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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지 말자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상호 보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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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 하늘 위의 별을 따줄게’란 말과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는 이 두 말이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저 하늘의 별을 따다 줄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대신 목걸이나 반지로 그것을 대신해 달랜다면 어느 정도의 책임은 (때에 따라) 경감될 수 있겠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비교될 수 없다.


그런데 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는 말이 더 무책임하게 들린다. 자신의 진로를 위한 고민이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보면 좀 무섭기까지 하다. 정말 상대방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일까? 상대방의 처지와 고민의 무거움은 공감하면서 던진 말일까?

물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라는 말은 달콤하다. 너무나 달콤해서 문제다. 지쳐 힘든 사람의 입을 벌려 그 속으로 초콜릿 십여 개를 욱여넣는 것과 같다. 초콜릿을 준 사람은 달콤한 것을 줬으니 되었다고 안심하지만, 그것을 받아 든 사람은 잠시 달콤하다 금세 시무룩해진다. 너무 많은 달콤함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이분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말 그럴까? 그 둘은 양극에 존재하거나 상충되는 일일까?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불행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하면 행복한 것일까? 전자를 하면서 살면 실패한 인생이고, 후자를 하면서 살면 성공한 인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둘은 상호 보완의 역할을 한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시너지의 효과를 내면서 말이다. 우선 둘의 내포된 뜻을 먼저 알아보자.


1. 해야 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이란 말이 그다지 달콤하지 않은 이유는 ‘자의성’보다는 ‘타의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임감이나 기한을 요구하고, 누군가의 명령이나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준다. 즉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누가 시켜서 또는 의무감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행복하다는 생각이나 만족감을 가지기 매우 어렵다. 시험 전에 해야 하는 공부, 월급을 받기 위해 하는 일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불어 ‘해야 하는 일’은 낯설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 새로운 것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진다. ‘그러니’ 해야 하고 ‘그래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겪는 시행착오는 그리 정겹지가 않다. 나는 무능한 것 같고 능력이 빨리 향상되지 않는 그 시간이 억겁과도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더 잘할 텐데’라는 푸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2.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이란 말만 들어도 달콤하다. 저혈당 상태에서 사탕이나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머금은 양 심박수도 반응한다. ‘해야 하는 일’과는 반대로 ‘타의성’이 아닌 ‘자의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는 일이므로 무얼 해도 즐거울 수 있다. 행복감을 느끼기도 좋고 적극적인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비굴하게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기에 자존감도 한층 더 강화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대부분 익숙한 일인 경우가 많다. 잘해서, 익숙해서 ‘하고 싶은 일’이 된 경우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라 매진하다 보니 잘하고 익숙해져 선순환 구조가 된 경우도 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경계가 모호하다면


이렇게 보면 이 둘이 상반되어 보인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경계가 모호하다면 어떨까? 그 둘이 수시로 변하며 요동한다면? 그러면 상호 보완의 역할을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헷갈릴 수 있겠다. 그러니 다음으로 넘어가서,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그 둘이 당신에겐 명확한가?


우리는 가끔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에 못 이겨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대게는 ‘(당장) 하고 싶은 일’로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여행을 훌쩍 떠난다거나 영화를 보거나 마구 먹는 것 등. 문제는, 당장 기분이 좋아질지는 모르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그 압박과 허무함은 더 커진다. ‘해야 하는 일’은 말 그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가? ‘해야 하는 일’은 잠시 차치하고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아는지? 지금 당장 자고 싶고, 먹고 싶고, 떠나고 싶은 거 말고 말이다. 할 때 나의 자존감이 올라가고 미래가 보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하는 확신이 드는 일. 그것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다.


미디어나 SNS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그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성공했다고 한다. 아주 예쁘게 포장된 달콤한 초콜릿과 같으면서 상대적 박탈감마저 들고 만다. 물론, 그중에는 정말로 그렇게 성공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일 하고 사세요’라고 말해선 안 된다. 그것은 매우 무책임하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일’을 아직 모를 수도 있고, 그것을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적대시하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알지도 못해 우왕좌왕한다. 그러니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재정의하고 ‘하고 싶은 일’하라는 툭 던진 말에 순간의 위로를 받았다가 다시 무기력해지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것들을 함께 다시 바라보고 생각해봤으면 한다.

