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연애를 성공한 '프로 징역러', 전남과 연애하러 나서다: 전라남도지사 후보 신정훈 인터뷰

조회수 2018. 4. 11. 19: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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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의 슈퍼스타, 슬기로운 감빵생활, 그리고 문재인의 핫라인 그 사람

리승환: 혹시 스포츠 보십니까?


신정훈: 보지요. 축구 좋아합니다.


리: 전남 드래곤즈 팬입니까?


신정훈: 아니오. 전 토트넘 팬입니다.


리: ……


신정훈: ……

출처: DAUM 스포츠
롯데와 LG도 해봤던 우승을 못 한 슬픈 전남드래곤즈



탈당하지 않고 당을 지킨 남자


리: 아무튼 유명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쩌다가 전남 도지사에 출마하시게 되신 건가요?


신정훈: 이개호 의원님이 지금 전라남도의 유일한 민주당 국회의원이에요. 다른 분들이 다 안철수 바람에 총선 낙방해 버렸으니… 저도 도지사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당연히 우리 당 대표선수는 이 사람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한 석이 아까운 상태여서, 중앙당에서 이개호 의원님께 좀 양보해 달라… 이렇게 한 거죠. 이개호 의원님이 선당후사의 결심을 내려주셔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출마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리: 그러고 보니 후보님도 그때 탈당했으면,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어 있을 텐데, 왜 탈당하지 않은 겁니까(…)


신정훈: 문재인을 믿었죠. 호남 정치인들이 엄청 자기 기득권 챙기려고만 해요. 2014년 문재인 당대표 시절 정당혁신방안이 나왔어요. 소위 김상곤 혁신 안이죠. 이 안의 이 핵심은 선출직 공직자도 평가해서 공천하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호남 정치인들이 ‘저건 우리를 죽이려 하는 거다’, ‘무슨 놈의 국회의원이 학생도 아닌데 시험 봐야 되냐’, ‘선출직 공직자 평가제도 없애라’, 그러면서 탈당한 거죠.

2016년 총선만 해도 전남은 국민의당이 다 해먹었다(…)

리: 그리고 그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님은 백수가 됐습니다(…)


신정훈: 아니, 국민 세금 먹는 국회의원인데 당연히 평가받아야죠. 이게 공복으로의 국민인 정치인으로서의 자세지… 일 잘하면 당연히 통과되는 건데, 평가 안 받겠다? 그건 자리를 거의 개인의 사유물로 보는 거죠. 전 문재인의 혁신안과 비전에 동의했고, 탈당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리: 문재인 대통령과 꽤 가까운 사이인가 보군요(…)


신정훈: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하는 비전에 공감한 거죠. 지금은 대통령까지 됐지만, 한때 인기가 5%까지 떨어졌을 때도 언젠가는 국민이 알아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남 지역 모든 정치인이 탈당 고민할 때, 저만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어요. ‘탈당 신정훈’, 이렇게 검색해 봐요. 한 건도 안 나온다. 다른 후보들 검색하면 다 탈당 기사 나와요. 탈당을 진지하게 고민한 거죠.


리: 뭐, 다 나갔으니 기사 뜨겠죠…


신정훈: 민주당 안 나간 정치인도 마찬가지에요. 실제 나가진 않았지만, 심각하게 탈당 고민했다. 이번에 제 경쟁상대 후보도 마찬가지였고요. 탈당하려고 보니 다시 민주당 지지율 올라가서 남은 사람들이 많죠.


리: 그때 호남홀대론이 거세긴 했죠…


신정훈: 저는 민주화 이후 가장 큰 프로젝트를 참여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이라 생각해요. 공공기관 이전. 그때 가장 큰 공기업 한전이 광주전남에 들어왔죠. 저는 오히려 호남 정치인이 자기 역할 못 했다고 봐요. 어떤 정치인이든 정권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입지 생각하는 건 당연지사에요. 하지만 동시에, 자기 지역 발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지역 의원들이 별로 자기 지역에 관심이 없어요.


