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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산(山)이 안겨준 3가지의 깨달음

정상(頂上) 아닌 정상(正常)에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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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휴일이었고 딱히 약속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도보 20분 거리의 산으로 ‘격한 산책’을 갔다. 곳곳에 암릉과 암봉이 있어 손과 발을 모두 써야 하므로 평소 신던 운동화 대신 트레킹화를 신었다.


나와 지인들은 '등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꼭 정상에 올라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여 '등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격한 산책' 또는 '트레킹'이라는 단어를 쓴다.


휴일이라 그런지 꽤 사람이 많았다.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을 빼고, 자의로 온 사람 중 비교적 어린 축에 속했다. 대부분이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었다.


아이들 눈에는 아마 나도 저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등산 좋아하는 어른” 정도로 보일 것이다. 혼자 갔기 때문에 이어폰으로 노래도 듣지 않고 바람 소리, 산새 소리를 BGM 삼아 조용히 생각을 하면서 한 발 한 발 올랐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시간이 나면 산에 가게 되었을까?


나란 인간은 시간이 나면 TV 앞에 자리를 펴고 누워 과자나 먹으며 뒹굴 거리는 게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어린 날의 나는 분명 산에 가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올라가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왜 굳이 기를 쓰고 올라갈까? 무엇보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땀으로 범벅되는 그 찝찝한 기분과 몸 상태가 되는 게 싫었다.


기분 전환이라 하면 바다에 가면 되지 왜 산에 올라가 사서 고생을 하나 싶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니, 내륙에 사는 대부분에 어른들은 바다까지 가기에는 심리적,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시끄럽고 번잡한 일상에서 도망쳐온 도시의 어른들에게는 나무와 자연이 주는 에너지가 절실했다. 무엇보다 산에서 내려와 마시는 막걸리와 각종 안주가 주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다.


산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지난해, 서울 둘레길을 완주하면서부터다. 북한산, 대모산, 수락산, 봉산, 아차산 등을 이어 서울의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외사산 둘레길의 총 8개 코스를 매주 한두 코스씩을 즐거운 숙제를 하듯 마스터했다.


제주 올레길 정도를 생각하고 가볍게 걷기 시작했는데 서울은 생각보다 많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물론 산 정상을 반드시 찍고 마는 코스가 아닌 경우도 있어서 위의 산들을 모두 등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다이어트, 스탬프 마니아인 둘레길 메이트는 완주증 도장 받기라는 각자의 목적을 갖고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도봉산에서 내려와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완주증을 받았을 때, 생각보다 몸무게가 많이 변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날씬한 몸보다 더 큰 ‘변화’가 생겼다.

내려놓음


산에 갈 때마다 떠오르는 후배 어머님이 하셨다는 생활 명언이 하나 있다.


성격이 팔자여~ 지 인생 지가 조지는 거지 뭐~


성격이 그 사람의 삶을 힘들게도 하고 편하게도 한다는 말이다. 나는 걱정이 많은 타입이었다. 평소 들고 다니던 가방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각종 물건이 가득했다.


기본적으로 파우치에 들어가는 화장품을 빼더라도 다칠 것을 대비해 일회용 반창고와 소독용 알코올 스왑, 핸드크림, 물티슈와 그냥 티슈, 휴대폰 배터리, 실핀과 머리끈, 책, 물통, 선글라스, 홍삼, 비타민 등등 셀 수 없는 자질구레한 물품들이 모여 한 짐이었다.


개중 하루에 한 번도 가방 밖으로 나와 세상 빛을 보지 못하는 물건들이 절반이었다. 그 물건들은 내 어깨에 만성 통증을 불러왔다.


등산할 때, 사실 저런 물건들은 굳이 필요가 없다. 나처럼 험산을 오르지 않은 사람에게 커다란 등산 가방, 엄청난 준비물은 필요 없다. 산에 오를 때, 점점 높은 곳에 오를수록 1g의 무게도 1000kg처럼 느껴진다.


그 가상의 무게들은 내 어깨를 짓누르고 내 발목을 부여잡는다. 휴대폰, 이어폰, 휴대폰 배터리, 물, 약간의 현금 혹은 카드만 챙긴 손바닥만 한 힙색을 가슴 쪽에 크로스로 둘러매고 산에 오른다. 딱 그만큼이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이다.


