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지능의 관계는 논할 가치가 없는 주제입니다

조회수 2018. 7. 6. 11: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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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종 비교를 그만두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 Slate의 「Stop talking about race and IQ」를 번역한 글입니다.


인종과 지능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이는 몇 주 전 하버드의 유전학자 데이비드 라이히가 뉴욕타임스에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시실을 밝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은 지난 해 샘 해리스가 『더 벨 커브(The Bell Curve)』의 공저자인 찰스 머레이를 팟캐스트 웨이킹 업에서 인터뷰한 내용에 대해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트위터에서 샘 해리스와 복스(Vox)의 에즈라 클라인 사이의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클라인은 복스를 통해 라이히와 해리스에 대한 반박문을 올렸고 해리스 또한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에 대응했으며 앤드류 설리반이 클라인에 대한 공격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클라인과 해리스는 새로운 팟캐스트에서 두 시간 동안 별 소득 없이 자신들의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나는 이 주제에 관한 논쟁을 10년 이상 지켜보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금기를 부수는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인종 간의 차이에 대한 과학적 사실과 지능에 유전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를 보게 됩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당장 이를 두고 글을 쓰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주장의 모든 부분에 대한 다른 이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지능이라는 개념의 유효성, 지능이 유전된다는 주장의 의미,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구분된다는 생각 등이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그는 자신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항해 과학을 지킨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인종주의자로 생각할 뿐입니다.

나는 그 사람이 왜 이런 논쟁에 참전하는지 아주 잘 압니다. 11년 전에 내가 바로 그랬기 때문입니다. 나는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왓슨의 흑인과 백인의 지능 차이에 대한 발언을 보고 이에 관한 논문을 찾아본 뒤 논쟁에 뛰어들었습니다. 큰 실수였죠. 같은 실수를 저질렀던 사람으로써, 나는 지금 설리번이나 해리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써 몇 가지 충고를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을 바꾸었기에 그들의 생각 또한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주제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내가 그런 것처럼 이들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인종의 유전적 차이는 논의해도 됩니다. 지능의 유전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능을 인종과 연결시키는 일에는 어떤 유용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당신이 지키고 싶은 과학을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이며 전체 주제를 도덕적 문제로 만들어버립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과학을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명료함입니다. 인종의 유전학과 지능의 유전학은 서로 다른 연구분야입니다. 뉴욕타임스의 그 글에서 라이히는 명백한 유전적 근거를 가진 전립선 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특정한 유전자 위치에 아프리카 조상의 유전자를 가진 흑인들은 그 위치에 유럽인 조상의 유전자를 가진 흑인들보다 전립선 암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서 라이히는 갑자기, 비록 인종과 민족 간에 테스트 점수 차이는 존재하지만 아직 어떤 유전적 근거도 발견되지 않은 지능이라는 문제로 주제를 돌립니다.


지능의 유전학을 연구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이미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어떤 집단에서건 지능이 유전을 통해 사회적 이득을 주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유전되는지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우생학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능이 유전되며 마치 부(wealth)와 마찬가지로 선택 결혼을 통해 양극화를 만들어 사회 계층을 고착화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더 벨 커브』는 바로 이 주제에 대한 책입니다.

1917년 IQ 테스트 중인 미국 육군들

문제는 지능의 유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를 인종과 민족으로 확장할 때 일어납니다. 어떤 이들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러한 의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이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후자가 순진하고 무책임할 뿐 아니라, 편견에 둔감한 이들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들과는 논의가 가능하며, 그들을 설득하려는 것이 바로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지능은 부분적으로 유전적이며 인종 또한 부분적으로 유전적이므로 인종간의 지능 차이 또한 어느 정도는 유전자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추론에는 적어도 두 가지 과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인종을 유전학의 논의에 가져오는 순간, 인과관계를 통한 분석이 어려워 집니다. 예를 들어 유전자가 인종간의 지능검사 차이에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할지, 아니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을 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어떤 역할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상황에서 인종을 이야기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백인 아이, 어떤 흑인 아이, 어떤 아시안 아이가 특정한 유전자를 가져서 지능이 아주 조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유전자에 의한 결과이지 인종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부분은 IQ 논쟁에서 서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드문 지점입니다. 샘 해리스와의 인터뷰에서 머레이는 인종은 유전적 특징을 나타내기에는 불충분한 기준이라고 말했습니다.


1994년 이 책이 나온 이후, 유전적 차이를 구별하는 기술은 서서히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수천 개의 유전자가 IQ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인종이 가진 모호함은 그저 노이즈의 수준에 불과할 뿐입니다.

머레이가 해리스에게 한 말입니다.

인종 개념을 추가하는 것은 지능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더 모호하게 만들겁니다.

“인종 과학”은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특성이라는 오래된 학문으로 여전히 혐오 이데올로기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이미 가치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유전자가 집단 내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종과 민족 집단 사이를 퍼져가며 인간의 다양성을 늘이고 인종의 개념을 흐리게 만든다는 것을 압니다. 물론 전립선 암의 경우처럼 집단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언 홈즈가 아틀란틱에 쓴 글처럼 이 차이는 인종이 아니라 조상, 혹은 특정 집단을 따라 나타날 뿐입니다.

