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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씨의 불행, 내 미래일 수 있다

어찌 ‘한 사람의 재난’으로 치부할 수 있으랴
ㅍㅍㅅㅅ 작성일자2019.02.11. | 145  view

불안정한(precarious) 노동자계급(proletariat)을 일컫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신자유주의가 남긴 여러 상처 중 하나다. 자본가의 자유로운 이윤 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는 신자유주의는 규제 완화, 감세와 함께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요 경제정책으로 내세웠다. 기술혁신과 세계화의 틈바구니에서 ‘쉬운 해고’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를 줄였다.


한국의 대표적 프레카리아트인 비정규직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인 결과다. 현재 세계적으로 비정규직, 구직단념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퇴직고령자 등 생계를 위해 불안정한 비숙련·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는 프레카리아트는 수십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프레카리아트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주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진영에서 나온다. 이들은 ‘시장은 방임해야 가장 좋다’고 주장하는 세력에 맞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프레카리아트에게 노동권을 보장하고 제대로 된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하며, 최소한의 소득 보장 등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외친다. 생활고와 사회적 배제 속에 불투명한 미래를 사는 프레카리아트에게 진보진영은 든든한 우군이다.


하지만 최근 프레카리아트에게 ‘공유경제’라는 낯선 변수가 생겼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처음 등장한 공유경제는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협력 소비 시스템이다. 숙박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 차량공유 플랫폼 우버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공유경제의 특성은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는 ‘온디맨드(on-demand)’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수요가 있을 때만 공급이 이뤄진다. 이 새로운 경제 모델은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로 정확한 수요 예측이 가능한 4차산업혁명 시대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쓰고, 필요 없는 경우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공유경제는 대량생산·소비로 상징되는 기존 자본주의 경제가 저성장·양극화 등 한계를 드러내면서 합리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공유경제의 ‘온디맨드’ 특성은 한편으로 더 많은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수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온디맨드 경제는 노동자의 지위를 사용자의 ‘지속적 피고용인’에서 ‘독립된 프리랜서’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할 때만 계약을 맺고 일하는 계약직 노동자는 안정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


최근 카카오의 승차 공유 서비스 ‘카풀 앱’을 둘러싼 갈등은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택시업계는 공유경제 플랫폼 산업이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를 시장에서 밀어낼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는 공유경제는 노동자 지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source : SBS

플랫폼 사업자 밑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피고용자 신분이 아닌 애매한 법적 지위에서 수요가 있을 때만 독립적으로 계약을 맺고 일한다. 고용 안정성도, 노동삼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프레카리아트가 불안에 떠는 가운데 사용자로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플랫폼 사업자는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비율이 압도적 1위인 나라다. ‘위험의 외주화’를 부추기는 고용형태의 변화는 산업재해의 급증을 초래할 수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씨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재 사망자 행렬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한 사람의 재난’ ‘한 가정의 파탄’으로 치부할 수 있으랴. 남의 일인 듯 여긴 불행이 곧잘 나의 일로 닥치는 때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씨의 유품. 스물네 살의 ‘프레카리아트’는 원청 지시에 수시로 석탄을 치우느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았다.

source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문제는 프레카리아트의 버팀목인 진보진영도 공유경제에는 관대하다는 점이다. ‘나눠 쓰고 빌려 쓰는’ 공유경제는 공동체와 연대를 중시하는 진보적 가치와 맞닿아 있다. 최근에는 환경오염 등 사회문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공유경제가 논의되기도 한다.


《한겨레》 《경향》 등 진보 언론이 카풀 앱을 둘러싼 갈등을 다룬 기사를 보면 ‘택시기사나 플랫폼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면서도 공유경제는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신산업’이라며 좋게 평가한다.


프레카리아트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불평등과 양극화의 상징이다. 앞으로 더욱 늘어날 이들의 상처를 제때 보듬지 못하면 공동체는 더 큰 사회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 통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강력범죄 등 사회 병리 현상이 늘어나고, 소수자 혐오 등 다수의 불만을 자극하는 극단적 정치세력이 힘을 얻을 위험도 크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맞게, 노동의 패러다임부터 새로 정립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까지 노동소외와 불안정한 소득을 극복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나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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