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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분이 나쁘다

조회수 2018. 10. 2. 1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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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하나 해피한 이가 없다.

좀 신경 안 쓰고 살려고 해도, 어디 가면 하는 소리가 다 부동산 이야기뿐이다. 어디가 얼마가 올랐네, 누가 얼마를 벌었네 하는데 이렇게 내 마음은 기분만 나쁘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봐도 모두가 기분 나쁜 사람뿐이고 누구 하나 해피한 이가 없다.

각자의 이유로 기분이 나쁘다


무주택자. 전에는 조금만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던 그 평범하고 식상하며 비근한 집들이, 이제는 1-2억씩 오른 건 예사고 3-4억 뛴 곳도 있어서 닿을 수 없는 당신이 되어버렸다. 언제부터 거기가 그렇게 좋은 데였다고, 말도 안 된다고 해보지만 막상 부동산 가보면 현실이 너무 냉정하다. 계약금 넣겠다면 안 판다고 하고, 매물은 씨가 말랐고, 가격은 기세가 등등함을 넘어서 황당할 정도다.


1주택자. 살다 보니 집 좀 넓혀 볼까, 아님 직장 가까운 데로 좀 이사가 볼까 하고 생각했는데, 내 집 오르는 속도보다 가고 싶은 집이 달아나는 속도가 두 배는 빠른 것 같다. 부동산에서는 얼마에 팔아줄 테니까 내놓으라고 하는데 내가 이사 갈 집 물건을 잡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이런 분위기에서 내 거 팔고 갈 거 못 잡으면 나만 바보 될 게 뻔한데,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뭐가 아다리가 맞아야 하지 그냥 계속 이 집 살아야 하나 싶고 옮겨볼 엄두도 안 난다.


다주택자. 가격이 너무 뛰니까 어리둥절하기는 한데 어차피 팔 수가 없다. 적당한 때에 실현하고 뭉쳐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데, 옴짝달싹할 방법이 없다. 손발 다 묶인 채 그냥 시간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며 관망, 관망의 연속이다. 다만 국가적 대역죄인으로 지목된 바라, 기분이 나빠도 기분 나쁘다는 말도 못 하고 그냥 잠자코 세금을 내며 눈치만 살필 뿐이다.


정부는? 제발 말 좀 들으라고 대책을 계속 내놓았는데 사람들은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이 없고 가격만 자꾸 뛴다. 당·정·청의 말과 생각과 입장이 다 따로 노는데 하여간 일 못 해 먹겠다. 장관과 부처 내부의 생각까지 다른 것 같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도 기분이 나쁘다. 가격이 너무 빨리 뛰니 매수자들이 의사결정을 망설이고, 거래량이 줄어서 장사가 힘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공인중개사협회가 나서서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 앞에서 단체로 시위를 했다는 웃지 못할 뉴스까지 들려왔던 차다.

출처: 공인중개사협회

다른 관점에서도 기분이 나쁘다


짜증 나는 이들은 또 있다. 마포 32평이 이제 14억을 넘어 15억에 차오르는데, 잠실 가격은 여전히 16억 언저리에 걸려 있다. 1년 전에 13억이었으니 2~3억 오른 건 맞는데, 이거 슬슬 또 기분이 나쁘다. 우리도 한 20억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그렇게 상승압력이 호가를 밀어 올리고 하나씩 체결이 되면서 가격표가 바뀌어 간다.


잠실이 20억이라고? 그렇게 되면 강남도 기분이 나쁘다. 역삼·도곡·대치가 바로 또 가격표를 바꿔 달 것이다. 20억을 넘어 22-23억 부르면 그다음엔 반포가 기분이 나쁘고, 이걸 보니 흑석은 흑석대로 기분이 나쁘다. 다음 타자로 신길이 13억을 이야기하고 갑자기 또 이촌이 기분 나빠지고 윗틈이 벌어지니 상도가 왕십리가 DMC가 상암이 ‘야 우리는 뭐냐’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격이 가격을 올리고, 그 기저에 깔린 것은 기분 나쁨의 정서다.


