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열린 비공식 비정상회담: 동거에 관하여

조회수 2019. 4. 16.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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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동거', 어떻게 생각할까?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각국 정상들이 모이는 세계 정상 회담이 있다면, 한국에는 국제 청년들의 평화와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각국 세계 청년들이 뭉친 비정상회담이 있다.

한국에서 비정상들이 국제 청년들의 행복을 논하는 동안, ‘스웨덴 비공식 비정상회담 지부’에서는 국제 청년들의 행복을 논하기 위해 대한민국, 스웨덴, 독일, 우크라이나 대표들이 모여 4자 회담을 진행했다.

출처: JTBC
(이만큼은 아니고 쫌 소박하게 모여봤다)

제1차 4자 회담 주제는 ‘동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직까지 우리에게 껄끄러운, 하지만 결코 껄끄러워해서는 안 될 주제이자 여전히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주제, 동거에 관해 각국의 입장을 들어보았다.



프롤로그: 비정상 소개(가나다 순)


1. 대한민국 대표 도희: 스웨덴 유학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스웨덴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들에 대해 탐구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브라질 출신의 남자 친구가 있으며, 장거리 연애 1.5년 차이다. 동거든 결혼이든 소중한 자신의 파트너를 만나 함께 삶을 꾸리고 서로 이해해나가는 일은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 독일 대표 아네트, 도미닉: 독일 뮌헨 근교 출신의 아네트와 도미닉은 7년 차 장수 커플이다. 16살에 만나 고등학교, 대학시절을 함께 보냈으며 스웨덴 우메오에서 함께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아네트는 베트남, 에콰도르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고, 도미닉은 볼리비아에서 태어나 독일로 다시 이주했다. 현재 우메오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함께 동거 중이며, 독일에서도 함께 산 경험이 있다.


3. 스웨덴 대표 이다, 미카: 스웨덴 외스트렌순드 출신의 이다와 미카는 6년 차 장수 커플이다. 약 2년 전 약혼을 했고, 현재 3개월 차의 사랑스러운 딸 마이깐과 함께 우메오에 살고 있다. 중학교 친구였던 둘은 고등학생이 될 무렵 사귀기 시작했는데, 이다가 이사를 가게 되자 미카가 가족을 떠나 이다가 있는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다의 부모님 댁의 지하 1층에서 함께 고등학교 때부터 동거를 시작했으며,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대학 시절 내내 함께 살았다.이다는 타이완, 미카는 한국에서 교환 학생을 지낸 적이 있다.


4. 우크라이나 대표 타니아: 우크라이나 출신의 타니아는 스웨덴 남자 친구를 둔 ‘삼보(Sambo- 스웨덴어로 동거인)’이다. 약 3.5년 전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왔을 때 스웨덴 남자 친구를 만났으며, 2년 여의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스웨덴에 삼보 비자를 받고 정착했다. 스웨덴 우메오에서 남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으며 우메오 대학에서 석사를 진행 중이다.

무사히 1년이 끝났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집에서 파티하지 않을래? 학기 중에 다들 바빠서 우리 집에도 못 와 봤잖아. 작지만 되게 예쁜 마을이야. 너네를 초대하고 싶어!

학기가 끝날 무렵 아네트가 함께 수업을 듣는 우리들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 도미닉이 함께 사는 집으로 초대했다. 5월 31일 학기말 과제로 제출하는 리포트 및 세미나를 마지막으로 나의 석사 1년 과정이 끝났다. 앞으로 3개월의 여름방학 동안 맞이할 짧은 작별을 위해 아네트와 도미닉의 집에서 저녁을 함께하기로 했다.


우메오에서 3~40분 떨어진 그들의 집은 굉장히 아늑하고 아기자기했다. 노란색의 2층 집 앞에는 푸른 우메오 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고, 마당에는 아기자기한 텃밭과 푸른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이 내려다보는 통유리 앞에 파스타 샐러드, 마늘빵, 오븐에 구운 소시지, 구운 야채, 감자 샐러드, 그리고 와인이 놓인 테이블이 위치해 있었다.


