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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환경지킴이에서 여주시민의 행복지킴이로

조회수 2018. 5. 8. 10: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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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방선거 특집: 여주시장 후보 이항진 인터뷰

최준영(인문학자, ㅍㅍㅅㅅ 객원기자, 이하 최): 환경운동가에서 시의원으로 변신하시더니, 이제 시장이 되려 하십니다. 이유는 뭔가요?


이항진(여주시장 후보, 이하 이): 우리의 삶이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이라는 나쁜 내용을 담았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와 상생’이라는 희망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걸 누리는 사람이 시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와 상생의 정신은 환경운동가 이항진의 신념과 일치합니다. 여주시는 50년 보수지배로 피폐해졌고, 말할 수 없이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제 바꿔야 합니다. 좋은 환경, 공평한 시정, 행복한 시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맑고 깨끗한 여주를 만들겠습니다.


최: 포부가 남다르십니다. 선거 판세는 어떻게 보시나요?


이: 앞서 말씀드렸듯 여주는 보수의 텃밭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선 지자체 시대에도 민주당 시장을 한 번도 탄생시키지 못한 지역이고요. 이젠 바뀌어야 하고, 또 시민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역할을 하게 돼 뿌듯하기도 하고 또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솔직히 선거 구도는 잘 모릅니다. 4년 전 시의원에 출마하기까지 선거경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선거전에 대한 별다른 전략은 없습니다. 다만 진심과 진정성으로 승부하려 합니다. 외부의 조건에 기대거나 편승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로지 저의 신념과 비전으로 여주의 미래비전을 그릴 뿐입니다.

현실이라는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결정하는 게 정치의 본령이다.

쾌적한 자연환경과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환경의 조화 모색


최: 신념과 비전을 말씀하셨는데, 여주를 어떤 지역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이: 여주의 중심을 흐르는 여강은 천혜의 자연환경이면서 동시에 상수원 보호지역이라는 제약이 있습니다. 여강을 지키는 일은 여주시민뿐 아니라 2,500만 수도권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개발을 막아야 하지만 내부의 개발수요와 압력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저는 환경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또 시의원을 거쳤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시정을 해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인구가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산업시설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느 지역보다 섬세한 발전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그 섬세함을 저는 교육환경 개선에 쏟을 것입니다. 교육환경의 질이 곧 삶의 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 좋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학교를 만들 것입니다. 학교가 마을의 중심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일본의 작은 현들이 그렇게 합니다. 지역 문화의 중심으로서 학교가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학생과 교사와 시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교육환경을 만들겠습니다.


최: 다소 막연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이: 그 어느 때보다 창의성이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바로 창의성이기도 합니다. 창의성의 보고이자 생성소가 곧 학교입니다. 쾌적한 환경과 질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나갈 것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고요. 수도권의 IT 기업이 성남에 몰려 있습니다. 여주는 성남과 아주 가깝습니다.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IT 기업의 임직원들이 편하게 쉬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쾌적한 곳이 지척에 있다면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주가 바로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외부인들이 방문하고 싶은 좋은 환경과 여가의 공간이 많은 곳. 창의성의 진원지로서 자리매김하는 겁니다. 역사와 전통의 도시 여주, 상큼한 자연환경, 거기에 좋은 교육환경이 뒷받침된다면 사람은 저절로 모여들 것입니다.

여주밖에 모르는 바보…

최: 환경운동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지역발전의 발상이 남다르시네요. 보통은 산업단지를 짓겠다,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겠다, 식으로 비전을 말하는데 그와는 결이 다르시네요. 


이: 개발이 우선시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부득이 개발하더라도 자연 친화적인 개발이어야 합니다. 저의 철학이 시정에 스며든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계속해서 연구할 것입니다. 여주시민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니까 게을리할 수 없는 거죠.


최: 환경운동 하면서 고초도 많이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옳다고 판단하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했지만 그 신념만큼은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4대강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숱한 일화가 있지만 그걸 다 풀어놓을 수는 없겠고, 대신 수경스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환경운동은 단지 자연을 지키자는 몸부림이 아니다. 삶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이다. 대운하나 4대강 사업은 인간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최: 공감 가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직접 겪으신 고통을 듣고 싶습니다.


이: 정부에서 사업설명회를 하면 부득불 참석해서 저의 소신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덕분에 들려 나오기도 하고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집 앞에 나사못을 뿌리기도 했고, 숲으로 끌고 가 포크레인으로 땅 파서 그 속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경찰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기도 했고, 심지어 눈을 찌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그게 뭐라고, 대체 보를 설치하는 일이 뭐라고 한 사람의 삶을 이리도 망칠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갖은 고초를 겪었다

최: 그렇게 험한 일을 당하시고도 버텼다는 말이 믿기지 않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런 신념을 갖게 했을까요? 


이: 우리들의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서서히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그것들이 사라지면 우리들의 삶도 지옥이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우리네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이면서 동시에 삶의 존엄을 지키는 일입니다.


최: 숙연해지네요. 언제부터 환경운동에 뛰어드셨나요?


이: 대학 시절 학생운동 하면서 면목동에 있는 녹지 야학에서 야학교사 활동을 했고, 이후론 노동현장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결혼한 뒤 아내의 고향인 여주로 내려왔습니다. 여주가 고향은 아니지만 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된 곳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번의 삶을 산다고 합니다. 부모의 자식으로의 삶이 첫 번째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 두 번째 삶이지요. 여주는 제게 제2의 고향인 셈이죠.


