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팔로워는 왜 현실의 독자가 되지 못했는가

조회수 2018. 9. 14.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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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얻은 인지도는 그리 단단하고 효율적인 기반이 아니다

근래 인터넷상(특히 SNS)의 콘텐츠와 현실 간의 괴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이를테면 무료로 제공하는 콘텐츠가 엄청난 인기(수십만 ‘좋아요’)를 누렸음에도, 이를 유료로 전환하여 사실상 현실적인 이득을 얻을 방법이 없다는 것에 대한 회한, 좌절, 절망 같은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페이스북을 위주로 한 ‘텍스트 콘텐츠’와 관련해 계속 이야기된다. 이에 대해 간과하는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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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끈 계정이 출간하는 책이 잘 팔릴 거라는 생각은 매우 단순한 생각이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일단 페이스북을 잘 이용하는 사람들의 ‘독서율’이 높을 거라는 기대는 거의 잘못된 생각이다. 독서는 SNS와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연히 두 시간은 대체재의 관계를 이룬다.

읽고 쓰는 게 직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 독서 시장은 출퇴근 시간, 잠들기 직전, 주말의 일부를 쥐어짜서 이따금 책을 넘기는, 바로 SNS 이용자들이 인터넷을 이용할 때 책을 읽는 사람들에 의존한다. 인기 계정을 주기적으로 드나들고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유행이나 화두에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SNS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은 다름 아닌 ‘독서 시간’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그들도 TV는 적당히 보고, 직장도 다니고, 자기 계발 따위는 필수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독서 시장은 습관적으로 TV를 보거나, SNS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것처럼, 거의 동일한 층위에서 독서를 즐기는 사람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SNS에서 ‘텍스트’를 읽는다고 하여 그것이 ‘독서’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완전히 전제를 착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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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에서 기대하는 것과 SNS 혹은 인터넷에서 기대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둘 다 텍스트 콘텐츠라는 전제하에, 그 둘 사이에는 거의 ‘텍스트’라는 공통점밖에 없다.


조금 예를 바꿔서, 신문과 책을 비교해보자. 과거 신문을 열심히 읽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책을 열심히 읽었을 리는 없다. 오히려 시사에 민감하고, 매일같이 바뀌는 세상에 실시간적인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 다양한 이벤트로부터 자극을 받고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신문을 읽었을 것이다. 반대로 그러한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감성적인 삶이나, 인생의 깊이, 여러 사상 등에 관심 있는 이들이 문학이나 사회과학서 등을 읽었을 것이다.

요즘 출판 시장은 거의 두 분야가 점령했다. 하나는 ‘나열식 교양 지식’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감성 에세이’ 시장이다. 일단 전자의 교양 지식은 SNS를 통해 체계적으로 신뢰 있는 지식을 습득하기엔 무척 무리가 있다. 보통 단문으로 구성된 SNS에서, 한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일관된 체계로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 SNS의 글들은 서로가 분리되어 각각의 글들이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포인트를 집어넣어야 하기 마련이므로, 애초에 그러한 ‘교양 지식서’ 같은 구성의 글쓰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감성 에세이’인데 이는 특히 인스타그램 등 감성 중심의 SNS에서 파생되어 출판시장까지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대체로 시사 이슈나 사회적인 담론, 혹은 인터넷상에서의 세대적인 화두를 위주로 급격히 진행되는 편이라 이런 감성 에세이적인 시장과는 결을 달리한다. 실제로 출판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계정은 거의 다 인스타그램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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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인지도는 그의 작가로서의 지위를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출판 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것에 가진 어떤 ‘신뢰’와 더 연관이 된다. 이를테면,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그가 가진 이미지가 ‘교양적’이거나 ‘감성적’인 무엇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의 책은 소비되기 어렵다. 반면 그런 인지도에 그 인물의 개인적인 분위기, 신뢰도, 이미지 등이 ‘책’과 어울리는 어떤 측면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미묘한 측면에 호응하여 ‘현실적인 반응’이랄 것이 오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특정한 ‘가치’로 집중되고 수렴되어 가는 인지도가 아니라 단순한 인지도만이 양적으로 확장되었을 경우 그 인지도가 현실적인 브랜드, 이익, 입지로 전환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오히려 인지도는 덜하더라도 확고한 가치 발현이 가능한 방향으로 쌓은 것이 있다면 그에게는 나름의 독자적인 현실화 가능성, 팬덤의 형성으로 인한 독자의 확보 가능성 등이 생길 것이다.


출판시장에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작가, 지식인이 포진했다. 실제로 그들의 책에서 얻는 것들의 질은 SNS에서 짬을 내어 얻는 것들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거 하나는 확실한데, SNS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계정 100개쯤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것보다 제대로 된 책 몇 권 읽는 게 훨씬 훌륭한 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지식의 체계화 능력, 논리의 정교화, 생각의 깊이, 종합력 등 총체적인 면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SNS로 얻은 인지도는 초기 저서 몇 권 등에 대해서는 적당히 쌓은 인맥과의 상호 교류, 호기심 등으로 약간의 현실화 효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리 단단하고 효율적인 기반이 되어준다고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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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자기가 가진 콘텐츠가 실질적으로 현실화되려면 현실과의 접점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원하는 게 책을 쓰는 것이라면 SNS를 많이 해서 적당히 글을 모으기보다는 정말 책을 잘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출판 시장의 ‘진짜 독자’와 계속 부딪혀봐야 한다. 그에 더해 SNS에서 나름의 인지도도 이어간다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지만 당연히 SNS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현실과 같을 수 없다.


텍스트 시장은 정말 무서운 곳이다. 괴물 같은 고수가 널렸고 그들 사이를 비집고 뚫고 나가서 자기만의 콘텐츠를 갖기도, 그것이 드러나기도 정말 어렵다. 그런데도 시장은 좁고 온갖 화려한 배경을 등에 업은 ‘인지도 괴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숟가락 하나쯤은 얹으려 드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고 버티려면,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내적인 기반이 먼저 있어야 한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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