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업계의 이카루스, 시어스의 비상과 추락

조회수 2018. 11. 26. 12: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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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21세기의 시어스가 될 것인가?

※ Global Financial Data의 「Sears: The Amazon of the Twentieth Century」를 번역한 글입니다.


2018년 10월 15일 시어스 홀딩스(Sears Holding Co.)는 113.4억 달러의 부채 상환을 피하기 위해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이렇게 1887년 처음 카탈로그를 발행하고 1925년 첫 번째 매장문을 열었던 미국의 아이콘이 끝났다.

당시까지 미국 증시 역사상 최대 소매업체 IPO를 진행했던 1906년부터 주가가 최고점에 도달했던 1972년까지, 시어스의 시가총액은 1,500만 달러에서 180억 달러로 1,200배 넘게 증가했다. 주가 역시 1908년부터 1972년까지 연평균 12%씩 2,000배 상승했다.


배당금을 재투자했다고 가정했을 때, 1908년 시어스에 1달러를 투자했다면, 1972년까지 연평균 16%의 수익률로 2만 달러가 넘었을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투자처 중 하나였다는 말이다. 그런 시어스는 2005년 K-마트에 매각되었고, 주가는 2007년 195달러에서 현재 30센트까지 꾸준히 하락해 왔다.


189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매 시장을 주도했던 시어스는 더 이상 소매 시장에서 활력을 찾을 수 없었고,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혁신도 시도했고, 새로운 제품 라인도 선보였지만, 회사의 몰락을 조금 더 미루는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 50년 동안 자기 혁신에 게을렀고, 다른 경쟁자의 추격을 허용했던 시어스는 뒤늦게 경쟁자들의 혁신을 따라 하려 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아마존이 21세기의 시어스가 되었고, 아마존 또한 앞으로 100여 년 후 시어스의 실수를 되풀이할지 궁금한 시점이다.



시어스, 첫 번째 카탈로그


시어스의 원래 사업은 시계 판매였다. 아마존이 처음 책을 팔았던 것처럼 말이다. 1886년 창업자 리처드 W. 시어스(Richard W. Sears)는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루이스에서 화물 운송업을 하던 당시 한 지역 보석상에게서 우연히 잘못 배송된 것이라며 회중시계 하나를 산다. 시어스는 이 시계를 되팔았다.


이문이 짭짤했던 시어스는 이후 더 많은 시계를 사서 되팔기 시작했고, 이윽고 운송업을 중단한 다음 미니애폴리스에 R.W. 시어스 와치(R.W. Sears Watch Co.)를 세웠다. 1887년 시계 수리 기사 알바 로벅(Alvah Roebuck)이 합류했고, 시카고로 업장을 이전해, 1888년 처음으로 우편 주문 카탈로그를 발행했다.

처음 80쪽으로 시작한 카탈로그는 1890년 322쪽으로 늘어났고, 1895년 532쪽으로 두꺼워졌다. 100년 전 미국인들의 삶이 어땠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재발행된 시어스의 카탈로그를 사서 수천 종의 물품을 살펴보면 된다. 유감스럽지만, 아마존의 카탈로그는 지금부터 100년 후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1893년 로벅을 인수해 두 명의 신규 파트너 아론 너스바움(Aaron Nusbaum) 및 줄리어스 로즌왈드(Julius Rosenwald)와 함께 회사의 자본 구성을 15만 달러로 재편성했다. 전형적인 기업가였던 시어스는 항상 회사의 확장을 꾀했다. 누군가 말했듯 시어즈는 공기도 팔 수 있었을지 모른다.


19세기 미국은 아직 농업 국가였다. 농부들은 지역 잡화점에서 비싼 가격이라도 물품을 사야 했고, 종류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골라서 살 수도 없었다. 이때 시어스가 농부들에게 필요한 온갖 물품이 실린 수백 쪽의 카탈로그를 들고나온 것이다.


시어스는 카탈로그에 실린 모든 물품에 대해 무조건 환불을 보증했고, 어떤 방법으로 대금을 결제하더라도 모두 받아들였다. 시어스가 밝혔듯이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다. 나는 그걸 안다. 두 방법 모두를 시도했다.” 시어스는 농부들이 지역 잡화점에 가는 대신 우편으로 물품을 사도록 하기 위해 이윤을 낮췄고, 이 계획은 성공했다. 이후 30년 동안 놀랄만한 성장을 즐겼다.


그동안 우편 정책이 두 차례 바뀌었고, 시어스가 농촌 시장에 침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896년 농촌 무료 배달법(Farm Free Delivery Act)이 도입되었고, 1913년 소포 우편이 시작되었다. 농촌 무료 배달이 시행되기 전까지 농부들은 먼 우체국에서 가서 소포를 가져와야 했다. 실제 1863년 전까지 편지도 한 우체국에서 다른 우체국으로만 배송되었다. 택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1863년이 되어서야 주요 도시 가정까지 우편배달이 시작되었고, 1896년부터 시골 농장까지도 우편이 직접 배달되었다. 하지만 우편배달 가능한 우편물의 중량이 4파운드로 제한되었다. 그 외의 모든 물품은 철도 화물 또는 철도 속달을 통해야 했다.

