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국회의원의 최대주주여야 한다

조회수 2018. 2. 23. 15:3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잘못은 세비가 아니라 나쁜 정치인을 당선시키는 제도에 있다.

1. 국회의원 세비는 금권정을 막는 안전비용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월급에 관해 이런저런 말이 많다. 청와대 청원엔 27만 명이 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세비를 깎자는 쪽엔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국회의원의 안정적인 세비를 ‘금권정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흙수저들도 정치할 수 있도록 만든, 노동계급의 피나는 노력이자 참정권 영역에서의 기회의 평등이기도 하다고 알고 있다.


만약 국회의원 연봉이 연 2천이라면, 악덕 기업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국회의원을 매수하는데 드는 돈이 연 2천만 원밖에 안 든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명절마다 떡값(이라 쓰고 ‘뒷돈’이라 읽는다) 쥐여주면 우리는 X파일 시즌 2, 3, 4를 시리즈물로 볼 수 있을 거다.


국회의원 세비 제도는 엄한 데서 검은돈 받느니, 그럴 바에 국민이 합법적으로 국고에서 액수를 정하자는 거다. 김영란법처럼 말이다. 그 대신 뒷돈 걸리는 순간 얄짤없이 의원직 날아가고 감옥 가는 거고. (감옥 갈 일 했으면 받은 돈 도로 몇 배로 토해내게 하는 건 적극 찬성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권력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은 현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당위를 적어둔 것이다. 권력이 특정 지역, 특정 계층, 특정 계급을 위해 복무하지 않도록, 공익을 해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둔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세비는 그 안전비용 중 하나다.



2. 세비를 아끼면 좋은 정치인일까?

자기 세비를 기부한 정치인이 있었다. 이명박이다. 이명박이 착해서? 아니다. 굳이 국민에게 빚져 가며 정치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그래서 제 맘대로 정치했다. 눈치 안보고 어차피 자기 돈, 자기가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돈으로 자기 정치하면 되니까. 그걸 원해서 청와대에 27만 명이나 청원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돈이 부족해서 책 팔러 전국을 바삐 돌아다녀야 했다. 유시민 같은 글쟁이도 펀드 만들고 별 궁리를 다 해서 자금 만들고 했다. 여하튼 능력 있는 흙수저들은 생계와 정치, 두 탕을 뛰면서 하라는 소린데…


세비는 가난한 정치인에게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부유한 정치인에게는 의도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빚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세비를 깎자는 말을 나는 진보가 아니라 퇴행이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런 말이 ‘대한민국을 지주공화국으로 만들자’ 와 같은 소리로 들린다.



3. 잘못은 세비가 아니라 나쁜 정치인을 자꾸 당선시키는 제도와 지역주의에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국민이 국회의원의 최대주주여야 한다. 외려 국회의원 숫자가 늘고 세비가 일정이상 국고에서 나와야 기업이 관리를 못 한다. 국회의원의 자금줄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게 대의제 원리에 합치된다. 또 이 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 제1조 2항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과 자금은 기업에서, 혹은 내가 잘 벌어서 나온다. 내가 잘났으니 시혜의 개념으로 봉사도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명박이 상징하는 특권층들의 귀족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 부자건 빈자건 같은 보수 받고 같은 원리에 따라 의회에서 앉아 글과 말로 정치하는 거다. 그게 민주정치다.


부패한 정치인은 안 뽑으면 되는 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세비가 아니라 그들을 자꾸 당선시키는 지역주의, 선거구 제도에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세비는 적어도 기업의 뒷돈을 틀어막진 못해도 상쇄하는 효과는 있다. 세비도 받고 뒷돈도 챙긴다면 수사를 강화하고 몇 배로 징벌하는 제도를 신설하면 되는 것이다.


발전은 기본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 기본을 해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울컥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겠으나,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논의가 아닐까?



붙임 1. 노르딕 국가의 국회의원이 무료 봉사직인 것은 그 나라가 복지제도로 기본적인 생계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구가 고작 500~1천만 남짓한 소국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거로 들려면, 국회의원의 세비가 아니라 한국의 열악한 복지제도와 넘치는 인구 규모를 책잡아야 한다.


붙임 2. 아테네 추첨제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아테네의 지리적 크기와 인구 규모를 우선 고려해야 하며, 추첨제를 위해 솔론과 페리클래스가 어떠한 재정적, 정치적 개혁을 이끌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시는 것을 권한다.


붙임 3. 한국은 인구와 경제 규모에 비해 국회의원 수가 적은 실정이다. 보좌관의 숫자는 더 적다. 국정 감사 기간에 행정부 100만 공무원과 맞서는 보좌관의 수는 다 끌어모아야 2천 명이 안 된다. 이래서는 행정부의 비리를 적발할 수가 없다.


3권 분립의 강화를 위해서, 행정 국가화를 막기 위해서 국회의원의 정족수 증가 및 보좌관 증원 조치, 국회도서관 사서 및 입법조사처의 연구원 추가 채용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