처음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이 따랐는지 돈벌이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커피숍을 차리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만만치 않은 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강천에 집을 짓고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맞닥뜨렸지요. 쓰레기매립장 건립 문제나 골프장 난립 문제 등을 보면서 서서히 활동가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론 IMF 외환위기가 시작할 무렵 북한 동포들이 기근에 시달리는 사태를 접하면서 우리민족 서로 돕기 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때 어찌나 열심히 활동했는지 군 단위에서 무려 1천여만 원을 모금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해 골프장 반대 등 주로 개발사업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 여주시민의 삶과 상관없이 가진 자들을 위한 사업이고, 특권층을 위한 사업이었으니까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4대강 보 준설이 시작됐을 때는 이미 지역의 환경활동가로 자리매김한 때였고요.


최: 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들이 이포보 위에 올라 고공 투쟁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땐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이: 이포보 위에 올라간 건 장동빈, 염형철 등이었지만 그 밑에서 모든 실무를 책임진 건 저였습니다. 지역 사람들과 만나고, 언론을 상대하고, 보 위의 활동가를 챙기고…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다고 봐야겠지요.

이 후보는 환경운동연합의 이포보 고공 투쟁 시 현장 책임자를 자임했다

시민운동 하며 재산 대부분 탕진, 그러나 삶의 가치를 깨닫는 성과


최: 그런 왕성한 활동의 결과로 삶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어찌 보면 ‘새로운 이항진’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겠고요. 한마디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가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요.


최: 그 깨달음의 대가가 컸을 텐데요.


이: 우선, 벌었던 돈을 다 까먹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힘들어졌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돈이야 필요하면 또 벌면 되지만 삶의 가치를 깨닫는 건 강고한 실천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니까요.


최: 그 깨달음이 정치인의 삶으로 이끌었다고 봐야겠군요.


이: 예, 2014년에 난생처음 시의원 선거에 나섰습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선거라는 게 어떻게 치르는 것인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선거의 선자도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최 :그런데도 당당히 당선되셨습니다.


이: 심지어 재선의원급의 득표를 했습니다. 선거운동이랍시고 한 게 그저 길거리에 서서 인사를 한 것뿐이었는데 말이죠. 그 경험으로 다시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진실은 통한다는 사실, 올곧은 삶의 자세가 곧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 깨달음으로 지금 다시 여주시장 선거에 나오게 됐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시장 출마에 성공했다!

최: 진정성의 승리라고 정리하면 될까요? 시의원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이: 시의원 활동 초기만 해도 저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빨갱이라는 말도 들어야 했고, 공무원들은 저에게 시정자료를 제공하기를 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타당의 골수지지자가 저에게 친근감을 표하고 응원도 해줍니다. 저절로 그리된 건 아닙니다.


경기도 최초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준설토 문제를 적극 문제제기했고, 또 산북면 765KV 변전소 설치안 폐지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 일들은 당연히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여주시민의 힘으로 이룬 것입니다.


최: 일을 통해 신뢰를 쌓아오셨네요. 내친김에 하나 더 말씀해주세요.


이: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되고 뜻깊었던 건 이천 하이닉스로부터 30년 넘게 받지 못했던 물값을 3년간의 추적 끝에 받아낸 것입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일을 찾아서 해냈다는 자부심도 큽니다만 시의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우리 시의 권리를 되찾았다는 데서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만약 시장이 된다면 계속해서 이런 일을 발굴해 나갈 겁니다. 우리 시의 권리를 찾는 것이야말로 시정의 으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 원팀, 함께 하는 선거전의 모범으로


최: 초선 시의원에서 바로 시장선거에 나서는 건 좀 이르다는 시선도 있을 겁니다. 시의원 선거와 시장 선거는 규모나 의미도 다르고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요?


이: 일단 저는 혼자 하는 선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반세기 보수지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민주당의 도의원 후보, 시의원 후보와 원팀을 이루어서 함께 선거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지역에 인사도 함께 다니고, 홍보도 함께 합니다. 함께 하면 힘이 세다는 걸 실감하면서 즐겁게 선거운동하고 있습니다.


최: 경선 과정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지역들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주는 모범적인 곳이라고 해야겠네요.


이: 경기도당에서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선지 무형유형의 지원도 해주십니다. 우리당의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와도 호흡을 맞출 생각입니다. 김상곤 교육부총리에겐 적극적으로 정책제안을 할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힘을 실어주는 지자체가 될 각오입니다.

최: 무늬만 민선시장이 아니라 진정한 시민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분권에 대한 소신은 무엇입니까. 


이: 분권은 시대적 요청이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 늦출 수도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관행이 도처에 남아있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걸 변화시키기는 힘들겠지만 차근차근 지방의 권리를 찾아오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공직자들과 수시로 머리를 맞댈 것입니다. 공직자부터 분권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고, 나아가 시민에게도 여주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원활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최: 한마디로 어떤 시장이 되고 싶습니까?


이: 소통하는 시장이 될 것입니다. 소통을 통해 열린 시정, 투명한 시정을 이룰 것이고, 무엇보다 시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시장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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