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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로봇'을 통해 알아보는 인간의 뇌와 정신 건강

조회수 2018. 11. 5. 17: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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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인공지능을 고치는 방법

※ The Guardian의 「What depressed robots can teach us about mental health」를 번역한 글입니다.


출처: 〈Detroit: Become Human〉

우울증은 오직 인간만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우울증과 우울함에 관해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토대로 접근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3억 5,0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숫자와 비중은 계속 늘어납니다.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가 꽃을 피운 데는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가 크게 기여했죠. 이번에는 반대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정신건강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인간의 뇌든 인공지능 기계든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면 지능이 여기에 반응하는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대체로 비슷하리라는 것이 바로 계산 신경과학(computational neuroscience)의 핵심 전제입니다.


모든 형태의 지능은 결국 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틀을 제공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해 이를 바탕으로 지능의 주인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워 행동에 옮기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지능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적당한 유연성을 발휘해 학습하고 지식을 쌓는 겁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세계관은 수년간의 오랜 경험을 통해 서서히 형성됩니다.


하지만 때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 가게 되는 경우가 그렇죠. 이럴 때는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유연성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얼마나 유연하게, 재빨리 바꾸어내는지 판단하는 척도를 “학습률(learning rate)”이라고 부릅니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 사람은 우울해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사고로 크게 다쳐 몸 어딘가를 못 쓰게 됐을 때 우리 뇌는 세상 모든 것들을 새로 인식하고 다시 분석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잘 치러내는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서 살게 되지만, 그렇게 못하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인공지능이 우울해진다는 생각은 무척 이상한 발상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기계도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직면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갑자기 고장이 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로봇을 생각해보세요. 로봇은 원래 프로그램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새로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할 겁니다.


이때 학습률이 높지 않은 로봇은 알고리듬을 바꿔 환경에 적응할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고장 난 정도가 심각한 경우에는 아예 목표를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지고 포기한 로봇은 더 이상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우울한 인공지능을 고치는 간단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기계의 주인이 인공지능의 학습률을 높여주는 겁니다. 다만 예를 들어 수십 광년 떨어진 또 다른 태양계로 빛과 신호를 쏘아 보낸 인공지능 같은 경우에는 주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률을 조정해야 하는데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유연성을 높게 설정해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유연성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학습률이 너무 높으면 그 사람이나 인공지능은 배운 것을 바로바로 잊어버리고 지식을 쌓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또한 너무 유연해 명확하지 않은 목표를 주면 인공지능은 이도 저도 못 하고 새로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갈피를 잡지 못할 겁니다.

계산 정신과 의사들이 신경조절기(neuromodulators)라고 부른 어떤 기능이 인간의 뇌에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치면 학습률을 조정하는 요인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인체의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담당하는 호르몬 체계도 신경 조절기의 일부입니다. 뇌 속에 아주 미량이 있을 뿐인 이 세포들은 한 번 분비되면 뇌 전체에 특별한 화학적 메시지를 보냅니다.


제 실험실에서 진행한 연구를 비롯해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뇌는 세로토닌 체계를 통해 학습률을 조정합니다. 우리는 실험용 쥐를 어떤 원칙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게 학습시켰다가 갑자기 그 원칙을 바꾸어봤습니다. 이때 가장 강력하게 반응하는 뉴런이 세로토닌 분비를 담당하는 쪽의 뉴런이었습니다. 마치 뇌 전체에 놀랐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깜짝이야! 얼른 기준을 바꿔서 대응해야겠군.

이런 메시지였죠. 그렇게 세로토닌이 뇌의 특정 영역에 분비되면 뇌 전체의 가소성(可塑性)이 높아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가소성이란 고체가 외부에서 탄성 한계 이상의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이 없어져도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을 뜻하죠. 즉 세로토닌이 기존의 세계관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게 하는 셈인데, 특히 바뀐 환경에 맞지 않는 부분의 신경 회로가 교체 혹은 수정 대상입니다.


항우울제에는 대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SSRI)가 들어 있어서,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뇌에서 세로토닌이 원래 기능을 더 잘해 적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항우울제를 ‘행복을 가져다주는 알약’ 쯤으로 비유하는 건 사실 좀 지나친 단순화긴 합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항우울제는 주로 뇌 가소성을 자극해 약효를 듣게 합니다. 가소성과 학습률이 핵심 단서라면 결국 우울증을 이겨내는 것도 유연성을 높이는 데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접근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울증에 대한 민감성은 결국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따르는 일종의 부수적 대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입니다. 아직은 스스로 주제를 찾아 학습하는 단계는 아니죠. 앞으로 더욱 유연한 ‘범용 인공지능’이 개발될수록 우리는 동시에 이 인공지능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우울증뿐만 아니라 조현병 같은 또 다른 정신 상태를 이해하는 데도 필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간에게 우울해지는 것은 단지 학습률이 떨어지는 정도로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울증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죠. 다른 무엇보다도 그래서 우리가 우울증에 더 시급하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기계는 인간이라면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나도 따로 정서적 고통을 받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데 인공지능과 기계를 관찰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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