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한국이 절대 스스로 성과를 내기 힘든 장르다

조회수 2018. 10. 12. 10: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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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획자가 그려낼 수 있는 세계관은 매우 한정적이다.

〈검은사막〉을 만든 펄어비스가 〈이브 온라인〉의 개발사 CCP게임즈를 인수했다. 이후 사업성과의 결과야 게임 프로덕트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니 장담할 수 없지만, 국내 업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정말 훌륭한 사례라고 평가하고 싶은 인수건이다. 아마도 게이머라면 대번에 이해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업 베이스의 시각에서는 긴가민가할 텐데 이유를 좀 풀어본다.

SF는 한국이 절.대. 스스로 성과를 내기 힘든 장르다. 얼마나 많은 국내 타이틀이 이쪽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는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개척의 역사를 배우고 NASA 같은 연구기관을 동경하며 살아온 서구 아이들, 반면 평생 한반도 내의 스코프를 갖고 과학관은 두 번 정도 갔을 한국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그럼에도 SF는 선호 층이 폭넓은 장르에 해당한다. 특정 문화가 등장하지 않고 인종적·사회적 다형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현실적이기에 한국에서나 인기가 없지 해외에서는 문화적 장벽(cultural discount)이 가장 낮은 설정과 세계관을 갖는다 말할 수 있다. SF로 성공한 IP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매스 이펙트〉 〈헤일로〉 〈데스티니〉 〈타이탄폴〉 심지어 〈폴아웃〉도(…) 이게 SF가 아니고 무언가.


한국 기획자가 그려낼 수 있는 세계관은 매우 한정적이다. 진성 서구권 유저가 생각하는 중세나 판타지 월드의 모습은 피 튀고 냄새나고 비정하고 무섭고 어두운 북유럽의 설화들에서 시작하지만, 한국인이 생각하는 판타지는 디즈니랜드인 양 아름다운 세계에 공주·왕자 닮은 미남미녀가 등장하고 와우가 살짝 섞인 정도가 한계라는 점에서 이미 한국 판타지 RPG가 왜 해외에서 안 먹히는지 설명해준다.


여기서 조금 확장했던 게 무협이었고, 그다음에 어중간한 스팀펑크(사실 〈몬스터 헌터〉의 그것도 조금 애매하다), 또는 〈파이널 판타지〉에서 보기 쉬운 믹스 판타지 어딘가 정도가 상상의 한계인 것. 혹은 왜인지도 모를 소년·소녀가 모험을 떠나는 정도. 설정이나 내러티브가 안 중요하다는 개발자가 많은데, 그게 한국에서 현실반영 드라마 외에는 IP가 잘 발달하지 않는 이유다.

〈파이널 판타지〉

IP 측면에서는 위와 같은 탓에 잘하는 플레이어를 사 버리는 게 당연하지만 기술 측면에서도 CCP는 어마무시한 회사인데, 과거 게임 전체를 파이톤(Python)으로 개발하는 기이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법 잘 돌아간 것이 문제(…) 최근에는 그걸 또 상용 엔진으로 죄다 옮겨 가기도 했다. 어쩌면 CTO가 진짜 행복한 회사일지도…


자체엔진의 경험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래픽스와 로우 레벨 개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팀은 상용 엔진을 활용하더라도 그 수준이 겨우 엔진에 맞춰 개발하는 팀들과는 레벨이 다르다. 대단한 프로덕트를 만들 것도, 딥 레벨의 엔진 커스터마이징도 않고 쓸 거면서 언리얼이니 유니티니 하는 개발자는, 그냥 기호 탓이거나 변명을 한다고 봐도 좋다.


게다가 가격인데, 시각에 따라서 평가는 다르겠지만 PSR 2.7배, PER 40배 수준의 가격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 펄어비스 정도 규모의 회사에서 2천억 이상을 배팅할 수 있었던 용기, IP 확보와 관련한 전략적 자신감, 개발기술의 결을 맞출 수 있었던 열린 생각, 앞으로 같이 그릴 미래에 대한 그림 등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냉정하게 한국에 제대로 된 개발사는 펄어비스 하나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경영진 레벨에서 게임이라는 콘텐츠와 주변 환경에 대한 묵직한 방향성이 없었다면 결정하기 힘들었을 딜에 해당한다. “게네 그게 IP냐” “그래서 얼마 버냐” “엔진 그거 뭐 그냥 사서 쓰면 안 되냐” “우리 애들은 글로벌 못하냐” 이런 질문에 이성적인 답만 찾아내서는 시도할 수 없는 건이니까.

결론적으로 ‘모바일은 처음인데 잘하겠어?’라는 우려도 듣던 첫 모바일 타이틀인 〈검은사막 모바일〉이 나왔을 때 같은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클라이언트 레벨에서만도 놀라운 부분이 많이 보였던 기억이 난다. 좋은 회사가 꼭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들만이 꾸준히 견뎌내며 의미 있는 타이틀을 만들어낸다는 걸 상기하면 이 회사를 응원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쑥쑥 성장해서 한국에도 제대로 된 개발사가 존재한다는 걸 오래오래 보여줄 수 있길. 업계에 미래가 없을 줄 알았는데 다음 세대의 강력한 회사가 이렇게나 성장하고 뻗어 나가다니.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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