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안국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1

조회수 2019. 3. 19.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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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샹 공안국 파출소 유치장에 억류된 아주 특수한 경험담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취재 과정에서 핑샹 공안국 파출소 유치장에 억류된 경험을 글로 적어 소개하는 글입니다. 굉장히 특수한 경험이라 기록으로 남깁니다.


  • 일시 : 3.1 15:30 ∼ 3.2 19:00
  • 장소 : 중국 광시(廣西) 장족자치구 핑샹(憑祥) 공안 파출소

희귀한 경험


살다 살다 별 경험을 다 해 본다지만, 중국 공안국 유치장에 들어가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중국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가끔 공안과 마찰을 빚는 때가 있다. 


대부분 한국에서 기자로서 편하게 취재를 하다가 강력한 통제 사회인 중국에 와서 양자 간 온도 차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베이징 같은 경우는 외신 기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취재할 권리기 있기 때문에 보통 2~3시간 정도 구류됐다가 풀려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변경지역인 핑샹은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에 핑샹에서 사달이 난 것은 다 내 판단 미스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매체들 중 가장 핑샹에 빨리 왔기 때문에 현지 분위기를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세운 취재 계획을 갑자기 변경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원래 계획은 핑샹에서 집중 감시 대상인 나는 난닝에 남고, 영혜 혼자서 핑샹에 잠입하기로 합을 맞췄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촉이 자꾸 같이 핑샹에 갔다가 나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아무래도 영혜 혼자 보내기에는 핑샹 상황이 너무 위험할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난닝에서 핑샹으로 들어가는 변경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공안의 검문을 받게 됐다. 


사실 이번 일의 근본적인 원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난닝 역에서 촬영한 일본 TBS 때문이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 기자가 들고 있는 것이 카메라가 아니라 총이었다면 김정은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던 엄청난 의전과 경호 실수인 셈이다.


당연히 난닝과 핑샹 등 지역 공안들에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간단하게 신분증 확인을 하고 방문 목적을 물을 때 "관광"이라고 답하면 보내주던 공안들이 조사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했다. 


게다가 잠시 뒤에는 사복을 입은 한 간부급 인사가 와서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알게 됐지만, 이 사람은 중앙에서 내려온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간부였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한국의 국정원과 비슷한 조직으로 국가의 안보나 기밀과 관련된 위반행위를 단속한다.


처음에 이 온화한 인상의 간부는 나에게 공안과 비슷한 질문을 했고, 나는 으레 대답하는 "관광"이라고 했다. 그 인사는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가방 안 카메라는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영혜와 나를 분리해 따로 심문하기 시작했다.



시시비비


영혜를 분리하자마자 내 머리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영혜가 나와 같은 사고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제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출장 출발 전에 비상상황이 나면 무조건 내 통역 겸 가이드라고 말하라고 했는데 그걸 기억할까? 온갖 생각을 하다가 여기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시시비비를 따져봤다.


'내가 여기 온 것이 법규를 위반한 것인가'부터 생각을 시작했다. 사실 중국 정부는 국가급 지도자가 방중 할 경우 별도의 취재허가를 받아야만 현장 취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곳은 내 주 활동무대인 베이징이 아닌 중국과 베트남의 접경지대다. 접경지대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매우 엄격히 법을 집행한다.


결론은 '내가 잘못했다'였다. 이때부터 나는 그냥 초지일관 반성 모드로 들어갔다. 솔직하게 김정은을 취재하러 왔고, 사진을 찍으려거나 위해를 가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가 진짜로 이동하는지 또 현지 분위기가 뭔지를 보러 왔다고 답했다. 


영혜도 이미 영혜의 이전 방문 기록과 호텔 투숙 기록을 공안이 들이밀자 영리하게 나의 통역으로 따라왔고, 전에도 한번 왔었다고 진술을 한 상태였다.


내가 순순히 '죄'를 인정하자 그들의 태도도 한껏 유순해졌다. 그리고 핑샹 시내로 가서 간단한 조사만 받으면 바로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6시 30분 께였다. 


나에게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고, 또 영혜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안국에 갇히다


핑샹 검문소에서 처로 10분가량 달려 공안국에 도착한 뒤 우릴 내려놓은 국가안전부 사람은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안들은 우리를 조사하지도, 또 뭔가를 묻지도 않고, 그저 소지품을 압수한 뒤 유지장 내에 우리를 앉혀뒀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을까? 젊은 공안들이 영혜와 나를 분리해 조사를 시작했다. 영혜가 먼저 조사를 받았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왜 두 번이나 이곳에 왔는지와 방문 목적이 김정은 취재라고 하는데 영혜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런 류의 질문이었던 듯했다.


