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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 제대로 압시다!

조회수 2019. 2. 21. 11: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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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요인이 될 것이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Great Crisis)에 대해 들어 본 적이 계실 것이다. 그 역풍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대문자’로 표기한다.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미국 안에서 유야무야 해결되지 않고 전세계경제를 강타했기 때문에 보통 ‘세계’대공황이라고 부른다.​


정확히는 1929년 호황의 정점에서 붕괴가 시작된 후 1932년경에 불황의 최저점에 머무르다 그 후 케인지언 정부의 적극적 개입에 힘입어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1930년대’ 대공황이라고도 부른다. 요즘 번역작업으로 바빠 많이 쓸 시간이 없어 당시의 한 면만 간략하게 서술할 수밖에 없다. 바로 ‘사내유보금’이다.


워낙 간략해 놓쳤을 수도 있으니, 상기시켜 드려야겠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에 세계경제는 ‘호황’을 누렸다는 점이다. 다들 잊었거나 상기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나, 불황 앞엔 항상 호황이 있기 마련이다. 세계대공황 때도 그랬다는 것이다.


결국 1920년대가 호황기였다는 말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한 재화에 불과하지만 당시 자동차, 라디오, 냉장고는 실로 혁신적인 소비재였다. 새로운 재화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그것은 1920년대 경제를 추동하는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대량생산기술(포드주의 생산체제)과 과학적 관리방식(테일러 경영체제)이 적용되자 생산성은 급증했다. 덕분에 비농업 부문의 노동 생산성과 산출량은 10년 사이 대략 60% 증가했다.

1913년 포드 자동차의 모델-T 조립 생산 라인

​하지만 혁신적 재화, 혁신적 생산방식, 혁신적 경영체제, 그와 더불어 노동생산성과 산출량과 같은 밝은 면은 어두운 면을 숨겼다. 노동조합의 쇠퇴가 그것이다. 노동조합이 힘을 잃자 기업은 기술혁신, 경영혁신, 노동생산성증가의 결과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성장 이익의 분배를 결정하는 요인은 수요공급법칙이 아니라 ‘힘’(power)이기 때문이다.


​소득은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예컨대 1929년 납세자 90%의 가처분 소득은 1922년의 그것보다 작아졌다. 그 기간 기업의 이윤은 62% 증가했고, 주주 배당금은 두 배로 뛰었다. 그리고 납세자중 상위 1%의 가처분소득은 63% 증가했다.


​90%를 차지하는 대다수 국민이 더 가난해진 반면 기업과 소수 부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부자로 되었다는 말이다. 기업의 금고에는 ‘유보금’이 흘러 넘쳤고, 부자들은 갈 곳 없는 ‘부동자금’으로 골머리를 썩게 되었다. 돈이 많으면 근심도 많다! 없는 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별천지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내 페친들께선 엄청 화가 나 있을 것이다. 당근이다. 우린 함께 ‘좋은’ 세상을 지향하기 때문에, 이런 ‘못된’ 세상에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현실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불가해한 종자들(!)이다. ​하지만 분을 좀 삭이고 이런 일이 일어난 그때의 내막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이때는 생산성과 산출량이 너무 높아 기업의 입장에서 새로운 ‘투자’가 불필요해지는 때였다. 예컨대 철강과 자동차 등 당시 첨단제조업의 고정자본가액은 감소했다. 왜 그럴까? 기업에 돈이 없이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혁신’(대량생산방식)과 ‘조직혁신’(테일러관리방식)으로 인해 자본재가 절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력도 절약되었다.

1920년대 미국의 노동자

​이제 문제가 분명해졌다. 제조업엔 투자할 곳이 없다. 90%가 가난해졌으니 만들어놔도 사줄 놈도 없다. 그런데 내 금고에 노는 돈이 너무 많다. 돈은 돌면서 더 많은 돈을 낳는데, 돌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다. 풍요속의 빈곤! 그건 내 알바 아니다. 오히려 풍요 속의 ‘사내유보금’과 ‘부동자금’ 더 나아가 ‘풍요 속의 근심’이 더 문제다!


주여, 이 돈을 다 어찌하오리까? 부처님, 이 불자를 무욕의 세계에서 니르바나(Nirvana)에 이르게 하소서! ​니르바나에 이르는 방법은 딱 하나다. 제조업에 ‘투자’(investment)하지 않고 금융업과 부동산에 ‘투기’(speculation)하는 것이다! 혁신과 성장의 이익이 임금으로부터 이윤으로 이동하자 적체된 사내유보금이 ‘투기’로 변신하는 것이다.


​증권시장에서 신주발행에 대한 요구는 거셌다. 1926년과 1929년 사이 ‘금융업에 종사하지 않는’ 기업 CEO들이 무려 66억 달러를 증권거래에 쏟아 부었다. 주식시장은 활황세에 들어갔고, 급기야 투기적 버블이 커지기 시작했다. 무디스에 따르면, 1929년 기업공개수익의 약 70%가 비생산적으로 지출되었다. 설비투자와 인력고용에 ‘투자’되지 않고 돈놀이에 ‘투기’되었다는 말이다.


이 투기적 버블이 붕괴해 급기야 세계대공황으로 번졌지만 그게 오늘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하자. 페친들께서 주목해주기를 원했던 내용은 세계대공황기의 ‘사내유보금’이다. 무엇이 사내유보금인가? 그것은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의 합이다.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에서 배당금을 지불하고 남은 돈이고, 자본잉여금은 주식거래 등 자본거래에서 생긴 차익이다.


