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이 되고 나서 달라진 것, 4가지

조회수 2019. 4. 1. 14: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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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이 된 이상 경력 자체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가 가장 좋은 포지션을 맡지만, 시작부터 자본가가 아닌 피고용자들도 나름의 좋은 포지션을 향해 달려갑니다. 창업해서 기업 가치를 높인 다음 자본가의 대열에 들어서기도 하고, 자본가가 선호하는 기술이 있는 고급 노동자로 높은 보상을 받기도 합니다. 높은 보수의 노동자가 되어 창업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한 회사에서, 혹은 여러 회사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봅니다.

‘커리어의 목표 혹은 목적은 무엇일까’라고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드리면 더 좋은 포지션을 잡기 위해 실리적인 조언을 하고 비판을 하던 사람도 자신의 답을 내놓지 못하고 침묵에 머무는 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지금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자리,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도 힘든 마당에 그런 명분만 가득해 보이는 질문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 하는 것이죠.


맞습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한때 커리어의 궁극적 목표를 고민하던 사람 중 지금 회사에서 상대적으로 버프를 받지 못하고 보수가 더 적은 회사로 이직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반면 그런 고민 없이 지금 당장 저 윗자리, 그 라인을 보고 가는 사람은 역시 버프를 받아서 상대적으로 좋은 경제 수준이나 회사 내 전망을 갖습니다.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삽니다. 나는 내 커리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이야기 내용은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이런 일들을 하면서 이런 커리어를 쌓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한 회사에서 여러 과제를 해나가면서 회사와 함께 커 왔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마치 ‘어떤 아버지였느냐’ 라는 질문처럼 극단이 아니라면 다른 방식은 있어도 등급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른바 ‘성골’ 혹은 ‘진골’로 불리는 공채가 아니라 경력직이 되고 나면 공채일 때 생각해보지 못한 커리어를 성찰하게 됩니다. 경력직 역시 당장 더 높은 보수와 근속연수를 보고 옮기기도 하지만 일단 경력직이 된 이상 경력 자체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상황이 됩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회사가 내 커리어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것과는 달리, 내가 내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상황이 더 많은 것이죠. 한 회사에서 여러 과제를 수행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비해 이직을 통해 이 회사, 저 회사에서 비슷한 직무를 가지고 여러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더 어려운 이야기가 됩니다.

저도 진골 정도로 회사 생활을 할 때는 경력직 분들이 회사에 대한 불만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지나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경력직이 되고 보니 그런 눈을 가질 만도 합니다. 비판 이후 행동과 태도의 문제를 떠나서 보는 눈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스스로를 위해서요. 제가 경력직이 되고 나서 달라진 몇 가지 소회를 나누려고 합니다. 앞으로 경력직이 될 생각이 있다거나 지금 경력직을 유지해나가는 분이라면 한 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1. 내 이야기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가장 큰 변화입니다. 직무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죠. 단순히 관리직이냐 기술직이냐가 아닌 관리직이어도 어떤 스킬셋을 가지고 어떤 산업군에서 일을 했느냐 하는 데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공채로 살아갈 때는 마치 회사가 그런 이야기를 다 책임져 줄 거라고 생각한 순진한 시간도 있었지만 시장에 나오면 자신에 더 담백해집니다.


또 대안을 찾아 이전의 경력과 미래를 연결하려는 고민을 다각도로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직무 역량의 발전과 타 직무와 융합된 역량이 개발되기도 합니다. 내가 내 직무를 사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을 아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죠.



2. 회사 진단을 더 객관적으로 한다


꼭 경력직이 아니어도 비즈니스를 보는 눈이 있다면 지금 환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회사의 케이스를 보고 회사 정치에 굳이 딸랑거릴 필요가 없다면 시장에서 현재 기업의 포지셔닝과 방향를 더 담백하게 보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이거나 더 비판적이 되는 객관적이지 못한 경향도 증가하지만요.