지금은 민주당이 전국정당이 됐지만, 호남 의원들은 정말 기득권이었죠. 이제 그들이 다 탈당해서 다행이고요.

신정훈 후보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나주시장 시절 한전을 유치했음을 자랑하려 했다(…)

리: 문재인의 핫라인이라 우기는데, 솔직히 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문프 지지율이 워낙 높다 보니 거기 기대는 거 아닌가…


신: 도지사는 전남의 발전을 책임지는 자리이자,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를 완수하는 자리에요. 제가 이번 대선에서 광주전남 국정과제를 직접 만들었잖아요. 그걸 강조하고 싶었던 거지,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빌리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리: 그러니까 내가 문재인 정부의 전남 정책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몰라줘서 그렇게 썼다(…)


신: 문재인 대통령과는 서로 정말 믿는 관계라 생각해요. 보수정부 동안 남북 핫라인이 끊긴 데에서 알 수 있듯, ‘핫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잖아요. 저 스스로 문재인 정부 시대정신을 잘 실천해온 사람이라 생각하고요.

또한 계속해서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움을 어필하려 했다(…)



5.18과 함께 한 20대


리: 요즘 전과로 인해 네거티브 이슈가 있습니다. 한마디 하신다면…


신정훈: 제가 징역살이 한 게 무슨 사리사욕이 아니잖아요. 미문화원을 통해 광주 5.18을 알리려고 한 건데, 어찌 보면 민족운동(…)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리: 어쩌다 젊은 날에 그런 일을 벌이게 된 겁니까?


신정훈: 이걸 이야기하려면 5.18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제가 고2때 5.18을 겪었어요.


리: 그때 기억은 어떤가요?


신정훈: 생생하죠. 80년대 전라도 살았던 사람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그 경험을 벗어날 수 없어요. 공포감, 억울함, 분노… 이런 게 다 가슴 속에 남아 있죠. 제 친구는 화장실에 낙서했다고, 고등학생이 경찰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리: 시위는 열심히 하셨나요?


신정훈: 어린 나이에 큰 용기가 나진 않았어요. 소위 말해서 데모 때 시내 나오면 그냥 뒷줄에 구경 가듯 서고… 주변에서 총소리 들리면 집에 쳐들어와서 이불 둘러 싸매고… 그런데 저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제가 고2때 5.18 당시 썼던 일기장을 보니 그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무고한 시민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학살하고 있는데 난 무엇을 해야 하나… 수준 높은 정치의식이 아니라, 광주시민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저항의식이랄까…


리: 그래서 대학 가서 세상을 바꿔야지…. 이런 생각을 한 건가요?


신정훈: 그런 거창한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82학번인데, 그 당시 대학가는 학생운동 저지하려고 삼청교육대라고 하는 정치깡패들이 대학에 수백 명씩 사복 입고 있었어요. 학내에서 학생 잡아가고 두들겨 패고… 지금 와서야 그때 다 돌 던졌다고 추억하지만, 실제로 뭘 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던 시대죠.


리: 되게 소심한 듯한데(…) 대체 그런 일을 어떻게 저지른 겁니까. 사실 미국을 깐다는 건 대중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는 일인데…


신정훈: 그렇죠. 미국을 다루는 건, 용공 논쟁에 휘말릴 위험성이 크니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레드컴플렉스가 얼마나 심했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처음부터 생각한 건 미국 비판보다, 광주학살을 어떻게든 알리려 했어요. 그 학살을 방조한 미국에게 책임을 물으며 관심을 끌었던 거고… 그런 측면에서 반미를 이야기했지만 투쟁은 온건했어요. 덕택에 CNN, NHK 등 세계 유수 언론이 취재하며, 광주학살에 관심을 가졌어요.

독재정권 당시 언론은 공산주의로 몰아갔지만, 실은 광주학살을 이슈화하기 위한 시위였다

리: 미문화원 점거로 깜빵에 가게 될 것도 알고 계셨을 텐데… 무섭지 않았나요?


