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차일드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조회수 2018. 4. 23. 13: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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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더 기다려주자.

준이는 돌 전 아기였을 때부터 새로운 사물,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음식 등에 대해 적응하는 것이 오래 걸리는 ‘슬로우 차일드’였다.


아무리 슬로우 차일드라고 해도 이제 여섯 살이나 되었으니 새로운 환경을 접하더라도 적응 기간은 필요 없겠지 싶었는데 역시 아직이었다. 6살인 지금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할 때까지는 엄마가 함께 있어 주고 기다려주어야 했다. 역시 타고난 기질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4월 네이버 메인에 소개된 ‘유치원 등원 거부 시 대처방법’에 대한 글에 의하면 유치원(어린이집) 첫 등원 시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떼쓰는 아이에게는 뒤돌아보지 말고 바로 바이바이를 하라는 것이 처방전이었는데, 아이가 슬로우 차일드일 경우에는 조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슬로우 차일드는 떼를 쓰는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떼를 써서 엄마를 붙잡아두려는 마음이 아니라 실제로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일 뿐이다. 엄마를 잡아두기 위해 울음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섭고 적응이 안돼서 눈물 흘리는 것이다.



떼쓰는 아이와 슬로우 차일드를 알아보는 방법


첫 번째로는 문화센터 수업과 같이 ‘엄마와 함께하는 아이 수업에 참여해보는 것’이다. 슬로우 차일드의 경우는 엄마와 같이하는 수업에서도 역시 처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준이가 돌 때쯤 문화센터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는데 총 12주 수업 동안 처음 6주는 우는 애 달래느라 다 날렸고, 나머지 6주만 겨우 수업료 본전을 뽑았던 기억이 있다.


슬로우 차일드의 놀라운 특징은 뒤늦게 무섭게 적응하면 제일 높은 수업 참여도를 보이는 ‘반전 모습’에 있다. 애가 좀 더 커서 세 돌쯤 다녔던 문화센터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환경,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 이러저러한 지시사항들을 슬로우 차일드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한번 적응하면 무서운 적응력으로 누구보다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번째로는 어린이집(유치원)에 가능하다면 같은 공간에 엄마가 함께 머물러주는 것이다. 소위 적응기간을 가지는 것인데, 엄마라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슬로우 차일드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새로운 장난감들을 만져보느라 정신없을 법도 한데, 장난감 따위 거들떠도 안 보고 엄마 옆에만 꼭 붙어 있다.


이런 아이들은 억지로 떼놓고 울리기보다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언제까지냐면, 엄마가 함께 있어 주는 동안 더 이상 엄마 옆에 붙어 있지 않고 엄마와 떨어져 환경을 탐색하고 혼자 놀 때까지다. 아이 떼놓기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고 서로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교육 현업에 계신 교육종사자분들도 의견이 다르다.


어떤 어린이집에서는 적응 기간을 일주일 이상 가지라고 엄마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어린이집에서는 다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 첫날부터 떨어지는 연습을 하는 게 맞는다는 곳도 있다. 중요한 건 어른들의 방법론이 아니라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가’를 생각해보는 데 있다.

새로운 것에 적응을 잘하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쉽게 교류하는 ‘이지 차일드’일 경우는 처음에 좀 울더라도 ‘빨리 떼놓기’를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그게 안 되는 ‘슬로우 차일드’의 경우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예열시간이 길다. 예열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다면 그 후로도 죽 부적응 상태에 머무를 수도 있다.


