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는 환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조회수 2019. 1. 7. 12: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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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환각을 봤던 것일까요?

최근 타미플루(성분명 Oseltamivir)를 복용한 중학생이 환각 증상을 호소하다 아파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보건의료계에서는 해당 사건의 책임 소재 논란이 일어났고, 고인에게 타미플루 복용 시 환각이나 섬망(일시적인 인지기능 저하)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복약지도를 하지 않은 약사는 과태료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약사회에서는 일반적인 시민이라면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입장을 내놓아 논란에 기름을 붓기도 했죠. 일차적인 원인만 놓고 보면 복약지도를 충실히 시행하지 않은 약사의 책임인 것이 분명합니다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부작용에 대한 상세하고 적확한 설명이 꼭 좋은 결과만 불러오지는 않거든요.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지만, 우선은 의약품 부작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간략히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의약품 부작용이란 무엇인가


의약품 부작용이라고만 하면 해당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상 앞의 ‘부’가 아닐 부(不)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실은 부작용은 중립적인 용어에 가깝습니다. 영어로는 side effect, 부정적인 작용이 아니라 주된 작용 외에 일어나는 모든 다른 반응을 일컫는 용어거든요. 부작용이 아니라 ‘곁’작용이라고 하면 조금 더 직관적으로 들리시려나요?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폰 게임을 하다 보면 폰이 뜨거워지곤 하는데, 이런 것이 일종의 부작용인 셈입니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약의 작용은 유해한 경우가 많습니다. 콧물약으로 많이 쓰이는 항히스타민제는 원래의 의도인 콧물과 기침을 멈추는 것에 더해 졸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복용 직후에 운전이나 위험한 기계 조작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이 필요하고, 일상에서 접하는 많은 진통제는 위를 보호하는 점막의 분비를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어 많이 복용하면 속 쓰림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는 스마트폰의 발열이 의도치 않게 손을 데우는 좋은 기능을 할 수도 있듯, 의약품의 의도하지 않은 작용이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도 원래는 고혈압약으로 개발되었지만, 약의 유익한 부작용(?) 덕분에 중년 남성들의 자신감 회복에 도움을 줬거든요. 그래서 약학에서는 유해한 부작용을 따로 구분해서 약물 이상 반응(adverse drug reaction, ADR)이라는 별도의 개념으로 명명합니다. 여기까진 그리 어려운 점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최근 고혈압 진단을 받고 고혈압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노인 한 분이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입었습니다. 원래도 골다공증을 앓아서 뼈가 약하던 분인데 아침나절 집에서 넘어지며 크게 다치신 겁니다. 이 경우에 골절은 고혈압약의 이상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관련이 있냐고 좀 황당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약물 안전성 평가 시에는 이런 것도 모두 이상 사례(Adverse Event)로 보고합니다. 이게 해당 의약품과 인과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일단은 고혈압약을 먹고 나타난 일이기는 하니까요. 아무리 봐도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이런 것들을 굳이 왜 보고하냐면, 이런 실마리 정보(signal)들을 모으다 보면 뜻밖에 정말 예측하지 못했던 약물의 이상 반응을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앞에 설명한 노인의 사례는 의약품 이상 반응에 의해 일어난 사고일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힘듭니다. 고혈압약을 복용하면 평소보다 혈압이 떨어지게 되는데, 밤새 누워있다 급격히 일어서면서 기립성 저혈압이 발생하였다면 그로 인해 의식이 흐려져 넘어졌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고혈압약과 골절도 이런 관련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의약품 사용에 의해 발생한 이상 사례들을 모아서 분석하고, 그것이 정말 의약품으로 인해 발생한 이상 반응인지를 인과관계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약물의 안전성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을 약물 감시(Pharmacovigilance)라고 합니다.



타미플루는 환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개념으로 해석하자면 타미플루를 먹고 환각을 호소하다 추락하여 사망한 피해자의 사례는 분명 의약품 이상 사례에 포함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사건 외에도 타미플루로 인한 비슷한 이상 사례 보고가 있었고,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타미플루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이 일어났는데 구조는 동일합니다. 이렇게 보고된 이상 사례들이 정말 타미플루 복용에 의해서 야기된 것임이 증명되어야 타미플루가 환각이라는 이상 반응을 초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고혈압약으로 인한 노인 골절의 사례에서도 봤듯, 해당 의약품의 작용 기전에 의해서 예상 가능한 이상 사례라면 타미플루에 의한 이상 반응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텐데, 타미플루의 작용 기전을 고려하자면 환각이나 섬망은 도무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중대한 이상 사례 보고들이 있었으니 각국 보건당국은 이를 장기간 신중하게 판단해서 검토했는데, 결론은 역시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대체 왜 타미플루를 복용한 인플루엔자 환자들은 환각을 봤던 것일까요? 저는 그 해답이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판단됩니다.