땀이 나면 물티슈 대신 손등으로 스윽 닦으면 되고, 다치면 다음을 기약하며 재빨리 내려오면 된다. 필요한 물건만 챙겨, 가볍게 오르는 것.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는 물건들을 부여잡고 살았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썼다. 아등바등 악착같이 손에 쥐려 욕심만 냈지, 그것들이 정작 내 몸과 마음을 망가지게 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사람도, 일도, 시간도 물건도 정말 나의 곁에 두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거리를 두고 살기 시작했다.

눈앞의 한 발짝 오르기에 집중


분명 기분 탓일 것이다. 한 발짝 한 발짝 경사로를 오를 때, 바로 코앞의 한 발짝의 위치를 보는 게 가장 산꼭대기를 보는 것보다 덜 힘들다.


그렇게 한 발짝 내디딜 곳에 집중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면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착해 있다. 너무 크고 대단한 목표를 잡으면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버려서일까. 물론 때때로 저 멀리 목표지점의 위치를 확인하긴 해야 한다. 그래야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멀고 희미한 목표만을 바라보며 "난 왜 여기까지밖에 못 왔을까?"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아직도 저만큼이나 더 가야 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급속히 피로와 좌절감이 밀려온다.


주어진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크고 대단한 목표를 이뤄야만 성공한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 내가 이루는 작은 성공들의 힘은 대단하다.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책 읽기, 매일 10km씩 걷기, 저녁은 탄수화물 없이 먹기 등등 그 사소한 성취감들이 모여 자신감으로 변신한다.


마음 잘 맞는 지인과 여행적금을 함께 붓고 있다. 매월 1일이면 10만 원이 자동 출금된다.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다. 하지만 나의 빠듯한 살림에 적지는 않은 금액이다. 자동이체를 해 놓았기 때문에 일일이 통장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얼마나 빠지는지 크게 체감은 되지 않는다.


몇 해를 잊고 살았더니 그 돈들이 쌓여 나를 낯선 땅으로 데려가 주었다. 속초, 경주, 전주, 거제, 부산, 태백, 포르투갈, 스페인, 도쿄, 홋카이도를 차근차근 다녀오게 됐다.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숫자들이 부린 마법이다.


분명 내 돈이 들어간 것인데도 한 번에 목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공짜로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유럽 가자 하고 돈을 모았다면 유럽을 다녀온 후 자연스레 흐지부지될 목표였다.


하지만 언제 떠날지 모를 그날을 위해 차근차근 모았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세계 어디든 나를 데려다줄 기세가 되었다.

정상(頂上) 아닌 정상(正常)에 오르기


산꼭대기(頂上)를 정복하기 위해 산에 가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정상을 목표로 시작했다면 이 구역의 지구력 거지인 나는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난 정상에 오르는 것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정상에 올라 인증샷을 찍지 않을 거면 왜 산에 가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야만 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을 걷기만 해도 분명 산이 주는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 매력 중의 하나가 어지럽던 머릿속과 마음이 정상(正常)상태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송홧 가루가 흩날리는 길을, 청설모가 재빨리 몸을 숨기는 길을 걷는다. 숨이 차오르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


긴 휴식을 취하면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할 때 두 배 세배의 힘이 든다. 그래서 저 고개만 넘으면, 저 계단만 지나면, 저 바위만 넘어가면 쉬자…이런 식으로 짧은 목표를 세운다.


그렇게 내 몸을 달래 가며 산을 걷는다. 몸이란 참 정직해서 몸을 고되게 하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바위틈에서 힘겹게 싹을 틔운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썩어가는 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내민 버섯, 뭐 먹을 것 없나 등산객 주위를 서성이는 산 고양이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 머리를 어지럽힌 고민과 걱정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다들 자기 위치에서 작은 것에 만족하고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내가 저들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다른 것은 없으니 불평불만은 거두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자


그래서 옛날부터 많은 도인이 산을 찾아 수련을 했나 보다. 산속의 미물들이 안겨준 깨달음이란 선물을 안고 산을 내려온다. 그 깨달음이 희미해질 때쯤, 다시 산을 찾는다.


세상은 큰 투자를 해야 큰 결과물을 얻는다. 하지만 적은 노력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주는 존재가 산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산을 걸을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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