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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꼬여야 모든 게 잘 된다: "사람이 모이는 의정부를 만들 것"

조회수 2018. 5. 8. 10: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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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시장 예비후보 김동근 인터뷰

최기영(ㅍㅍㅅㅅ 본부장, 이하 최): 책을 내셨던데 제목이 『7년 만의 귀향』이네요. 무슨 의미인지?


김동근(의정부시장 예비후보, 이하 김): 의정부가 고향이지만 아버님이 다치시는 바람에 일곱 살 때 양주로 이사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는 의정부에서 다녔지만 공고 출신으로서 보일러공 등을 전전하다가 7년 만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 4학년 때 행시에 합격해 경기도에서 공직생활을 했고, 2011년 의정부 부시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7년 만에 시장 선거에 나왔지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7년이라는 숫자와 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태어나 7년을 살았고, 고교 졸업 후 7년 만에 대학에 들어갔고, 부시장 역임한 지 7년 만에 다시 선거에 나왔으니까요.


최: 보통 7은 행운의 숫자로 불립니다. 이번 선거도 잘 되리라 보시나요?


김: 무엇보다 시민들의 변화에의 열망을 읽고 있습니다. 의정부는 그동안 정체된 도시의 대명사였습니다. 이제 변화해야 합니다. 경기 북부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변화해야 하고요. 시민들의 변화에의 욕구를 잘 알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7년 만의 귀향: 7년 살고, 7년 만에 대학입학, 부시장 7년 후 시장 도전


최: 현 시장이 재선했고, 이번에 3선에 도전하는 걸로 압니다. 현 시장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김: 그럭저럭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래선 안 됩니다. 의정부가 그리 한가한 도시가 아닙니다. 경기 북부에는 세 갈래의 시군들이 뭉쳐있습니다. 서쪽의 일산-파주권(자유로, 경의선)과 동쪽의 남양주-가평권(경춘선, 춘천고속도로), 그리고 중앙에 의정부-연천-양주권이 있습니다. 그중 일산-파주권과 남양주-가평권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유독 의정부권만 정체된 느낌입니다. 이대로 현 시장이 4년을 더 했다가는 영원히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할지 모릅니다. 제 고향을 이대로 놔둘 수가 없습니다.


최: 좀 더 구체적으로 의정부의 현실을 얘기한다면?


김: 의정부는 생산시설이나 산업단지가 없는 전형적인 소비도시입니다. 그런데 외부인구의 유입요인이 없다 보니 생산적 소비가 아닌 자체 소비가 주를 이룹니다. 발전할 수 없는 현실인 거죠. 핵심은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모이게 하려면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변화를 촉진시켜야 합니다. 교통, 문화, 역사적 전통, 산업시설, 관광지, 랜드마크 등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지만 제가 시장이 된다면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현재 의정부에서 가장 유명한 건 의정부고 졸업사진뿐 (…)

최: 랜드마크가 없다는 말에 관심이 갑니다. 구상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 


김: 의정부에 경기도 북부청사가 있습니다. 처음에 누가 입지를 정하고 설계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청사 바로 앞에 도로가 있고, 그 너머에 공원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단절 구조입니다. 시민과 관청이 한데 어우러져 소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형태였던 겁니다. 그때 마침 제가 의정부 부시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남경필 도지사의 지시로 북부청사와 공원을 연결하는 계획이 세워진 상태였는데, 내용을 보니 둘 사이에 육교로 설치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저는 행정가이기 이전에 의정부가 고향인 사람입니다. 과감하게 도로를 우회시키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북부청사와 공원을 연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세 배 규모의 대규모 광장을 탄생시켰습니다. 27년 공직생활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고, 자랑스런 일입니다. 향후 이곳을 기반으로 의정부의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나아가 의정부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 굉장한 결단이셨네요.


김: 그렇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이미 육교설치 공사가 시작된 마당에 중단시켜야 했으니까요. 담당자와 전임자들이 난색을 표했지만 결재서류에 내가 직접 책임을 지겠다는 글을 써넣기까지 했습니다. 육교공사 계약업체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전임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반발이 거셌지만 결과적으로 훌륭하게 조성된 경기 북부청사 광장

고향이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결정, 경기 북부 대표 광장 조성하라!


최: 그런 결단력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아무래도 삶의 역정과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요.


김: 어린 시절 몹시 가난했습니다. 인문계 대신 공고를 간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그래도 중학교까지만 마친 형들에 비해서는 혜택을 받은 셈입니다.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고요. 양주 덕정에서 의정부까지 10리 길을 통학하면서 힘들고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열심히 다녔습니다.

일관성 있게 심기 불편해 보이는 어린 시절

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나요? 


김: 예, 부모님의 뜻이 그랬으니까요. 첫 직장은 부천에 있는 평화 기계라는 곳이었는데, 당시 월급 5만 원을 줄 형편이 안 되는 회사였습니다. 이듬해 그만두고 서울대학교의 시설을 관리하는 회사로 옮겼습니다. 거기선 주로 보일러 시설을 관리했고요. 양주에서 서울대학교까지 가려면 보통 서너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해야 했죠. 아마도 그때부터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나 봅니다. 지금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산행을 합니다.