신정훈: 굉장히 무서웠죠. 물고문, 구타야 잠깐이라 해도 징역 10년은 살 거라 생각했죠. 솔직히 몇 번을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후회하고 그랬겠어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나라가 이런 집단에 지배되면 안 된다… 이런 청년들의 순수한 정의감이었죠.


리: 뭐, 패기야 이해합니다만 막상 고문당하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신정훈: 끌려가서 많이 맞았죠. 잠도 안 재우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재판장에서 판사가 일어나라 할 때 개기며 한마디 했죠. “당신은 우리를 재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인 재판부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이게 뉴스를 타며 나름 운동권에서는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리: 한마디 하니까 반응은 어떻던가요?


신정훈: 판사가 가소롭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더라고요. 판사 판결문 외에 ‘학생들에게 훈계함’이라는 훈계문이 법정에서 낭독됐어요. 재판장이 ‘운동권 학생들이라 해도 합법적으로 싸워야지,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이 정당화되냐…’ 그런 꼰대 훈계질을 해댔고, 덕택에 이 재판장도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조사결과 훈계문은 원고지 50장이었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이재훈 판사에 대한 당시 평은 호의적이었다

리: 지금 그 재판장은 잘살고 있습니까?


신정훈: 이재훈이라고 나중에 자민련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더라고요. 저는 비록 징역살이는 했지만 국회의원 했으니, 결국 제가 이긴 겁니다.


리: …….


신정훈: 아무튼 그때 법정 정말 화려했어요. 우리 변호사는 나중에 대선 출마하는 박찬종이었고, 검사는 MB-박근혜 정부 때 공중파 엉망으로 만든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 그때 고영주가 정말 잘생겼었어요. 꽃미남 얼굴로 저 취조하고 조서 작성하고… 아직도 그 잘생긴 얼굴이 생생합니다…

이후 박찬종 변호사는 92년 대선 무균질 우유 다우의 CF로 슈퍼스타가 되고(…)
고영주는 영화 <변호인>으로 잘 알려진 부림사건 검사로 또 한 번 슈퍼스타가 된다(…)

리: 정의를 위해 다시 깜빵 가라면 가시겠습니까.


신정훈: 그때 어떻게 그렇게 열정과 용기가 났는지…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사회가 이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깜빵 가야만 될 정도의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두환, 노태우 때는 그런 극단적 방법이 아니었으면 기성정치나 독재정권의 부패를 고발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었죠. 아무튼 깜빵은 갈 용기는 있는데 몸이 따를지는 모르겠고(…)


리: 뭐, 더 몸이 안 좋은 각하와 공주님도 빵에 계신데요…


신: 버티기 힘들 거에요. 삶에서 늘 자기 입신과 이익만을 추구했던 사람들이잖아요. 투철한 정의감으로 깜빵 자처해도 버티기 힘든데, 어떻게 버티겠어요.



교도소에서 연애에 성공한 슬기로운 깜빵생활


리: 그렇게 빵을 나오고 전남 나주로 내려갔습니다. 왜 중앙에서 정치하지 않았던 거죠?


신정훈: 그때는 독재였으니 정치로 뭘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죠. 또 농촌이었던 이유는… 제가 징역 살던 중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께서 계속 제 편이셨거든요. 처음에는 ‘우리 애가 무모한 짓 했구나’하며 걱정하시다가, 재판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이 정당하고 사회가 잘못된 거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시고 많이 이해해주셨어요. 그런 아버지에 대해 죄송함이 참 컸어요. 그래서 내 고향에 가서 아버지처럼 고생하신 농민들과 함께, 그분들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리: 막 내려오니 어색하지 않던가요? 중앙에서 떡 하니 한 놈 내려와서…


신정훈: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신문에 여러 차례 등장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을 많이 가져왔어요. 농촌 운동하는 청년들이 저를 초청하더라고요. 그분들과 나주와 농촌을 바꿔보자고 의기투합했죠. 그때 가장 큰 이슈로 나온 게 물값, 수세(水稅)였어요. 쌀값이 문제가 아니라, 물값 때문에 아무리 쌀을 많이 수확해도 돈을 벌 수 없었죠. 이 폐지 운동을 시작했어요.