그렇게 가격표는 다 바뀌었는데, 아무도 행복하지가 않다. 사실 왜 오르는지도 이쯤 되니 모르겠고, 수급이네 유동성이네 필요 없는 별나라 잔치다. 예전에는 비슷비슷한 동네들끼리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인터넷에서 멱살을 잡고 훌리건 싸움을 했다면, 이제 그런 절차 생략하고 위아래 순서 상기하며 가격표로 자존심 싸움을 한다.


그 와중에 경기도는 완벽히 소외되었는데 이제는 그린벨트까지 풀어서 물량을 더 퍼붓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기분이 나빠진다.

출처: 한겨레

또 누군가가 기분이 나쁘다


이전 글에서 ‘청약가점제의 확대적용이 사람들의 불안감과 조급함을 부추긴 트리거였다’고 적었다. 그러니까 실수요자 입장에서 지금은 전세 살더라도 나중에 청약으로 좋은 새집 사서 갈 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그게 끊어지니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대출 많이 각오하더라도 너나 할 것 없이 기축 아파트 매매에 나섰다는 것이다. 처음엔 원래 눈높이의 집을 바라봤지만 가격이 자꾸 뛰니 이제는 한 단계 눈을 낮추고 낮추어서, 매수 달성 자체에 포인트를 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러면 좋다. 청약가점제 100%는 너무 심했으니까, 다시 40% 정도는 추첨제로 배분하겠다’ 정부가 발표한다고 치자. 어떻게 될까? 또 누군가가 기분이 나쁘다. 청약통장 15년 이상 유지했고, 부양가족 수 많아서 가점제가 유리한 40대 중반 이상의 사람들이 말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긴 시간 무주택을 감수했고, 이제 돈 좀 모으고 점수 따서 분양 한번 받아보려고 했는데, 왜 쟤들이 새치기하냐는 것이다. 기분 나쁠 만하다.


양도세를 한시 감면해서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게 하면 풀릴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미안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다. 아마도 다주택자들은, 양도차익이 많은 물건부터 세금을 털고 가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집을 판 돈으로 다시 집을 살 것이다. 이왕이면 불확실성을 줄이려면 다주택자들끼리 팔고 사고를 주고받을 것이다. 내야 할 세금을 한 번 털고, 취득가액을 높여놓을 수 있는 좋은 찬스가 될 뿐일 것이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뻔히 보이는 수를 용인하기에는, 기분이 나쁘다.


실수요자는 내 집 하나 가져보려는 시도조차도 번번이 막히니 이제는 기분이 나쁘다 못해 기진맥진할 판이다. 청약 안 되지, 대출 안 되지, 매물 없지, 안 그래도 짜증이 나는데 이제는 부부합산으로 연봉 7,000만 넘어도 고소득자가 어떻고 전세대출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거듭 말하지만 SGI서울보증은 되고 하는 문제 하나도 안 중요하다. 


안 그래도 하려는 것마다 번번이 길이 막혀서 잔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이젠 나까지 고소득자고 투기세력이고 적폐라고? 도시 근로와 자녀 양육의 책임이 있어서 직주근접의 아파트를 정말로 구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절박감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사람들의 고민이 사치스럽고 배부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당하는 실수요자는 굉장히, 기분이, 많이 나쁘다.

출처: 경향신문

모두가 기분이 나쁘다


명절에는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여서 또 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지방 사는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여간 서울 공화국, 우리와는 딴 세계 이야기인지 집값이 10억, 15억 한다는데 무슨 소리인가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기분이 나빠서 한마디 하면 가족 다 같이 기분이 나빠진다.


서울 살다 보니 어쩌다 그 파도에 올라타 있기는 한데 내 생활이 얼마나 빡빡하고 힘든지 이해해주지 않는 것에 마음도 상한다. 그렇게 지난 1년간 들끓는 용광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모두는 기분이 나빴고 피폐해졌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은 계속해서 기분이 나빠야 할 것 같다.


모든 것이, 하여간 기분이 나빠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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