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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쩌다 마트를 하게 됐어요?

조회수 2019. 4. 9. 11: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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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돈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저는 소상공인입니다

네? 뭐라고요?

나는 자기소개를 할 때 스스로를 ‘소상공인’이라고 말한다. 소상공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의외라는 눈치다. “그러면 정확히는 어떤 사업을 하시는 거예요?” 대사가 정해진 극본처럼 익숙한 질문이 날아온다. 나는 역시나 익숙하게 대답한다.

아, 거창한 사업은 아니고요. 마트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퇴사 후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로켓에 올라타 넥스트 유니콘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렇지 않다면 전 세계를 누비는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기를 꿈꾼다. 아무래도 나처럼 마트를 하는 사람은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퇴사 후 마트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은 관심을 가졌다. 마트를 하는 걸 알게 되면 그다음에도 마치 대사가 정해진 극본처럼 질문을 이어간다.

어쩌다 마트를 하게 됐어요?

이쯤 되면 비슷한 대화의 반복이라 웃으며 대답한다. ‘돈 벌고 싶어서요’. 수익성은 내가 마트를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였으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반쪽짜리 대답이다. 내게는 돈이라는 표면적인 이유 뒤에도 나름대로 마트를 하게 된 이유가 또 있다.

왜 내가 마트를 시작하게 됐는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손에 잡히는 일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프로페셔널로 성장할 수 있고, 확실히 돈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손에 잡히는 일


정유사에 근무할 때 나의 업무는 사업기획이었다. 내가 했던 기획업무는 IT업계의 기획업무같이 재미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통통 발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만지는 일’이었다. 정해진 유가와 환율 가정에 따라 지금 추세로 판매가 지속되었을 때, 원가의 추이를 감안하면 우리 사업부의 손익은 어떻게 되는지를 추정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또 본부장님께서 혹은 각 팀의 팀장님들께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실 수 있도록 현재 우리 사업부의 경영 현황은 어떤지, 또 개별 의사결정에 따른 기대효과는 어떻게 될지 손익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꽤나 고급스럽고 중요한 업무를 한 것 같아 보일지 모르겠으나, 실제 그 업무를 수행하며 내가 느꼈던 것은 아무래도 ‘손에 잡히는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한 사업부의 전체적인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BaU(Business as Usual) 상황,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하던 대로 특별한 의사결정 없이 이 사업이 흘러가면 어떤 결과를 낼 것인지에 대해 추정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업무를 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엔 너무 뻔한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목표 대비해서 실적은 보통 부족하기 마련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해결책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판매량을 늘릴 것인가’이지 ‘판매량이 늘어나지 않았을 때 목표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가 아니었다.

다양한 변수의 조합으로 엑셀 상에서는 수백억, 수천억의 돈이 움직였지만 과연 이 숫자들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숫자들인지 아니면 그저 보고서를 더 이쁘게 만들어줄 만들어진 숫자인지에 대해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업무를 하면 할수록 손에 잡히는 일을 한다기보다 서류상에 숫자만 날아다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땅에서 발이 떨어진 채로 열심히 허공에 발을 구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동기 중에 나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일’로 함께 방황하던 동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면세점 쪽에서 업무 경험이 있는 중고 신입이었다. 그 친구와 함께 고민을 나눌 때면, 그 친구는 면세점에서는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좋았는데 지금 하는 업무는 명확히 그런 결과물이 보이지 않아 ‘손에 잡히는 일’ 같은 느낌이 덜 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의 말대로 유통업은 정유업에 비교하면 상당히 ‘손에 잡히는 일’이었다. POP, 제품의 진열 방법, 프로모션, 이벤트 등에 따라 매출이 확연히 변화되는 것이 눈으로 보이는 산업이었다. 유통업 중에서도 특히 마트 같은 경우에는 기저귀와 맥주의 연관 진열 사례같이 디테일에서 찾아낸 작은 변화로도 소비자의 큰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비즈니스 꼬꼬마로서 산업을 보는 시야가 충분히 넓지 않아 내가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조차 내 깜냥인 것을. 보고서 위를 날아다니기만 하는 무의미한 수백억의 숫자를 다루는 것보다. 당장 내 눈앞에 만져지고 내가 손을 대서 기획하면 매출을 바로 증대시킬 수 있는 ‘손에 잡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마트가 내게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프로페셔널로 성장할 수 있는 일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 중 가장 머리 아팠던 질문은 ‘내가 언젠가 이 회사를 벗어났을 때, 내 손으로 붕어빵이든 치킨이든 제대로 팔아서 먹고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분명 20년 뒤의 나는 엑셀과 PPT를 이용해 보고자료를 만들어 내는 일은 누구보다 잘 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역량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요구되는 역량은 주변의 도움 없이도 내 손으로 무언가를 팔아 낼 수 있는 세일즈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프로페셔널 비즈니스맨은 붕어빵이 됐든, 스마트폰이 됐든, 원유 1배럴이 됐든 나만의 방식으로 잘 팔아 낼 수 있는 세일즈 역량을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업기획 일을 계속하면 그런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 업무를 바꿔 우리 회사의 다른 팀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런 역량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회사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고민을 계속해봤지만 글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띵동’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윤문진 대표의 인터뷰를 읽게 됐다. 그는 특이하게도 카바레를 운영한 이력이 있는데 스타트업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바로 그 카바레 경험이 오히려 그의 사업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Q. 배운 게 있다면?