리: 어떤 식으로 운동을 한 거죠?


신정훈: 그냥 정말 열심히 뛰었죠. 마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어르신들께 수세의 부당함을 어필했어요. 그리고 1년 만의 시위에 나주에서만 1만 명이 모였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거의 촛불시위급이었죠.

역대급 성공한 운동인 게, 전남 지역 수세 납부는 8%대까지 내려갔다

리: 겨우 1만 명 가지고, 무슨 촛불시위까지(…)


신정훈: 아니, 그때 나주 인구가 10만 겨우 넘었어요. 게다가 그때 시내까지 나오기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런 운동을 통해 수세가 순식간에 1/5로 떨어졌어요. 한 번 승리의 맛을 느끼고 나니 계속해서 운동에 불이 붙었죠.


리: 이후 운동은 계속됐나요?


신정훈: 이제 수세를 넘어서 각종 농민 관련 이슈를 해결해 나갔죠. 그때만 해도 농민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게 수세 대책위원회를 통해 전국농민위원회, 바로 전농으로 발전하게 된 겁니다.


리: 내가 전농의 아버지다!


신정훈: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불이 붙었을 때쯤 전 또 깜빵에 가게 됩니다.

물대포 이슈로 목숨을 잃은 백남기 농민과는 생전 매우 막역한 사이였다 한다

리: 이거 무슨 프로 징역러도 아니고(…)


신정훈: 지금이야 쉽게 이야기하지만, 대중운동이 쉬운 게 없죠. 정부, 일선 경찰서… 다들 농민 운동 막으려고 난리였어요. 충돌이 굉장히 잦았죠. 군청이 강제적으로 수세 걷고 저 구속시키고… 여기에 분노한 우리 지도부가 또 군청에 분뇨 투척하고(…) 그렇게 두 번째 징역을 살게 됐죠.


리: 참 인생은 알 수 없군요……


신정훈: 하지만 덕택에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리: ………………. 참 인생은 알 수 없군요… 교도소 여직원이라도 꼬신 겁니까.


신정훈: 그건 아니고, 제 와이프도 같이 농민운동을 했는데… 같이 빵에 들어갔어요. 교도소 가면 남사(男)와 여사(女)로 갈려 있는데, 여기 오가며 일하는 사람을 비둘기라고 해요. 주로 하는 일은 똥 퍼는 일인데, 이 비둘기 꼬셔서 와이프한테 편지를 보냈죠. 교도소에서 받은 편지라니, 얼마나 로맨틱하겠어요.


리: 편지에서 똥냄새 날 것 같은데(…)


신정훈: …… 그게 당시 종이도 펜도 없어서 책 찢어서 줄 사이에 은박지를 젓가락에 끼워서 글 쓰고 그랬어요. 아무튼 그런 게 먹혀서 결혼하게 됐죠. 나오자마자 거의 바로 결혼했죠.

참고로 아내분은 신정훈 후보보다 더 일찍 농민운동을 한 진성 좌빨 부부다(…)

리: 이후에는 최연소 도의원에 이어 호남에서 유일한 민주당적 없는 무소속 시장까지 아주 승승장구하셨군요. 왜 민주당에 들어가지 않은 겁니까?


신정훈: 당시 지방자치 영역은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영남당과 호남당이 독점한 형태였어요.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지역주의에 저항한 거였고요.


리: 당시 혁신도시를 나주에 유치하며 이름을 알렸는데요, 무소속이었음에도 이가 어떻게 가능했나요?