그날의 식사에서 단연 화제가 된 주제는 ‘동거’였다. 나를 제외하고 친구들 모두가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혼전동거는 금기시된 보수적인 사회에서 자라온 나에게는, 혼전동거에 대한 친구들의 의견이 너무나 궁금했다.

나의 반 친구들, 그리고 미카(남자)



동거,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도희: 나 빼고 다들 남자친구와 사는구나. 우리나라에서 혼전 동거는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어. 대학가에 가면 간혹 남자/여자친구와 함께 부모님 몰래 같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대놓고 ‘동거’한다고는 말 못 하지. 사실 나는 내년에 졸업하고 나면 남자친구와 같이 살 계획도 하고 있지만, 우리 어머니는 화도 내고 걱정도 하시더라고. 너희의 경우는 어때?


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동거를 시작했어. 미카가 고등학교에 함께 진학하려고 이사를 오게 되면서부터야. 부모님 댁 지하에 방 하나를 얻어서 우리 공간을 꾸렸지. 출입문이 따로 나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사생활도 존중받으면서 부모님의 보호 아래에서 살 수 있었어.


같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같이 살았어. 스웨덴에서는 18세(우리나라의 19~20세)가 되면 자연스레 대부분의 학생들이 독립을 시작하는데, 나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파트너가 있을 경우 함께 살아.


월세를 나눠 낼 수 있어 경제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도 함께 살면서 서로를 더 이해해나가는 형태로 동거를 생각하지. 단순히 데이트하면서 겪는 문제와 함께 살면서 겪는 문제는 다르잖아. 우리 부모님도 결혼은 안 했지만, 여전히 함께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지.

결혼하지 않은 채 평생 함께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카: 맞아. 그리고 우리는 2년 전 약혼을 했어. 우리 집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라 부모님은 결혼은 아니더라도 ‘약혼’을 하시길 원했어. 그래서 나와 이다는 약혼을 했고, 내가 눈문을 쓰기 위해 우메오로 오면서 삶의 터전도 함께 옮겼지. 그리고 마이깐이 생겼어.


우리에겐 아이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어. 스웨덴에서는 ‘동거’ 문화가 잘 자리 잡혀 있기도 하고, 동거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도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와 똑같은 정부의 혜택을 받아. 결혼의 장점은 부부가 세제 혜택을 좀 더 본다는 것 말고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도희: 그렇구나. 아직은 동거나 비혼이 한국에서는 굉장히 급진적인 생각이야. 이에 대해 부모님과 논의도 하지 못하고, 설령 하더라도 큰 갈등이 발생하지.


예를 들어 한국의 결혼 절차에는 ‘상견례’라는 자리가 있어. 서로의 가족이 만나 식사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결혼을 진행하지. 파트너를 부모님께 몇 번 소개하기도 하지만, 많은 커플들이 이를 부담스러워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좀… 중간에 헤어지면 어떡해.

근데 이야기를 듣던 내 스웨덴 친구가 그러더라.

파트너를 부모님께 소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그러면 프러포즈받고 상견례하고 바로 결혼하는 거야? 그러면 니 가족은 파트너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시간이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결혼을 허락하는 거야? 스웨덴에서는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파트너와 나의 가족이 만드는 경우가 흔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거지.

아네트: 맞아. 독일에서도 동거하는 경우는 많아. 나랑 도미닉은 독일에서도 같이 살았어.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도미닉네서 한 동안 같이 지낸 적도 있고. 독일도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경우도 많아. 동거 커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은 크지 않아. 개인적으로 나는 도미닉과 사귄 지 7년이나 되었지만 ‘이제 곧 졸업하니 결혼을 해야 하나?’라는 부담감은 든 적이 없어. 아직 사실 결혼에 대한 확신도 들지는 않지만 좋으니까 함께 사는 거지.