우편 소포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 4개의 속달 회사들이 거의 경쟁 없이 배달 시장을 나누었다. 이 카르텔을 없애고 싶었던 정부는 1913년 우체국을 통해 미국 전역에 소포 배달을 시작했다.


우체국이 소포 배달에 뛰어들자 시어스 같은 회사들은 미국 내 어느 곳으로든 우편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우편 제도의 변화로 시어스는 농촌 지역의 충성 고객들에게 수백만 종의 물품을 우편으로 쉽게 보낼 수 있었다.



시어스, 소매업체 최대 IPO


1906년 시어스에게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첫째, 시카고에 약 2만 8,000㎡ 크기의 시어스 물류 센터 건물을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물품 판매를 시작했다. 우편 주문 사업에서 시어스의 지배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1970년대 시어스 타워가 건설될 때까지 시어스의 본사가 상주했다.

둘째, 뉴욕에서 재법인화를 거쳐 상장을 단행한 것이다. 주당 50달러에 주식을 발행해 회사의 자본금을 1,500만 달러를 끌어올렸다. 1893년 대비 100배 증가한 것이었지만, 성장의 시작에 불과했다. 1929년 시어스는 시가총액 7억 7,500만 달러 회사가 되었고, 1906년 대비 50배로 더 커졌다.


1906년 이후 시어스는 자본금을 기반으로 미국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 결과, 1906년부터 1920년 사이 매출도 6배로 늘었으며, 1911년 신용 판매를 개시함으로써 더 많은 매출을 신장시켰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 인구는 농촌 지역에서 도시와 도시 교외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924년 시어스는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로부터 제너럴 로버트 워드를 영입했고 이후 30년 동안 시어스의 성장을 이끈다(‘제너럴’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 육군 병참감으로 복무해서 붙은 별명이다).


1925년 워드가 도입한 주요 혁신 중 하나가 우체국을 통해 물품을 배달하는 주문 사업에서 벗어서, 고객들이 시어스에서 직접 물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실제 매장을 여는 것이었다.


로버트 워드는 미국 인구 조사와 미국 통계 초록을 사용해, 어느 곳에 시어스 매장을 열어야 성장을 극대할 수 있을지 계획했다. 화하기 위해 소매점을 어디에 건설할지 계획을 세웠다. 1926년 몽고메리 워드도 처음으로 매장을 열었다. 시어스는 1924년 다우 존스 산업평균 지수에 편입되었으며, 1999년까지 회원사 자격을 유지했다.

시어스 성공의 열쇠는 고급 백화점과 경쟁해야 했던 도심이 아닌 교외에 매장을 열었던 것이다. 또한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매장 이용을 더 쉽게 했다. 몽고메리 워드는 농촌 지역에 매장을 열었고, 울워스(Woolworth)는 도심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시어스는 사람들의 주거지가 될 교외에 매장을 열었다. 잇따른 매장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30년 불과 5년 만에 시어스는 미 전역에 3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했다.


1931년이 되자 매장 매출이 우편 주문을 넘어섰다. 나인틴 헌드레드(Nineteen Hundred Corp.)를 월풀(Whirlpool)로 전환하는 것을 필두로 공급 업체들과의 보다 긴밀한 협력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1931년 올스테이트 보험(Allstate Insurance)이 시어스 고객들에게 자동차 보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42년 쿠바 아바나에 미국 밖 처엄으로 매장을 열었으며, 이후 1947년 멕시코, 1952년 캐나다에 각각 첫 매장을 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시어스와 몽고메리 워드의 매출은 각각 약 10억 달러 수준으로 비슷했다. 하지만, 전후 1952년이 되자, 시어스의 매출은 30억 달러로 증가한 반면, 몽고메리 워드의 약 10억 달러에 머물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시어스가 인구 증가를 보이던 ‘선 벨트’ 주들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어스는 기존 교외 매장을 중심으로 신규 매장을 세워나갔다. 1967년이 되자, 월간 매출 10억 달러를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시어스가 저가 소매업체들에게 시장 점유율을 뺏기기 시작한 것도 1960년대였다.


