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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나갈 때

조회수 2018. 11. 6. 18: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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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칵테일 잔을 들었을 때는 모두 취했을 때다."

주식 다 떨어지고 나서 이런 글 써봐야 뭐하냐는 생각도 들고 사기꾼 같기도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강의 때, 주변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하던 얘기라 그냥 써볼까 합니다.


투자를 직업으로 삼기는 했지만 사실 업계의 다른 분들에 비해서 경제를 그렇게 잘 아는 것도, 개별 주식을 꼼꼼하게 분석할 역량도, 그렇다고 퀀트라고 하기에는 수학이나 컴퓨터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적고 보니 엉망이군요. 그래도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자신 있게 생각한 점이 바로 ‘눈치’ 입니다. 내 옆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나, 저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항상 레이더를 켜는 편입니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금융을 공부하고 일도 이쪽에서 하면서 금융시장에도 항상 레이더를 켭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시장참여자들의 ‘센티멘트’에 신경을 씁니다. 흔히 ‘공포에 사서 탐욕에 팔아라’는 투자 격언이 있습니다. 말로는 너무나 쉽고 이상적이지만, 그렇다면 대체 공포는 언제고 탐욕은 언제인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아직 공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탐욕을 찾을 수단은 꽤 많은 듯합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여의도 IFC의 서점에 가서 경제·경영 서적의 신간은 무엇인지, 베스트셀러는 무엇인지 확인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투자·비투자 인터넷 카페에 어떤 글이 주로 올라오는지 군집화해 생각합니다. 서점의 신간 코너가 하나의 주제로 도배되고, 인터넷 글 또한 동일한 주제로 도배될 때가 바로 탐욕의 파티가 아닌가 항상 생각합니다.


가장 정확한 예가 2017년 말입니다. 사실 암호화폐가 새로운 화폐가 될지 적정 가치가 얼마일지 그런 건 별로 관심 없습니다. 페이스북 글의 90% 이상이 비트코인 글로 도배되고(그것이 찬성이건 반대이건), 투자와 전혀 관련 없는 카페조차 비트코인 글로 도배되고, 출근길 지하철을 탄 옆 사람들이 모두 비트코인 차트를 볼 때, 그것은 유행을 넘어선 광기였습니다.

대부분 서점의 신간 코너와 베스트셀러는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책으로 도배되었죠. 심지어 ‘가짜! 공식’과 ‘돌파리 전략’ 비트코인에 투자하면 매해 100% 벌 수 있다면서 헤이호구를 모집하던 사람들까지 있었으니… 한평생 농촌에서 과수원을 하던 제 할아버지가 비트코인이 뭔지 물어보던 때, 택시 기사님이 신호를 기다리던 와중에 코인 차트를 보던 때, 저는 파티가 끝날 때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작년 페북에 엄청나게 비난했던 걸 보면 아시겠죠.


2015년과 시장 초반 바이오가 미친 듯이 올라갈 때, 증권사에서 일하던 제 주변에는 ‘누가 바이오로 몇억, 몇십억 벌었다’는 말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렸습니다. 사기만 하면 오르던 시장에서 투자 경력이 1~2년도 안 되는 젊은 매니저들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개인 투자를 하러 나가는 경우도 많았죠. ‘이제 한국에서 공장과 굴뚝주의 시대는 지나갔다,’ ‘바이오 만이 한국을 먹여 살릴 유일한 산업이다’ 하는 장밋빛 미래가 매일 쏟아졌죠. 그리고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듯이 7~8월에 바이오는 와장창 무너졌죠.


2018년 3월쯤 셀트리온이 코스피 편입되는 이슈와 맞물려 바이오가 하루도 쉬지 않고 오르던 상황도 똑같았죠. 심지어 가치투자를 주제로 삼는 카페에서조차 글의 90% 이상이 바이오로 도배되었고, ’21세기에 진정한 가치투자는 바이오다,’ ‘벤 그레이엄식의 가치투자는 더 이상 맞지 않다’는 식의 조롱도 쏟아지고는 했습니다. 그 미래는 현재 차트를 열어보시면 알 겁니다.


올해 초 한국에는 부동산 광풍이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부동산은 신고가를 기록하였고, 역시나 서점의 신간과 베스트셀러 코너는 ‘부동산’으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페이스북 글들도 부동산으로 도배되었고, 지하철을 타면 너도나도 ‘부동산 스터디’ 카페를 열어서 확인하더군요. 뭐 부동산은 살 돈도 없고 관심도 딱히 없지만 확실히 광기의 꼭지에 있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는 10년 주기설의 강한 신봉자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끝나가는 시점이 대략 이 정도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올해 초부터 강의를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한번 강한 쇼크가 올 거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습니다.


올해 초 한국 주식의 하락 폭이 커지면서 투자 카페에는 ‘더 이상 한국 주식에는 미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전 재산을 미국에 투자할 겁니다.’라는 글이 쏟아졌습니다. 대략 계산해보니 하루 올라오는 글 중 60~80%가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법에 대한 질문과 조언들이었고요.


이때도 역시나 몇 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미국 주식이 쉬어갈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주식이라는 위험자산 전체에 대해서요. 딱히 이유는 없이 이러한 ‘센티멘트’에 의거해서요. 사실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은 FAANG으로 대변되는 성장주들이 끌어올렸다고 봐도 무관합니다.


성장주들은 엄청난 기름을 먹는 스포츠카와도 같습니다. 달릴 때는 멋있지만 연료가 떨어지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이죠. FAANG에서 페이스북의 이익이 하락하자, ‘이제는 FAANG이 아닌 MAANG의 시대다’ ‘아니다, ○○ 시대다’라는 또 다른 새로운 신조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냥 등유가 바닥났으니 경유를 넣자는 식의 논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작년과 올해 금융시장을 돌아보면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칵테일 잔을 들었을 때는 모두가 취했을 때고, 조만간 파티가 끝날 때다.

원문: Henry’s Quan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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