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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전쟁 중입니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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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컨버세이션에 Jerry Coyne가 기고한「Yes, there is a war between science and religion」을 번역한 글입니다.


서구가 점점 더 세속화되고 진화론과 우주론이 믿음의 영역을 점점 좁혀가면서, 과학과 종교가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은 더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종교를 가졌지만 과학을 반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신앙이 과학과 완벽하게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 종교를 가진 과학자, 저명한 과학 기구, 그리고 무신론자 중에도 과학과 종교가 양립 가능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적응 주의라 불리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주장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충돌하는 것을 넘어 일종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세계관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

과학적 방법은 세상에 대해 배우기 위해 관찰, 테스트, 복제에 의존합니다.

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나는 “과학”을 우주의 진실을 찾는데 사용하는 도구들이라 정의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도구 중에는 자연을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자신의 가설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가능한한 최선을 다해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자신의 추론을 검증하기 위해 끝없이 자신과 다른 이의 결론을 검증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종교의 정의로는 대니얼 데닛의 다음과 같은 정의를 사용하려 합니다. “초자연적 존재, 혹은 존재들을 믿고 그들의 가르침을 좇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체계”.


물론 이러한 정의에 맞지 않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과의 양립 가능성을 말하는 대부분 이들이 믿는 종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며, 이들은 이 정의에 부합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각각 이 우주를 설명하는 “사실 명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종교는 도덕, 목적, 의미 등을 더 가지고 있지만, 이에 관한 주장 또한 자신이 가진 명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고,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읽어 주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무슬림이라 할 수 없으며, 천사 모로니가 조셉 스미스에게 몰몬경으로 바뀐 황금 판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모르몬 교인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곧, 그 종교가 진실이라 주장하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을 겁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많은 신학자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성공회 신학자인 존 폴킹혼의 다음과 같은 의견에 동의하며 종교의 실증적 기반을 강조했습니다.


과학에서 못지않게 종교에서도 진리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종교적 믿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고 죽음을 앞둔 이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 믿음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그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곧, 과학과 믿음의 충돌은 바로 무엇이 참인지 뿐 아니라, 무엇이 참인지를 결정하는 방법 또한 다르기 때문입니다. 곧, 방법론과 그 결과가 모두 충돌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방법론과 달리, 종교가 진실을 찾는 방법은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것처럼 교리, 경전, 권위에 의해, 곧 믿음에 의해 결정됩니다. 종교는 증거가 없는 믿음이 미덕으로 삼지만 과학에서 이는 잘못된 자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상처에 넣어보겠다고 말한 “의심하는 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마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같은 것을 보는 두 가지 방법은 양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Gabriel Lamza/Unsplash

그 때문인지 미국인들은 어떠한 근거도 없는 종교의 다양한 주장들을 믿고 있습니다. 74%는 신의 존재를 믿으며 68%는 예수의 신성을, 또 68%는 천국을 믿으며 57%는 성모 마리아의 처녀 수태를, 그리고 58%가 악마와 지옥을 믿습니다. 그들이 이런 사실을 믿는 이유는 바로 믿음에 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는 때로 서로 모순된 주장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의 주장이 더 옳은지를 가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의 수는 4,000개가 넘으며 각각이 말하는 “진실”은 매우 다릅니다.


예를 들어 무슬림과 유대교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기독교의 진실을 거부합니다. 다른 이의 믿음을 거부하는 새로운 신자들이 등장하면 그들은 새로운 분파가 됩니다. 루터교는 진화론을 두고 갈라졌고, 유니테리언은 예수가 신과 일체라는 개신교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생겨났습니다.


과학이 우주에 대한 이해를 점점 더 깊게 만드는 동안, 믿음에 기반한 “방법”은 신성의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이 존재할까요? 그들은 어떤 특성이 있고 어떤 도덕을 가지고 있을까요? 사후세계는 존재할까요? 도덕적 악과 자연재해는 왜 발생하나요? 이런 질문에 누구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믿음만을 가지고는 모든 것이 미스테리일 뿐입니다. 곧, 과학과 종교의 “전쟁”은 자신의 생각을 확신할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충돌이며, 맹목적 믿음을 미덕으로 볼 것인지 악덕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인 것입니다.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어떤 이들은 NIH의 의장인 프랜시스 콜린스나 과학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종교인들처럼 종교적 과학자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일요일에 마시는 포도주를 예수의 피라고 생각하면서 실험실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는 이들이 종교와 과학을 양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구분할 뿐이라 생각합니다.

신성은 어떠한 환경에서는 작용하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작용하지 못할 수 있을까요?

출처Jametlene Reskp / Unsplash

어떤 이들은 종교가 오래전 과거에는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고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래전 과거에는 모든 서구인은 종교인이었습니다.


또 길게 보았을 때 종교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내 전공 분야인 진화 생물학은 종교적 믿음의 결과인 창조론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과학이 무신론적 기반에서 이루어지며, 실제로 무신론자들 상당수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미국인과 미국인 과학자 집단은 종교성에 있어 매우 큰 차이를 보입니다.


최고 수준의 과학자 중 64%가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이며, 이는 미국인 중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가 6%에 불과한 데 비하면 열 배가 넘는 비율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비신자들이 과학에 끌리거나, 혹은 과학 자체가 신앙을 무력화시킨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나는 두 가지가 모두 사실일 것이라 생각하며, 이 숫자는 과학과 종교의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적응 주의자들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서로 겹치지 않는 교권(NOMA)”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는 “과학은 자연의 사실을 정리하고 이러한 사실을 일관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만드는 반면, 종교는 그와 동등하게 중요하지만 전혀 다른 분야인 삶의 목적, 의미, 가치와 같은, 과학적 사실들이 영향을 미치지만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다룬다”라고 말하며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서 과학과 종교에 대한 설명은 모두 사실과 다릅니다. 종교는 “우주에 대한 사실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실 서로 겹치지 않는 교권 이론을 가장 반대하는 이들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역사적 과학적 사실이라” 주장하는 신학자와 신자들입니다.


삶의 “목적, 의미, 가치”를 종교만이 다룰 수 있다는 것도 사살이 아닙니다. 플라톤과 흄, 칸트에서 오늘날 피터 싱어, 데릭 파핏,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윤리학은 믿음이 아닌 이성을 바탕으로 도덕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의미 있는 윤리 철학은 모두 세속적 윤리 철학입니다. 핵심은 일상을 실증적인 근거에 기반해 살아가면서 그와 동시에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소망적 사고와 고대의 미신에 기대는 것은 비이성적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많은 업적을 쌓은 이라도 내적인 충돌을 피할 수 없으며, 적응 주의라는 인지 부조화를 낳게 됩니다. 어떤 종류의 믿음이건 꼭 가져야겠다면, 당신은 믿음과 이성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우리 종과 이 행성의 미래를 위해 사실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 시대에, 이제 사람들은 믿음을 미덕이 아닌 오류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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