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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헤드라인이 미국의 대통령을 끌어내리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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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작성일자2018.12.07. | 4,252 읽음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있다


2016년 12월 9일,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되었습니다. 국회의원 299명이 참여한 표결 결과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탄핵안은 의결정족수인 재적인원 3분의 2(200명)를 넉넉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물러난 적이 있습니다. 초유의 정치 스캔들,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스스로 사임하며 불명예스러운 끝을 맞이했죠.

압도적인 표 차로 재임되었음에 물러나야 했던 리처드 닉슨

무엇이 닉슨을 사임에 이르게 했을까요? 살펴보면, 두 기자의 정열적인 탐사 취재 덕분이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무려 3년에 걸쳐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고듭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이런 수준의 심층 취재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죠. 하루하루 뉴스 쏟아내기 바쁜 언론인이 단 하나의 사건에 3년을 천착하다니요.


그렇기에 밥 우드워드의 취재는 탐사보도의 기념비와도 같은 것이었고, 이후 수많은 청년들이 밥 우드워드를 동경해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어쩌면 jtbc 뉴스룸의 ‘태블릿’ 탐사 보도 역시 밥 우드워드의 탐사 보도에 빚을 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전설의 기자, 밥 우드워드

괴한의 메모에서 시작된 퍼즐: 백악관, 콜슨, CIA


때는 1972년, 미국에선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6월의 늦은 밤, 5명의 괴한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워터게이트 호텔’에 침입했다가 체포됩니다.


그들은 단순 절도를 주장했지만, 괴한의 수첩에서 ‘W.H.:하워드 헌트’란 이름이 발견됩니다. W.H.란 백악관(White House)을 의미하는 약어였죠. 기자 밥 우드워드는 하워드 헌트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FBI 부국장 마크 펠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바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 사건은 상당히 커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을 뿐이었죠.


밥 우드워드는 이제 백악관에 직접 전화를 걸었고, 교환원으로부터 하워드 헌트가 (닉슨의 특별 자문관이었던) 찰스 콜슨의 사무실에 있을 것이란 대답을 받게 됩니다. 밥 우드워드는 다시 전화를 돌린 끝에 그가 CIA 요원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다시 마크 펠트에게 전화를 걸어 “콜슨, 백악관, CIA”라는 세 단어를 말했죠. 결국 마크 펠트는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한 뒤, 바로 그 찰스 콜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임을 말해줍니다.


그 후로도 밥 우드워드는 콜슨을 여러 차례 만나 내부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게 되는데요, 물론 그의 실명을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대신 그를 깊은 목구멍이란 뜻의 ‘딥 스로트’라고 불렀죠. 이건 FBI 부국장이라는, 엄청난 무게감의 내부고발자에게 붙인 별명치고는 참 경박한 것이었는데요. 구강 성행위의 일종이자… 당대의 유명 포르노 영화 제목이었거든요.

혹시라도 구글에 검색하면 큰일 납니다

워터게이트, 그리고 닉슨의 위기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나오죠. 지역지 기자에 불과했던 밥 우드워드가 어떻게 FBI 부국장이란 거물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캐낼 수 있었던 걸까요?


밥 우드워드와 마크 펠트의 만남은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해군 연락장교로서 해군 문서를 백악관에 전달하러 갔다가 마크 펠트를 만난 우드워드는, 그가 거물임을 알아채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고 하네요. 마침 두 사람은 조지 워싱턴대 선후배란 공통점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펠트의 직통 전화번호를 받고 이런저런 조언을 받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밥 우드워드가 워싱턴포스트의 기자가 된 후로도 두 사람의 친교는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펠트는 부통령이 뇌물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제보를 우드워드에게 전해주었다고 해요. 그때부터 펠트의 ‘내부고발’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펠트의 내부고발이 어떤 동기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지금까지도 호사가들의 관심거리인데요, 알 수 없는 일이죠. 동기야 상관없이, 정의로운 행위였단 걸 부정할 수도 없을 테고요.


그런 양반에게 ‘딥 스로트’란 이름을 붙인 센스도 비범하긴 합니다. 물론 밥 우드워드가 붙인 별명은 아니라지만… 이 ‘딥 스로트’(…)와 연락한 방식 또한 흥미롭습니다. 우드워드는 펠트를 만나고 싶으면 아파트 커튼을 하나 열어놓기로 했습니다.