준이도 그랬다. 나는 어차피 출·퇴근해야 할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기다려주는 방법을 택했다. 전업맘만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엄마 이제 가도 되요’라고 스스로 얘기하는 때가 왔다. 그때의 대견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를 바꿔놓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과 교육론들이 많다. 이럴 땐 이렇게 해보자, 저럴 땐 저렇게 해보자며 자신들의 방법론을 들이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내 아이가 어떤 기질의 아이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과 그에 맞는 ‘기다림’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24개월의 아이를 키우시면서 말을 빨리 터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질문을 하셨다. 해답은 없다. 목 가누기, 뒤집기, 기기, 통잠 재우기, 걷기, 말 배우기, 두발 모아 뛰기, 대소변 가리기, 한글 깨치기 등등 아이의 인생에 큰 획을 긋는 큰 사건들은 연습하거나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각 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생체시계에 따라 동작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너무 빠른 속도를 뒤따라가기 벅차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느려 터져서 답답해하는 부모도 있다. 빠른 속도를 늦출 방법이 없듯이 느린 속도를 빠르게 바꿀 방법도 없다. 그럴 때마다 어떠한 육아 기법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이 길이 맞는 것 같다’는 방법을 따르면 된다. 그 느낌은 바로 그 아이의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내 아이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는 ‘육감’이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습득하고 있는 ‘내 아이의 특징들’, 그에 따른 ‘이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될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이 바로 정답일 수 있다.


나도 아이를 낳고 만 36개월까지는 어떻게 아이를 하루하루 봐왔는지 모르겠다. 실수투성이에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남들이 맞다고 하는 육아법만 찾아 헤매다 시간만 버렸다. 하지만 눈높이를 진짜 아이에게 맞추고 하나하나 관찰해보니 서서히 ‘내 아이만의 기질과 천성’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특징을 파악하니 어떻게 이 아이에게 맞춰야 될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면들이 있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 아이를 잘 모른다. 우리가 로봇을 낳은 것이 아니듯이 사람은 누구나 개개인마다 개성이 전부 다르다. 아이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화된 육아법으로 키울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아이의 기질 4가지 유형


(1) 순한 아동 – 이지 차일드


아이들의 약 40%는 순한 아동(easy child) 유형에 속한다. 베이비 위스퍼 책에 의하면 ‘천사 아기’라고 표현되는 부류의 아이들일 것이다. 이 유형의 아동들은 수면, 음식섭취, 배설 등의 일상생활 습관에 있어 규칙적이며 반응에 대한 강도도 보통 정도로 보여준다. 새로운 음식과 장소 등을 잘 받아들이며, 낯선 대상에게도 스스럼없이 접근하는 등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다.


더불어 조용하고 부정적 정서가 거의 없었으며, 배가 고프지만 않다면 기분 좋게 잘 지내고, 사회성은 높은 편이고, 성격은 명랑하면서도 평온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배고픈 것 빼고는 부모에게 큰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부러운 아이들이기도 하다. 유아발달검사를 실시하면 순한 아동은 더 오래 집중하고 지속적인 수행능력을 보이고 인지발달이 촉진되었으며, 이러한 선천적인 기질이 아동발달에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한다.


따라서 순한 아동의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양육하기가 수월하고 편하다. 그러나 순한 아동 또한 환경이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자주 받게 되면 문제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 순한 기질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양육해 관여하지 않는다면 까다로운 아동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양육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2) 까다로운 아동 – 디피컬트 차일드


순한 아동과 정반대인 까다로운 아동(difficult child)은 전체 아이들의 약 10% 정도를 차지한다. 이 유형의 아동은 일상생활 습관이 불규칙하여 예측하기 어렵고,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이나 욕구 좌절에 대한 반응 강도가 강한 편이다. 많이 울고 쉽게 기분이 변화되는 등 부정적 정서가 이 기질의 핵심이다. 또한 새로운 음식이나 환경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늦고, 낯선 사람에 대한 의심을 자주 보이며, 두려워하기도 하고, 높은 수준의 활동성을 보이고, 또래와의 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보인다.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산만하고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함부로 뺏거나 때리는 등의 행동을 자주 보인다고 한다.


까다로운 아동의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양육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양육에 대해 만족하거나 기뻐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유형의 어머니에게는 주변의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양육의 도움과 지원을 받게 하여 양육으로부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하고, 양육에서 야기되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감소시켜 주는 것이 좋다. 부모님이나 남편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인 것이다. 아이로부터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가 다시 아이에게로 향하게 되면 계속적인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한 까다로운 아동의 부모들은 자신의 양육방식의 틀에 아동을 억지로 짜 맞추려 하지 않아야 하며, 부모 – 아동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아동의 선천적인 기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이 좋다. 까다로운 기질을 순한 기질로 바꾸려 노력하는 것보다. 부모가 아동의 기질을 우선적으로 이해하고 그 기질에 적응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령 이런 아이들은 억지로 수면 교육을 시키기보다, 아이가 잠들고자 하는 패턴에 맞춰 재워주는 것이 더 좋다.