신정훈: 제가 전라도에서 정치하면서 느낀 게, 호남 정치인들이 진짜 허세 부린다 생각했어요. 그때 제 힘이 박지원 대표 5%나 됐을까요? 여수 주성영 의원하고도 비교가 안 됐을 건데… 그분들이 더 관심 갖고 접근했으면 목포나 여수로 갔겠죠. 그런데 호남에 맹주로 딱 만족하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접근을 안 했어요.


제가 나주시장일 때 2년 정도 먼저 혁신도시안을 시작했어요. 전남대에 용역도 주고, 박준영 도지사님, 박광태 광주시장님과 열심히 이야기했죠. 그러니까 나주로 온 거지,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신정훈 후보는 틈만 나면 혁신도시를 자랑했다(…)

리: 그런 공적이 있는데, 시장에서 잘렸다?! 이건 무엇 때문입니까.


신정훈: 제가 시장 시절에 대해서는 추호도 부끄러움이 없어요. 이미 80% 완공된 수출단지가 있었는데, 규정에 약간 위배된 게 발견됐어요. 준공한 사업자가 자격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게 발견된 거죠. 일반 공무원은 전혀 손을 못 대고 있었어요. 괜히 건드렸다가 책임만 덮어 써야 하니까… 근데 저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고… 감사원, 농림부, 나주시, 이렇게 함께 공개 협의를 시작했죠. 그렇게 완공은 됐고 전 날라갔죠.


리: 음… 뇌물 수수도 아닌데 자리가 날아갈 만한 일이었나요?


신정훈: 지금은 저도 민주당적을 가지고 있지만, 무소속 시절 민주당을 4번이나 물 먹였잖아요. 그러다 보니 2번째 시장이 될 즈음엔 뭘 해도 공격당했어요. 정치적 의도로 35번이나 고발당하다가, 그 35번째에 잘렸죠.


리: 아니, 굳이 그렇게 공격받으며 왜 무소속으로 있었습니까(…)


신정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좀 억지 고집부린 것 같아요. 워낙 지방자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넘치다 보니, 자꾸 지역 상황을 왜곡하는 지역주의 정치가 비겁해 보였어요. 이제 와서 보면 너무 까칠하게 대응한 게, 정책 발전에 어려움을 준 것도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타협 없는 무소속 시장은 드라마 <시티홀>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했다. 참고로 이 드라마는 비현실적(…)이라며 수상에 실패했다…

리: 역으로 이야기해서 질질 끌면(…) 안 잘렸을 수도 있지 않나요.


신정훈: 제가 한국 최초로 친환경 학교 급식을 시작했는데, 이게 처음엔 현행법과 맞지 않았어요. WTO 조항 중 외국 농산물 차별에 걸리거든요. 수세 폐지도 마찬가지로 법에 맞서 싸운 거고… 저는 시장이 법과 질서 속에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과 시민의 권리-이익이 충돌했을 때는 맞서 싸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리: 최초의 친환경 학교 급식은 뭐죠?


신정훈: 2003년 어린 학생들과 밥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밥을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2~3년 묵은 정부미를 먹어요. 까칠까칠한… 전남 나주가 좋은 쌀 나오는데, 좋은 쌀 먹여보자. 그래야 애들이 건강하고 공부도 잘 하지 않겠나… 나아가 우리 지역에서 나는 음식물로 애들 다 먹이자. 이게 2003년에 전국 최초로 시작했어요. 10년 가까이 지나니 전국에서 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미쳤다고 했어요.

나주시는 이와 함께 마을공동급식의 문도 열었다. 넘치는 반찬에서 전라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리: 원조(?)로서 전국의 무상급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정훈: 여전히 아쉬움이 크죠. 친환경 학교급식은, 가장 좋은 음식을 먹이자는 취지인데 너무 식품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어요. 저는 지역에서 실명제 걸고 하는 로컬 푸드 개념으로 운영하는 게 맞다고 봐요. 광주전남 전체를 아우르는 식품 계획을 세우고 각 지역 음식을 최단거리로 공급하며 신선도를 유지하는 거죠.