푸릇푸릇한 청년 시절

최: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네요. 그러니까 공고를 나와서 서울대학교를 다닌 셈이네요. 


김: 허허, 그것도 말이 되네요,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어느 날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우산도 없이 걷고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우산 씌워주기를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분명히 무슨 과에 다니느냐고 물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의식이 커가고 있었던 거죠. “저는 학생이 아니라 보일러공입니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또 한 번은 40대가 훌쩍 넘은 나이에 학부에서 공부하는 여학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저분은 저 나이에도 공부하는데 나는 아직 젊지 않은가.’


최: 주경야독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네요?


김: 맞습니다. 그때 처음 집을 나왔습니다. 아예 짐을 싸서 노량진 독서실로 옮겼습니다. 낮엔 서울대에서 일하고, 밤엔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소위 주경야독을 시작한 거죠.


최: 그렇게 고교 졸업 7년 만에 대학에 들어가신 거군요.


김: 예, 두 번째 7년과의 인연인 셈입니다. 의정부에서 태어나 7년 만에 양주로 이사 가고, 고교 졸업 후 7년 만에 대학생이 된 거죠.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너무 늦게 입학하는 바람에 취업연령 제한에 걸려 취업할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고시 공부에 매달려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최: 그 어렵다는 고시를 단번에 합격하셨네요. 주경야독의 힘이었던 듯합니다.


김: ㅎㅎ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편안하게 공부하지 않은 게 오히려 힘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땐 정말 절실했으니까요. 1991년에 행시에 합격하고, 1992년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해 각종 연수와 교육과정을 거쳐 1993년에 경기도에서 근무하게 되었죠.


최: ‘보일러공에서 경기도 부지사까지’라는 카피가 인상적입니다.


김: 작년 말 경기도 제2 부지사를 끝으로 27년의 공직을 마무리했습니다. 앞으로 의정부시장이 된다면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의정부를 경기도 제1의 도시로 만들 것입니다. 경험만 한 스승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의 27년 공직 경험이 헛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보여줄 것입니다.

무려 고려항공도 타봤다

행정가의 정체성,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단력을 갖춘 사람


최: 1993년도에는 지방자치제가 시작되기 전이었네요. 임명직 도지사에서부터 민선 경기도지사를 전부 겪으셨을 텐데, 이인제 지사에서부터 임창렬, 손학규, 김문수, 그리고 현직인 남경필 지사까지 간단하게 평을 해보면 어떨까요?


김: 모셨던 분들을 함부로 평가할 순 없지요. 다만 다섯 분 모두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마침 그분들에 대해 제 책 『7년 만의 귀향』에서 잠깐 언급하긴 했습니다.

최: 임창렬 전 지사만 빼고 네 분이 모두 이번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있습니다. 가장 긴밀하게 연락하는 분과 가장 닮고 싶은 분이 있다면?


김: 이인제 지사는 충남도지사, 김문수 지사는 서울시장, 남경필 지사는 경기도지사 재선에 나섰고, 손학규 지사는 서울시장에 출마한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후보를 돕고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다섯 분 모두 존경하고, 또 닮고 싶습니다. 그중 한 분만 꼽으라고 하시면 조금 곤란해지네요. 민감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최: 끝내 화끈한 뉴스거리를 안 주시네요. 뭐랄까, 그게 곧 공무원 출신의 특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점일 수도 있지만 한계로 보이기도 합니다.


김: 앞서 북부청사 광장 조성사업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공무원 출신이지만 나름 결단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누구나 저에게 묻습니다. 왜 민주당을 선택하지 않고 불리할 수밖에 없는 자유한국당을 선택했냐고요. 저는 민선시장은 정치인이기보다 행정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이 70%이고 정치는 30% 정도라고 할까요.


시민들은 현명하십니다. 정당보다 인물을 볼 것으로 믿습니다. 시민들은 다 아십니다. 누가 의정부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인지를. 더불어 저 역시 시민들께 약속드립니다. 저 김동근은 고향 의정부의 발전을 위해 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것입니다.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행동하기보다 부지런한 행정가로 살 것입니다.

이미 그 공적을 인정받아 《LEADERS》 잡지의 표지에 실리기도 했다.

최: 그럼에도 선거는 구도 싸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체 10 중에서 구도가 6이고 후보경쟁력이 3, 캠페인이 1이라고 합니다. 불리한 구도를 극복할 비결이 있으신지요. 


김: 여기서 다 쏟아낼 순 없지만 저는 승리를 확실합니다. 저 김동근이라야 의정부가 발전합니다. 저의 공직 경험과 미래 비전,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변화에의 열망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가 승리의 비결이고, 가장 확실한 선거전략입니다.


최: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끝으로.


김: 발전은 먼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꼬이면 다 잘 됩니다. 사람이 꼬이는 의정부를 만들겠습니다. 경기 북부의 ‘중심성’을 회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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