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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종교는 떠나고, 달콤한 과학이

종교와 과학, 같은 이야기를 하는 두 개의 언어
ㅍㅍㅅㅅ 작성일자2018.02.12. | 20,302  view

언제였을까? B급 문학으로 치부하던 장르소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게. 히가시노 게이고나 오쿠다 히데오 등의 일본 소설에 흥미를 잃고,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지 않게 된 건 또 어제였을까? 장르소설에 관심을 끊은 건 아니다. 오히려 집착하고, 그 증세는 갈수록 심해지는 중이다.


나는 지금도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후속편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출판사에 왜 출간을 서두르지 않느냐는 독촉 메시지를 몇 차례 보낸 적도 있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이 요절하지 않았다면(10부작을 계획했던 그는 3부까지 쓰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나의 독서 인생은 훨씬 행복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후속작을 기다리고, 후속작이 나오면 세트로도 모자라 고가의 스페셜 일러스트 에디션까지 사는 또 한 명의 작가와 작품이 있다. 댄 브라운의 『로버트 랭던』 시리즈다. 과학서평을 챙겨 읽는 독자가 있다면(거의 없을 테니 안심하고 이 글을 쓴다), 반문할지 모른다. 랭던 시리즈가 과학책이라고?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어떤 교양 과학 입문서보다 뛰어나다고.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의 인류를 ‘인류’라고 할 수 있을까?

source : 영화 〈공각기동대〉

종교·과학·예술이 뒤섞인 지적 향연


랭던 시리즈의 주요 골격은 과학과 종교의 대립이다. 바티칸을 배경으로 한 『천사와 악마』, 다빈치의 작품을 소재로 한 『다빈치 코드』가 그랬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곳곳에 숨겨진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파헤치는 『로스트 심벌』과 단테의 작품을 통한 인류 미래의 변주곡 『인페르노』 역시 마찬가지다.


종교와 예술, 과학.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이 위대한 세 가지 창작물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내는 저자의 솜씨는 매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종교, 예술, 과학을 뒤섞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어떤 게 있었을까? 어떤 작가가 그런 일을 시도해 성공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랭던 시리즈가 여전히 B급 문학의 장르소설 정도로 치부되고, 심지어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조차 그런 방향으로 초점을 맞춰 홍보하는 게 안타깝다.


책에는 수많은 과학자와 첨단 과학기술이 등장한다.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제러미 잉글랜드. 그리고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양자 컴퓨터, 무인 자동차. 여기에 스페인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모던 아트, 가우디의 최고 걸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 종교와 과학, 예술이 교차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적 향연이 펼쳐진다.


제목 『오리진(Origin)』에서도 알 수 있듯 브라운은 이 작품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반드시 따라붙는 또 하나의 질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종교와 과학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인류의 발명품이다.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왔고, 정반대의 지점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만, 종교와 과학은 그런 점에서 닮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의 중요한 모티브, 스탠드 밀러(왼쪽)와 해럴드 유리가 구현한 실험 장치.

실제 생명창조 실험이 중요 모티프로


사이가 좋았을 리 없다. 지금도 창조론과 진화론 논란이 거세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좋아질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소설 초반 랭던이 던지는 말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과학과 종교는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두 개의 언어일 뿐이야. 이 세상에는 그 둘이 공존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어.

책은 극단적으로 시작한다. 종교의 패배, 과학의 궁극적 승리. 인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 과학이 찾았다는 설정이다. 그게 가능하냐는 질문은 잠시 접어두자.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나 결론이 아니다.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런 시도를 한 과학자들이 있다. 책에도 등장하는 스탠리 밀러와 해럴드 유리라는 두 명의 화학자다. 이들은 인류의 오랜 질문(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관한 답을 찾기 위해 1950년대 전설적인 실험을 진행한다. 생명체가 탄생하기 이전, 지구가 부글부글 끓는 화학물질로 가득한 바다로 덮여 있던 시절을 실험실에서 재현하려고 했다.


초기의 바다와 대기에 존재하던 물, 메탄, 암모니아, 수소 같은 화학물질을 가지고 끓어오르는 바다를 재현하기 위해 혼합물에 열을 가했다. 번개 대신 전하를 일으켜 충격을 가했다. 이어 지구의 바다가 서서히 식었던 것처럼 혼합물을 서서히 냉각시켰다.


생명체가 없는 원시의 바다에서 생명을 만들겠다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도전이었다. 자연발생설을 입증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였다. 오로지 ‘과학’으로 ‘창조’를 모방했다.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사용했던 시험관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벽장 속에 보관되어 있다.


창조론자들은 신의 손길 없이는 지구상에 생명이 등장할 수 없다는 주장의 과학적 증거로 이 실험을 인용한다. 책 속에서 스탠퍼드 대학의 생화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창조하냐고요? 못 해요! 그게 핵심입니다. 창조의 과정을 이야기하려면 무생물의 화학물질이 생명체를 형성하는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우리의 과학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화학에는 그런 현상을 설명할 메커니즘이 없으니까요. 사실 세포가 자신을 생명체로 조직한다는 개념 자체가 엔트로피의 법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된다.

어두운 종교는 떠나고, 달콤한 과학이


그가 틀렸다. 주인공인 억만장자 과학자가 생명을 창조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이 뭐냐고? 답할 수 없다. 이 책의 결정적인 스포일러다. 답을 찾은 주인공은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아니라 천재 컴퓨터 과학자라는 게 하나의 힌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원시 바다의 시뮬레이션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운동, 열역학, 중력, 에너지 보존, 기타 등등의 물리학 법칙뿐만 아니라 화학까지 완벽하게 이해함으로써 저 들끓는 원시 수프 속에서 원자 하나하나 사이에 형성되는 결합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재 컴퓨터 과학자는 마침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의 답까지 찾는다. 안타깝지만 그 답도 말할 수 없다. 더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어쩌면 영화 〈공각기동대〉나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 우리는 이미 답을 봤을지도 모른다. 여기 힌트가 될 수 있는 『호모 데우스』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생명공학자들은 오래된 사피엔스의 몸을 가져다 유전 암호를 고치고, 뇌 회로를 바꾸고, 생화학 물질의 균형을 바꾸는 것은 물론 새로운 팔다리까지 자라게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신을 창조할 것이고, 그렇게 탄생한 초인류는 우리가 호모 에렉투스와 다른 만큼이나 지금의 사피엔스와 다를 것이다.

진화론을 상징하는 그림. 소설은 현재의 인류 다음은 어떤 모습일지 구현한 천재 컴퓨터 과학자를 등장시킨다.

하라리가 브라운의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다. 브라운 역시 하라리의 책을 읽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서로의 관점에 서로 끌리게 되리라는(이미 끌렸거나) 점은 분명하다.


독자가 할 일도 분명하다. 함께 읽는 것. 순서는 무관하다. 하라리의 주장이 흥미롭되 추상적으로 느껴진 독자에게 브라운의 책을 권한다. 거꾸로 브라운의 소설이 흥미진진하되 허무맹랑하게 느껴진 독자에게 하라리의 책을 권한다.


책에서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문제를 해결하는 상징이자 열쇠로 등장한다. 그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이런 그의 예언은 적중할까? 책에 답이 있다.

어두운 종교는 떠나고, 달콤한 과학이 지배한다(The dark religions are departed & sweet science reigns).

원문: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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