도희: 부모님 댁에서도 남자 친구 방에서 한 동안 지내기도 했다구? 부모님 신경은 안 쓰여? 그분들도 뭐라 안 하시고? 나는 남자 친구랑 첫 해외여행을 간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방은 어떻게 쓸 건지 물으시더라구. 당연히 같이 지낸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는데, 많이 놀라신 눈치였어. 엄마의 바람과 다른 답변이었던 거지. 한국에서는 사실 결혼 전에 딸이 남자 친구와 ‘한 방’을 쓰는 것이 여전히 불편한 문제거든.


아네트: 그렇구나. 나와 도미닉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 만나서 쭉 함께 했기 때문에 도미닉 부모님도 나를 잘 아시기도 하고, 가족들끼리도 서로 잘 알아. 하지만 함께 볼리비아에 가서 도미닉 삼촌 댁에 머무를 때는 함께 못 지낼 뻔했지. 볼리비아에서는 동거가 흔치 않기도 하고, 삼촌이 꽤나 보수적인 분이셨거든. 결국 우리가 함께 산 걸 아시고 허락하셨지만.

도희: 스웨덴이나 독일이나 동거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용적인 것 같아. 특히 스웨덴은 성인이 되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 사는 것이 흔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의 삶의 결정에 대해 간섭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


우리나라는 성인이 돼도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는 이상 부모와 떨어져 사는 경우가 없어. 오히려 대학을 가게 되면 경제적으로 등록금, 생활비, 용돈까지 더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구조인 것 같아.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못 벗어나니 내 의견만 내세우기도 그렇고, ‘성’에 대해서도 부모님과는 거의 얘기를 나누지 않지. 정말 껄끄러운 주제야. 우크라이나는 어때, 타니아? 부모님이 어린 나이에 남자 친구랑 동거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셨어?


타니아: 우리 부모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스웨덴에서 남자 친구와 함께 동거하는 것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어. 부모님 세대나 우리 세대나 동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부정적이지는 않아. 다만 우리 할머니께서는 나와 남자 친구가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 함께 사는 것의 의미 자체가 할머니 세대에서는 결혼을 전제로 한다는 거니까.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낯선 이 곳에 적응하는 데 남자친구와의 동거가 큰 도움이 됐어.


도희: 각 나라에서 동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진 않구나. 각 나라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님이 성인으로서 자녀를 인정해준다는 게 같은 것 같아.


이다: 특히 스웨덴은 18세가 되면 대학 학비도 무료고, 국가로부터 장기 대출을 받아 생활비와 렌트비도 해결해. 이 돈은 취업 후 조금씩 갚아나가면 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하는 게 가능해. 나 같은 경우 대학교육을 끝내기 전에 아이가 생겼지만, 어린 나이에 아이가 생긴다 하더라도 국가 지원 의료 서비스나 양육 시스템 때문에 거의 돈이 들지 않아.


임신 중 받는 기본적인 초음파 검사, 육아 교육은 국가에서 다 지원해주거든. 출산하고 나서도 아기의 건강검진이나 예방 접종도 지원이 돼.


그래서 나는 마이깐을 낳는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어. 결혼은 안 했지만 가족이 생긴 것에 너무 감사하고, 매일매일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는 일이 행복해. 학교 다닐 때에는 빨리 금요일이 왔으면 하고 바랐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 매일매일이 특별하니까.

다양한 사회지원 제도가 출산하는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에필로그


한참 동안 동거와 삶,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통적인 결혼제도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 친구들의 삶이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또한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그들은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사생활을 감추지 않는다. 이런 적극적인 소통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개인주의라는 서구사회보다 (가족)공동체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가족 간의 불통이 심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세대 간의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인으로서 각자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존중받고 책임질 의무도 있다. 동거도 삶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부모는 자녀를 품 안에 영원히 안고 있어야 할 존재로 생각하기보다는, 각자의 길을 가며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는 게 더 서로에게 행복한 길이 아닐까.


원문: 김도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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