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자존감 상담을 만들기 전 ‘자기 알기 상담’을 진행했을 때 절 찾아오신, 주로 자존감이 낮았던 분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장점이나 특성이 ‘이것이다’라고 정의하기 어려워했다는 점입니다. 정말 장점 및 특성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처럼 많은 특성과 장점이 있으나, 기준이 한없이 높아서 그런 특성과 장점을 자신의 것이라고 정의하기를 어려워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분들도 가끔 오셨는데, 그들은 특성과 장점을 무수히 많이 말씀하셔서 정리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객관적으로 면면을 따져보면, 그들이 정말 그런 장점과 특성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수식어구로 자신을 정의해도 상관없는 멘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분 중 외모적으로 뛰어난 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장점으로 ‘외모’를 꼽지 않았습니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었죠. 그들에겐 ‘나보다’ 예쁜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었으니까요.

두 번째는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연결됩니다. 자기 알기 상담에서는 그들이 어떤 일에 열중하느냐로 개인을 알아보고 정리하는데, 그들의 취미는 대부분 ‘여행’이었습니다. 하도 많은 분이 취미로 여행을 이야기하셔서 나중에는 “취미는 여행이시죠?”라고 먼저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여행을 하는 사람=자존감이 낮다’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중 여행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도로 글의 목적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저와 마주했던 분들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다 보니 이 주장에 맞지 않은 경우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봅니다.

자존감이 너무 낮으면 여행 자체를 시도 못 한다는 주장도 이해합니다. 많은 글이 그렇듯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너그럽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동의하지는 않지만’ 정도로 여유롭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왜 하나같이 여행이라고 이야기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행은 해방구

자존감이 낮은 분들은 눈치 보기가 일상입니다.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장에서도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지요. 그러나 여행을 하는 나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날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요. 한국말을 쓰는 사람조차 별로 없으며, 만약 한국인을 만난다 해도 모른 척할 수 있습니다. 날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을 부릅니다.

물론 여행 자체를 좋아해서 가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봅니다. 그러나 주된 이유가 혹시 ‘더 이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은 아닌가요? 외국에서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아예 교류 자체가 한정적이고 피상적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이죠.

가정 내에서, 회사 내에서 지속적으로 자존감 하락을 겪는 분들은 여행이 그야말로 해방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자극을 차단할 수 있고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연락이 잘 안 되어도 변명이 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크게 되지 않는 요즘 해외 여행객이 증가하는 현실은 국민의 자존감 하락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운 곳을 동경한다기보다는 ‘내가 있는 이곳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된 건 아닐까요. 이와 별개로 여행 경험과 사진으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반영이 되었을 테고, ‘다들 가니까 나도 적어도 한 번은 해외여행 가봐야지’라는 심리도 있을 겁니다.

추가적으로 그들의 공통적인 취미로 영화 보기도 있었습니다. 이 취미는 잠시 동안 삶에서 벗어나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의 고리를 잠시나마 멈출 수 있는 시간으로 영화는 작용합니다. 영화 시장이나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시장의 꾸준한 성장도 자존감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2.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여행은 오래전부터 ‘자아를 탐색’하는 의미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나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여행을 택합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평안하다면, 그리고 취미가 ‘여행’이 아니라면, 굳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시간을 들여 낯선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아도 나에 대한 확신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 사회엔 자신에 대해서 명확한 느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제자리

여행 기간은 행복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들은 변하지 않은 나, 그리고 주위 상황에 다소간 좌절하고 우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나의 삶이 아닌듯한 삶을 살다가 여행 준비의 설렘으로, 여행하는 동안 그 자체로 나의 삶을 찾게 되죠.

이 글을 쓴 이유는 여행이 아주 강력한 마음의 휴가를 주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가끔은 여행을 갔다 온 후 자신을 잘 돌아보고 본인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시 일상에서 이전과 같은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삶을 반복합니다.

이제 문제를 직면하시기 바랍니다. 여행에서 행복해지지 말고 삶에서 행복을 찾을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삶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일상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여행에서만 보이는 ‘나’는 평소의 ‘나’는 아니겠지요. 부모님과 사회가 부과한 가치관처럼 맞지 않는 옷은 과감히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나에게 맞도록 수선은 해야겠지요.

무엇이 여러분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나요?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하나씩 답하며 실천해봅시다. 직면하지 않고 여행이라는 달콤한 회피로, 잠시간의 행복으로 대체하지 말고요. 여행은 짧고 일상은 깁니다.

원문: 멘탈경험디자이너 조명국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