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채용공고 80% 수도권 집중, 지방대 부족한 취업 기회
“지방엔 일자리 자체가 없어요”
제주에서 주변 대학생 중 남학생은 대부분 경찰직 공무원, 여학생은 일반직 공무원을 준비합니다. 이곳에서 딱히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거든요.
원예환경학 전공으로 제주도의 한 대학을 졸업한 부지은(28·여) 씨는 4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제주에서 농업 전문기업 일자리를 찾았지만 드물었고, 공고가 나는 곳도 주 6일 근무에 잦은 야근, 남자만 뽑는 경우 등 조건이 안 맞아 지원하지 못했다. 전공 살리기를 포기하고 서울로 가 대형마트 판매직 일을 하며 3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이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지난 3월 다시 제주로 돌아온 그는 “취업을 앞두고 준비가 부족했던 점도 있지만 제주에서 관광업 말고 다른 분야 일자리를 찾기가 너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임금도 전국 최저 수준이고 구시대적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가 많아도 지금은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부 씨는 이번 여름에 농업 관련 자격증을 하나 더 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창원‧마산 지역엔 제조업 생산직 채용이 대부분이라 마케팅이나 인사, 총무 업무를 하고 싶어도 기회를 얻을 수 없어요. 요즘 서울 명문대 출신도 경쟁이 치열해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저 같은 지방대 출신은 주변에 일자리가 없어 경쟁에 참여조차 못 하는 게 현실입니다.
제주·강원·전남에 취업 기회 특히 부족
한국 사회에서 지방대가 소외당하고 교육 불평등이 심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일자리 문제다. 지방에 고용 기회가 양적으로 부족하고, 질 좋은 일자리 찾기는 더더욱 어려워 지방대가 더욱 외면 받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국내 최대 규모 취업포털 중 하나인 잡코리아에 5월 28일 기준 올라온 지역별 채용공고를 살펴보면 신입 또는 경력 3년 이하 직원을 뽑는 6만여 개 일자리 중 소재지가 서울인 곳이 2만 7,164개로 45.4%를 차지했다. 이어 경기 1만 6,372개(27.4%), 인천 3,635개(6.1%)로 수도권이 전체의 78.9%였다.
반면 부산, 충남, 대전, 경남, 대구, 충북 등은 1,000–2,000개(1.7%–3.2%) 사이였고 광주, 경북, 전북, 제주, 강원, 전남, 울산, 세종은 수백 개 수준(0.5–1.4%)에 그쳤다. 채용공고가 난 청년 일자리 10개 중 8개를 서울 등 수도권이 차지하고 2개를 나머지 시도가 나눠 가진 셈이다.
수도권 일자리 쏠림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잡코리아가 지난 2015년 연간 신규 채용공고 650만 9,703건을 분석한 결과 서울이 전체 채용공고의 40.9%를 차지했고 경기 24.7%, 인천 7.7%로 전체의 73.3%가 수도권에 몰려 있었다. 일자리가 가장 적은 곳은 제주(0.4%), 강원(0.5%), 전남(0.8%), 경북(1.2%) 등이었다.
지역인재 의무채용 성과 있지만 ‘목마름’ 여전
노무현 정부 이후 전국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정책이 10개 도시 150여 개 기관 이전 완료 등으로 성과를 내지만, 지방 청년들의 일자리 목마름을 해소하기에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방 이전 공공기관 중 정부 부처 소속기관을 제외한 109곳에서 2018년 신규 채용한 인원 1만 4,338명 중 지역 출신은 2,011명(14%)이다.
2012년의 2.8%보다 늘어났지만 아직은 지방 청년 채용에 숨통을 텄다고 보기 어렵다. 또 부산, 대구, 경북 등은 20% 넘게 지역인재를 채용하지만 세종, 울산, 강원 등은 3–10% 수준으로 지역별 편차도 크다. 국토교통부는 혁신도시법에 따라 오는 2022년까지 지역인재 채용률을 30%까지 올리는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연구‧경력직, 지역본부 별도채용 등 의무고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인원이 절반에 달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남대 졸업반 김형규(28‧가명·신문방송학) 씨는 “나주 혁신도시에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 이전하면서 전기공학과 출신은 취업에 숨통이 트였지만, 신방과를 비롯해 인문사회계열 친구들은 여전히 취업이 어려워 공대생을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전남지역은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 자체가 부족해 자기 관심 분야에 따라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없다”며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이직할 수도 없을 것 같아 나도 수도권에서 취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임금·노동환경도 서울과 큰 격차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비해 지역의 일자리는 질적 측면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5년 자료를 토대로 지난 3월 발간한 ‘지역의 일자리 질과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전국 252개 시군구 중 ‘일자리 질 지수’가 상위권으로 분류된 39개 지역 가운데 32곳(82%)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이었다.
일자리 질 지수는 고소득(월 소득 320만 원 이상)·고학력(전문대졸 이상)·고숙련(전문가‧관리자)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를 기준으로 했는데 전남북과 경북, 강원도 지역은 대부분 하위권에 머물렀다.
일자리 부족과 지방대 저평가 악순환
최근 일자리 경쟁이 심해지고 교육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하면서, 학생들이 취업 기회가 많은 ‘인서울’ 대학에 몰리고 지방대를 꺼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마 교수는 이어 “수도권에 모든 인구와 자원이 쏠리는 불균형이 심해짐에 따라 지방의 대학들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각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강한 일자리 정책을 펴서 주변 지역과 연계시키고, 과도기적으로 지방 공공기관에서 지역 출신 인재에게 기회를 할당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분석팀장은 지난 4월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 청년 인구가 빠져나가고 활력을 잃게 되면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는 지방대 역시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인구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타지역으로부터 제조업 기업을 유치하는 제로섬 게임 방식이 아니라 청년들의 취업 선호도가 높은 교육‧보건‧사회복지‧공공행정 등 사회서비스업이나 출판‧영상 등 정보서비스, 예술‧스포츠 등 여가서비스업 같은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경상북도는 지난해 하반기 ‘경북형 사회적경제 청년 일자리 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행정안전부의 지원을 받아 청년 200명이 지역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107곳에 취업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 자원‧문화를 활용해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청년들은 만족도 조사에서 ‘경제적 생활 안정(77.2점)’, ‘적당한 근무시간(80.9점)’, ‘지역발전에 기여(74.3점)’ 등의 이유로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77.1점)를 보였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협업으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청년 일자리를 만든 사례인 셈이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장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