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무용했는가

조회수 2018. 7. 5. 12: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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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열풍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인문학 열풍이 시작된 건 대략 십여 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화두가 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 이후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요술상자이자 수수께끼처럼 사회에 퍼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인문학이라는 ‘그 무엇’의 힘에 닿아보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관련 책들, 강연들이 쏟아졌고, 크고 작은 성행을 이룬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불어 ‘인문학 셀럽’이라 부를 만한 이들도 상당수 탄생시키며 적지 않은 시장을 형성했다. 그런 열풍에 힘입어, 소위 ‘인문학 씬’에 뛰어든 이들은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면서 ‘교양인문학’을 전파하고 지식 전달에 주력한 이들이었다. 주로 나열식 지식을 매끄러운 문체로 전달하는 데 능숙했던 이들은 명실상부 이 열풍의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 인문학 관련된 대다수 베스트셀러는 나열식의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다. 이는 아마도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적당히 필요한 수준의 지식을 주는 데 기여했다. 논술, 면접 등 입시와 취업준비의 이득도 충분히 보면서 말이다.


다른 하나는 교양 인문학적 지식 전달보다는 인간과 사회, 시대를 보는 나름대로의 관점을 제시하며 ‘자기 이야기’를 대중적인 이해도에 맞춰 풀어낸 경우다. 이쪽 방면으로도 적지 않은 생산이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쓴 책들도 이쪽에 속한 편이었는데, 흔히 말하는 ‘인문학 열풍’ 혹은 ‘인문학 시장’과는 다소 다른 영역이었고, 또 전자의 흥행에 비하면 사실 대단히 혜택을 입었다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다만 우리 시대에 대한 몇 가지 담론이 남았고, 그것들은 우리 사회와 문화를 보는 고유한 시선의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인문학에 대한 환호, 그에 더한 비판은 대체로 전자에 쏠려 있다. 나름대로 진지함을 자처하는 이들은 지식 소매상, 얕은 지식, 자본에 결탁하고, 상품이 되어버린 인문학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가하는데, 그 질문은 궁극적으로 ‘결국 그 인문학 열풍이 해낸 것이 무엇이냐’로 수렴된다. 인문학이 한 번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10년 전에 비하면 사람들이 향유하는 시간의 다양성과 질은 확실히 변화했다. 양질의 책을 읽는 독서 모임과 글쓰기를 함께하는 공간 등이 지역적으로 굉장히 다양하게 구축되었고, 특히, 일상에 대한 비판 혹은 자기반성은 상당히 흔한 것이 되었다. 


서양의 1960년대를 휩쓸었던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은 습관이 된 소비와 일상에 대한 거부에 기반을 두었는데 우리 사회에도 역시 그러한 경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흐름이 젊은 층 사이 퍼져나가는 소소함, 보통의 것, 일상, 오늘에 대한 긍정 같은 것인데, 이것을 단순히 ‘극심한 경쟁’과 ‘팍팍한 현실’, ‘불안정한 미래’에서 오는 도피적 성향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여기에는 확실히 가치관의 변화라는 더욱 큰 범주의 시대적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향을 끌어내는 데는 소위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것의 전염이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인문학이 꾸준히, 제대로, 지속적으로 해온 하나의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지겨울 정도로 획일화된 일상 비판‘ 혹은 ‘정답이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비판‘이었다.


과거에 사람들에게 꿈과 성공에 대해 물으면 평균적인 대답은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것이었다. 참고 인내하면 성공한다. 현재가 힘들더라도 미래에는 더 큰 희망이 기다린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꿈과 성공론에 대한 허구를 이제 사람들은 간파한다.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대한 인식, 자기만족에 대한 섬세함,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삶의 기준 및 성향에 대한 비판의식은 꽤 보편적이 되었다.

의식 수준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와 문화의 전반적인 면에서 확실히 달라진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단언컨대 10년 전에만 해도 소수성과 환대에 대해 말하면 들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삶의 주류적인 형태가 아닌, 다른 라이프스타일(지방에 가서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든, 딩크족으로 살든, 자기만의 소소한 취미와 일상에 만족하든)에 대해 말하면, 그저 도피이고 패배의 합리화일 뿐이라고 취급하던 폭력적인 세상이었다. 


그러나 인문학 셀럽이 되었든, 넓고 얕은 지식이 되었든, 혹은 더 진지한 철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의 영향이든 인문학이 뭍으로 나온 세상은 확실히 나아졌다. 다양성은 무수히 쪼개지며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하나의 정답 같은 것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며,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이 일상화된다. 좋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생산되며 반복될 것이고, 아마 세상은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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