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조직문화'라는 표현에 대한 단상

조회수 2018. 12. 7.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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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평과 나의 수평이 과연 같을까?

‘수평적 문화’라는 이 표현이 학문적으로는 모호하다. 1980년 헤이르트 호프스테더(Geert Hofstede)는 ‘권력 거리(power distance)’라고 명명했다. 권력 거리가 큰 문화에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관계를 상정한다. 반면 거리가 작은 문화에서는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인 접근이 더 강조된다.

후에 1998년 해리 트리안디스(Harry Triandis)와 미셸 겔판트(Michele Gelfand)가 그 개념을 이어받아 수평적-수직적(horizontal-vertica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수평적 문화’라는 표현이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일은 외국 논문에서는 지양되는 경향이 있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또는 수직에서 수평으로라는 연속 선상의(continuum) 개념으로 취급할 수는 있으나 오롯이 ‘수평적 문화’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개념 정의에 문제가 있다고 믿는다. 왜?


조직은 필연적으로 권력 차이를 배제할 수 없다. 조직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무리가 아니다.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규합된 목표 지향적 집단이다(Schein, 2004). 구성원들 간에 필연적으로 한 단계든 세 단계든 위계가 존재하며, 권력을 배제할 수 없다. 완벽히 수평적인 조직도, 완벽히 수직적인 조직도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호프스테더가 명명한 ‘권력 거리’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조직에는 기본적으로 권력 차이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갖기 때문이다. 그 거리가 넓냐 좁냐의 문제를 따지는 게 현상적으로 더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부터 이 표현 활용이 증가했다. 우리나라 학술 트렌드를 살펴보면 2008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2009년경부터 늘어나 연평균 20건 이내로 나타난다. 참고로 ‘수평적 문화’라는 표현은 1991년에 처음 국내 학술 문헌에 나타난다(김동훈, 1991). 2003년에는 최초로 황창연이 호프스테더의 ‘권력 거리’를 ‘수평적-수직적 문화’라 이름을 바꾼다.


혹자는 역할 조직(Role-Driven Organization) 표현을 사용하며, 일부에서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관찰하고 경험한 바를 토대로 위계 조직(rank-driven), 역할 조직(role-driven)으로 구분한다. 문화 현상을 적확하게 이르는 말은 아니지만 ‘수평적 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긴 하다.


그런데 이 표현을 사용하려면 먼저 ‘역할(role)’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직무 분석표(Job Description)가 없거나 명확하지 않은 우리나라 맥락에서는 아직 이 표현이 활용되기는 어렵다.


‘수평적 문화’라는 표현은 조심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 ‘수평적 문화가 무조건 좋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보편적 관점(universalistic), ‘조직마다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상황적 관점(contingency)이다(Doty et al., 1993).

나는 상황적 관점을 취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현재 세간에 회자되는 수평적 문화가 지향하는 내용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4자(자율, 자주, 자극, 자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평적 문화’라는 표현은 조심스럽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기치로 내세우고자 하는 조직들에게 다음 두 가지를 제언하고 싶다.

  1. ‘우리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합니다’라는 문장 하나로 끝내려 하지 말자. 우리 회사 상황과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수평적 문화’라는 개념의 정의를 제대로 해내자. 우리 회사에서 어디까지가 자율적으로 자기 책임하에 의사결정이 가능한지, 어디부터는 불가능한 영역인지를 명확히 하자.
  2. 인재를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최근에 채용 목적으로 스타트업에서 ‘수평적 문화’를 기치로 내세우는 현상을 종종 보곤 한다.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이나 그 조직에 입사하기 전에 그 회사에 모종의 기대를 형성한다(Louis, 1980). ‘수평’이라는 표현은 상당히 쉬워 보이는 개념이지만, 의외로 그 정도의 변주가 상당하다.


내가 아는 수평적 문화와 그가 아는 수평은 서로 다르다. 입사자들이 초반에 상상했던 ‘수평’과 우리 조직의 현상적인 ‘수평’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스타트업 입사자들이 “수평적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수직적인 측면이 있네요”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원인이다.

우아한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 중에서 2번 항목인 “업무는 수직적, 인간적인 관계는 수평적”이라는 문장은 상당히 고심해서 만든 문구라 생각한다. 이 회사에서 수직적이어야 할 영역과 수평적이어야 할 영역을 구분했기에.


우아한형제들은 한 가지 예일 뿐이다. 다양한 버전의 ‘수평적 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 말하는 ‘수평적 문화’가 무엇인지 적확하게 정의하고 공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원문: 김성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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