연말·연초에는 술자리가 무척 많습니다.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이들과 뭉치는 경우도 많지만, 사회생활을 위해 혹은 직장의 안녕을 위해 억지로 마셔야 하는 경우도 많죠. 원인이야 어쨌든 이맘때에 과음하는 일이 잦은 직장인들은 숙취해소제를 많이 찾습니다. KGB 공작원들이 먹었다는 알약 형태의 제품은 물론이고, 캔 표면에 인자한 표정의 아저씨가 활짝 웃는 해외 특허 제품도 드십니다. 그런데 숙취해소제를 먹은 다음 날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픕니다. 숙취해소제의 이상 반응인 것일까요? 아니요. 두통은 애초에 과음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 숙취해소제를 먹어서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타미플루의 경우도 유사합니다. 애초에 병원을 찾아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정도로 심한 인플루엔자를 앓으면 인플루엔자로 인해서 환각 등이 나타난 것일 가능성이 무척 높거든요. 환각 외에도 메스꺼움, 식욕감퇴 등 타미플루의 이상 반응으로 보고되는 것들의 다수는 인플루엔자 증상으로 인해서 설명이 가능한 게 많습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거지, 숙취해소제를 먹었기에 변기통을 부여잡고 전날 메뉴를 역순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정말정말 타미플루 때문일 일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라고 명시를 해 둔 것이지요. 그래도 그거 다 말해줘야 되는 것 아니냐면, 여긴 또 다른 사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복약 순응도입니다.



막연한 공포와 실질적 혜택 사이


제가 한 가지 의약품의 알려진 이상 반응을 모두 열거해보겠습니다.

과민성 쇼크, 홍반, 가려움, 코막힘, 심장-호흡기 장애, 발진, 부종, 두드러기, 결막염, 중독성표피괴사증, 피부점막안증후군, 박탈성피부염, 재생불량성빈혈, 빈혈, 백혈구감소, 혈소판감소, 식욕부진, 가슴쓰림, 위통, 구역, 구토, 위장출혈, 소화성궤양, 위천공, 귀울림, 귀먹음, 어지러움, 두통, 흥분, 간 장애, 일시적 간 손상, 신장애, 급성신부전, 과호흡, 대사성산증…

정말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정도면 이게 약인지 독인지가 의심될 수준입니다. 도대체 무슨 약이기에 이런 엄청난 양의 이상 반응을 감수하면서 먹는 것일까요? 정말 도저히 다른 치료제가 없는 말기 암 환자가 먹는 약이라고 생각되시겠지만, 실은 저 많은 이상 반응은 모두 아스피린의 이상 반응입니다.


아마 이 대목을 읽으신 분께서는 둘 중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실 겁니다. 안전한 줄 알았던 아스피린이 이렇게나 위험한 약이었다는 것, 혹은 아스피린은 안전한 약인데 저것이 너무 과장이 심한 것 아니냐는 것. 실제로는 뒷부분의 의견이 맞습니다. 저런 이상 반응은 모두 ‘빈도’가 무척이나 낮은 것들이거든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길을 걸어가다 벼락을 맞을 걱정을 하지는 않듯이, 아스피린을 먹으면서 일반적으로 재생불량성 빈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대체 저 많은 이상 반응은 뭐냐고 궁금해하실 텐데, 저건 되려 아스피린이 안전한 약이라는 반증입니다. 실제로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이 안전하게 먹었기에 무척 빈도가 낮은 희귀한 이상 반응도 포착이 되었던 것이거든요. 10만 명이 별점 4.0을 매긴 영화랑 100명이 평점 4.5를 매긴 영화 중에 어떤 영화가 더 좋은 영화일지 가늠해보시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10만 명이 별점을 남겼으면 그만큼 악플도 많을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악플만 보고 아스피린을 위험한 약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부적절한 반응입니다.

문제는 약학을 전공하지 않았을 대부분 환자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고혈압약을 먹고 다리뼈가 부러진 노인 사례를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만약 ‘기립성 저혈압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을 알렸더라면 골절 위험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기립성 저혈압은 무시할 수 없는 빈도로 발생하는 일이고, 골다공증 등의 다른 질환이 있는 환자라면 더더욱 주의가 필요할 테니 이를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만약 이 노인께 앞의 아스피린의 예에서 보듯 고혈압약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상 반응을 있는 그대로 모두 다 알려드렸다면 고혈압약을 복용하지 않으실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약학 전공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지금 이 글처럼 긴 글을 읽어야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텐데, 빨리 약 받아서 약국을 나서려는 환자들을 붙잡고 구두로 이런 내용을 모두 설명한 다음 납득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몸 아프대서 약 타러 왔는데, 설명을 듣다 보니 약 먹으면 도리어 병을 얻을 것 같잖습니까? 그렇기에 빈도가 높은 이상 반응 혹은 빈도는 낮지만 치명적일 수 있는 이상 반응을 간결하게 안내하는 것이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약을 정해진 대로 복용하는, 다시 말해 복약순응도를 해치지 않는 최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약인데 발생 가능성도 거의 없는 이상 반응 때문에 환자가 약을 거부하면 그건 결국 환자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되니까요.



맺으며: 타미플루 공포가 훨씬 위험하다


다시 타미플루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타미플루로 인한 환각은 이상 사례에 포함되긴 하나 타미플루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매우 드물게 발생한 사례이고, 환각이 발생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사망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타미플루로 인한 이상 반응으로 단정 짓고, 해당 내용을 환자에게 안내하지 않았다며 약사를 징계하는 방향으로 가면 환자들은 타미플루가 환각을 일으키는 위험한 약이라고 인식하고 복용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각한 독감으로 인해 복용이 권장되는 상황인데도 불필요한 공포심을 갖고 고통을 감내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히 목숨을 잃으신 피해자분과 그 가족의 고통은 이루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만,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특수 사례를 마치 일반적인 특성인 양 기사화함으로써 실제 그 약이 필요한 환자들이 고통을 받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원문: Coldtongue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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