반대로 펠트가 우드워드를 만나고 싶으면 빨간 깃발이 꽂힌 화분을 아파트 발코니 뒤에 내놓기로 했다고 합니다. 긴급한 상황일 경우에는, 뉴욕 타임스 20면에 시계를 그려 넣기로 했다고 하네요. 이에 대해 우드워드는 펠트가 어떻게 매일 내 아파트 발코니를 관찰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회고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엄청 무서운 이야기네요?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네요

워싱턴포스트의 ‘올인’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은, 처음엔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지 4개월 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절반이 워터게이트를 모른다고 답변했다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비유하자면, 최순실 태블릿이 언론에 등장한 지 4개월이 지났는데 국민의 절반이 최순실을 모른다고 답변한 수준?


사건 초기에는 뉴욕타임스, LA 타임스 등 주류 전국 언론들도 관심을 그다지 보이지 않았고,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시기라 대부분 일상적인 선거 보도에만 열을 올렸다고 해요. 당시 닉슨의 재선을 막아야 했던 민주당은 당이 사분오열로 엉망이었고, 닉슨의 재선은 사실 떼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닉슨은 선거인단 538명 중 520명을 쓸어가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오직 워싱턴의 지역 언론이었던 워싱턴포스트만이, 밥 우드워드 기자를 중심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올인하다시피 집중했죠. 워싱턴포스트는 뉴욕타임스의 2배, LA타임스의 4배가 넘는 기명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덕분에 워싱턴포스트는 흔한 지역 신문에서 전국구 유력 신문으로 발돋움했지만, 그때 상황에선 정말 위험한 판단이기도 했죠. 살아있는 권력의 중심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당시엔 정권 차원의 압박이 굉장했다고 합니다. 닉슨은 FBI, CIA, FCC를 총동원해 워싱턴포스트를 압박했고, 발행인과 주간, 편집국장 등 주요 기자들을 구속하겠다 위협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굴하지 않았죠. 발행인 그레이엄 캐서린은 스스로 감옥에 가겠다 나서며 기자들을 보호했다고도 합니다.

오오 간지 오오

핵심 아이템이 등장하다: 닉슨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


닉슨 대통령과 백악관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건 은폐를 주문하는 닉슨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가 워터게이트를 대형 스캔들로 격상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어버렸죠.


이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이 또 골때리는데요. 재선에 성공한 닉슨의 임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 알렉산더 버터필드 부보좌관이 해당 테이프의 존재를 발설해버린 겁니다. 이에 특검과 국회가 모두 이 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닉슨은 이것이 일종의 통치행위로서 비밀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해버립니다.

테이프의 존재를 증언하는 버터필드 부보좌관

증거 제출을 거절한 닉슨은 여기서 한술 더 떠 특검 해임까지 시도하는데, 이게 또 최악의 수였습니다. 닉슨이 특검을 해임할 것을 법무장관에게 명령하자, 법무장관이 거부하고 사임해버렸거든요. 졸지에 장관 대행을 맡게 된 법무차관에게 다시 특검을 해임할 것을 명령하지만, 그도 또 거부하고 사임했습니다.


결국 여차여차 특검 해임에 성공하긴 했지만, 닉슨의 정치적 지도력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이후죠. 그나마 그 테이프를 끝까지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연방 대법원이 “미국 대통령이라 해도 헌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런 식으로 대통령의 특권을 사용할 순 없다”며 테이프 제출을 명해버렸거든요. 그리고 제출된 테이프에는 닉슨이 수사 방해를 지시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었죠.


이 수사 방해, 그리고 위증이야말로 닉슨을 몰아세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손꼽힙니다. 훗날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부적절한 관계로 위기에 몰렸을 때도 부적절한 관계 자체보다 그에 대해 위증한 것이 더 큰 원인으로 지목되었죠.



전설로 남은 탐사보도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언론계의 전설이죠. 부패한 권력 앞에 지역지가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맞서 싸웠으니까요.


이후 밥 우드워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설의 대기자’가 되어 명성을 날립니다. 이후로도 그는 전·현직 대통령과 백악관의 고위 관계자들과 몇 시간씩 마라톤 인터뷰를 하는 등 권력 중심을 심층 취재해왔습니다. 일설에는 백악관 사람들이 심지어 줄을 서서 그와의 인터뷰를 자청하기까지 한다 합니다. 그와 인터뷰함으로써 그의 글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한 줄의 헤드라인으로 미국의 역사를 바꾼 밥 우드워드의 취재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지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빛났던 보도 정신은 보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동력으로 여전히 작동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어치 있는 ‘유산’이기도 하고요.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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