A. 인내심? 다양한 직종들의 사람들을 많이 겪어봤지만, 카바레에는 정말 하루하루 사는 밑바닥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감정이 매우 직선적이고 요구사항이 매우 까다로워서 맞춰주기 힘들죠. 유흥업소에서 수백 명을 상대하며 배운 인내심이 지금 사업에 긍정적으로 많이 작용했어요.

- 「 150억 인수 제안을 거절한 이유: 띵동 윤문진 대표 인터뷰」, ㅍㅍㅅㅅ

비록 마트라는 일이 밖에서 봤을 때는 대기업 명함을 꺼내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부러움을 받는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게 마트는 가장 근본적인 세일즈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곳이었다. 있어 보이게 유가와 환율이나 미국의 이란 경제제재 같은 국제정세를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마주치는 새로운 소비자들을 직접적으로 만나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날마다 새로운 딜을 만들어 내며 직접 매출을 만드는 일이 바로 마트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터뷰를 보다 보니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그 일을 누군가 어떻게 봐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어떤 일을 하든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조금이라도 더 성장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쌓은 역량으로 더 큰 일을 예비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 회사를 20년 다니다가 퇴직하면 붕어빵 하나 제대로 팔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마트를 하다가 망하더라도 그때에는 붕어빵 하나는 제대로 팔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숫자가 날아다니는 엑셀 판에 나의 20년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마트를 시작하는 것이 내 본원적 경쟁력을 높여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자 윤문진 대표에게 카바레가 그랬듯이 내게 마트는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단단한 내공을 쌓아줄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확실히 돈이 되는 일

무엇보다도 확실히 돈이 되는, 수익성이 확보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돈이 다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라는 말도 결국엔 돈을 벌어보고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돈을 벌겠다는 것이 목표라면, 스타트업보다 자영업이 더 빠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테크 기반 스타트업들은 기업가치는 높게 평가받는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그 내부를 보면 오랜 기간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는 시장 선점을 위해 계획된 적자를 감수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한다는 산업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하지만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주식 가치를 위해 끝날지 모르는 적자를 견디는 일보다는, 작더라도 손에 쥐어지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 내게 더 잘 맞는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내가 조언을 얻으러 다닐 때 꽤 높은 벨류에이션을 인정받는 교육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한 누나는 ‘스타트업은 잘 되면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돈 못 벌어. 돈 벌고 싶으면 장사해야지’라고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항상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니콘이 된 기업들만 바라봤을 뿐, 소문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 모를 스타트업들의 사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영업 중에서도 특히 마트는 아주 친숙하고 전통적인 비즈니스기 때문에 확실히 돈이 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 계란 등의 식품 및 생필품을 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경기 영향도 비교적 덜 받고 한 방에 큰돈은 못 벌더라도 꾸준히 돈은 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위해 중소규모 마트들의 감사보고서를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전자공시시스템에는 주요 대기업만 아니라 중소기업들 감사보고서도 공시된다). 


마트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곳들의 매출과 매출원가, 판관비, 영업이익을 엑셀로 모두 정리했다. 아무리 중소규모의 마트더라도 매출이 큰 마트는 구매력이 다르기 때문에 마진율에 왜곡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공개된 기업 중 매출 규모가 작은 순서대로 12개의 샘플을 추출했다. 산술적으로 12개의 샘플의 평균을 도출한 결과 약 20%의 매출 총이익률(마진율)을 유지했을 때, 총 영업이익률은 3%가 얻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발표에 따르면 대형마트(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직매입 거래 마진율은 평균 약 27%이다. 물론 대형마트에 직매입 거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수수료, 임대매장이 존재하므로 직매입 마진율만을 가지고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다. 이마트의 경우 직매입 상품의 비중이 전체 가운데 약 9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수료 매출 규모를 10%, 수수료를 아주 보수적으로 잡아 5%로 잡았을 때, 전체 마진율은 24.8%이었으므로 대형마트의 평균 마진율은 최소 24.8%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구매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샘플 마트들처럼 전체 마진율을 20% 수준으로 설정한다면, 대형마트와도 나름대로 가격경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샘플 기업의 재무정보에 근거해서 추정손익계산서를 작성했고 각 매출 별로 시나리오를 설정해서 나름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지만 분명히 알 수 있겠지만, 시작하기 전 여러 시나리오를 분석해본 결과 수익성이 분명히 보였다.


영업이익률 3%는 분명 테크 기반 스타트업이나 IT기업들이 보여주는 폭발적인 영업이익률에 비교해보면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국의 중소형 규모의 마트들은 분명히 수익을 냈고, 지속 가능하게 꾸준히 운영되었다. 마트를 하면 분명히 돈이 벌린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마트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트를 하고 있습니다

넥스트 유니콘이 되기 위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해 내는 것도,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는 것도 모두 너무나도 멋진 일이다. 하지만 막상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는 일도 안의 민낯을 보면 그리 그럴싸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거창하고 뜬구름 잡는 무언가를 좇기보다 작지만 확실하게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게 프로페셔널 비즈니스맨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분야에서도 온전하게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로켓이 될 준비가 될 테고,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언제든 여유를 내서 자유로운 여행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바닥에서 소상공인으로 시작해서 처음부터 온전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진짜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일을 하면서, 프로페셔널 비즈니스맨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확실히 돈이 벌리는 일을 한다면 착실히 내공이 쌓이고 충분히 나의 알맹이가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마트를 시작하게 됐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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