첫째,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서로 요동하면서 오간다 


이 둘을 따로 보지 말자는 거다. 엄격하게 구분 지을 필요 없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는 경우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에서 맡은 업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 일이 즐거울 때가 있다. 스스로 성과를 내어서 일이 잘 풀릴 경우 숨겨졌던 열정과 동기가 뿜어져 나오며 야근과 밤샘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되어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 일을 하고 성과를 따내는 경우. 그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지식, 경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반대로 ‘글쓰기’는 ‘하고 싶은 일’의 범주에 들지만 때로는 ‘해야 하는 일’로 변모하기도 한다. 의뢰받은 글을 기한 내에 내야 하거나, 도서 집필을 하는 과정에 목차는 정해져 있고 글쓰기가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 그것은 ‘해야 하는 일’이 되며 나를 괴롭힌다. 이 둘의 요동함과 오감이 하루에도 몇 번이어서, 어느 하나를 좋고 또 다른 것을 나쁘다고 규정할 겨를이 없다.



둘째,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해야 하는 일’이 반드시 수반된다


강연으로 유명한 한 여성 강사분이 말했다.

여러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아요? ‘강의’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뭔지 알아요? 바로 ‘강의 준비’하는 거예요.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글쓰기를 통해 책을 내고, 이를 토대로 강연을 이끌어가고 싶지만 이 순간 내가 가장 힘겨워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다. ‘하고 싶은 일’이지만, ‘해야 하는 일’로 수반되고 만다. 달콤한 것만 골라 먹으면 몸에 이상이 생기듯이, 우리는 다른 것들을 반드시 함께 섭취해야 한다.


당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보자. 유튜브 스타가 되고 싶은가? 그러면 콘셉트를 잡아야 하고, 스크립트를 쓰고, 방송 장비를 구비하고, 찍고, 홍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정기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즉,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많은 사람이 보통 이것을 간과하고 그저 보이는 것만 보며 그들은 쉽사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셋째, ‘해야 하는 일’은 많은 선물을 안겨 준다 


직장 입사 초기. 나의 엑셀 실력은 소위 말해 젬병이었다. 간단한 수식조차 사용하지 못했고, 대용량의 데이터를 돌려야 할 때면 열심히 검색창에 그 방법을 검색하기 바빴다. 그러니 업무 효율은 바닥을 쳤고, 만날 야근에 시달려야 했다. 엑셀 업무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는 할 수밖에 없었다.


십수 년이 흐른 지금 엑셀의 신이란 소리는 못 들어도 고수라는 소리 듣기에 어색하지 않다. 엑셀이 인생 살아가는데 뭐 그리 큰 선물은 아니지만, 이것은 하나의 예다. 또 하나. 만날 보고서에 시달리며 보고서의 ‘보’자만 봐도 치가 떨렸는데,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목차를 정리할 때 보고서를 위해 스토리라인을 잡는 ‘해야 하는 일’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쉽게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논리체계를 습득한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낯설고 어려운 것에 자발적으로 도전하길 꺼린다. 그것은 ‘하고 싶은 일’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것을 해야만 할 때, 자의든 타의든 그것을 습득한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 많아진다. 지식은 넓어지고 경험은 풍부해진다. 자의였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 말이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의미를 찾아보자. 혹시 찾지 못한다면 만들어라도 보자. 그래야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



마지막,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보인다


혹시, 본인은 ‘해야 하는 일’도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도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 부류에 속하는가?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자. 자신을 미워하거나 세상을 탓하지도 말자. 아이러니하게도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보이기도 한다.


‘해야 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앞날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해야 하는 일’을 잘 모르겠다면 현재 ‘해야 하는 일’에 집중을 해보자. 바로 그 일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만유의 진리다.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면 ‘다음’이 보이는 이치다.

마치며 


지속적으로 말해왔듯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대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 둘은 서로 오가고 변하며, 상호 보완적으로 시너지를 발휘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많은 선물과 배움을 주고,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가장 좋은 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는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업무에 매진하고, 여가 시간엔 글쓰기를 하며 작가로 살아가는 것.


직장 생활과 업무,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에게 수많은 글의 소재를 안겨 준다. 그리고 그것으로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다시 업무에 매진한다. 더욱더 전문가가 되어가고, 그 결실은 책으로 나오고 내 이름값은 더 올라간다.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야 하는 일’이란 녀석과 ‘하고 싶은 일’이란 녀석이 만들어 주는 셈이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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