한 계급 관계가 교회의 신앙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영향을 많이 미치지 못하고, 신앙을 어느 정도 깊이 가졌는가를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제시하는가… 이게 동기가 되어준다는 것.
나는 없는 사람이지만, 교회의 활동만큼은 열심히 하고 다들 나를 칭송해.
미야자키 쓰토무

오타쿠라는 용어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문제인데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미야자키 쓰토무라는 젊은이가 1988년 일으킨 사건으로 내용이 지극히 끔찍했다. 그는 이때 어린 4살 여아 등을 납치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뒤에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 내용이 극히 잔인하고 엽기적이라 여기서 자세히는 쓰지 않는다.


그는 만화나 애니 등에 큰 흥미를 지닌 ‘오타쿠’였다. 집을 수색하자 비디오테이프가 5,000개 넘게 나온다. 여기서 로리콘 물 등, 소위 오타쿠 물이 많이 나오고 이로 인해, 일본 내부에서 오타쿠=범죄 예비군의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만들어진다.


이 사건 이후로, 이전에는 한정된 커뮤니티 안에서 통용되던 오타쿠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 전국에 정착되어가고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이 확산되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집에서 숱한 비디오테이프, 만화를 쌓아두고 그걸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범죄예비군. 변태.


이에 대한 각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당장 가이낙스를 만든 사람 중 1명이자 오타킹으로 유명한 오카다 도시오가 그 유명한 도쿄대 오타쿠학 강의를 하고(오타쿠학 강의는 오타쿠학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오는데, 일본 문화의 중요한 계승자라고 오타쿠를 옹호하는 장면이 백미다), 많은 사회학자가 사회의 시선에 공격당하는 오타쿠 들에 대해서 방어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여하간 일본 내부에서 오타쿠를 바라보는 시선은 부정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아직 일본의 정보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에 일본에서는 만화나 애니에 관한 여러 디테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일본 주류 문화 안에서 오타쿠 문화는 분명히 마이너 문화였다.

1990년대 후반이 되고 일본 전체가 저성장의 늪에 헤매기 시작하고 일본을 지탱하던 고도성장의 신화와 종신고용이 완전히 파괴되자, 일본 경제관료들이나 엘리트들이 차기 성장동력을 찾기 시작한다. 이때 찾아낸 것이 일반인들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소비재들을 반드시, 게다가 적지도 않게 일정 금액 소비하는 어떤 사람들, 즉 오타쿠였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오타쿠 세계 진입장벽도 대폭 낮아졌다. 오카다 도시오의 책만 읽어도 알 수 있지만, 오타쿠 취미를 유지하려면 애니메이션 방송분을 뚫어지게 보고 공책에 내용을 전부 적거나, 스텝들의 이름을 보고 비교 조사하려고 해도 뒤에 나오는 자막을 보고 그걸 전부 메모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이것들을 회지라는 것을 만들어 정리하고 찍어내서 공유하는 수고를 또 해야 했다.


이것은 돈이 보통 드는 취미가 아니었다. 당시 비디오 데크의 가격도 높았고 비디오테이프는 1개당 정가 1만 엔에 육박하는 가격대였다. 반면 인터넷의 광범위한 보급은 이런 정보 접근을 한없이 쉽게 만들었고 진입과 퇴출이 무척 용이한 취미 세계가 되어 버린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대히트 배경에는 인터넷 보급이 크고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지난 10년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이러한 오타쿠 산업에 대한 너무 큰 기대치였다고도 본다. 오타쿠는 고도의 미디어 훈련으로, 소위 말하는 안목이 탁월하게 개발된 사람들이다. 이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이 제시하는 기준치에서 제작되는 작품은 그 수준이 높을지언정, 그것은 그 커뮤니티 안에서 통용되고 소비되는 경향이 당연히 강해진다.


이것은 압도적으로 안목과 소비 의역에서 차이가 나는 일반 라이트 유저와의 현격한 격차와 유리를 만들어내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압도적인 숫자의 일반인 유저 시장을 창출해내는 데는 당연히 실패하고,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기획자 성격상 점점 기존의 공식에 기대는 작품을 만드는 성향이 강해진다.

이 기준을 어떻게 맞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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