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소리를 안 지르는 아빠'가 존재한다고요?

조회수 2020. 9. 16. 18: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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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취급하는 이별은 그만하기로 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적지 않은 횟수의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사람은 매번 달라지는데, 왜 내가 겪는 이별은 늘 패턴이 비슷한 걸까?

믿었던 마지막 연애의 이별도 그랬다. 그 사람이 나와 맞지 않았다는 이유는 너무 지겨웠다. 거울 속 만신창이가 된 내 모습을 들여다보다, 더는 그와 같은 궤변들로 나를 포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며 상처를 대충 ‘퉁치는 습관’을 그만두기로 했다. 연애의 패잔병이 될 때마다 친구들이 해주던 ‘안온한’ 위로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어쩌면, 내 안에,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히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빠’가 거기서 왜 나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상담센터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어릴 적 엄마가 이혼한 뒤로 너무도 오래 잊고 살았던 그 이름, 내 삶에서 감쪽같이 지워졌다고 믿었던 ‘아빠’라는 단어가 망치질을 잘못해 튀어나온 못처럼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그거 아세요? 내담자님은 ‘아빠’에게 거절당한 상처가 깔려 있어요.

나를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끝없이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던 나의 갈증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이젠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아빠에게 거절당한 이후 생겨난 ‘생존본능’이었다니.


‘아빠’로부터 시작된 이런 식의 방어기제는 비단 ‘연애’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한참의 세월을 통해 가까스로 씻어낸 아버지의 존재가 이렇게 또 내 발목을 잡는구나. 절망스러웠다.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은데, 이게 자신을 향한 분노인지 아버지를 향한 분노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 그러나 엄마의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여 안정된 정서적 유대감을 갖지 못하면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불안정 애착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진화적 적응인 애착 체계가 비단 인간의 생애 초반에만 작용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생애 전반에 걸쳐 지속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 55쪽

내 마음속의 ‘아빠’를 어쩌지 못하고 끙끙댈 때 『오해하지 않는 연습, 오해받지 않을 권리』는, 나에게도 상당히 유의미한 ‘거울’이 되어주었다.

오랫동안 바라보지 못했던 ‘나’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남’과도 잘 지낼 수 있다


관계의 종료를 암시하는 가장 강력한 징후는 ‘침묵’이다. 싸움을 부르는 대화마저 사라져갈 때, 우리는 이별을 직감하고 조금씩 만남의 끝을 준비한다.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연인이자 전우로서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과의 관계는 결혼 후 점점 더 많은 침묵으로 채워졌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상처 치유’ 공부를 결심했고, 그렇게 7년의 세월이 지났다.


저자는 치열한 연구 끝에 타고난 ‘기질’과 ‘애착성향’에 의해 관계 맺는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키워드는 ‘애착성향’이다. 기질은 유전자에 가까운 것이라 바꿀 수 없지만, 애착성향은 상호작용을 통해 ‘치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아가, 저자는 남편의 기질과 애착성향이 모두 자신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외향적인 ‘ 확대형’ 기질의 남편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적극적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 저항형’ 애착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자기 홀로 일에 몰두하길 좋아하고 싸움을 싫어하는 ‘ 축소형’ 기질에, 좀처럼 사람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는 ‘ 회피형’ 애착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기 때문에 결혼까지 선택한 두 사람이었지만, 더 깊게 알고 보니 서로는 자석의 S극과 N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빠’에게 사랑 못 받은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무엇이 저자에게 ‘축소형’ 기질에 ‘회피형’ 성향을 갖게 만들었을까? 잠시 저자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자.


저자의 가정은 ‘남들이 보기에’ 경제적으로 유복하고 꽤나 화목한 편에 속하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기억 속에서 ‘집’은 아버지가 만든 감옥과 유사한 것이었다. 사랑하는 만큼 단속이 심했던 아버지의 눈치를 보느라, 친구와 전화 한 통을 하기 위해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나를 지배했다

결국 이런 맥락이 쌓여 저자로 하여금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전에 알아서 미리 포기해버리는 ‘회피형’의 사람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세상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상처는 ‘나와 부모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지, 일방적으로 ‘부모의 어떤 태도가 나의 상처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의 모습은 자신의 특성과 부모의 특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 앞의 책, 196쪽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성향일까? 책 속의 언어에 따르면 나는 ‘저항형’ 애착성향에 가까웠고, 그 경험적 근원은 끊임없이 나를 비하하고 무시하던 ‘아버지’의 언어습관이었다.


