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나 울고 있을 때, 엄마는 따뜻한 밥을 지어주셨다

조회수 2018. 6. 5. 15: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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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집중하는 순간 나를 괴롭힌 생각들도 사라지더라

짝사랑이 끝나버렸다, 처참하게


짧지 않았던 짝사랑이 끝났다. 충격을 받으면 누구든 내 몸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험을 한다. 대신 각종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카톡의 사라지지 않는 ‘1’을 납덩이처럼 잠수복에 달고 생각의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꼬르륵 소리를 내며, 기포를 내뿜으며 멀어졌다.

기숙사에서 열과 복통을 동반한 몸살로 이틀을 앓았다. 약을 먹으면 금세 나았을 텐데 쓸데없이 고집을 부렸다.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면 괜한 상처만 날 것 같아 가만히 누워서 나의 부족한 행동과 지난 카톡이 담긴 필름만을 되감고 되감았다. 흑백영화가 스크린 위에서 눈물처럼 지글지글 끓었다. 


스마트폰 화면만이 깜깜한 바다 속 유일한 빛줄기였다. 화면의 빛이 꺼졌다 켜졌다 할 때, 나 자신의 존재도 희미하게 깜빡거렸다. 이렇게 했어야 했나, 저렇게 하면 안 됐어. 홍수처럼 쏟아지는 생각이 이마 위로 피어오르는 두통과 함께 이리저리 헤맸다. 그동안 내 몸은 우울의 바닥에서 철저하게 방치되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몸으로부터 도망친다


깨달음은 언제나 늦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훗날 우연히 펼쳐 들었던 책에서야 그때의 나를 설명해주는 문장을 찾을 수 있었다. 에세이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의 저자 ‘디아’는 힘겨운 사회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가 뜻밖에 강사까지 하게 된 특이한 이력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요가 수련을 통해 몸과 대화를 하며 느낀 통찰을 조용한 말투로 정리해둔다.


저자는 질문한다. 몸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대화를 걸어오는지를,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몸을 등한시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온몸에 딱딱하게 스트레스를 쌓으면서도, 잠을 쫓기 위해 아랑곳하지 않고 카페인을 털어 넣고 ‘굴린다’. 버티기 위해서 운동을 하며 ‘만든다’. 마치 몸이 머리에 딸린 도구에 불과하다는 듯 말이다.

심지어 건전지 모양의 음료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머리만으로 세상을 느끼는 나쁜 버릇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어느새 생각에만 치우치고 몸에 집중하지 못하지 않던가. 한번 빠진 어깨가 조그만 충격에도 빠지듯 정신 또한 ‘습관적 탈구’에 걸리는 셈이다.


그 사이에 몸은 존중의 대상이 아닌 도구로 길든다. 그렇게 몸이 소진되고 나면 세상에 남는 건 머릿속의 끝없는 상념뿐이다.

몸에서 떠나와 잠깐의 휴식을 준다. 몸을 떠나면 어떤 감각이나 감정, 그리고 좋지 않은 정신 상태를 막을 수 있다. 불편한 느낌에 스위치를 끄는 것이다. 콜드웰은 이런 중독을 ‘일종의 유체이탈 경험이며 자아와 세계의 연결 플러그를 뽑아놓는 행위’라고 했다.

- 38쪽


해바라기처럼 행복을 향해 몸을 활짝 펼쳐보자


그때 마침 본가로 잠깐 내려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아파서 누워 있으니 다음에 내려가겠다 해도 됐을 텐데. 어째서인지 투정 부리는 대신 나는 군말 없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말했다.

엄마, 나 아파요.

엄마는 짧게 한숨을 쉬곤 곧바로 장롱에서 침대에 전기장판을 깔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아프면 똑바로 밥부터 챙겨 먹을 생각을 해야지. 궁상은…

타박하는 소리가 덮어쓴 이불 너머로 몽롱하게 울려왔다. 식탁에 앉았다. 억지로 뜨는 밥 한술, 데워진 쌍화탕과 함께 목 뒤로 넘긴 정체 모를 알약, 그리고 전기장판 위에서 몇 시간의 잠.


한바탕 땀을 쏟아 축축해진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키자 뜻밖에도 이틀 동안 가눌 수조차 없었던 마음이 꽤나 진정되었고, 비로소 나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내 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치 어두운 상념의 바다로부터 벗어나 따뜻한 수면 위로 힘껏 끌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몸이 집중하는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위로하는 일이라는 뒤늦은 깨달음 이후, 그제야 내 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몸을 존중하고 싶다. 정말로 그러고 싶다. 힘들다고 눈앞의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괴롭히고 싶지 않다. 몸을 떠나지 않고도 편안했으면 좋겠다. 내 몸에 사는 일이, 내 감각과 만나는 일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 40쪽

얼마 전 인디 뮤지션 듀오 옥상달빛이 ‘청춘길일(靑春吉日)’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옥상달빛은 이 곡의 제목의 뜻을 말 그대로 ‘청춘의 좋은 날’이라고 설명하며 “인생에 가장 밑바닥이라 생각했던 시간 속에서도 좋은 순간들이 있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그 좋은 순간을 좋은 순간으로 기록하는 건 바로 산만한 생각들이 아닌 따스함이나 흘러가는 바람 같은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의 저자는 강조한다. 행복은 생각 끝에 얻어지는 게 아니라 몸을 깨워 얻은 감각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은 조금 비워두고 마치 햇살 아래 노랗게 빛나는 해바라기처럼 행복을 향해 몸을 활짝 펼쳐보자.


몸과 마음이 함께 열리면 나는 깊은 심해로부터 끌어올려 지고, 삶의 빛깔은 한층 생생하게 살아나고, 그렇게 나도 누군가를 또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행복감은 순간에 몸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이다. 몸의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식물이 햇볕 쪽으로 온몸을 향하듯이, 행복한 감정을 일으키는 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산다. 행복에 대한 센서는 살아 있는, 더 생생하게 살고자 하는 몸에서 나온다.

- 52쪽
YES24 / 교보문고 / 알라딘 / 인터파크 / Daum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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