선거에서 떨어지고, 문재인 캠프의 전남 공약 설계에 나서기까지


리: 아무튼 그런 많은 업적이 있는데, 다들 공격하는 게 더러워서 입당했다(…)


신정훈: 그건 아니고(…) 솔직히 처음 입당할 때만 해도 민주당은 호남당이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누가 나와도 민주당 이름만 달고 있으면 다 당선되고, 동네 사람 뽑자는 분위기니까요.


그런데 2012년 문재인 당대표를 필두로 소장개혁파들이 민주당을 새롭게 바꾸자는 분위기를 만들었죠. 대선을 앞두고 토호라 할만한 정치인이 다들 국민의당으로 가며 딱 분위기 정리됐죠. 그때부터는 이제 기성 정당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아요.


리: 하지만 정작 입당하자마자, 문재인 지지도는 급락했습니다. 탈당하자는 이야기 엄청 나왔을 것 같은데요.


신정훈: 박지원 대표가 나주에 5번 와서 찾아왔어요. 같이 곰탕 먹자고(…) 찾아와서 계속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고 했죠. 그런 이야기하시려면 만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바로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끝까지 당과 문재인 대표를 지킨다고 했죠. 그래서 끝까지 탈당 안 하니까, 총선 때는 저를 떨어뜨리려고 6번이나 나주에 오더라고요. 마이크 잡고 저는 호남 사람들을 위하지 않는다고…

백종원도 박지원도 좋아하는 나주곰탕

리: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신정훈: 떨어졌죠(…) 국민의당에 밀려서.


리: 한때 최연소 도의원, 호남 유일의 무소속 시장 타이틀 달다가 떨어지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신정훈: 솔직히 그 당시에는 야속했죠… 그런데 되돌아보니 국민들 선택은 이유가 있어요. 너무 내 잘난 맛에 살지 말고, 좀 더 국민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정치가 뭘까… 새롭게 시작하려면 뭘 더 신경 써야 할까…


리: 그랬던 호남 민심이 짠! 하고 다시 민주당에게 돌아왔습니다. 왜일까요?


신정훈: 흔히들 전략적 판단이라 이야기하는데, 전 그렇게 계산적인 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민심은 바른 방향, 정의로운 방향으로 간다고 봐요. 호남 사람들도, 이번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하신 거겠죠.

호남은 문재인에게 몰표를 주며 안철수를 또 내찼다(…)

리: 아무튼 그런 연으로 문재인 캠프의 전남지역 공약이라는 중임을 맡게 됐군요.


신정훈: 아니오. 그건 문재인 대통령이 맡기기 전에, 제가 자임했습니다.


리: -_-??????


신정훈: 전남 공약을 챙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정책 담당자들은 가급적이면 지지도 높은 지역에는 신경을 안 쓰려 해요. 공약을 내도 부담 없는 공약 내고… 지지율 낮은 지역, 인구 많은 지역에 신경 쓰려하죠.


그런데 전 계속 전남에서 운동하고 정치하고 그랬으니, 전남에 제대로 된 공약을 제시하자… 그래서 아무도 안 하려는 자리를 맡게 됐습니다. 결국 전남지역 10대 공약은 제가 책임 하에 주도하고 설계됐죠. 개인적으로는 참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농업, 산업, 교통 다 살리겠다는 패기의 남자(…) 신정훈


리: 이번 대선의 농어업 정책도 주도했습니다. 여권 내 최고의 농업 정책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사실입니까?


신정훈: 최고의 농업정책전문가는 좀 과한 이야기죠. 이것도 파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제가 수십 년간 현장에서 뛰다 보니 아무래도 주도적으로 역할을 많이 하긴 했죠. 중앙에서는 농업에 별로 눈을 안 돌리지만, 지금 전국에 70만 농가가 있어요. 공산품은 몇몇 회사에서 서로 협의하며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지만, 농산품은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하지 않으면 폭등-폭락이 반복돼요.