(3) 느린 아동 – 슬로우 차일드


순한 아동과 까다로운 아동 사이에 있는 느린 아동(slow child)은 약 15% 정도를 차지한다. 이 유형의 아동들은 상황변화에 대한 적응이 늦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적응하며, 낯선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까다로운 아동과 유사하다. 그러나 까다로운 아동과는 달리 활동량이 적고, 반응 강도가 약한 것이 특징이다.


수면 음식 섭취 등의 일상생활 습관에서는 까다로운 아동보다는 규칙적이고, 순한 아동보다는 불규칙적이다. 일반적으로 느린 아동의 반응과 행동은 긴장하지도,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지도 않으며 조금은 무력해 보일 수 있다. 내 아들 준이의 경우는 이지 차일드와 슬로우 차일드의 중간쯤인데,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변화에 굉장히 늦게 적응하며 적응이 안 됐을 때에는 까다롭고 예민하게 군다. 하지만 일단 적응하면 모범적인 성향을 띈다.


활동량이 적어서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뒤집기, 기기, 걷기 등 대근육 발달 속도도 매우 느렸지만 조용히 앉아서 집중력 있게 한 자리에서 하는 활동에는 강점을 보이기도 한다. 재우는 데는 아무 문제 없이 수월하게 키웠지만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기 때문에 먹이는 문제는 4년간 고생했다. 6세쯤 되니 다행히 먹이는 문제도 한결 나아졌다.


(4) 보통 기질


위 3가지 유형에 속하지 않는 35%의 아동들은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보통의 기질’로 보면 된다.

적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디피컬트 차일드와 슬로우 차일드가 부모님들을 다소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아이의 이런 기질을 잘 파악한다면 ‘얘는 도대체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기보다, 아이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그런 아이에게 맞는 육아 방법을 적용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처음 아이를 키울 때 새로운 환경에만 데리고 가면 예민하고 까칠하게 구는 아이를 보고 다른 집 아이들과 정말 많이 비교했다.


문화센터 수업에 데리고 갔는데,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체험도 하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노는데 우리 아이만 내 옆에 딱 붙어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딱히 울만 한 이유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알게 된 것이, 환경변화 자체를 두려워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에 솔루션은 문화센터 수업시간 10분 전 정도에 미리 들어가서 엄마와 함께 환경탐색을 같이 해보고 익숙한 장난감도 가지고 가서 심리적 안정을 준 후에 수업에 참여시켰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어도 얼마나 수업을 따라가려고 했을지는 사실 의문이다.


아이가 6-7개월 정도 되었을 때 같은 조리원 동기 아이들은 슬슬 하루에 우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큰일 아니면 아이들이 잘 울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집 아이는 여전히 신생아 시절처럼 하루 종일 내내 울어댔다. 조금 기분이 좋은가 싶으면 또 뭔가에 짜증이 나서 빽빽 울기를 반복해서 아이 울음에 엄청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다. 배고픈 것도 아니고 기저귀 문제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닌데 정말 사소한 이유로 엄청 울었다.


그때는 그 이유가 뭔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분리불안도 엄청 심했고, 내가 장난감을 이것저것 자꾸 바꿔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익숙한 것만 좋아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물 컵과 숟가락을 정해놓고 있었는데 나는 이것저것 돌려가면서 주었던 것이다. 말이 안 통하니 내가 그런 속까지 알 리가 있나.


흔히 디피컬트 차일드와 슬로우 차일드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 같아 보이지만 정말 힘든 것은 아이들 본인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좀 더 아이에게 맞춰서 양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얘는 도대체 왜 날 이렇게 힘들게 해?’가 아니라 ‘우리 애가 얼마나 힘들까?’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대하자. 디피컬트 차일드와 슬로우 차일드는 나쁜 아이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것일 뿐이다. 이런 아이들의 특성이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는 세상을 뒤집어보고 새로운 발견을 하는 등 창의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도 엄청 예민하고 까다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지 않은가. 


원문: 스윗제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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