경력직이 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단순히 공채가 나간 자리를 기능적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 변화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 방향, 전략적 스킬셋을 얻기 위해서는 타 회사의 경력자를 통해 현재 회사에 객관적인 제언과 다른 솔루션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경력직을 많이 채용하면서도 경력직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회사의 경우에는 회사 내에서 회사에 건설적인 비판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은 대주주나 경영자의 몫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하지만 사회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역할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생각은 기업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순혈주의, 짐 콜린스가 주장했던 ‘사교 같은 기업 문화’는 이런 측면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 구성원이 같은 가치관과 철학을 공유하고 나가는 것은 우리 회사에 맹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임하자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대기업이나 스타트업 중에서 이제 어느 규모의 성장을 이룬 기업들은 과거에 머물면서 종교 같은 기업 문화를 유지하려 합니다. 여러 장치를 만들어 내죠. 하지만 한국 기독교가 내부에서 비판적이고 자성 어린 조언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 사교화된 기업 문화는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내부 정화작용을 가로막습니다.



3. 기술 중심의 학습을 시작한다


경력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시 이직한 곳에서 즉시 실무를 할 수 있고 성과를 내야만 합니다. 스포츠도 프랜차이즈 스타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하지만 타 구단에서 이적한 선수는 몸값 대비 퍼포먼스를 연일 평가하죠. 그래서 실무를 바로 할 수 있는 실무 기술을 스스로 더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채로 있을 때는 회사 비즈니스 여러 분야를 관리하기 위해 두루 아는 것이 실무 지식이나 인적 네트워크 모두 중요했지만 경력직에게 이런 것은 큰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차차 알아가면 되는 것이고 당장 투입될 기술, 그다음 레벨의 기술을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직이 활발한 직무일수록 기술 공부는 더 격화되고 대체하기 어려운 노동 공급이 되면서 보수는 더 올라갑니다. 금융이나 IT 등 이직이 잦은 분야에서 살아남아 개인 브랜드를 가진 사람들이 여기 해당하죠. 저도 조금씩이지만 별도의 시간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데 씁니다. 사실 공채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내부 경쟁만으로는 이렇게 많이 학습할 동인이 없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4. 성과에 집착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고민하는 사람은 이야기의 결말을 각 챕터마다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공채라면 일을 착수하고 되면 좋고 안되어도 다음 기회가 있는 것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경력직은 성과 없는 일은 정말 안 하려고 합니다.


예전 커리어에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성과에도 고민이 약했습니다. 관리자 레벨에 들어서고 경력직까지 되고 나서는 성과에 집중하는 피고용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경력직이 되고 달라진 점은 공채 출신이 당연히 해야 할 고민이지만 과다한 내부 경쟁이나 시장 지향적이지 않은 내부 문화 등으로 희미해진 것들이죠. 정상적인 것은 오히려 경력직의 고민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겠죠.



마치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마흔이 넘어서, 쉰을 넘기면 또 무슨 일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경영 전략을 분석한 책들을 보면 성공한 기업이 초반에 기업 비전이나 전략이 완벽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냥 단순하고 어렴풋하지만 뭔가가 있었고 그것이 일관되게 적용되어, 수정하면서 더 구체화 된 기업이 더 많았다고 하죠.


개인의 커리어도 지금 뭐가 된다, 몇 살에 뭐가 되고 싶다는 막상 살아가면서 느끼기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오타니의 목표처럼 유명인들의 어릴 적 꿈들도 있지만 아직도 부딪히면서 세상을 알아가는 저 같은 어른에게 그것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인생에 점점 겸손해져 갑니다.

존경했던 대학 시절 교수님을 취업하고 몇 년 후에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저는 여전히 방황했고 이직도 한 번 한 상태였죠. 교수님께 진로 비전을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직 그 나이에 무슨 비전이냐면서 저를 격려하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대부분 살아가면서 비전을 알게 된다고. 공자도 마흔에 불혹이라고 했는데 말이죠. 물론 저는 마흔이 되어서도 그럴 자신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원문: Pe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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