조사는 개인당 한 시간 남짓이었고, 조서도 빠르게 작성됐다. 이제 시간은 오후 10시가 다 돼 갔고, "나는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 날 것이다"라고 말한 그 인사에 대해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를 감시하는 공안에게 그를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조서에 인장을 다 찍을 때까지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거의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그는 우리 앞에 우리가 쓴 조서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졌고, 그는 "지금 상부에서 검토 중"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의 휴대전화를 소지품 수거함에서 꺼내 비밀번호를 물어 가져 갔다. 영장도 없이 저런 짓을 잘도 하는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정당성의 우위가 있는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부의 결정은 생각보다 늦어졌다. 우리는 서늘한 유치장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고된 벌을 서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를 이곳에 데려온 이들 중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혜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이미 멘탈이 나간 상태였고, 나는 그런 영혜를 보며 내 판단 미스가 이런 일을 초래했다며 속으로 자책했다. 다만 겉으로는 미소를 잃지 않고, 영혜에게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솔직히 국가안전부 조사는 나도 처음 받아 보는 데다가 기존과 달리 구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영혜의 상태 악화


이번 경험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영혜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난닝 공항에 도착해 바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날 난닝 역 주변에 숙소를 정해 두고 바로 핑샹에 온 터였다.


당연히 식사는 기내식 한 끼가 전부였고, 영혜는 여성들만이 겪는다는 고통까지 겹친 상태였다. 나는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 꽤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혜의 상태는 계속 심해져만 갔다.


결국에는 초기 조사에 이어 두 번째 조사가 끝나자마자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공안들도 놀랐는지 어디선가 죽을 구해와 영혜에게 먹였다. 죽을 먹으면서도 감시는 계속됐고, 영혜에 대한 추가 조사도 이뤄졌다. 추가 조사를 마친 영혜는 이미 얼굴이 백지장같이 하얘져 있었다.


나는 우리가 대기하던 유치실 바깥쪽에 있지 말고, 유치실 안에 놓인 콘크리트로 된 침상에라도 누워 있으라고 영혜를 타일렀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영혜도 도저히 앉아 있지 못하겠는지 습기가 가득한 유치장 이불을 콘크리트 침상에 깔고는 누워서 잠이 들었다. 이때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넘어섰다.

단식


영혜가 죽을 먹을 때 공안들은 나에게도 도시락을 건넸다. 하지만, 여기서 밥을 먹으면 뭔가 숙이고 들어가는 것 같아 밥을 거부했다. 그리고 혹시나 밥을 먹는 동안 영혜가 어디론가 이송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치실 앞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뭘 먹으면 오히려 속이 더부룩할까 봐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 무엇을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시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TBS 사건으로 바짝 독이 오른 공안이 우리에게 어떤 죄를 뒤집어 씌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새벽을 넘어 아침으로 향해가자 우리도 지쳤지만, 우리를 감시하는 공안도 지치기 시작했다. 한숨 잠을 잔 영혜는 다행히 기력을 찾았고,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상황을 영혜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내 카메라, 내 컴퓨터, 영혜 비디오카메라에 있는 영상을 지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 카메라는 마음씨 좋은 공안이 감시를 할 때 내가 옷을 꺼내는 척하면서 카메라를 켜서 카드를 포맷시켰다. 그리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던 지난 2년간 취재했던 사진도 드라마를 좀 보고 싶다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컴퓨터를 켠 뒤 눈물을 머금고 삭제했다.


여기까진 성공했으나 비디오카메라는 CCTV 두 대와 감지자 2명이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운에 맡기기로 하고 영혜와 나는 다시 면벽 수행과도 같은 유치장 대기를 재개했다. 이때 '선을 넘어 생각하다'는 시간을 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4평 남짓 공간이 주는 두려움


영혜와 내가 갇힌 유치장은 진짜 범인을 가두는 유치실을 제외하면 화장실 하나와 책상 하나 죄수를 결박하는 의자 하나 나무 의자 4개 정도로 4~5평 정도 된다. 유치실 두 개가 오른편에 병렬로 마련돼 있고, 이를 지키는 공간이 우리가 대기하던 장소다.


유치실 안쪽에는 오픈된 화장실이 별도로 있고, 콘크리트 침상과 이불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현재 핑샹은 우기기 때문에 바닥에도 습기가 가득할 정도로 습했는데 새벽에는 한기가 올라와 뼈가 시렸다.


또 왼편에는 취조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만 우리가 접근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컴퓨터와 녹음 장비, 그리고 안에서 밖이 안 보이는 유리와 그 건너에 별실이 있었다. 이 취조실은 평소에는 변호사 접견실로도 사용되는 것 같았다.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좁은 4평 남짓한 간수 공간에서 책을 보다가 유치실 안에 있는 콘크리트 침상에 가서 눕는 것 외에는 없었다. 유치실에는 이불이 있었지만, 너무 습기가 많아 곰팡내가 풀풀 풍길 정도여서 나는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또 심리적으로도 정기적으로 영혜와 나를 조사실로 데려가 조사를 하는 것 외에는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통에 그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사람을 위축시켜 그곳에 누우면 꼭 내가 혐의를 인정하는 것 같아 싫었다.


더 걱정인 것은 나야 경찰청을 출입하면서 수도 없이 유치실을 다녀서 익숙하지만 영혜는 정말 크게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몸 상태까지 안 좋은 데다가 혹시나 국가보안법 같은 법률을 위반했다고 혐의를 씌우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도 태연한 척 잠을 청해 보기도 하고 의자에 발을 올리기도 하고, 별짓을 다 했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4면의 벽이 점점 옥죄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록수가 여기까지 면회 오다가 짜증을 엄청 내겠지? 애들은 멀어서 오지도 못할 텐데 라는 쓸데없는 잡생각까지 하게 됐다.


원문: 돼지터리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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