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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드미 감독 불세출의 걸작 영화, '양들의 침묵'

조회수 2018. 3. 23. 17: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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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폭력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의 여성

조너선 드미의 〈양들의 침묵〉은 나온 지 아주 오래된 영화이지만, 역시 불세출의 강력한 캐릭터인 한니발 렉터 박사 덕분에 오랫동안 수명을 유지하는 영화다.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가 작중에서는 조연에 지나지 않는 한니발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작품을 썼을 정도니까. 작품 자체는 결말이 너무 충격적이고 인간 혐오를 정면에서 다뤄서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기는 싫어하는 모양이지만.

미국의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으로 본격화한 #MeToo 운동 영향에 영화계도 많은 피해자가 이제 용기를 가지고 이전에는 은폐되었던 성폭력의 피해사례를 쏟아내는 중이다. 한국 사회 또한 아마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형태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걸어갈 것이다. 이런 시대에 〈양들의 침묵〉은 한번 되새겨볼 만한 작품이다. 드미는 이 작품으로 1992년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받고 영화는 최우수 여우주연상, 작품상까지 휩쓸었다.


왜 그랬을까? 얼핏 연쇄살인마를 다루는 데 끝나는 스릴러 영화 같아 보이고, 대중들이 소비하는 방식도 그랬다. 그런데 왜 보수적인 아카데미는 이 영화를 가장 작품성이 우수한 올해의 영화라고 인정했을까? 대학 시절 철이 들고 다시 한번 비디오 숍에서 빌려서 본 뒤 이 영화가 다루는 어떤 시선 때문이었다고 직감했다. 바로 ‘남자들이 여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조디 포스터를 주인공 클라리스 스탈링 역으로 배정한 것은 정말 완벽한 캐스팅이었다. 그는 14세 시절 출연한 〈택시 드라이버〉에서의 열연 때문에 존 힝클리라는 미치광이가 집착하는 스토킹 대상이 되었고, 힝클리는 그녀의 관심을 끌 수 없자 당시 대통령인 레이건을 저격한다(레이건은 총을 맞고 정말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 자신의 인격이 아니라, 자신을 그저 대상물로만 바라본 자가 휘두른 일방적인 감정발산에 대한 희생양이 되어본 (유명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까.

스탈링은 유능한 FBI조사관(후보생)이다. 투지도 넘치고 의욕도 넘친다. 하지만 주변 남자들은 그녀를 그런 시선으로 보려 들지 않는다. 다들 여자라는 대상물로만 해석하고 소화하려 든다. 그녀를 그런 대상물로 소화하지 않는 존재는 영화에서 크게 두 캐릭터다. 한 명은 그녀를 파견하는 상관인 크로포드, 다른 한 명은 바로 한니발 렉터 박사다. 


크로포드는 스탈링이 어린 시절 상실한 부권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그녀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신뢰해 일을 맡기며 그녀가 위기에 처할 것을 직감하자 걱정한다. 그녀가 공을 세우자 인정하고 정식 조사관으로 받아들인다.


또 다른 남자 한니발 렉터는 자신을 찾아온 스탈링에게 성적 모욕을 가한 자를 가차 없이 응징한다. 그리고 정중하게 (처음에는 거절하고자 했던) 살인범을 찾는 단서를 준다. 정중하지만 이 자는 산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여서 자신의 위장으로 처넣는 천인공노할 연쇄살인마다. 방해하는 자는 우아한 클래식 음악에 맞추어 경찰봉으로 머리를 깨버린다.

하지만 스탈링에게는 다르게 대한다. 정중한 태도로 상대의 재능을 인정하며 그녀 마음속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해방시키려고 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 세상인가. 여자를 자신과 동일한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아버지(그나마 진짜 아버지는 죽고 없다)와 사람을 잡아먹는 미치광이 살인자뿐이라니. 그녀가 싸우는 연쇄 살인마를 둘러싼 사건과 상황은 지금 세상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황에 대한 은유는 아닐까. 


세상은 이기적인 자기 욕망에 여자를 잡아서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입는 가시적 폭력, 살인범의 단서를 찾아온 수사관을 “미인이시군요?”라며 음탕한 시선으로 소화하려는 은밀한 폭력, ‘여자 수사관이 뭘 하겠어’라는 제도적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 (자신과 같은) 여자들의 끔찍한 시체가 널려 있다. 두려움에 손이 떨린다. 하지만 스탈링은 범인에게서 인질을 구출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앞으로 나간다.


클라이막스, 끔찍한 폭력의 증거인 여자 가죽옷으로 가득 찬 버팔로 빌의 컴컴한 집 안을 홀로 나아가는 스탈링. 이 장면이 대체 무엇을 상징하겠는가. 그런 스탈링을 나이트비전 고글로 쳐다보는 버팔로 빌은 또 무엇일까. 이런 유무형의 폭력 속을 여자 혼자서 권총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 장면. 지금 세상 속 숱한 여자들이 처한 상황 그 자체 아닐까. 떨리지만, 한발 한발 앞으로 이를 악다물고 나아가야 하는.

다행히 영화는 그런 폭력에 맞서고 견디며 의로운 싸움에 이기는 스탈링을 보여준다. 무시하는 남자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폭력을 행하는 거대한 괴물을 손에 든 권총으로 쓰러뜨린다. 그녀들이 또 이렇게 싸워 이기길 바란다. 아직도 숱한 폭력이 존재하지만 강인한 의지 하나로 앞으로 나아가는 많은 여성을 생각하자는 의미로 이 영화를 다시 소개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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