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히는 글쓰기: 어떻게 해야 설득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글쓰기, 이게 제 직업입니다. 이코노미스트니 애널리스트니 부르지만… 사실은 글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죠. 그러다 보니 글쓰기 책을 많이 삽니다. 얼마 전 소개했던 『일하는 문장들』도 이런 차원에서 읽은 책이죠.
이번에 소개하는 책 『뽑히는 글쓰기』는 더 실전적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시험을 칠 때 어떻게 글을 써야 뽑힐 가능성이 높냐’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라고 할까요? 일단 아래 대목 보시죠.
“여자는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이 말은 남자의 명확한 프러포즈를 기다리던 여성에게는 공감을, 짝사랑에 어쩔 줄 모르던 남성에게는 교훈을 주었다. 기특한 유행어가 되어,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될 뻔한 이 영화를 꽤 괜찮은 흥행 영화 반열에 올려놓았다. 명확한 메시지는 여자도, 관객도 움직인다.
17~18쪽
저렇게 명확한, 인상적인 카피를 남기면… 아마 제가 논술 문제 채점자라도 점수를 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저렇게 인상에 남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라는 주제보다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현행 육아 휴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제가 더 구체적이다. 다양한 정부정책 가운데 육아 휴직을 콕 집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현행 1년인 육아 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려야 한다’가 더 좁은 주제다. (중략) 이렇게 좁히는 이유는 시험 글쓰기의 분량 때문이다(책의 주제도 이렇게 좁히면 좋다!). 시험 글쓰기의 분량은 보통 1,000~1,500자에 불과하다. 이는 글자 크기 10포인트로 A4 용지 한 장을 겨우 채울 정도다.
생각을 펼칠 공간은 종이 한 장뿐인데, 단행본으로 다룰 만한 주제를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글은 구체성을 잃는다. 구체성을 잃은 글을 우리는 보통 ‘추상적이다’ 혹은 ‘모호하다’고 평가한다. 결국은 채점자의 눈에 들지 않는 글이 되는 것이다.
- 21~22쪽
“글의 내용을 최대한 좁혀라!” 제가 박사 논문 쓸 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처음 교수님을 만나 ‘한국 고령화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논문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했죠. 교수님이 빙긋이 웃기만 하더라고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셨겠죠. ‘이 녀석 아직 논문 쓸 생각이 없구먼.’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다시 찾아뵙고 논문의 주제를 말씀드렸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고배당주 특이현상’에 대해 논문을 쓰면 어떻겠냐고 여쭸죠. 그랬더니 갑자기 서가로 가서 몇 권의 논문집을 빼서 주시더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의 논문을 읽으면 좋다는 이야기는 안 했지만 이미 논문을 다 쓴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내가 아닌 남이 주제를 정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 37쪽
속 시원합니다. 즉 최대한 여러 주제로 많이 써보는 겁니다. 시계 놓고 한 시간이면 한 시간, 두 시간이면 두 시간 하는 식으로 정말 시험 치듯 글을 써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1993년 제가 대학원에 진학할 때 평균 경쟁률이 15대 1이었습니다. 요즘이랑 많이 다르죠? 참고로 상당수 경제학과 대학원 입학시험은 논술과 영어시험으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기출 문제 중심으로 열심히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최선입니다.
당시 스터디 그룹을 짜서 세 명이 돌아가며 문제를 출제하는 방식으로 모의시험을 수백 번 이상 쳤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수백 개의 시험을 다 기억하지는 못합니다만 적어도 그 범위 내에서 출제될 경우 당황하지 않고, 또 핵심적인 키워드를 빼먹지 않고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글 주제가 정해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제 경우에는 ‘질문이 좋을 때’ 글이 잘 써지더군요. 지금 쓰고 있는 서평이 그렇듯 문제 제기를 잘할수록 좋습니다. 따라서 글을 쓰기 전에 미리 ‘개요’ 글을 씁니다(끝까지 이 ‘개요’가 이어지는 경우는 백에 하나 정도에 불과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의 저자, 최윤아 기자도 비슷하더군요.
- 46쪽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글이 용두사미입니다. 열심히 읽고 난 다음 ‘이게 뭐야’라는 탄식이 나오면 그다음에는 절대 그의 글을 읽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서론과 결론이 맞아 떨어지고, 더 나아가 본론에 적힌 근거들이 결론으로 순탄하게 이어지면 순간적이긴 해도 지적 쾌감까지 느껴지죠.
용두사미 다음으로 읽기 싫은 글이 중언부언하는 글들입니다. 특히 지시대명사를 많이 쓴 글은 정말 읽기 싫습니다. 글을 읽는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며 읽다 보면 쉽게 지치거든요.
- 87쪽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크게 공감한 대목이 바로 ‘노트 정리’였습니다. 저도 한때 제 기억을 맹신한 적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억이 얼마나 쉽게 날아가는지 놀라울 정도였죠. 특히 2년 전, 회사를 때려치우고 아들과 떠난 프랑스 여행에 많은 감동을 받았건만… 돌아와서 보니 기억나는 게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사진으로 봐야 간신히 연상되는 정도?
그 인상적인 풍경과 경치조차 이 모양인데 아이디어는 더 말할 나위가 없죠. 특히 시험을 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어디서 출제될지 모르는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기록’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봅니다.
이전과 달라진 건 바로 ‘노트’였다. 첫 번째 지망생 기간 나는 ‘기록’과 담쌓은 사람이었다. 그때도 신문을 읽었고, 책도 폈다. 글도 일주일에 한두 편은 꼬박 썼다. 그러나 그때는 노트를 펴두지 않았다. 기억력을 맹신해 머리에만 담아 두었다.
- 149쪽
그 뒤로 책을 읽으면 책의 첫 장에 이렇게 인상적인 대목을 기입합니다. 페이지 번호를 적고 그 페이지에서 인상적인 내용 위주로 적습니다. 읽었던 페이지를 덮고 적는 것입니다. 즉 한 번 더 기억하게 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노트한 책의 이름은 『경영학 콘서트』(장영재 저)입니다.
마지막으로 꿀팁 하나만 더 소개하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 301쪽
대단하죠? 제가 소개한 것은 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많은 분이 읽고 도움받으셨으면 합니다.
원문: 시장을 보는 눈