리: 그냥 시장에 맡기면 헬게이트가 열리는군요(…)


신정훈: 박근혜 정부는 농산물 가격 조절을 좀 방치했어요.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없었죠.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도 첫 농업 공약이 농산물 수급 조절입니다. 쌀 생산 조절로 가격을 맞추는 거죠. 쌀이 남아돌면 농민도 힘들지만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 보조금도 과하게 나가요.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부터는 쌀보다 다른 작물에 좀 더 힘을 쏟게끔 하고 있어요. 그러면 농민 소득도 늘고 정부 예산도 절감할 수 있으니까요.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규정을 어겨가며 수입쌀 저가 유통을 하며 쌀값을 흔들었다. 이를 비판하는 안경 쓴 신정훈 후보의 얼굴이 묘하게 짱구 유치원 선생님을 닮았다(…)

리: 그렇다고 굳이 농업을 강화할 필요까지 있을까요. 이미 한국은 산업고도화가 상당히 진행돼 있는데…


신정훈: 이미 중국 인구가 15억이고, 인도를 포함한 범 아시아권 인구는 30억 이상이에요. 이들에게 필요한 농산품은 어마어마하겠죠. 자국 내 식량 자립은 농민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제라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마냥 삽질하는 농사로 가면 안 되겠죠. 4차산업혁명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기술과 접목된 농업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리: 청년들을 농업 쪽으로 유치하기 위해 여러모로 힘쓰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농업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데, 이걸로 답이 나오나요?


신정훈: 농촌이 1차산업에 머물지 않으려면 청년층 유입이 중요해요. 기술을 갖출 수 있게 청년들을 유치하고, 그 가교로 정부가 수급 안정을 해 주고… 그래서 최근에는 그냥 돈이나 던져주고 끝내기보다,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사업내용을 함께 검토하며 매달 100~150만 원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별의별 게 다 있다(…)

리: 그런데 그 청년층이 뭘 해도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지방대는 거의 망했(…)다고 할 위기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정훈: 힘들죠. 지방이라고 일자리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근데 젊은 층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아니죠. 각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 공기업이 채용인구 30%를 지역에서 뽑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이 미스매치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쉽지는 않겠지만 일자리를 대폭 늘리려면 계속해서 산업단지를 유치하고, 지방정부와 학교가 기업 수요를 조사해 맞춤형 일자리를 내놓아야죠. 제가 한전공대 유치를 문재인 후보 공약에 건 것도 이 때문이에요. 품질 좋은 일자리 없이, 취업 장려금만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뚜렷해요.


리: 전라도 가뜩이나 예산 없는데 그런 게 될까요(…)


신정훈: 나주시장 시절에도 예산의 부족함은 많이 느꼈어요. 하지만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지가 훨씬 중요하단 것도 알았습니다. 한국은 너무 SOC를 좋아해요. 섬이 있으면 꼭 다리를 놓으려고 하죠. 그런데 여객선을 준공영화하면 어떨까요? 연도교 지을 돈 1600억의 1%, 16억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값싸게 섬까지 왔다 갔다 하고 남은 돈으로 일자리와 산업에 투자할 수 있겠죠.


리: 그 삽질 SOC 끝판왕이 무안국제공항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광주로 통합하자는 이야기도 많은데.


신정훈: 애초에 무안공항은 호남권 허브공항으로 지었기에, 광주공항을 옮기는 게 맞습니다. 물론 군공항 문제로 무안 군민들 찬성이 필요하겠죠. 장기적으로는 남해안 교류까지 주목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호남지역 KTX가 들어오고 나서 수도권과 교류가 확 늘었어요. 이제 무안공항에서부터 순천을 건너 부산까지 이어진다면 영호남간 교류도 활발해지고 김해공항과 무안공항도 활성화될 거라 생각해요.

이 무안한(…) 무안공항을 살릴 수 있다면 철갤에서 신으로 받들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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