지방에서 건축 현장으로 출근하던 아버지가 집으로 올라오던 주말이면 ‘오늘은 얼마나 마셨을까?’ 두려워하던 마음. 정확히 어떤 말들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운이 나빠 내 방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만취한 아버지를 마주친 날이면 새벽이 되도록 고갤 숙인 채 받아내야 했던 ‘폭언’의 온도. 피부가 기억하는 그 미칠 듯한 분노의 온도들. 알코올 냄새…

칼에 손을 베이면 상처가 났다고 말하듯, 즐겁지 못한 경험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이것이 마음에 남으면 우리는 ‘상처를 받았다’고 표현한다. 즉, 마음의 상처란 부정적 감정의 새김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희미하게 잊히지만 그 상황에서 느낀 부정적 감정은 우리 의식 밑바닥에 쌓여 불안정한 정서로 잠재한다. 그리고 잠재된 감정은 그것을 소환해낼 만한 조건과 만났을 때 즉시 활성화되어 즉각적이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 앞의 책, 185쪽


드라마를 보다가 이상한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다


참 열심히 챙겨봤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윤진아’가 연애의 두근거림을 참지 못하고 연하의 남자친구 ‘서준희’를 만나기 위해 가족 몰래 집 밖으로 나선다. 그렇게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동이 트기 전에 돌아오는 데 성공하지만, 귀가한 윤진아를 기다리는 것은 빈방에 앉아있던 아빠였다.

출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JTBC
외박한 딸을 기다리던 ‘아빠’

나는 이 장면을 보다가 그만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 뒤에 일어날 일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얼굴은 있는 대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었고, 숨이 막힐 듯한 침묵 끝에 날아올 아빠의 단어들은 내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아의 아버지는 달랐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진아에게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물론 딸의 연애를 어렴풋이 짐작하지만, 언젠가 딸이 정확하게 말해 주기를 기다린다고 말하면서 그 상황을 조용히 넘어갈 뿐이었다.

출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JTBC
매우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했다.

갑자기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이 흘렀다.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왜 나는 저런 아빠를 가지지 못한 걸까? 그리고 나는 어째서 아직 아버지의 긴 그림자 안에 있는 것일까?


변하고 싶어졌다. 그 시절의 무력한 소녀를 마주해버린 이상 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대화’를 했다면 우리의 끝은 조금 달랐을까?


저자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말하는 것을 요약하자면, 결국 ‘대화’의 힘으로 수렴된다.


애초에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끌린다. 다르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타인과 ‘다르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왜 진작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걸까. 으르렁대며 싸울 만큼의 용기만 있었으면, 할 수 있었던 대화가 그렇게 많았다는 것을, 왜 진작 생각해보지 못했던 걸까. 

우리가 ‘상처’라는 단어를 언급하길 꺼리는 것은 자기 상처의 근원에 부모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장 환경에 대한 고찰 없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해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피상적인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 앞의 책, 195쪽

배우자의 다른 표현인 ‘반려자’라는 단어는 ‘짝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7년의 세월을 대화함으로써 마침내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된 저자와 그녀의 남편을 보자니, 결혼생활이란 평생에 걸쳐 서로에게 엄마·아빠가 되어주는 역할놀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하던 소꿉놀이와 비슷한, 하지만 훨씬 더 사실적이고 치열한. 그 역할놀이를 통해 비로소 상처 입은 유년기를 벗어나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 부부관계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저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결혼이란 나의 두 번째 엄마, 두 번째 아빠를 만나 새로 태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애착은 애착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안정된 애착은 자유롭고 질 높은 탐색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원이라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애착의 최종 목적은 건강한 분리독립이다.

사랑받으면 사랑 속에서 성장한다. 성장하면 독립하려 하고, 독립하면 자기 고유의 삶을 사는 것이 자연의 원리다.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 앞의 책, 135~136쪽


다시 거울 앞에서 ‘나’를 마주 본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지극히 상투적인 문장의 의미를 나는 오랜 시간 내버려 둔 나를 마주하고 난 후에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때로는 나의 아빠가 되어주고, 때로는 나의 아들이 되어줄 ‘반려자’를 나는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부모의 영역에서 떠났고 성인이 되었다. 기혼자는 결혼을 통해 다시 한번 친밀한 애착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배우자가 과거 양육자인 엄마의 대역이 되어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을 재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서로의 무의식에 내재된 상처를 들춰내도 그것이 갈등의 시작은 아니라는 안전감을 주고받아야 한다.

- 앞의 책, 200쪽

언제 어떤 이름과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언젠가 만날 ‘그’와는 조금 더 성인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고 싶으니까, 운명이 내게 오는 그때 ‘제대로’ 사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내가 나의 ‘아빠’가 되어 보기로 한다. 작은 어깨를 떨며 너무 많은 말의 가시 다발들을 홀로 받아내던, 그래서 너무 외로웠을 그 시절의 소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YES24 / 교보문고 / 알라딘 / 인터파크 / Daum 책

※ 해당 기사는 웨일북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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