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ㅍㅅㅅ

싱가포르에 온 이후로 브런치를 통해서 이메일로 싱가포르 생활에 대한 문의를 종종 받는다. 그중에서 싱가포르에 신입으로 해외 취업하는 것에 대해서 묻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러면 나는 대개 3년 정도는 경력을 쌓고 나오시라고 조언한다.

싱가포르 주거비와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인데, 연봉 인상 폭은 크지만 초봉이 그렇게 높진 않아 타지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그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입 채용 시장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창하는 현지 개발자들과 기술적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면 고용주에게 더 저렴한 연봉을 제시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우위를 갖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곰곰이 자신을 되돌아봤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만 싱가포르를 선택했나?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어려움이 나를 해외로 향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만약 지금 신입 개발자라고 했을 때, 싱가포르에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도 싱가포르행을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나에게 3년을 기다리고 나오라고 조언할 수 있을까?

선택의 문제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맡기고, 해외에 빨리 나와서 일하면 좋은 점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성과 중심의 분위기

한국 사람이 해외에서 일할 때 가장 어렵게 느껴질 측면은 바로 성과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일 것이다. 한국은 회사에 새 사람이 들어왔을 때 ‘남아서 다른 사람들의 일도 신경 쓰는 적극성과 성실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사람의 성과에는 잣대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굳이 말하자면 ‘오래 앉아 있으면 뭐라고 하지 않을게’ 같은 느낌이랄까.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3달 정도는 회사 업무를 이해하는 시간을 주고, 대기업의 경우 저 정도는 교육 기간으로만 쓰기도 한다.

그런데 싱가포르 기업에서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버는 만큼 몸값을 하기를 원한다. 당연히 몸값이 높아가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한 사람의 몫을 하기를 바랄 거다. 이런 문화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싱가포르 정부는 친기업적인 법률을 개정하는 것으로 돕고 있다.

싱가포르 기업은 아무런 이유 없이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그리고 해고 이후 보통은 4주 정도의 사전 통보 기간(Notice Period)을 채우면 바로 짐을 싸고 집에 가야 한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는 신입 혹은 경력을 가리지 않고 보통 3개월의 수습 기간(Probation)을 두는데, 이 수습 기간에는 더 짧은 기간(1~2주) 안에 해고도 가능하다.

싱가포르 기업은 사람을 뽑을 때 미리 채용하는 포지션에 맞는 업무 범위가 있고, 그 업무와 직급에 맞춰서 기대하는 업무량이 있는 게 일반적이다. 보통은 출퇴근 시간도 신경 쓰지 않는 싱가포르지만, 만약 기대치를 못 맞추면 몇 번의 피드백 이후 바로 해고하는 곳도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로 넘어오면 업무 시간 자체가 한국처럼 여유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한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면서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하는 측면인데, 이건 외국 기업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생각을 한다. 부인님께서도 한국에서 독일계 외국계 기업을 다닐 때 똑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도식화해보면 아래와 같다. 한 회사에 A, B, C라는 업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대다수 한국 회사는 팀원들이 각각 A, B, C라는 업무 일부분을 나눠서 갖는다.

그런데 외국계 회사는 보통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프로젝트를 하나 통째로 맡김으로써 직원이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도록 돕는다. 심지어 현재 회사에서 일하는 인턴도 프로젝트 하나를 통째로 맡아서 진행한다. 상사는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하고 부하 직원의 작업물을 리뷰하는 책임을 갖지만, 많은 경우에는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이 한 프로젝트를 찢어서 진행하기 때문에 전체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밑에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자신이 하던 업무를 넘기고 내 위의 상사가 하던 일을 가져오는 형태로 일을 한다. 이렇게 일하면 직원 하나가 나가도 업무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도, 일은 정말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게 해외에서 일할 때 크게 배울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이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경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과 그 안의 세부 프로세스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해외에서 일하면 아주 회사 생활부터 자기가 맡은 프로젝트를 이끄는 경험을 하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 더 큰 프로젝트를 할 역량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연봉 인상 폭이 크다

한국은 대학생들이 졸업을 하면서 초봉이 높은 회사를 가려는 경향이 많다. 그건 사실 한국이 연봉 인상 폭이 매우 작은 나라라서 그런 부분이 크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회사와 연봉 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를 기대조차 하지 않기에 추가적인 연봉 인상을 만들기도 어렵다. 사실상 처음에 받는 연봉 차이가 남은 평생의 연봉 차이를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면 누구나 초봉이 높은 회사를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싱가포르는 직원 해고가 자유롭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충성하라고 강요할 수가 없다. 직원은 수시로 면접을 보러 다니고, 지금 다니는 직장보다 좋은 제안을 받으면 이직하고, 현재 회사에서 연봉 협상을 요구한다(재밌지 않나? 한국에서 면접 보고 와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연봉 올려달라고 했다면 쫓겨날 텐데). 연봉 인상 폭도 매우 높은 편이라서 보통 이직할 때는 15~25% 정도 연봉을 올려서 이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싱가포르 해외 취업에 관심이 있다는 개발자분들에게 경력을 쌓고 나오라고 권했던 이유는 사실 비교적 낮은 대졸 초임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의 신입 개발자는 보통 2~3년 전에는 3,000~4,000SGD(1SGD는 812.84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 스타트업 격전지가 되면서 개발자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래서 월급 5,000~6,000SGD 받고 일을 시작하는 신입 개발자도 늘었다.

만약 월급 5000SGD를 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매년 이직을 할 때마다 20% 연봉을 인상한다고 생각해보자. 우선 시작 연봉을 계산해보면 아래와 같다.

4,9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 나오는데, 싱가포르는 소득세가 굉장히 낮은 나라이기 때문에 아마 한국 연봉 5,000만 원보다 실수령 금액이 훨씬 높을 거다. 따라서 대충 월급 X,000 SGD는 한국 연봉 X천만 원으로 잡으면 계산이 편하다.

단순 계산이지만 5년이면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직과 연봉 협상도 경험을 쌓아야 하는 부분이기에, 일찍 나와서 이직 시장을 경험하면 경력이 쌓일수록 더 좋은 연봉을 제시받는 것도 자명하다.

시작하라, 마음은 단단히 먹고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환경에서 일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믿어왔던 많은 ‘진실’이 사실은 내가 속한 집단 안에서만 통하는 규칙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충격적이면서 삶을 바꿔놓는 중요한 순간이 되는 경험이 흔치 않다. 다만 판도라의 상자는 한 번 열고 나면 다시 닫을 수 없으니, 그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원문: 마르코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