​좀 복잡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기업이 생산 및 영업활동을 통해 남긴 이익이며 그것은 다른 경제주체에게 주어지거나 지출되지 않고 기업의 장부 안에 남아 있는 돈, 곧 기업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돈이다. 그래서 사내유보금(retained earnings)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졸부나 잔챙이 부자들은 금고 규모를 자랑하지만 거부들은 그렇지 않다. 슈퍼리치들은 자신의 재산이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매일 짠돌이행세를 하면서 우는 소리를 낸다.


​기업도 똑같다. 거대한 사내유보금을 많은 사람들이 ‘금고에 쌓인 현금’으로 오해하지만, 기업이 그걸 현금으로 쌓아놓을 리가 없다. 이유는 이미 말했다. 첫째, 현금으로 두면 근심이 커진다. 언제 도둑맞을지 모르며, 그 많은 돈을 쌓아 놓을 만한 대형금고는 이 세상에 없다! 둘째, 도는 돈만이 아름답다! 노는 돈은 꼴보기도 싫다. 셋째, 노출되면 달라는 놈, 투자하라는 놈, 비난하는 놈들의 시달림에 맘이 편치 못하다.


​소유권을 넘기지 않을 뿐 아니라 기업의 장부 안에 머무르게 하면서 이런 근심과 불안, 꼴불견, 불편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없는가? 변신! 그것이 답이다. 다시 말해 사내유보금의 ‘모습’을 달리하면 된다. ​어떻게 변신하는가? 먼저 설비투자와 같이 생산설비의 모습을 띨 수 있다. 그건 경제에 매우 도움이 된다. 이런 변신은 많이 할수록 좋다.


​두 번째가 부동산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방법이다. 장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이 역시 사내유보금이다. 그런데 고용효과가 전혀 없는 사내유보금이다. 세 번째가 증권시장에 투기하는 방법이다. 소유권의 양도 없이 기업 장부에 남아있으니 사내유보금임에 틀림이 없다.


​모든 사내유보금이 새 모습으로 단장될 필요는 없다. ‘현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금만큼 쉽고 빠르게 융통할 수 있는 자산도 없기 때문이다. 현금의 이런 성격을 케인스 경제학에선 ‘유동성’(liquidity)이라고 부른다.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들은 사내유보금 중 적지 않은 부분을 ‘현금’으로 보유한다.

​정리하자.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이 벌어들여 기업에 쌓아 놓은 이익이다. 그것은 현금+설비투자+ 부동산투기 + 유가증권투기로 구성된다. 현금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설비투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부동산과 유가증권의 모습을 띤다.


​이 두 가지 ‘사내유보금’은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침체를 유발할 시한폭탄일 뿐이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때 사내유보금이 어떤 모습을 띠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돌이켜 보라.


​작년 12월 19일 「제도경제학자로서 나는 문재인의 경제정책을 조롱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거기서 부자와 재벌들이 쌓아놓은 부동자금과 사내유보금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가난한 정부가 빚을 내서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곧 사내유보금이 문제다!


​나의 이 주장에 대해 어느 이웃 한분께서 내가 사내유보금에 대해 착각했으며 사내유보금에 대해 공부 더하고 글 쓰라고 일격(!)을 가하셨다. 내가 사내유보금을 금고에 쌓아 놓은 ‘현금’으로 오해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런 지적은 기업이나 한국경제연구원 등에 의해 교묘하게 악용된다. 우리나라 기업의 총자산 대비 ‘현금’ 자산 비중(2012년)은 9.3%밖에 안 된다. 기업은 이미 충분히 투자하며 더 투자할 여력, 돈 곧 ‘현금’이 없다는 것이다! 맞다. 현금 없다!

출처: 프레시안

​그런 지적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으면 글의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적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 의미 있는 댓글에 성실히 답변하면서 토론을 즐기는 편이다. 그중 좋은 지적이 있으면 반드시 고친다.


​이번 지적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내유보금에 대해 내가 ‘현금 편향적’ 사고를 가졌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누가 어떻게, 어느 정도로 그 비중을 예상했는지를 따지는 건 무익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5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617조 원이고, 10대 재벌과 30대 재벌의 그 규모는 각각 799조 원과 883조에 이른다.” 이건 사내유보금 맞다! 사내유보금을 더 적게 추산해 기업의 금고에 투자할 돈이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 현금을 포함해 사내유보금의 양은 엄청나다. 생산부문과 고용창출에 투자할 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말이다. 현금이 아닌 사내유보금은 엄청나다!


​둘째, 사내 유보금이 반드시 현금의 모습을 띠진 않는다. 총사내유보금 중 많은 것들이 현금과 다른 모습으로 ‘금고 밖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이 현금의 모습을 띠지 않고 금고밖에 나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갖는 ‘비생산성’과 ‘비윤리성’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사내유보금은 여전히 생산 설비의 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주식투기, 채권, 단기콜자금, 양도성예금증서 등의 모습으로 변신한 사내유보금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1930년대 대공황을 촉발시켰던 것처럼 2019년 한국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요인이기도 하다.

​재계가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헛된’ 곳에 열 뿐이다. 헛된 부동산과 유가증권에 투기한 사내유보금을 생산과 고용에 투자하면 된다.


​주류경제학과 힘 있는 자들의 말에 쉽게 주눅 들어, 자신을 잃고 그들의 한마디에 쉽게 투항하는 것도 문제다. 비주류경제학에 대한 공부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을 알되 나를 모르면 백전백패지만, 남을 알고 나도 알면 백전백승이다. 비주류경제학 열심히 공부합시다!


원문: 한성안 교수의 경제학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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