1962년 타깃(Target), 월마트(Walmart) 및 K-마트(K-Mart)가 속속 설립했고, 이후 이 세 곳이 미국 소매 시장에서 시어스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시어스는 K-마트에게 인수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물가 상승이 심해졌고 저소득층은 타깃과 월마트 같은 저가 할인 매장으로, 고소득층은 더 세련된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어스, 슈퍼 스톡


시어스에 투자한 주주들은 경이로운 수익률을 경험했다(아래 차트 참조). 1906년 상장 당시 50달러였던 주가는 1907년 경기 침체로 인해 1908년 1월이 되자 25달러까지 하락한 후 다시 200달러까지 급등했다. 이후 1911년, 1915년, 1917년 및 1920년 배당금이 지급됐다. 또한 1926년 1:4로, 1945년 다시 1:4로 주식 분할이 진행됐다.

시어스, 로벅 & 컴퍼니의 주가

시어스의 역사를 통틀어 진행된 주식 분할, 배당 및 무상 증자로 인한 누적 가치는 1:2000에 달한다. 즉 처음 산 1주가 2,000주가 되었다는 말이다. 1908년부터 1929년 사이, 시어스의 주가는 100배 상승했다. 배당금을 재투자했다면 상승 규모는 215배에 달한다. 연평균 24.5%의 수익률(배당금을 재투자했다면 29%)을 올린 셈이었다.


시어스가 상장했던 1906년 8월 1달러를 투자했다면, 1972년 12월 928달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66년 동안 연평균 11% 수익률). 여기에 배당금을 재투자했다면 무려 9,915달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연평균 15% 수익률). 시어스는 미국 증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회사 중 하나였다.



시어스, 슬프지만 꾸준한 추락


1974년 110층짜리 시어스 타워가 완공됐다. 당시로선 세계 최고층 빌딩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시어스는 느리지만 꾸준한 추락을 시작했다. 이후 45년 동안 추락을 막으려 한 시어스의 수많은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추락은 느렸지만 불가피했다. 미국 시장의 흐름에 뒤처지면서, 경쟁업체들에게 시장 점유율을 뺏기는 건 시간문제였다.


시어스는 과거의 회사가 되어갔다. 추락을 막으려고 시어스가 시도했던 변화는 한 마디로 눈물겨웠다. 메트로폴리탄 상호 저축 은행, 증권사 딘 위터, 부동산 회사 콜드웰 뱅커 그리고 디스커버 카드를 인수하면서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회사의 운명을 뒤집어주지 못했다.


1987년 초대형 할인 제도를 도입했고, 1988년에는 안과 병원 체인, 양복점 체인 및 자동차 부품 체인을 인수했다. 모두 소용이 없었다. 1980년대에 K-마트의 매출이 시어스를 넘어섰다.


하지만 핵심 사업을 바꾸지 않은 이상 매출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1991년이 되자, 월마트마저도 시어스의 매출을 뛰어넘었다. 1992년, 2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하자, 47,000명의 임직원을 감축했다. 새로운 의류 코너를 신설하고, 의류업체 렌즈 엔드를 사들이는 한편, 공구 판매 체인 오차드를 인수했고, 시어스 신용 카드도 선보였다.


시어스가 진행한 사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시어스였기 때문이다. 시어스가 과거의 소매업체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어떤 노력에도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없었다. 2003년 시어스는 금융 사업을 씨티 그룹에 매각했지만 이미 매출은 월마트, 타깃 및 홈 데포에게 뒤졌다. 시어스 말고도 갈만한 더 나은 소매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른 소매업체들이 보여주는 변화와 혁신을 시어스에게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다른 회사들의 혁신을 따라 할 뿐이었다. 새로운 금융 상품이라고 내놓은 것들도 다른 회사들보다 못한 것뿐이었고,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한 사업을 고집했다.



시어스 홀딩스로의 변모


1972년부터 K-마트에 인수된 2005년까지, 시어스의 주가는 단 2배 상승했을 뿐이었다. K-마트는 파산을 끝내고 K-마트 홀딩스로 재탄생한 다음, 2005년 시어스(공식 명칭은 시어스, 로벅 & 컴퍼니)를 110억 달러에 인수했다. 시어스의 주주들은 주당 현금 50달러를 받든지, 새로 탄생한 시어스 홀딩스의 주식 0.5주를 받든지 선택할 수 있었다.


시어스 홀딩스는 2006년 15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2010년이 되자 적자로 전환했고 이후 매년 적자가 이어졌다. 시어즈가 지니던 병이 시어스 홀딩스로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아래 차트에 나타난 것처럼, 꾸준한 추락이 계속되었다. 반면 K-마트 홀딩스의 주가는 2003년 파산의 종료한 시점 10달러에서 시어스를 인수한 2005년 100달러까지 호조를 보였다.


