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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프리랜서] ④ “프리랜서입니다.”

그리고 3년 전에는 백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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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쯤 휴대폰 알람에 맞춰 눈을 뜬다. 업무시간에 제약이 없는 프리랜서는 마냥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적어도 고객들 대부분이 업무를 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제정신을 차린 편이 좋다는 게 업계 선배들의 조언과 지난 3년간의 경험으로 배운 원칙이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트레칭. 아, 아니다. 가장 먼저 화장실에 갔다가 그다음으로 10분쯤을 꼬박 들여 전신 스트레칭을 한다.


밤사이 굳어진 근육을 풀고 정신을 좀 차린 후에는 비타민과 함께 물을 한 컵 마시고 커피를 내린다. 줄곧 스틱 커피나 일회용 드립백을 이용해왔는데, 얼마 전 큰맘 먹고 캡슐형 에스프레소머신을 구입한 뒤로는 더 제대로 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커피는 좋아하지만 카페인에 약한 체질이라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을 잘 수 없기 때문에 큰 머그잔에 에스프레소를 한 샷만 넣고 물을 가득 부어 연하게 마시는 편이다.


아침 식사로는 빵을 애용한다. 가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에 모닝 세트를 먹으러 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에서 커피와 빵을 먹는다. 프라이팬에 식빵을 구워 잼을 발라 먹을 때도 있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베이글을 해동해 크림치즈를 발라 먹을 때도 있다(아침 식사가 대개 이런 식이다 보니 최근에는 토스터에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에스프레소 머신을 산 지 얼마 안 됐으니 당분간은 참아보려고 한다).


식사를 마치면 간단히 세수와 양치를 한 뒤 달력에 적어둔 오늘의 일정을 다시 한번 체크한다. 오늘은 요즘 한창 작업 중인 단행본과 잡지 번역을 할 예정이다. 단행본은 지구력을 다루는 교양 과학 서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번역을 맡은 작품이고, 잡지는 3개월에 한 번씩 발간되는 철학/인문 계간지로 현재 번역가 5명이 투입되어 공역을 한다.


할 일을 확인한 후에는 필요한 자료와 노트북, 마시다 남은 커피를 챙겨 들고 책상으로 가서 오전 내내 (종종 일어나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까먹기도 하면서) 작업을 한다. 지금은 번역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일러스트 작업을 할 때는 하루에 몇 시간씩 스케치하거나 포토샵으로 채색한다. 번역할 때는 텍스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요한 환경에서 일하는 편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틀어놓기도 한다.

배꼽시계가 정확한 편이라 12시에서 1시 사이가 되면 자연히 집중력이 떨어진다. 점심식사로는 주로 밥을 먹는다.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서 한 끼 분량씩 소분해 얼려 놓은 밥을 해동하고, 냄비에 들어 있는 국을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낸다. 국이나 찌개는 대개 내가 직접 끓이지만, 밑반찬은 고향에 계신 엄마가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냉장고에 들어있는 재료를 봐 가며 계란말이나 제육볶음처럼 든든한 단백질 반찬을 하나 만들어 밥과 함께 먹는다.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프리랜서에게도 점심은 일과 시간의 큰 낙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급할 때가 아니면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차리고 천천히 먹으려고 노력한다.


식사하고 설거지를 마치면 오후 작업 시간이 찾아온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프리랜서 생활 초기에는 집에서도 종일 집중이 잘 되었는데, 최근에는 (특히 배가 부른 오후에) 나른하고 집중하기 힘든 날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분위기도 환기하고 사람 구경도 할 겸 노트북을 들고 집 앞 카페로 나간다. 오후 1시경에는 어느 카페를 가도 주변 회사의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지만, 딱 30분만 지나면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거짓말 같이 한산해진다.


내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 타이밍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와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도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편다. 집에서는 음악 소리나 TV 소리가 글을 읽고 쓰는데 데 방해가 된다고 느끼는데, 이상하게도 카페에서 틀어주는 배경음악은 집중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마도 음악과 풍경, 주변 사람들의 잔잔한 대화가 뒤섞여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매일매일 비슷한 평일 낮의 일상이다. 가끔씩 친구가 다니는 회사 앞에서 점심 약속을 잡거나 문득 예정에 없던 조조 영화를 보러 가는 등 소소한 일탈을 누릴 때도 있지만, 보통은 이런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저녁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이보다 조금 더 다양하다. 지인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이때 줄 서는 역할은 대개 내 몫이다) 날씨가 좋을 때면 치킨과 캔맥주, 돗자리를 싸 들고 한강 둔치에 마실을 나가기도 한다(이때 자리 잡는 역할은 대개 내 몫이다). 물론 일이 많은 날에는 직장인이 야근하듯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남은 작업을 마무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보낼 때도 있다.


요리나 손바느질처럼 혼자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약속이 없어도 특별히 외롭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지만, 문득 사람이 그리워질 때면 맥주 한 잔 살 테니 나오라고 동네 친구들을 꼬드기기도 한다. 스무 살 때 상경한 이후로 쭉 학교 근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행히 아직은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몇 명쯤 남아있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한 후에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워 오늘 한 일과 내일 할 일을 하나씩 짚어보다가 잠이 든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또다시 오늘처럼 소소한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직업을 물으면 나는 “프리랜서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번역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립니다.”라고 답한다. 실제로 이것들은 모두 내 일이자 직업이다. 하지만 4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번역과도 글과도 그림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었다. 그리고 3년 전에는 오로지 회사가 싫다는 마음 하나로 기술 하나 없이 퇴사를 선택한 백수였다.


원문: 서메리의 브런치


서메리,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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