지능의 유전적 차이를 인종 개념으로 확대할 때 발생하는 두 번째 문제는 유전력(heritability) 학문 자체의 문제입니다. 설리번과 해리스는 지능이 유전되는 정도가 대략 40%에서 80% 라는 연구를 언급합니다. 인종 그룹 사이에도 이러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10년 전 내가 바로 그랬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들이 여러 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집단 안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이 연구들은 쌍둥이나 형제들의 지능지수가 얼마나 비슷한지 연구했습니다. 전체 집단을 대상으로 할 때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는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즉, 이 연구를 가지고 인종을 이야기하는 것은 원래 연구가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교육 수준이나 수입, 가족의 형태 외에도 이웃, 재산, 차별 등 인종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머레이와 다른 이들은 이런 반박에 대해 답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육이 인종 간의 지능 차이를 줄이지 못했으며, 입양이 아동의 지능에 영향을 주지 못했고, 지능지수의 집단적 상승은 “일반” 지능이 아닌 다른 요인 때문에 만들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실험의 재연이나, 지능지수 검사의 해석, 추세를 외삽해 결과를 얻는 등의 수많은 복잡한 문제가 따라옵니다.


이러한 논의가 생물학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 한 번 봅시다. 이 문제에서 과학은 비뚤어져 있고, 추상적이며, 빈약하기까지 합니다. 여전히 유전자가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나요? 예를 들어 같은 소득 수준이라 하더라도 인종에 따라 집안의 자산이나 이웃이 크게 달라지는 상황에서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의 지능이 적절하게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라이히가 한 것처럼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에 인종과 유전자를 연결시키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를 가지고 쉽게 인종간의 취업률 차이를 설명하려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이 모호한 유전자와 지능의 관계를 가지고 나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내 생각이 편견을 더 공고히 만들지는 않을지? 이를 통해 어떤 이들의 가난이 그들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데 쓰이지는 않을지? 결국은 백인들이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쓰이지 않을지?

머레이와 설리반, 해리스는 한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종간에 지능의 차이가 유전적으로 있다 하더라도 이를 특정한 개인에 대한 편견으로 연결시켜서는 안된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보다 부드럽게 만듭니다. 집단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개인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도 않을뿐더러 비합리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종에 대한 일반화를 아예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를 개인으로 대하기가 더 쉬울 겁니다.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은 내가 어떤 학문에 대한 검열을 주장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나는 단지 학문이 보다 정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전학은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즉, 인종의 유전학과 지능의 유전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인종과 지능을 함께 묶는 것보다 훨씬 더 과학적인 접근입니다.


반면,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지능과 유전학을 연결시키는 것을 죄악시 합니다. 이것 또한 잘못입니다. 이 분야에는 분명한 과학적 사실들이 존재합니다. 원한다고 해서 그 사실이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바르게 사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종간의 위계와 같은 이상한 사고방식에서 과학을 분리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인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의미한 인종간의 비교를 어떤 “금지된 지식”처럼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를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민족간의 차이를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 사실처럼 주장하는 에세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인종과 어떤 특성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사람을 피부 색깔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덧붙인다고 사람들이 그 주의를 귀담아 들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그 주의가 아니라 그 연관성만을 기억합니다.

만약 당신이 인종과 지능 사이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내 충고가 껄끄럽게 들렸을 겁니다. 아마 당신은 지능의 유전과 인종간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할 겁니다. 해리스는 클라인과의 논쟁에서 그랬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내가 바로 그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리스는 클라인에게 우리가 “어떤 진실을 금기로 만들고, 인종간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이 데이터들은 끝없이 우리에게 계속 그 사실을 일깨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과학적 결과가 인종주의자일 수는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데이터는 인종주의자가 아닙니다. 단지 인종간의 데이터를 가지고 유전학적 주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비과학적일 뿐입니다. 당신이 과학보다 앞서서 뛰어가며 집단간의 차이에 대한 주장을 펼친다고 헤서 세상은 절대로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인종과 지능이 관계가 있지만 그래도 이를 조심스레 구별해야 한다’는 당신의 주장을 그저 ‘당신이 인종주의적 주장을 했다’고 이해하는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겁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의 말이 가져올 사회적 결과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겁니다. 인종을 지능에 대한 논의에 가져오는 순간, 당신은 빛이 아니라 열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당신의 과학적 성실성은 인종과 무관한 논의에서 더 빛을 발할 겁니다.


지능에 대해 아직 생물학은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지능은 한 가지일까 아니면 여러 종류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지능을 얻고, 키우고, 유지하고, 사용하는 걸까요? 만약 지능이 유전된다면, 우리는 지능을 마치 물려받은 재산처럼 능력이 아니라 운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부모의 재산으로 결정되는 수저 계급과 지능으로 결정되는 수저 계급 사이에는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요? 지능은 다른 유산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일까요? 지능은 사회적 이동성에 기여할까요? 아니면 선택 결혼을 통해 불평등을 강화할까요? 이런 질문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빠진 논쟁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논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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