시어스 홀딩스의 주가는 2007년 195달러로 절정에 이룬 후부터 꾸준히 하락했다. 주당 30센트까지 하락한 주가는 1915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고, 100년이 넘도록 이룬 성장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시어스 홀딩스의 주가

시어스 홀딩스의 이야기는 시어스, 로벅 & 컴퍼니의 이야기와 같다. 시어스는 성공한 다른 소매 업체를 모방하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맞는 방정식을 찾아내지 못했다. 21세기가 아니라 여전히 1970년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시어스는 2010년 3,500개의 매장을 운영했지만 2017년에는 695개에 불과했고 2018년 10월에 파산이 발표될 당시에는 100개가 조금 넘을 뿐이었다. 이제 이마저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시어스 vs. 아마존


시어스와 아마존의 비슷한 점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시어스의 무기는 카탈로그였던 반면, 아마존은 인터넷이 무기였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팔려고 했다. 대형 물류 센터를 중심으로 수백만의 고객들에게 수백만 종의 제품을 우편배달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박리다매 방식으로 사업을 구축했고, 경쟁을 헤쳐나갔다.


100년 전 시어스는 지역 일반 매장들을 몰아냈고, 아마존은 쇼핑몰과 (시어스 같은) 소매업체를 파산으로 이끌었다. 두 회사 모두 한 가지 제품 판매에서 시작해(시어스는 시계, 아마존은 책),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으로 성장했다.


고객들에게 최고의 소매점에 머물지 않고, 유일한 소매점이 되려고 했다. 시어스는 올스테이트와 더불어 보험업에 참여했고,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과 아마존 웹 서비스를 통해 TV와 인터넷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아마존의 주주들은 회사의 성장과 함께 엄청난 이익을 보았다. 1997년 5월 15일 상장 시점부터 2018년 9월 2,050달러의 고점을 기록할 때까지, 아마존의 주가는 1,000배 상승하면서, 21년 동안 연평균 3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시어스의 주가 역시 1908년에서 1929년 사이 100배(배당금을 재투자했을 경우 200배) 상승했다.

월마트의 주가

다른 소매 업체들 중 비슷한 성장률을 보인 곳은 월마트뿐이었다. 1970년 11월에서 1999년 12월까지 월마트의 주가는 6,088배 상승했으며(연평균 35%의 수익률), 배당금을 재투자했을 경우에는 7,185배가 된다(연평균 35.8%의 수익률).


월마트의 시가총액은 1970년 11월 3,000만 달러에서 1999년 3,800억 달러로 연평균 37.5%씩 증가했다. 1970년에서 1999년 사이, 월마트가 도약과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시어스는 쇠퇴와 추락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29년 이후 시어스와 1999년 이후 아마존의 발자취를 따르지는 못하면서, 월마트의 주가는 1999년 대비 단 50% 상승하는 데 그쳤다. 1970년에서 2018년 사이 연평균 수익률도 20%로 떨어졌고, 자사주 매입으로 인해 2018년 시가총액도 1999년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시가총액 면에서 시어스는 1893년 15만 달러에서 1906년 1,500만 달러로, 다시 1929년 7억 9,500만 달러로, 이 29년 기간 동안 총 5,000배 증가했다. 아마존의 경우 1997년 5월 15일 상장 당시 시가총액은 5억 6,000만 달러였다. 그리고 2018년 9월 시가총액 1조 달러로 연평균 42%, 거의 2,000배 증가했다.


하지만 시어스의 성장에서 보듯 아마존 또한 42%의 성장률을 계속 지속해 나갈 수 없다. 이 같은 성장률이 앞으로 10년 동안 지속된다면, 아마존의 시가총액이 미국의 GDP를 넘어설 것이다.


또한 아마존 주가는 1999년 4월을 고점을 찍은 후, 다음 2년 동안 95% 폭락한 경험이 있으며, 2009년 10월까지 10년 동안 주가가 거의 상승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어스 또한 1929년에서 1933년 사이 95%나 주가가 하락했고, 1949년까지 20년 동안 1929년의 주가보다 낮았다. 만일 아마존이 다시 95% 하락을 겪게 되면, 주가는 100달러로 떨어질 것이다. 물론 아마존의 주주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아마존의 주가

아마존, 21세기의 시어스가 될 것인가?


시어스는 우편 주문 사업에서 1920년대 소매 사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고, 1970년대까지 승승장구를 계속했다. 지금의 아마존은 1920년대의 시어스의 상황과 비슷하다. 아마존은 자체 매장을 늘리며 홀 푸드 마켓을 인수해 고객들에게 식료품을 판다. 지금까지 아마존은 시어스의 발자취를 훌륭하게 따라왔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도 그럴 것이다.


아마존 주주들은 시어즈가 1920년대에 했던 것처럼 앞으로 50년 동안 성장하길 기도하겠지만 그 어떤 회사도 계속해서 연평균 40%씩 성장할 수 없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마존의 성장 또한 정체될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만일 아마존이 100층짜리 빌딩을 짓게 되면, 아마 그때가 아마존 주식을 팔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원문: 피우스의 책도둑 &(1부/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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