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 vs. 힘든 일

조회수 2019. 4. 10. 12: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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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과 힘든 일 사이의 명확한 차이

벤처캐피털(이하 VC)에서 6년간 투자업무를 하다가 친구와 창업을 하고 운영 업무를 한 지 1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되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라는 고민을 한번 진지하게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제가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의 일을 하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VC업무는 어렵지만 힘들지는 않은 일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운영 업무는 어렵지는 않지만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렵지만 힘들지는 않은 일


친구와 창업을 하기 이전에 VC에서 펀드를 운용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일의 목표는 매우 단순하였습니다. 좋은 벤처기업을 찾아서 투자를 하고 벤처기업이 성장하여 코스닥에 상장을 하거나 큰 기업에 M&A를 하게 되면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일이었습니다.


회사와 투자계약을 하여 주식을 받고, 향후에 회사가 상장을 하면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팔면 되는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투자한 회사를 사후 관리하고 펀드를 만드는 과정이 있기는 하였지만 일의 본질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의 본질은 투자와 회수였습니다.


실제로 하루 일과도 일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많았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경제신문과 IT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유망해 보이는 회사나 업종이 나오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회사 정보를 얻고, 만나고 싶다면 전화를 해서 미팅을 잡았습니다. 오전에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대부분 외부 사람들과 밥을 먹게 됩니다. 회사에서도 나가서 밥을 먹으라고 법인카드를 주었고 한도는 없었습니다. VC 업계 선후배들, 투자 한 회사 대표님, 펀드 출자자, 기자, 산업계에 있는 지인들과 점심 약속을 잡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목적성이 있어서 만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속된 말로 노가리를 깠습니다.


일반적인 회사의 경우 점심시간은 1시간이지만 VC의 경우 회사에 특별한 일이 없을 경우 무제한이었습니다. 점심 낮술이 자정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의 일정이 재미있어 보이면 따라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녁에는 VC 동문 모임, 나이 모임, 초기 투자모임 등등 수많은 모임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강제성은 없기 때문에 술이 먹고 싶으면 모임에 참여를 하면 되었습니다. 이 또한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금전적으로는 부담이 없었습니다.


투자한 회사 대표님이 고민거리가 있으면 저녁에 술잔을 기울이면서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내가 알고 있는 해법이 있으면 같이 논의하면 되었습니다.


이러한 술자리의 대부분은 갑의 위치나 평등한 위치였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자리였습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꽤 많은 VC들이 자율 출퇴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율 출퇴근이 아니더라도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 일을 열심히 했다고 인정을 받아 출근 후 바로 근처 사우나로 가서 숙취를 풀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상이 대부분이었으며, 펀드 결성을 위한 제안서 작성이나 투자할 회사의 투자심의보고서를 작성할 때를 제외하고는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문서작업을 하면서 야근을 한적은 전체 출근 일수 중에 5%도 안 되었던 거 같습니다.


VC업무는 힘들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월급을 받아도 되는지 의문이 될 정도의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투자업무라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단순하게 계산하여 벤처기업이 상장할 확률은 0.63%이며 소요기간이 11년이나 걸리는 말도 안 되는 확률이었습니다. 이러한 확률을 이겨내야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일이 투자업이었습니다.


일단 매뉴얼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업계 선배님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우거나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을 해야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 다행히 시장 상황과 운이 맞아떨어져서 어느 정도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VC업무라는 것이 앞서 언급한 하루 일과처럼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정답과 메뉴얼이 없기에 성과를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매일매일 야근하고 수많은 보고서를 읽고 투자를 하였는데, 투자한 회사가 망했다면 일을 잘못하게 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출근도 잘 안 하고 매일 술만 마시고 놀다가 카카오 같은 회사를 우연찮게 찾아서 수백 배의 수익률을 만들어 내면 일을 잘한 게 되게 됩니다.


물론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어려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례라고 봅니다.



힘들지만 어렵지는 않은 일


현재 전 창업한 회사에서 운영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해서 경리, 총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VC에서 했던 투자업무와 완전하게 다른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사실 지금도 적응이 잘 안되고 있기는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제가 기존에 하던 일과 극단적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하루 일과를 보면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을 합니다. 외부 업무는 별로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모니터 앞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아침에 오면 메일부터 확인을 합니다. 각종 세금계산서와 투자자의 요구 자료 그리고 정부 과제와 관련된 메일들이 항상 도착해 있습니다. 메일에 대응을 하다 보면 오전이 지나가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일과를 시작 합니다. 직원들이 필요한 물건이나 부족한 비품을 구매해 달라는 메시지가 슬랙으로 옵니다.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검색하여 구매하고 회원가입이 안 되어 있는 사이트의 경우 법인사업자로 아이디를 만들어 가입합니다. 사용한 비용은 정부 과제 매뉴얼을 보고 해당되는 항목이 있으면 양식에 맞추어 비용 청구를 하게 됩니다.


정부 과제가 늘어나고 회사의 외형이 커질수록 통장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1개로 시작했던 통장은 적금통장, 연구비 통장, 상금 통장 등 8개가 넘게 되었습니다. 이 통장에 연결된 카드들은 10개가 넘어갔습니다.


회계정리는 계약한 세무사가 많은 부분을 해 주지만 기초자료는 제가 넘겨줘야 하기 때문에 자료들을 정리를 하다 보면 야근하는 것이 일상사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현재 직원 숫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1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직원을 채용하게 되면 관련 서류들을 받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근로계약서에 들어가는 숫자에 대한 것은 대표이사가 결정을 하지만, 나머지 업무는 모두 제가 해야 됩니다. 직원의 업무에 맞는 장비를 구매하는 일도 제 업무입니다. 직원이 새로 채용이 되면 다른 업무를 할 시간이 없어 또 야근이 시작됩니다.


매일 해야 되는 일 외에도 월급날, 매월 말 결산일, 세금납부 등 바쁜 날들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VC에서 일과 비교하면 매우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운영업무를 하는 책임자의 책상상태

책상이 항상 이런 상태로 복잡해 보이기는 하나 어려운 일은 없었으며 정답이 정해져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투자받는 일, 정부과제에 선정되는 일과 같이 어려운 일도 있기는 하였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으며 일회성 업무로 현재 제 주 업무 성격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막히면 인터넷 검색이나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처음 한 번이 힘들지 계속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일에 속도가 붙고 어렵지 않았습니다.


절대적인 양이 많은 것이지 정답이 정해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업무를 잘한다고 해서 회사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 못할 경우 회사에 큰 피해가 올 수도 있는 일인 것은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XXX"이라는 말은 이 업무를 극단적 잘 표현해 주는 말인 거 같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은 어려운 일과 힘든 일이 혼재되어 있으며, 한 가지 성격만 가진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일의 본질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파악을 하고 업무를 시작하면 일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의 경우 극단적으로 다른 일을 경험을 하면서 이 차이를 명확하게 느끼게 되어 이러한 글을 써 보게 되었습니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사업가의 경우 인사를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며,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기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데 방향성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원문: 김현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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